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오늘도 온종일

오늘도 온종일 나는 널 생각하느라 
어젯밤 꼬박 네 꿈을 꾸고도 모자라  

어느 책을 봐도 행간과 활자 틈에서
네가 얼굴을 내밀어 내게 눈짓하고

어느 음악을 들어도 선율을 타고서
날 부르는 네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어느 영화를 봐도 장면과 장면 사이
네가 나와서 활짝 웃으며 날 부르고 

어느 거리를 걸어도 골목 어디선가
네가 문득 나타나 안아줄 것만 같아 

세상은 그렇게 온통 너로 가득차서
어서 네게 달려가 안기라 재촉하네



오늘도 온종일 나는 널 생각하느라
해가 지고 밤이 오는 줄도 모른 채 

하루를 꼬박 널 생각하고도 모자라
여전히 네게 가서 안기고픈 생각뿐 
 
너로 가득하던 세상도 어둠에 잠겨 
이제는 너를 비워내고 잠에 드는데

나는 밤의 텅빈 자리를 너로 채우며
꿈속에서 널 다시 맞을 준비를 하네

오늘밤도 나는 너를 꿈꾸며 잠드네
어젯밤 꼬박 네 꿈을 꾸고도 모자라 

오늘도 온종일 널 꿈꾸고도 모자라
세상을 너로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2014년 12월 12일 금요일

<인터스텔라>의 "그들"

헐리웃 블록버스터 역사상 보기 드문 하드SF라 하는데... 등장 인물들이 상대성과 양자역학에 대해 상세히 논구하고 두 이론을 결합하는, 다름 아닌 물리학과 우주론의 최대의 난제가 곧 영화의 그것인 것을 제외하면... 그런데 바로 그 난제의 열쇠를 쥔 것이 결국에는... 사랑. 놀란이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을 보라 : "이 영화는 사랑의 신비를 찬미한다. 사랑에 기하학적인 토대가 있고, 이 토대로써 보다 높은 차원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전제다."

영화의 이론적 용어와 쟁점들은 나로서도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기본적인 줄거리조차 재구성하기 힘들었을 정도--원래 "스토리텔링"이 내 취약 분야이긴 하나.  imdb의 Did you know?와 Nature에 실린 손의 인터뷰 등 몇 개 문서들을 통해 "복습 및 예습"을 거치고서 두 번째로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대충이나마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서사"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것이었음도. 세 번째로, 그리고 그 전이나 후로 킵 손이 쓴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보고 난 뒤에 보면 좀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을 법한데... 그래서 지금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띄엄띄엄 읽는 중이긴 한데, 그리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게 될는지는... 

< 그래비티>가 하드하고 드라이하고 사실주의적이고 미니말리스틱한 점에서 <2001>의 계보를 잇는다면, 이 영화는 그보다는 <솔라리스>와 <콘택트>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히 <콘택트> : 매튜 맥커너히, 외계로부터의 모르스 혹은 바이너리 신호, 아버지와의 강력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어떤 신념으로 시공간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여류 물리학자. <콘택트>가 칼 세이건 원작이었고 그의 자문을 거친 것처럼 <인터스텔라>는 고 세이건의 친구이기도 한 킵 손의 자문을 거쳤고. 경험과 이론의 한계를 초월하는, 칸트가 말하는 이념의 영역이 있고, 이 초월적 영역은 흔히 생각하기 쉬운 것과는 달리 이론 이성을 진리의 추구로부터 오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리에의 길로 안내한다는, 일종의 암묵적 전제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인터스텔라>의 경우에는 더 나아가 이 전제를 더 끝까지 몰아부쳤다 하겠다. 이념--사랑!--이, 그것이 현상계를 재구조화해서든, 아니면 이미, 그러니까 선험적으로, 구성 원리로서 주어져 있었든 간에,  전혀 새로운 진리--궁극의 양자중력 방정식!--로 인간을 인도하여 마침내는 구원(!)의 길로 영도한 것이다. 

