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오신단다. 이제 슬슬 "착한 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롤링백 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일단 집에서 피우는 담배의 양을 줄이는 일부터.
나는 누군가가 엄마에 대해 물을 때면 늘 "아까운 여자"라고 한 마디로 압축해서 대답하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를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을 단순한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몰고 가는 것은 그녀들이 제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전략들을 구사해 가면서 '살아남아' 온 역사들을 왜곡하고 축소할 소지를 다분히,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안고 있지 않은가? 이 땅의 모든 딸들이 어머니의 불행한 삶을 보고 자란 나머지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을 인생의 유일한 신조로 삼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든 사고의 근저에는 단순화 및 일반화 논리와 환원주의, 달리 말하면(나는 분명히 "달리 말하면"이라고 말한다) 지적으로 게으른 태도가 숨어 있다. 아니면, 한 사람의 삶을 세밀하고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고도 그/그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만이. 물론,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앎'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생각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한 기획이었겠지만. 문제는 그 기획이 쉽게 포기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라는 데에 있다.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고, 어슴푸레한 너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 : 이 욕망이 인간에게 내재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인간의 그 어느 정신적 활동이, 아니, 그 어느 인간사가 가능했겠는가.
오늘은 이곳의 어머니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보내는 메일에다가 "엄마가 오시면 내 살림살이가 한층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니 즐거웠다"고 썼다. 그리고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그것도 어머니날이랍시고 보내는 메일에 이렇게밖에 못 쓰다니, 저 아직 한참 어리지요?" 라고 덧붙였다. 정말이지 어려도 한참 어리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나를 두고 '어려서 과보호를 받고 자라서 그렇다'라고 말하겠는가?
(그 어느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근황
◈ 이왕 얘기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김에, 내 근황을 소개한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긴 하지만 도저히 살아 있다고 볼 수 없는,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글줄이나마 남길 수 있게 된 것은 오늘 오후부터 내린 비로 인해 며칠 동안 살인적이었던 날씨가 그 살의를 조금이나마 거둔 덕분이다.
히파티아와 디오티마를 기억하는가? 히파티아는 죽었다. 디오티마는 기형으로 자라고 있다. 꽃은 피어나지 않고 줄기만 길게 뻗어오르고 있다. 할아버지와 엄마의 "초록손"은 내게 유전되지 않은 듯하다. 그 어떤 난초든 간에 그들의 손에 맡겨지면 거기에 꽃이 피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었는데. 생명있는 것으로 하여금 딱 제게 주어진 생만큼 살도록 하는 일이 이리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도대체 얼마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내게도 아무렇지 않게 여겨질 수 있을까?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