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9일 월요일

너를 기다리는 동안(Before)... 뼈 아픈 후회(After) : 히스테리의 승화(?)를 위하여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들었던 "철학연습"이란 이름의 철학과 전공수업. 내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수업 중 하나. 요새도 수업 준비하면서 혹은 도중에도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언젠가 이 수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그런데 오늘의 마들렌느는 당시 같이 수업을 들었던 동학의 발제문. 이면지 활용을 위해 보관해 둔 모양이다. 황지우의 시가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국문학도가 썼나 보다. IMF 직후 대학가가 이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뒤숭숭하던 시절, 그러나 그 수업에서는 모두가 참 순수하고 진지했다. 그런데 마들렌느가 또 다른 기억을 환기했으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잘,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전문)  

그때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시의 모든 구절을 매일, 아니 매 순간, 사는 날이 오리란 것을. 아니 에르노가 "단순한 열정"에서 묘사한 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리란 것을. 그리하여 인생의 한때를 바로 그 기다리는 일에 고스란히 바치고 그로 인해 하마터면 인생을 망칠 뻔하게 되리란 것을. 그때를 생각하니 가슴이 그야말로 애려온다.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이 "내 가슴에 쿵쿵거"리다 못해 나의 모든 의식과 지각을 지배한 나머지 환청에 시달리던 그때. 문 앞에 네가 와 있는 상상이 실제로 네가 와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의 지각으로 너무도 쉽게 변하던 그때.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지각의 이론의존/적재성이 철저하고 처절한 경험으로 입증되던 그때. 

그 모든 것들로 멀어진 지금. 같은 발제문에 인용된 황지우의 또 다른 시가 눈에 들어온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니 부어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놓어 주는 바람뿐 (황지우, "뼈아픈 후회" 전문)

청춘만이 느끼고 쓸 수 있는 감성. 치기 어리고 날이 서 있으나 그런만큼 제법 날카로운. 그러고 보니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네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과 대조/대구를 이룬다. 한쪽은 나를 사랑하느라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고 다른 한 쪽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결과는 같다. 결국 같은 얘기. 

이제사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승화와 히스테리의 차이. 원인은 같은데(실연, 억압된 충동, 실현되지 못한 욕망 등등) 결과가 다른 것. 다음 학기 수업을 이렇게 출발하면 어떨까. 수업을 이렇게 사적인 결산(règlement de compte)으로 수단화하면 안되겠으나... 푸코가 스스로 광기의 나락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쓴 것이 바로 "광기의 역사"였던 것을 기억한다면(이 사실을 시인 김선우의 글에서 처음 접한 후 아직까지 "팩트체크"를 못 했으나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수업에서 다루려는 저자가 푸코를 따르고자 한 것이라면, 그에 따르는 것이 학문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온당하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한편으로 이 역시 일종의 "승화"이랄 수 있을 것이다. 히스테리의, 히스테리에 의한, 히스테리를 위한 승화... 이 모든 것이 광기의 발로가 아니라면!

2024년 2월 7일 수요일

1월 평가서 + 2월 계획서

날이 다시 추워졌다. 지난주 본가에 다녀올 때만 해도 날이 많이 풀려서 상대적으로 얇은 외투를 걸치고 기차에 탔는데, 도착 후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비가 오는 데다 바람 때문인지 쌀쌀하게 느껴지긴 했다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손이 곱아서 자판을 두드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추위는 핑계일 뿐.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단 추위 때문이겠는가. 더군다나 너는 추위를 좀처럼 타지 않는다고 떠벌이면서 주변의 감탄을 사는 일을 즐기지 않았느냐. 더구나 그 감탄에 "보기와는 다르다"는 말이 덧붙여지기라도 하면 한층 들뜨곤 하지 않았느냐. 추위는 핑계, 가공하고 가련한 핑계일 뿐이다. 이전에도 코로나면 코로나, 더위면 더위, 세상 어느 하나 핑계가 되지 않을 것이 없었고 그래서 핑계는 마를 일이 없었다.  그렇게 온갖 핑계의 변주와 향연 속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세월만 보낸 것이 벌써 얼마더냐. 그러는 사이에 방학도 다 지나가고 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방학이 말이다.

1월을 시작하면서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기필코 논문을 마무리해야 했다. 1월 중으로 적어도 한 편, 가능하면 두 편...이라지만 사실 한 편이라도 끝내면 다행인 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어쩌면 그조차도 끝내지 못할 거라는 예감까지도 진작부터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과 또한 예감대로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절반 정도는 끝낸(그보다는 끝냈다고 생각한) 면역 사유와 행성 사유 논문. 에스포지토와 라투르 두 인물의 사상과 둘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려던 것이 원래 계획이었으나, 라투르가 "행성 사유"라는 말을 직접 쓰는 것이 아니고 라투르보다는 차크라바르티와 육 휘가 라투르의 영향권에서 쓰는 말이기 때문에 좀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팬데믹이 두 사유의 연결의 필요성을 일깨웠음을 보이는 것이 관건. 조금만 집중해서 정리하고 종합하면 되거늘 그게 안 되어서 1월 첫 번째 마감을 놓치고 두 번째 마감마저도 놓치고는 오늘에 이른 것이다.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으나 일을 많이 벌인 것도 사실이다. 동료들과 이름하여 인공지능 세미나를 시작해서 인공지능 윤리나 그 밖의 이론/담론을 살피고 있다. 또 "제자"와 프랑스철학 세미나도 시작해서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읽었던 코이레 2차문헌을 읽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인문대 소식지나 잡지 기고문을 수정하는 데도 꽤 많은 공과 시간을 들였다. 거기에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논문 작성법 특강까지. 