사랑 타령도 그렇지만 문제는 "그들"이다. 토성 근처에 웜홀을 만들고, 웜홀도 그냥 웜홀이 아니라 충분히 안정적이어서 시공간 이동을 가능한 종류의 것으로 하고, 웜홀의 다른 구멍 밖으로는 또 바로 블랙홀을 만들고, 그런데 블랙홀도 그냥 블랙홀이 아니라 자전속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아서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이 둘 이상 될 정도는 되는 종류의 것으로 하고, 그런데 또 충분히 그 속도가 충분히 빠르기도 해서 그 상대론적 효과로 인한 시간 딜레이가 2시간이 지구상의 28년과 등가가 되도록 하고... 3차원적 시공간 지각 능력을 가진 인간 (및 기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하이퍼스페이스를 만들고 이를 통해 중력을 이용해서 블랙홀 내 데이타를 지구로 전송하게끔 하고... 그리하여 머피로 하여금 양자중력 방정식을 풀도록 하고... 이 모든 것이 지구를 구하도록 하기 위한 "그들"의 간지였다는 것이다. 서사 기법으로 볼 때는 고대 그리스 희곡의 기계장치 신(deus ex machina)에 가까워 보일 법도 하다. 물론 여기에서의  "신"는 그보다는 좀더 치밀하고 정교한 전략을 구사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행동 및 그로 인한 우주의 역사의 전개는 현대 우주론자들이 말하는 "인류 원리"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브랜든 카터, 프랭크 티플러, 마틴 리스 등 이 원리의 주창자 및 옹호자들은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인류라는 지적 생명체의 탄생이라는 결과를 낳기 위해 우주가 구조화되어 있고 또 그렇게 진화해 왔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가정은 규제적 원리인 동시에 구성적 원리로 사용된다. 인류의 탄생은 단지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궁극적 "목적",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던 "목적인"에 가깝다. 이에 따라 우주의 구조와 역사에 대한 이론은 방법론상으로도 이 "목적"을 중심으로 한 목적론적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인터스텔라>의 경우에도 "머피와 쿠퍼를 매개로 한 지구 구하기"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거의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이것이 블랙홀 내부 초공간에서 쿠퍼가 깨달은 바다. 결국 쿠퍼가 과거에 경험했던 사건들, 특히 중력 이상 현상이 사실은 미래의 자신이 초래한 결과였다는, "그들"이 사실은 바로 "우리"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필 그가 경험하는 다양체--테서랙트--의 모든 입면들이 이 머피의 방의 우주선(line of universe)으로 이어져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일종의 역행 인과(backward causation). 기존의 인과론적 설명 모델의 기준에서 보자면 논점선취의 오류이거나 순환논리이거나 인과율에 위배되는 것 같지만, 목적론적 설명 모델에 따르면 말이 전혀 안 되지는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왜?"에 대한 답이라면, "어떻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그러나, 아무리 사랑의 힘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그렇다. 웜홀의 생성에서부터 블랙홀 시스템의 위치 선정, 나아가 테서랙트의 설치 등등은 아무래도 초월적 존재에 호소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들"이 누구인지 영화가 명확히 제시하고 있지 않음에도("사랑"의 인격화된 형태가 아니라면. 그런데, 만약에, "사랑"을 인격화한 신이라면... 비너스나 에로스?), 아니,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초월론적으로 혹은 신비주의적으로 해석되기 쉬운데, 물론 그럴 위험이 있고 실제로도 그런 감이 없지 않으나, 그렇게 너무 쉬운 해석은 창작자도 해석자도 피해야 할 것이다 (세이건이 대표적인 반창조론자에 무신론자, 최소한 불가지론자였던 만큼이나 놀란도 또한 그러할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  굳이 그가 다윈의 나라 출신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최소한 작품에서만큼은 세속 원칙을 벗어나고 있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콘택트>의 외계 지적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터스텔라>의 "그들"(<2001>의 모노리트와 <솔라리스>의 초지성체도 있지만 일단 생략)이 보통 "신"이라 이름되는 초월자와 다른 점은 바로... 초재적/초월적(transcendant)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록 초공간적(hyperspatial)이고 고차원적(hyperdimensional)이긴 해도. 그런 점에서 "그들"은 17세기 데이즘(자연신론)의 이신(理神)에 가깝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법칙을 창조하고 세계를 연속 창조하는 데카르트의 신이나 세계 체계의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뉴턴의 시계공 신이거나 내재론적 신, 그러니까 스피노자의 자연이거나. 아니 어쩌면 라플라스의 초지성체에 가까울 수도 있다. 3차원 공간+1차원 시간을 넘어서는 5차원의 시공간 구조(벌크)를 지각하는 존재들이야말로 결국 라플라스가 말하던, 우주의 가장 작은 원자에서부터 거대한 물질까지, 과거에서부터 미래에 이르는 모든 상태를 한 눈에 볼 줄 안다던, 초지성체의 다른 이름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라플라스가 "신이라는 가설"을 필요로 하지 않았듯 이 영화도 "신"에 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은 열려 있다. 영화도, 지금의 이 글도.

... 그런데 "열린 결말"이야말로 이 시대의 기계 장치 신이 아닐런지.

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시간 있으면 커피나 한 잔"에 관한 테제

테제 1. 어느 정도 친한 사이에서라면, 아니, 단지 겨우 아는 사이에서라도, 충분히 오갈 수 있는 가벼운 제안일 뿐. 이를 확대해석하여 제안자의 의도를 의심하는 해석자의 태도가 문제다.

