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in.com · 2013-01-10
호퍼와 함께 가는 철학의 길.
[원본 이미지 링크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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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into Philosophy. 1959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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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 the Sun. 1960년작.
이러저러한 이유로 미술관 출입을 삼가게 된 지 오래. 그래서인지 더더욱, 아니, 그렇다는 사실을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그랑팔레의 호퍼展 (
http://www.grandpalais.fr/g ... pper/) 은 근래 본 파리의 전시 중 최고였다. 이미 지난 11월부터 예매가 불가능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또 아직까지도 그렇다는데, 가서 보니 과연 그럴 만도 했다. 작품 수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적당한 규모. 유명한 작품에서부터 새롭게 발견하거나 재발견할 만한 초기작에서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테이트 모던을 연상케 한 널찍한 공간 사용. 내 기억에 따르면 예전 그랑팔레는 이렇지 않았다. 몇몇 전시는 인산인해에 작품들도 다닥다닥 붙여놔서 도무지 제대로 된 관람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더더욱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준 ㅅ 언니께 감사. 그녀와의 동반 덕에 쾌적한 관람 환경에 유쾌한 기분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위의 그림은 이번에 발견한 두 작품. 첫째 그림을 철학입문서의 표지 그림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ㅅ언니가 하는데, 조금 더 가니 두 번째 그림이 나왔다. 그러면 두 번째 그림은 뒷표지에 넣어야겠다는 말에 나는 반대했다. 책이 팔리도록 하려면 순서를 바꿔야하지 않겠냐고. "철학으로의 외유"가 저렇게 어둡다면 누가 그 외유를 하러 나서겠냐고. 진리의 빛이 사람들을 향해 손짓하고, 사람들은 또 그 빛을 일제히 응시하고 있는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 편이 철학으로의 초대와 환대로서 적절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끌지 않겠냐고. 그런데, 그러면, 철학서에 상품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보다 심각한 도덕적/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절망으로 가득한 철학이란 상품을 희망으로 과대포장하는 거야말로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절망적인 "외유"에서 시작하더라도 "해바라기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걸로 끝나는 편이 좀더 솔직하고 철학 본연의 사명에 가까운 태도이리라.
호퍼는 플라토니스트였던가?
호퍼의 부인에 따르면 "철학의 외유"에 등장하는 책은 플라톤의 "향연"임에 틀림없단다. 이 작품을 작업할 무렵 호퍼가 플라톤을 다시 읽고 있었다면서. 후기로 갈수록 선과 미의 이데아를 상징하는 태양-빛의 존재가 더더욱 뚜렷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란다. 누군가는 책의 어느 부분이 펼쳐져 있는지 추측하기도. "향연" 중 소크라테스가 육체적 욕망에 대한 정신, 즉 그 유명한 "플라토닉한 사랑"의 우월성을 역설하는 대목이리라는 것. 꽤 그럴 듯하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