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30일 화요일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

혹은, 논문과 건축 II



과학철학 및 과학사 분야 유수 학술지인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Modern Physics 의 올해 두 특집호.  하나는 우주론 특집으로 5월에 나왔고, 푸앵카레 특집인 다른 하나는 8월에 나왔다. 전자는 2011년에 우주론의 철학을 주제로 열린 학술행사에서 발표된 논문들이 출발점이 되었고, 후자는 2012년 100주기에 발표되었으며 푸앵카레 연구의 새로운 경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논문들을 선별한 것이다. 이 두 주제가 이렇게 한 호 차이로 이렇게 나란히 다루어졌다는 사실은 하필이면 바로 그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 내게는 남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일단 당장 논문에 도움이 많이 될 거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거 없이 저기에 실린 논문들로만 레퍼런스를 제한하면 시간과 노력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거고, 제한의 명분도 그럴 듯하고.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나는 꼭, 고질적인 해석광(délire d'interprétation, exactement comme Jean-Jacques !) 성향 때문에, 거기에서 더 나가서, 거기에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식의 막무가내 목적론까지 덧붙여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 저 특집호를 참고하기 위해 나는 지금껏 논문을 미뤄왔던 것이다. 거기에 과대망상과 자아도취적 정취를 곁들이면 이렇게 말하고픈 지경에 이르게 된다 :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를 그것도 두 개씩이나 다룬 이 논문의 완성은 시대적 사명이다 ; 보라, 우주의 모든 사물과 사태가 한 데 어울려(agencer) 내 논문의 완성을 위해 공조(concourir)하고 있지 않는가.

어쨌든 논문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내세우려면 내세울 수도 있을 핑계가 하나 있었던 셈이다. 동시에, 특집호가 출간된 이상, 바로 핑계-이유가 또 하나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문제는 그 이유란 게 사실 무한생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미룰 수밖에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미룰 수 없는 이유도. 2012년, 그 해 안에 반드시 끝내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푸앵카레 100주기를 기념하자는 취지였다. 목표에 다다르지 못하자 이 취지는 그 해를 넘겨야 할 이유로 쉽게 전환되었다. 100주기를 기념해서 열린 많은 행사들과 이를 계기로 나온 성과들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그럴 수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제법 그럴싸한 핑계. 앞서 언급한 SHPMP 편집진도 2012년 이런 공고를 냈던 바 있다.
One hundred years ago, the towering figure of Henri Poincaré passed away. Poincaré workshops and conferences are accordingly being held all over the world, and it is only fitting that we at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Modern Physics also devote attention to Poincaré’s path-breaking work in theoretical physics and the philosophy of science. 
We therefore plan to publish a special Poincaré issue. Given that the majority of the papers in this special issue will originate from meetings taking place in 2012, however, its publication can only take place in 2013. So as a taste of what is in store, and as a timely homage to Poincaré, we are publishing the first English translation of a 1912 essay by Poincaré about atomism.
결국 출판은 예정된 2013년이 아닌 2014년에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이유들은 많다. 미뤄야 했던 이유만큼이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도. 영구적으로, 그리고 무한정하게 연장가능한 이 합리화의 연쇄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하나, 꼭 하나만 덧붙이고픈, 실제로 최근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기도 했던,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르 코르뷔지에.


코르뷔지에와는 남다른, 뭐랄까, 가족적인 인연이 있다. 2006년 여름, 남불을 여행하던 엄마와 나. 우리는 다른 프로방스와는 사뭇 다른, 지중해 메트로폴로서의 매력이 없지 않은, 마르세이유의 정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인상은 코르뷔지에의 씨떼 라디외즈-유니테 다비타시옹에서 절정에 달했다. 눈부신 채광, 알록달록한 타일, 곳곳에 숨은 아기자기한 붙박이 장이나 의자들. 그리고 옥상의 터키색 수조와, 아, 탁 트인 하늘. 내부 거주공간을 볼 수 있었음 더 좋았을 것을,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다음에 들르게 되면 꼭 거기 있는 호텔에 묵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7년 초. 파리에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있는 코르뷔지에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가 직접 설계하고 말년을 보낸 아파트다. 동네 근처 또 다른 곳에는 코르뷔지에 재단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공사중이었다. "제가 논문 마칠 무렵엔 재개장해 있을 테니 그때 가시면 되겠네요" 하고 호기있게 장담했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 후인 2008년 여름.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던 동생 가족, 그리고 우리를 보러 파리를 재방문한 부모님과 더불어, 디종을 거쳐 샤모니까지 사부아 지방을 자동차로 여행했다. 돌아오는 길에 롱샹에 들러 코르뷔지에의 이 전설적 성당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세웠으나, 이런 저런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 실패했다. 못내 섭섭해 하시던 아빠께 나는 위로차 "저 논문 마칠 때 다시 오셔서 그때 가요" 하고 또 호기있는 장담을.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또 흐르고 흘러, 코르뷔지에 재단은 공사를 끝내고 재개장했고, 무엇보다 롱샹의 노트르담뒤오 성당 언덕에도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생겼으니,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게이트하우스 및 수녀원이 개장된 것.