테제 2. 순수한 의도로 해석되기에는 이미 충분히 특정한 방식으로 코드화된 문구로서, 이 문구의 발화 및 발화에 대한 반응은 바로 그 코드를 참조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즉, 최소한 관심의 표현이거나, 나아가 적극적인 데이트 제안으로서.

이 두 테제는 이율배반의 관계에 있다. 즉 양자는 꼭 같은 정도로 타당하면서 부당하다.

테제 2의 증명. 코드라 해서 다 같은 건 아니다. 이를테면 "라면 먹고 갈래요?"는 "커피나 한 잔?"보다는 좀더 직접적이다. 물론 이는 <봄날은 간다>를 감상했고 또 기억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그런데 이런 제한을 이제는 더 이상 둘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아니, 그런 제안을 했다고요? 그거 완전히 '라면 먹고 갈래요?'인데요?" 하고 말한 것을 보면, "라면 먹고 갈래요?"가 어쩌면 그 사이에 상용화가 상당히 진척되어 이미 <봄날은 간다>라는 레퍼런스를 넘어섰을 수 있겠다는 것이다. 마치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에 처음으로 쓰인 "파파라치"라는 용어가 영화를 넘어 보통명사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나 김치 못해"는 완곡하면서도 단호한 거절의 표현으로 자리를 잡았으려나? 그러나 "시간 있으면 커피나 한 잔"은 상용구로서 "라면 먹고 갈래요?"와는 비교가 안 될만큼의 역사성과 보편성을 지닌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발화나 그에 대한 반응은 불가능하다.

테제 1의 증명. "날씨가 좋네요"나 "눈이 온다" 같은 "순수"한 문장도 무한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사랑에 빠진 자에게 그렇다 (바르트).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태를 의미의 과포화 상태로 인식하는 해석광이 된다. 상대방이 단순하게 전하는 기상 정보가 그에게는 신호가 되고, 기상의 상태는,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날이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자신의 사랑을 축복하는 일종의 우주적 계시가 된다.  그런데 이는 전적으로 해석자 의존적인 것이고, 발화자는 자신의 말이 어떻게 해석되든 책임이 없다. 아주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이상.

위의 증명에 대한 반박. 직접적인 표현이 오히려 전달력이 떨어지고 심지어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해"가 그렇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또 어떤가. 차라리 이 사소한 "커피 한 잔"이야말로 때로는 막강한 은유력(!)을 발휘하거나 극적인 사연을 제공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이런 상황 :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 찰나, 누군가 다가왔다. 얼굴을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좀 변한 것도 같았다. 긴 코트에 검은 목도리를 두른 모습이 좀 낯설었다. 마침 식사 후 커피를 마시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커피를 제안했는데, 그는 약속이 있어 가야 한다 했다. 다음날에는 그가 제안을 해왔다. 전날 하지 못한 커피 한 잔을 하는 게 어떻겠냐면서. 그가 제안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 전에도 수차례 제안이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주로 내가 거절하는 편이었다. 선뜻 내키지 않아서, 의중을 모르겠어서, 아니면 정말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그날도 그랬다. 나는 다른 곳에 다른 이들과 있었다. 원래는 평소대로 도서관에 갈 심산이었으나, 그날따라 웬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와 나 사이는 늘, 이런 식으로, 엇갈리곤 했다는, 아니, 늘 엇갈리기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면서 부리는 조화가 오히려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장벽은 높고 견고하게 쌓여가고. 이런 걸 두고 인연이 아닌 경우라 하는 거겠지. 같이 있던 이들과 헤어진 후 홀로 남아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보는데 가슴이 아파왔다. 서로 좋아하거나 최소한 호감이 있음에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람들. 상황 때문이든, 아니면 우연과 필연의 "예정" 부조화 때문이든. 그런데 결국 그런 관계가 미적으로는 더 우수(월등)하다. 우수(멜랑콜리) 중심의 내 미감에는 확실히 더 잘 들어맞는다. 그렇지만, 오, 더 이상 이런 관계는 그만. 제 아무리 우수할 지라도.

위의 반박에 대한 반박. "극적"이라고 했으나, 실은 아주 평범하고 통속적인 상황에 가깝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당사자에게는 안타깝고 애틋할지 몰라도, 제3자에게는, 즉 객관적으로는, 더없이 상투적이고 기시감을 자극할 뿐인.

같은 방식으로 무한 논박이 가능하다. 따라서 둘 중 어느 하나를 취하기란 불가능하다.