그 와중에 1월 중순에는 1주일간 디지털인문학 겨울학교에도 참가했다. 애당초 목표대로 아마도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었던 듯한 "파이선"이 뭔지 대강 알고 실습까지 해봤다는 것으로 만족... 하기보다 이 방법을 내 필요에 맞게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이를테면 당장 번역서 색인 작업이라든지. 앱을 개발할 수도 있겠고. 그러나 네트워크 분석 등 "멀리서 읽기"라는 디지털인문학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고 인문학의 본령과 본분은 어디까지나 "촘촘하게 읽기" 즉 개념과 사상의 분석과 종합에 있다 할 것이다. 겨울학교 강사진 대부분이 이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 일을 적는다 해서 해야 할 일 또는 했어야 할 일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해야 할"일과 "했어야 할 일" 또는 "할 수 있었던 길"은 원래부터 가능태 같은 걸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 일"과 똑같이 그리고 동시에 생긴 일이다(베르그손). 오직 "한 일"만 있고 "한 일"은 "한 일"일 뿐이고 남은 것은 "할 일" 뿐. 아래에 그 일들을 적어보기로 한 것은 거의 전적으로 페이스북의 한 "친구"가 2월의 계획을 빼곡하게 적은 것을 보고는 경외심과 경각심이 생긴 탓이다.

2월 들어서 다른 건 몰라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다음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다룬 후 올해 안으로 완역하기로 한 디디-위베르만의 텍스트 번역과 다음 학기 학부 수업 교재인 두뇌보완계획 100. 각각 하루에 6쪽 및 3장씩 나가기로 했는데 전혀 손대지 못한 채로 일주일이 흘러 버렸다. 실은 지난주 아니 지난 주말까지도 1월 마감 논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던 탓...이라는 것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거기에다 조금 전 부주의로 과일향이 첨가된 비타민 음료를 들이키고 말았으니... 아직까지는 괜찮으나 조금이라도 반응이 올라치면 내일 아침으로 예정된 프랑스철학 세미나를 취소할 참이다. 오늘 아침 인공지능 세미나가 명목상으로는 내 본의는 아니었으나 사실은 그 누구보다 바라마지 않았던 나의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취소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그렇지만 과일이 들어가지 않은 비타민 음료를 겨우 찾고 또 판매처를 겨우 찾아서 10개들이 한 상자를 사다가 냉장고에 채워 놓은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손님용으로 단 한 병 남겨두었던 과일향 첨가 음료를 집어들어 마시고야 말았으니 기가 차도 한참은 찰 노릇인 것은 사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빨리 시작해야 한다.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1. 문제의 면역 사유-행성 사유 논문 완성 및 투고. 거절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이번에는 끝을 내야 한다. 두 가지의 저널 옵션이 있는데 일단은 완성이 우선. 2월 18일까지. 

2. 코이레 해제를 위한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사 논문. 일단 얼개를 짜고 견본으로 삼을 만한 "역자 해제" 탐색 및 탐독 중. 너무 많아서 탈이다. 게다가 너무 많이 보면 겸손을 넘어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역할모델과 선례와 범례야말로 다다익선. 그 밖에 관련 참고문헌 정리 그리고 기존의 쿤 번역서들을 참조해서 초벌 번역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2월 말까지.

3. 젠더연구소 학술대회 사회.  그냥 사회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사회만 보면 그뿐인 것도 아니라 준비가 필요하다.  2월 20일.

4. 여이연 강좌. 버라드의 물질이론과 양자역학과 영화 "오펜하이머" 등.  지난 가을 인문학 강좌에서 출발하되 한참은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당시 쓰려다 역시나 포기한 논문...의 일부는 이미 출간이 되었는데, 남은 부분도 내용상으로는 상당하고 중요성 또한 상당하다. 사실은 좀더 핵심적인, 그런데,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 비껴갔던 부분을 이제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2월 22일. 이걸 더 발전시켜서 3월 여성철학회에서 발표하고 4월 학술지 투고. 

5. 세계철학자대회 발표 신청. 세계철학자대회는 8월 로마에서 열리는데 사실 그보다 7월 빈에서 열리는 과학철학사 학회에 관심이 더 있었으나 발표 신청 마감. 세계철학자대회도 원래 1월 말까지였으나 3월 말로 마감이 연장되었다. 마감이 연장되기도 했고 번역서 자료 조사 차원에서 파리에도 들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지원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으나 뜻대로 될지... 주제는 ㄱ. 광기의 역사와 ㄴ. 코이레-메를로퐁티와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 중에서 고민 중. 3월 말.

6. 그 밖에 다른 학회들도 있고 또 지원사업도 욕심이 나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을 차라리 코이레-메를로퐁티 혹은 더 넓혀서 "고전시대" 연구로? 박사논문의 연장선상으로 말이다. 칸트, 라플라스, 콩트, 쿠르노, 베르그손, 푸앵카레... 영어 논문 출간을 목표로. 한편으로는 중복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베르그손 번역을 아카넷 고전번역에 지원해야 하는데 아마도 올해는 힘들 것이다. 아닌가? 올해 일단 내보고? 어쨌든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신진연구자사업은 지원은 3월 6일까지. 

... 이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단은 여기까지. 이미 지나친 감이 있다. 모자람만 못할 이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