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시간 있으면 커피나 한 잔"에 관한 테제

테제 1. 어느 정도 친한 사이에서라면, 아니, 단지 겨우 아는 사이에서라도, 충분히 오갈 수 있는 가벼운 제안일 뿐. 이를 확대해석하여 제안자의 의도를 의심하는 해석자의 태도가 문제다.

테제 2. 순수한 의도로 해석되기에는 이미 충분히 특정한 방식으로 코드화된 문구로서, 이 문구의 발화 및 발화에 대한 반응은 바로 그 코드를 참조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즉, 최소한 관심의 표현이거나, 나아가 적극적인 데이트 제안으로서.

이 두 테제는 이율배반의 관계에 있다. 즉 양자는 꼭 같은 정도로 타당하면서 부당하다.

테제 2의 증명. 코드라 해서 다 같은 건 아니다. 이를테면 "라면 먹고 갈래요?"는 "커피나 한 잔?"보다는 좀더 직접적이다. 물론 이는 <봄날은 간다>를 감상했고 또 기억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그런데 이런 제한을 이제는 더 이상 둘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아니, 그런 제안을 했다고요? 그거 완전히 '라면 먹고 갈래요?'인데요?" 하고 말한 것을 보면, "라면 먹고 갈래요?"가 어쩌면 그 사이에 상용화가 상당히 진척되어 이미 <봄날은 간다>라는 레퍼런스를 넘어섰을 수 있겠다는 것이다. 마치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에 처음으로 쓰인 "파파라치"라는 용어가 영화를 넘어 보통명사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나 김치 못해"는 완곡하면서도 단호한 거절의 표현으로 자리를 잡았으려나? 그러나 "시간 있으면 커피나 한 잔"은 상용구로서 "라면 먹고 갈래요?"와는 비교가 안 될만큼의 역사성과 보편성을 지닌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발화나 그에 대한 반응은 불가능하다.

테제 1의 증명. "날씨가 좋네요"나 "눈이 온다" 같은 "순수"한 문장도 무한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사랑에 빠진 자에게 그렇다 (바르트).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태를 의미의 과포화 상태로 인식하는 해석광이 된다. 상대방이 단순하게 전하는 기상 정보가 그에게는 신호가 되고, 기상의 상태는,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날이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자신의 사랑을 축복하는 일종의 우주적 계시가 된다.  그런데 이는 전적으로 해석자 의존적인 것이고, 발화자는 자신의 말이 어떻게 해석되든 책임이 없다. 아주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이상.

위의 증명에 대한 반박. 직접적인 표현이 오히려 전달력이 떨어지고 심지어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해"가 그렇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또 어떤가. 차라리 이 사소한 "커피 한 잔"이야말로 때로는 막강한 은유력(!)을 발휘하거나 극적인 사연을 제공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이런 상황 :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 찰나, 누군가 다가왔다. 얼굴을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좀 변한 것도 같았다. 긴 코트에 검은 목도리를 두른 모습이 좀 낯설었다. 마침 식사 후 커피를 마시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커피를 제안했는데, 그는 약속이 있어 가야 한다 했다. 다음날에는 그가 제안을 해왔다. 전날 하지 못한 커피 한 잔을 하는 게 어떻겠냐면서. 그가 제안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 전에도 수차례 제안이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주로 내가 거절하는 편이었다. 선뜻 내키지 않아서, 의중을 모르겠어서, 아니면 정말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그날도 그랬다. 나는 다른 곳에 다른 이들과 있었다. 원래는 평소대로 도서관에 갈 심산이었으나, 그날따라 웬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와 나 사이는 늘, 이런 식으로, 엇갈리곤 했다는, 아니, 늘 엇갈리기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면서 부리는 조화가 오히려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장벽은 높고 견고하게 쌓여가고. 이런 걸 두고 인연이 아닌 경우라 하는 거겠지. 같이 있던 이들과 헤어진 후 홀로 남아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보는데 가슴이 아파왔다. 서로 좋아하거나 최소한 호감이 있음에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람들. 상황 때문이든, 아니면 우연과 필연의 "예정" 부조화 때문이든. 그런데 결국 그런 관계가 미적으로는 더 우수(월등)하다. 우수(멜랑콜리) 중심의 내 미감에는 확실히 더 잘 들어맞는다. 그렇지만, 오, 더 이상 이런 관계는 그만. 제 아무리 우수할 지라도.

위의 반박에 대한 반박. "극적"이라고 했으나, 실은 아주 평범하고 통속적인 상황에 가깝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당사자에게는 안타깝고 애틋할지 몰라도, 제3자에게는, 즉 객관적으로는, 더없이 상투적이고 기시감을 자극할 뿐인.

같은 방식으로 무한 논박이 가능하다. 따라서 둘 중 어느 하나를 취하기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