2014년 10월 4일 토요일

당신에게는 사소한, 나에게는 크나큰, 위로

단지 귀찮아서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잊어버렸던 것일 수도 있다. 나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에서였을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좋다.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당신은 아시는지? 당신의 페이지에서 "sur la cosmologie de Poincaré, 100%"를 본 순간, 당신의 지평에 나의 존재가 희미한 흔적으로나마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내 심장이 얼마나 요동했는지? 어느새 나는 "걱정 말라, 잘 될거다 (Ne vous inquiétez pas, on y parviendra)"라는 당신의 사소한 그 한 마디에 전율했던 지금으로부터 구년 전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말 그대로 transportée. 줄타기-줄다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이 무심코 남겨둔 동아줄, 그 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실올을 나는 힘껏 당기고 오르리라.



... 언제쯤이면 지도교수와의 애간장 타는 "밀당"에서 벗어나는 날이 올까.

2014년 9월 30일 화요일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

혹은, 논문과 건축 II



과학철학 및 과학사 분야 유수 학술지인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Modern Physics 의 올해 두 특집호.  하나는 우주론 특집으로 5월에 나왔고, 푸앵카레 특집인 다른 하나는 8월에 나왔다. 전자는 2011년에 우주론의 철학을 주제로 열린 학술행사에서 발표된 논문들이 출발점이 되었고, 후자는 2012년 100주기에 발표되었으며 푸앵카레 연구의 새로운 경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논문들을 선별한 것이다. 이 두 주제가 이렇게 한 호 차이로 이렇게 나란히 다루어졌다는 사실은 하필이면 바로 그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 내게는 남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일단 당장 논문에 도움이 많이 될 거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거 없이 저기에 실린 논문들로만 레퍼런스를 제한하면 시간과 노력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거고, 제한의 명분도 그럴 듯하고.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나는 꼭, 고질적인 해석광(délire d'interprétation, exactement comme Jean-Jacques !) 성향 때문에, 거기에서 더 나가서, 거기에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식의 막무가내 목적론까지 덧붙여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 저 특집호를 참고하기 위해 나는 지금껏 논문을 미뤄왔던 것이다. 거기에 과대망상과 자아도취적 정취를 곁들이면 이렇게 말하고픈 지경에 이르게 된다 :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를 그것도 두 개씩이나 다룬 이 논문의 완성은 시대적 사명이다 ; 보라, 우주의 모든 사물과 사태가 한 데 어울려(agencer) 내 논문의 완성을 위해 공조(concourir)하고 있지 않는가.

어쨌든 논문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내세우려면 내세울 수도 있을 핑계가 하나 있었던 셈이다. 동시에, 특집호가 출간된 이상, 바로 핑계-이유가 또 하나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문제는 그 이유란 게 사실 무한생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미룰 수밖에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미룰 수 없는 이유도. 2012년, 그 해 안에 반드시 끝내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푸앵카레 100주기를 기념하자는 취지였다. 목표에 다다르지 못하자 이 취지는 그 해를 넘겨야 할 이유로 쉽게 전환되었다. 100주기를 기념해서 열린 많은 행사들과 이를 계기로 나온 성과들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그럴 수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제법 그럴싸한 핑계. 앞서 언급한 SHPMP 편집진도 2012년 이런 공고를 냈던 바 있다.
One hundred years ago, the towering figure of Henri Poincaré passed away. Poincaré workshops and conferences are accordingly being held all over the world, and it is only fitting that we at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Modern Physics also devote attention to Poincaré’s path-breaking work in theoretical physics and the philosophy of science. 
We therefore plan to publish a special Poincaré issue. Given that the majority of the papers in this special issue will originate from meetings taking place in 2012, however, its publication can only take place in 2013. So as a taste of what is in store, and as a timely homage to Poincaré, we are publishing the first English translation of a 1912 essay by Poincaré about atomism.
결국 출판은 예정된 2013년이 아닌 2014년에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이유들은 많다. 미뤄야 했던 이유만큼이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도. 영구적으로, 그리고 무한정하게 연장가능한 이 합리화의 연쇄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하나, 꼭 하나만 덧붙이고픈, 실제로 최근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기도 했던,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르 코르뷔지에.


