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

blogin.com · 2005-05-30



엄마가 오신단다. 이제 슬슬 "착한 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롤링백 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일단 집에서 피우는 담배의 양을 줄이는 일부터.

나는 누군가가 엄마에 대해 물을 때면 늘 "아까운 여자"라고 한 마디로 압축해서 대답하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를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을 단순한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몰고 가는 것은 그녀들이 제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전략들을 구사해 가면서 '살아남아' 온 역사들을 왜곡하고 축소할 소지를 다분히,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안고 있지 않은가? 이 땅의 모든 딸들이 어머니의 불행한 삶을 보고 자란 나머지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을 인생의 유일한 신조로 삼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든 사고의 근저에는 단순화 및 일반화 논리와 환원주의, 달리 말하면(나는 분명히 "달리 말하면"이라고 말한다) 지적으로 게으른 태도가 숨어 있다. 아니면, 한 사람의 삶을 세밀하고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고도 그/그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만이. 물론,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앎'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생각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한 기획이었겠지만. 문제는 그 기획이 쉽게 포기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라는 데에 있다.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고, 어슴푸레한 너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 : 이 욕망이 인간에게 내재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인간의 그 어느 정신적 활동이, 아니, 그 어느 인간사가 가능했겠는가.

오늘은 이곳의 어머니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보내는 메일에다가 "엄마가 오시면 내 살림살이가 한층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니 즐거웠다"고 썼다. 그리고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그것도 어머니날이랍시고 보내는 메일에 이렇게밖에 못 쓰다니, 저 아직 한참 어리지요?" 라고 덧붙였다. 정말이지 어려도 한참 어리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나를 두고 '어려서 과보호를 받고 자라서 그렇다'라고 말하겠는가?

(그 어느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근황
안 보느니만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 이왕 얘기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김에, 내 근황을 소개한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긴 하지만 도저히 살아 있다고 볼 수 없는,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글줄이나마 남길 수 있게 된 것은 오늘 오후부터 내린 비로 인해 며칠 동안 살인적이었던 날씨가 그 살의를 조금이나마 거둔 덕분이다.

히파티아와 디오티마를 기억하는가? 히파티아는 죽었다. 디오티마는 기형으로 자라고 있다. 꽃은 피어나지 않고 줄기만 길게 뻗어오르고 있다. 할아버지와 엄마의 "초록손"은 내게 유전되지 않은 듯하다. 그 어떤 난초든 간에 그들의 손에 맡겨지면 거기에 꽃이 피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었는데. 생명있는 것으로 하여금 딱 제게 주어진 생만큼 살도록 하는 일이 이리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도대체 얼마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내게도 아무렇지 않게 여겨질 수 있을까?

—박쥐

blogin.com · 2005-05-04



바탕 화면과 테마와 템플릿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윈도우가 세상 밖을 향해 열려 있는 창임을 이제야 알겠다. 맘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활짝 열어젖힐 수도 있다는 것도. 문제는 그 창이 늘 그 자리에서 열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이제는 좀 다가가서 열어볼까 하는 마음에 손을 뻗으면, 창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라이프니츠가 옳았다. 세상으로 열린 창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유사-세상을 만들어서 그 세상을 향해 유사-창을 낸 것일 뿐. 사람들도 참, 창 뚫을 데가 없어서 세상을 만들다니.

── 사실 바다도 저렇게 창 밖으로 내다 볼 때나 좋지. 막상 들어가 보라지. 귀에 물이라도 고이면 얼마나 죽을 맛인데. 벌써부터, 아니 아직까지도 들린다. 바닷가에서 득시글대던 갯강구가 줄지어 귓구멍으로 들어와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 그런 걸 보면 이솝 우화에서 제 키보다 훨씬 높은 가지에 달린 포도를 보면서 "신 포도"라며 자위했던 그 여우는 이 유사-세상에서 살아가는/살아남는 법을 간파했던 셈이다. 아, 이 유사-세상에서 유사-창을 통해 받는 위안.
 

—박쥐

허방

blogin.com · 2005-05-03



그러면서 문득 길의 몸을 본 것 같다.
더듬거리며 그 몸을 찾아나설 때가 다시 오고 있음을 안다.
 더 멀리 가야 한다.
 더 큰 고통과 축복의 몸들에게로.
 여전히 내 언어는 불화의 쪽에 있지만,
 내 속에서 오래도록 나를 불러온 허방으로 두려움없이 가야겠다.
 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다.

-2003년 초가을 강원도에서
김선우
 (두 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의 "시인의 말" 중에서)





포스팅이 늦어진 까닭은 특별히 바빠서였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언어와의 불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언제는 말과 사이좋게 지내본 적이 있었더냐. 내게 있어 언어란 녀석이 제 기능을 발휘한 적이 있었더냐. 그 기능이 세상과 나 사이를 매개하는 것이었든 혹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상념들에 순서와 질서를 부여해서 어느 정도 유의미한 사유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든 간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언어와의 불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 글도, 모니터 위에 새겨진 이 문자 하나 하나, 획 하나 하나가 모두, 내 사유가 언어와 벌인 투쟁의 흔적이요 타협의 산물이다. 언어와 사유의 관계에 관한 소박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라고 타박해도 어쩔 수 없다. 어쩌겠는가, 지금 내 "생각"이 딱 그런 것을.

일 년 전, 나는 어느 시인의 말을 빌어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했었다. 그래 놓고는, 지난 일 년 동안, 주어진 길을 부러 가지 않은 채 서성댔다. 그렇다고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떨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본 것도 아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살아야겠다"고 했고, 이제는 또 "내 속에서 오래도록 나를 불러온 허방으로 두려움없이 가야겠다"고 말하려 한다. "~(하)겠다"라는 종결 어미를 포함하는 발화는 늘 나를 거치기만 하면 그 수행성을 잃곤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이번에는 조금 더 힘을 주어, 말해 본다, 내 속에서 오래도록 나를 불러온 허방으로 두려움없이 가야겠다, 라고.

몰라서 찾아보니 "허방"은 '움푹 팬 땅'이라는 뜻이란다. 生을 사랑하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디플라데니아를 들였는데, 그네들에게는 들어온 첫날부터 허방이 생겼다. 분갈이를 한답시고 원래는 붙어있었던 두 녀석들을 떼어놓은 탓이다. 첫날에 당장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았던 봉오리들이 시들시들해졌다. 이파리들도 마찬가지. 그래도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는" 심정으로 나름대로 지극히 보살핀 정성이 조금은 통했는지, 디오티마라 이름붙인 녀석은 싹을 틔웠다. 히파티아라 부르는 녀석은, 허방이 더 깊게 패였던 모양인지, 제게 붙여준 이름이 암시하는 운명에 순응하기로 한 모양인지, 여전히 맥을 못추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애초부터 그네들을 통해 내 허방을 메워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