우연히 이 소식을 접하고는 당연히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리고 강한 "방문"에의 의지가 생겼다. 나 때문에 가우디의 바르셀로나로의 휴가 계획을 벌써 몇 해씩이나 미루고 계신 두 분. 바르셀로나도 바르셀로나지만 두 분과 더불어 이번에는 꼭 롱샹을 방문해야겠다, 방문하고야 말리라는 강한 열망이 생겼다. 누가 알랴, 훗날, 바로 이 열망이, 거의 꺼져가던 의지의 불씨를 다시 살려 나를 논문 쓰게 했다, 고 술회하게 될지. 아니, 실제로, 이 열망이 하나의 "원인"이 되어 논문의 완성이라는 "결과"를 생산하게 될지. 인생사에는 일방향적이고 선형적인 인과관계가 전도되는 일이 흔하디 흔하잖은가. 그리하여 예측불가능한 것, 그래서 사는 맛이 나는 것, 그게 또 인생 아닌가.

2014년 9월 23일 화요일

일차소스와 이차문헌

그 사람이 일차소스인 건 알겠지만 어떻게 그것만 보고 논문을 쓰냐, 이차문헌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려다, 문득, 아, 나는 이차문헌으로 남을 운명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아무리 탁월한 주석이라 봤자 원본만 못하고 어디까지나 원본의 그림자로 남아있을, 기껏해야 사본으로만 존재해야 할. 그렇잖아도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욕망의 직접 대상이 되지 못하고 늘 간접 보격 (complément d'objet indirect)일 뿐인, 욕망의 "이차적" 대상 (objet "secondaire" du désir)이거나 오직 이차적으로만 욕망의 대상(only secondly desirable), 내 존재 양태는 이렇게 규정되는 것이 아닐까. 참으로 비참한 존재 조건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런데도 나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유아론, 나르시시즘, 내향성 등등의 내 주어진 소질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적절한 방식이라고도 생각했던 것이다. 소유와 독점 같은 방식의 관계에서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고, 내가 상대방에게 스스로를 전적으로 투자하고 그와의 관계에 전력 투구할 자신이 없는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같은 태도인 편이 낫지 않은가 했던 것이다. 이는 윤리적 문제와는 무관한, 거의 전적으로 에너지의 문제였다. 심적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은 내 자신에게 투자해야 하고, 그러기에도 빠듯한 마당에, 그걸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기란 상당히 벅찬 일인데, 그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나 심지어 복수의 요구자와의 관계란 불가능하다, 등으로 요약되는 추론. 반면 상대방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일차소스가 아니어도 좋았다. 전공자 그 중에서도 그 주제로 박사논문 쓰는 사람이나 겨우 들여다볼까 말까 한 가장 주변적이고 사소하며 비밀스러운 문헌으로 남아 있어도 좋았다. 아니 차라리 그게 나았다. 어차피 내게도 영원한 제일의 소스인 내가 있고, 상대방은 다만 이차문헌이었을 따름이니까. 그러나 그것도 내가 상대방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을 때나 비로소 유효하고 타당한 추론이었음을 이제 알겠다. 내 안에 비축해 놓은 에너지가 그래도 제법 있어서 굳이 다른 에너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나 가능한. 지금처럼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황에서는, 그렇다고 대체 에너지원을 개발할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는... 오로지 자립과 절약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