코르뷔지에와는 남다른, 뭐랄까, 가족적인 인연이 있다. 2006년 여름, 남불을 여행하던 엄마와 나. 우리는 다른 프로방스와는 사뭇 다른, 지중해 메트로폴로서의 매력이 없지 않은, 마르세이유의 정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인상은 코르뷔지에의 씨떼 라디외즈-유니테 다비타시옹에서 절정에 달했다. 눈부신 채광, 알록달록한 타일, 곳곳에 숨은 아기자기한 붙박이 장이나 의자들. 그리고 옥상의 터키색 수조와, 아, 탁 트인 하늘. 내부 거주공간을 볼 수 있었음 더 좋았을 것을,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다음에 들르게 되면 꼭 거기 있는 호텔에 묵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7년 초. 파리에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있는 코르뷔지에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가 직접 설계하고 말년을 보낸 아파트다. 동네 근처 또 다른 곳에는 코르뷔지에 재단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공사중이었다. "제가 논문 마칠 무렵엔 재개장해 있을 테니 그때 가시면 되겠네요" 하고 호기있게 장담했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 후인 2008년 여름.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던 동생 가족, 그리고 우리를 보러 파리를 재방문한 부모님과 더불어, 디종을 거쳐 샤모니까지 사부아 지방을 자동차로 여행했다. 돌아오는 길에 롱샹에 들러 코르뷔지에의 이 전설적 성당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세웠으나, 이런 저런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 실패했다. 못내 섭섭해 하시던 아빠께 나는 위로차 "저 논문 마칠 때 다시 오셔서 그때 가요" 하고 또 호기있는 장담을.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또 흐르고 흘러, 코르뷔지에 재단은 공사를 끝내고 재개장했고, 무엇보다 롱샹의 노트르담뒤오 성당 언덕에도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생겼으니,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게이트하우스 및 수녀원이 개장된 것.



우연히 이 소식을 접하고는 당연히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리고 강한 "방문"에의 의지가 생겼다. 나 때문에 가우디의 바르셀로나로의 휴가 계획을 벌써 몇 해씩이나 미루고 계신 두 분. 바르셀로나도 바르셀로나지만 두 분과 더불어 이번에는 꼭 롱샹을 방문해야겠다, 방문하고야 말리라는 강한 열망이 생겼다. 누가 알랴, 훗날, 바로 이 열망이, 거의 꺼져가던 의지의 불씨를 다시 살려 나를 논문 쓰게 했다, 고 술회하게 될지. 아니, 실제로, 이 열망이 하나의 "원인"이 되어 논문의 완성이라는 "결과"를 생산하게 될지. 인생사에는 일방향적이고 선형적인 인과관계가 전도되는 일이 흔하디 흔하잖은가. 그리하여 예측불가능한 것, 그래서 사는 맛이 나는 것, 그게 또 인생 아닌가.

2014년 9월 23일 화요일

일차소스와 이차문헌

그 사람이 일차소스인 건 알겠지만 어떻게 그것만 보고 논문을 쓰냐, 이차문헌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려다, 문득, 아, 나는 이차문헌으로 남을 운명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아무리 탁월한 주석이라 봤자 원본만 못하고 어디까지나 원본의 그림자로 남아있을, 기껏해야 사본으로만 존재해야 할. 그렇잖아도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욕망의 직접 대상이 되지 못하고 늘 간접 보격 (complément d'objet indirect)일 뿐인, 욕망의 "이차적" 대상 (objet "secondaire" du désir)이거나 오직 이차적으로만 욕망의 대상(only secondly desirable), 내 존재 양태는 이렇게 규정되는 것이 아닐까. 참으로 비참한 존재 조건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런데도 나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유아론, 나르시시즘, 내향성 등등의 내 주어진 소질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적절한 방식이라고도 생각했던 것이다. 소유와 독점 같은 방식의 관계에서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고, 내가 상대방에게 스스로를 전적으로 투자하고 그와의 관계에 전력 투구할 자신이 없는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같은 태도인 편이 낫지 않은가 했던 것이다. 이는 윤리적 문제와는 무관한, 거의 전적으로 에너지의 문제였다. 심적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은 내 자신에게 투자해야 하고, 그러기에도 빠듯한 마당에, 그걸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기란 상당히 벅찬 일인데, 그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나 심지어 복수의 요구자와의 관계란 불가능하다, 등으로 요약되는 추론. 반면 상대방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일차소스가 아니어도 좋았다. 전공자 그 중에서도 그 주제로 박사논문 쓰는 사람이나 겨우 들여다볼까 말까 한 가장 주변적이고 사소하며 비밀스러운 문헌으로 남아 있어도 좋았다. 아니 차라리 그게 나았다. 어차피 내게도 영원한 제일의 소스인 내가 있고, 상대방은 다만 이차문헌이었을 따름이니까. 그러나 그것도 내가 상대방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을 때나 비로소 유효하고 타당한 추론이었음을 이제 알겠다. 내 안에 비축해 놓은 에너지가 그래도 제법 있어서 굳이 다른 에너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나 가능한. 지금처럼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황에서는, 그렇다고 대체 에너지원을 개발할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는... 오로지 자립과 절약만이 살 길이다.

2014년 5월 29일 목요일

JLG forever




고다르의 최근 인터뷰를 듣고 그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비브르 사 비>와, 오, 무엇보다, <미치광이 피에로>를 다시 보고 싶었는데, 현재로서 내게 접근 가능한 그의 작품은 <알파빌>과 <영화의 역사(들)>이 고작(!). 보면서 새롭게 깨달은 몇 가지 사실 중 하나는 내가 본 고다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수년 전 퐁피두에서 고다르 특별전이 열렸을 때 그래도 꽤 부지런히 그곳 상영관을 들락거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브르 사 비>와 <미치광이 피에로>처럼 그 이후 수차례 반복해서 본 경우를 제외하면 당시에 봤던 상당수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녀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오른편을 돌봐라>,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같은 영화들도 분명히 봤는데. 언어의 문제가 컸겠으나 무엇보다 관객으로서의 경력 및 안목의 부족으로 놓친 게 많았기 때문인 듯. 오,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내가 좋아하는 고다르는 아무래도 60년대 카리나 시절의 그다. 비교적 서사도 있고 고전영화의 문법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으면서 무엇보다 로맨틱하고 유머러스한 정서가 완연했던 시기. «고전영화의 문법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완곡한, 어쩌면 사실을 왜곡하는 표현이다. <네멋대로 해라>에서부터 이미 그는 영화사를 새로 쓰지 않았는가. 한편으로 «카리나 시절의 고다르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 더 정확하게는 «카리나 시절 이후는 잘 모른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68을 전후로 급격히 정치화된 70년대, 그리고 80년대 이후, 영상, 음성—배경음악과 내레이션과 등장인물의 대사 모두를 포함—, 문자 등 영화의 매체, 매체로서의 영화에 대한 실험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시기. 요컨대 다소 치기어린 천재에서 완숙하고 성찰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게 시절의 고다르.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변명 혹은 해명을 하자면, 후기의 그를 «전혀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그의 스타일과 영화철학과 세계관을 총집약하고 있는 <영화의 역사(들)>을 본 이상… 물론 «제대로» 보았다는 가정 하에서!

그리하여 <영화의 역사(들)>과 <알파빌>을 다시 보면서 그의 최신작이자 칸느 영화제 출품작인 <언어와의 작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지난 주에 개봉했으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을 연기한 상태였어서. 그러던 중 뒤늦게, 결과가 발표된 지 4일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고다르가 다름 아닌 이 작품으로 칸느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쟁작 선정 이후 영화제 안팎에서 수많은 잡음과 파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감독 데뷔 후 무려 반세기 만에 칸느에서는 처음으로! 그것도 고다르의 데뷔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시대의 수퍼 루키 자비에 돌란과 함께! 칸느에서 이런 극적인 심사 내역은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제인 캠피온 이하 전도연, 소피아 고폴라, 랑베르 윌슨 등등의 심사위원들에게 존경심이 들었을 정도… 고다르에게 쏟고서 남은 존경심이 있다면! 에릭 로메르에 이어 알랭 레네마저 세상을 떠난 지금, 아직 자크 리베트가 있고 또 이들 누벨바그의 후예를 표방하는 이들이 남아 있지만, 어찌 고다르 만하랴. 그가 여전히 있고 또 여전한 시대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행복이 좀더 오래 유지되었으면.

위의 동영상은 Arte 의 영화전문방송 Blow-up 에서 따왔다. 고다르 영화 세계를 상당히 잘 요약하고 있는 데다가 그 표현 및 편집의 방식 또한 몽타주 이론가인 고다르에 충실하다.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칸느의 기억




비현실적 공간에서 깨달은 현실
칸은 내가 다녀 프랑스의 어떤 도시보다 이국적인, 그러니까 프랑스 같지 않은 도시다. 여러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도시, L.A. 닮았다.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다른 도시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야자수 하며, 해변을 따라 늘어선 고급 상점까지. 칸에 L.A. 요소를 불어넣는 것은 무엇보다 영화제일 것이다. 스크린으로만 보던 스타들이 바로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거리는 밤낮을 가릴 없이 파티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로 넘쳐 난다. 이렇듯 칸은, 영화와 축제라는 가장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지구상 어느 곳에서보다도 꿈에 가까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다.

영화제 개막을 달가량 앞둔 지난 4 , 취재계획서란 것을 써서 겨우 영화제 참가 티켓을 따냈을 때까지만 해도, 칸에 가기만 하면 바로 스타들을 만나고 영화를 실컷 있을 거라는 소박한 기대에 마냥 들떠 있었다. 계획서에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경쟁작들이나 다른 메인 선정작들보다는, '주목할 만한 시선'이나 '감독 주간' 미디어의 관심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부문들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역시 '경쟁 부문'에는 제외되어 있지만, 영화제를 만들어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영관 관객들의 분위기에도 주목하려 합니다." 이렇듯 나는, 상영작들 맘에 드는 작품들을 느긋하게 선택해서 감상할 여유가 모든 참여자들에게 무제한으로 허여되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화제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칸에 도착해서 산더미 같은 자료집과 산뜻한 가방을 받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잔뜩 신이 있었던 나는, 지중해의 뙤약볕 밑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만석"이라는 통고를 받고 허망하게 발걸음을 돌리기를 번씩 반복한 다음에서야 비로소 냉엄한 현실을 깨달을 있었다. 기자들이나 영화 관계자들에게 미리 배부되는 배지가 없으면 영화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배지가 있더라도 워낙 사람이 많은 나머지 원하는 영화를 없는 경우가 허다하며, 경쟁작들은 물론이고 사람이 몰릴 알았던 영화들 역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기는커녕 관객들로 넘쳐나는 , 그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인스턴트 감상, 인스턴트 비평
크루아제트의 드뷔시관. 주로 '주목할 만한 시선' 출품작들이 상영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롤라 두아이용(참고로 자크 두아이용 감독의 딸이다) 〈넌 누구랑 사귀니? Et toi, t'es sur qui?(영제는 Just About Love) 보고 나오는 . 누군가가 동료에게 "가볍네. 그래도 만들었어.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나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들으며 '첫경험' 둘러싼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갈등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 영화에 대한 완벽한 '20자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저렇게 즉각적인 반응과 순간적인 판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실로 칸에서 이른바 '프로' 관객들-주로 기자들과 평론가들로 구성된- 반응하는 방식에는 놀라운 데가 있었다. 마켓 상영까지 합하면 정말이지 수없이 많은 영화들 가운데에서 아마추어인 내가 잃은 어린양마냥 헤매는 동안, 그들은 마치 맥도날드에서 음식을 골라 먹듯, 단숨에 영화를 골라서 곧바로 감상을 쏟아내고 있었다. 평소에 ' 영화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 보기도 전에 함부로 판단을 내려서는 되고, 판단을 내렸다 해서 그것을 개의 소박한 평가 술어로 단순화시켜서는 되며, 별점 개로 수량화해서는 더더욱 된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해할 없거나 심지어 용납할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랬던 내가, 칸에서 며칠을 보낸 뒤에는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데일리에 실린 별점 평가부터 찾아보는가 하면, 나도 모르게 영화들을 20자나 별점으로 재단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넌 누구랑 사귀니?〉는 귀여웠고, 줄리앙 슈나벨의 〈잠수부와 나비〉는 '장애인의 인간 승리'라는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으며, 거스 산트의 〈패러노이드 공원〉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니콜라 필베르의〈노르망디로의 귀로〉는 영화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메타적 성찰이었으며, 그렉 아라키의 〈스마일리 페이스〉는 〈런던에서 남자〉 같은 지루한 영화들 때문에 쌓인 피로를 단숨에 날려준 아주 유쾌한 코미디였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칸은, 영화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마주하는 경험을 무한하게 제공하는 '시네마 천국'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하루에 서너 편씩을 연이어 보다 보니 각각의 작품들이 갖는 아우라는 줄어들었고, 심지어 영화가 지루해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졸게 되는 경우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나머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영화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어떤 것들은 아마도 따로 보고 제대로 되새김질 했더라면 분명히 달리 보였을 것임을.

그렇게 아쉬운 영화 하나가 60주년 기념 특별 상영작이었던 제인 버킨의 〈박스〉다. 칸에 도착하자마자 제인 버킨을 비롯, 미셸 피콜리, 제랄딘 채플린, 두아이용(참고로 제인 버킨이 자크 두아이용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영화 속에서 버킨의 역할을 맡았다) 등의 무대 인사를 구경하고는 좋아했던 것도 잠시, 영화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데다가 여독을 풀지 못했던 나는 결국 조느라 많은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버킨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서전적인 작품은, 영화제가 끝나고 프랑스 개봉을 즈음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건대, 여성적 영상 작업의 범례라 만한 수작이다.

칸이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말고도) 남긴 것
지도 교수가 "칸에서 한국 여배우가 주연상을 탔다고 들었다. 한국 영화에 대해 모르긴 하지만 왠지 기뻤다. 축하한다"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그걸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칸에서 〈밀양〉을 보던 생각이 나서였다. 교수는 알까,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과 치부,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치밀하고 냉정하게 묘사한 〈밀양〉을 보면서, 내가 숨통이 조여 오는 나머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여러 참아야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옆에 앉은 프랑스 기자가 "너희 나라는 정말 저러니?" 하고 물을까봐 자꾸 숨고 싶었다는 사실도? 한국에서 왔다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숨〉과 〈밀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보통인 상황에서, 나는 영화와 국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 간의 관계에 대해 재고하지 않을 없었다.

칸으로 떠나기 , 누구는 영화 보기도 모자란 판에 읽을 시간이 있겠느냐며 어떤 책을 가져갈까 고민하는 나를 말렸고(그가 옳았다. 영화도 영화지만, 영화를 보지 않는 동안에는 영화제 프로그램을 보며 스케줄을 짜고 넘쳐나는 보도 자료와 데일리만 읽기에도 벅찼다), 다른 누군가는 선글라스와 드레스는 필수품이라며 챙겨 가라고도 했었다(그도 옳았다. 물론 불행인지 다행인지 드레스를 입을 일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칸행 소식을 전했을 주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화제가 끝난 지금, 어땠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무슨 답을 해줄 있을까? 적어도 내게 있어 쉽게 해볼 없는 경험이었음은 분명하다. 칸에서 닷새를 지내고 돌아온 다시 일상에 적응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 작렬하는 햇볕, 레드 카펫, 바다, 성장한 거리를 활보하는 선남선녀들 '칸스러운' 장면들이 영화들의 컷들과 더불어 만들어 잔상들이 자꾸 눈앞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그러하다. 선정작들이 하나 둘씩 개봉하는 것을 때마다 나는 다시 천국이라 하기엔 낯선, 천국보다 낯선 공간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계속 후유증에 시달릴 같다.[*]


[*] 67 칸느영화제를 기념(!)하여 공개(!)하는 기록물. 2007 60 칸트 영화제에 참가하고 써서 지금은 폐간된 영화지 <스크린> (아마도) 7월호에 실었던

2007,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칸느에 다녀온 , 해마다 즈음이면 당시 생각이 나곤 한다. 눈부신 햇살을 등에 지고 어둑한 극장으로 들어가 영화만 줄창 보다 합숙 장소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기던 기억이 아무래도 지배적. 같이 묵던 동포 기자들 중에는 그 중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 인사였던 허모 기자도 있었다. 워낙 단체 생활을 힘들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저런 종류의 합숙이라 무척 괴로웠는데… 상당수가 영화제 내내 그렇게 지냈고 또 여전히 지내고 있는 모양이더라. 최근 한 인터뷰에서 첫 칸느의 기억을 묻는 기자에게 마티유 아말릭 왈, «마침 칸느에 사는 친척이 있었다. 당시 같은 영화에 출연했고 동반자이기도 했던 잔느 발리바르와 그 친척네 집 거실에서 침낭을 펴고 잤다. 그녀는 수만 프랑짜리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빌렸었다. 레드 카펫 위의 화려한 드레스와 침낭, 이것이 칸느다». 과연 그렇다. 

그런데 당시에 쓴 글을 다시 들추다 보니 참 새삼스럽다. 영화제 스태프로부터 취재 티켓을 받고 또 <스크린> 편집장으로부터 취재비를 타내기까지, 나로서는 꽤나 버거운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 곤란하고 또 피곤하게 만들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밖에 문득 떠오르는 사소한 기억들. «아니, 마스트로이아니를 몰라요? 펠리니 영화에 수차례 나왔던?»이라며 황당해 하던 한 한국 기자. 마침 2014년 올해 칸느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바로 그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아니. 당시엔 정말 그를 몰랐다. 펠리니를 제대로 접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으니까. 그제서야 그 기자의 반응이 과장된 것은 아니었음을 알았다. 펠리니도 펠리니지만, 펠리니 뿐인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에토레 스콜라, 비토리오 데 시카 등등과 작업했다. 그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탈리아에 그 만큼 훤칠한 남자배우가 부족한 탓이 크다고들 하지만... 어쨌든 마스트로이아니를 빼놓고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텍사스 대디

Zoom Japon 이라는 프랑코자포네 월간 소식지가 있다. 한국 혹은 일본 식료품점에 갈 때마다 들고와서 보곤 한다. 프랑스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본문화를 불어로 소개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고, 비교하자면 비행기 회사에서 만든 사보 혹은 홍보지와 유사하다. 그래도 기획, 편집, 기사의 수준이 상당하여 볼 때마다 감탄한다. 가끔 제법 진지한 주제도 다루어진다.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를 다룬 이번 5월호가 그 예다.

거기에서 다소 충격적이고 희극적인 사실을 발견. "텍사스 대디"라는 미국의 정치평론가. "정치평론가"라기보다 논객이라는 칭호가 더 어울릴 법한 인물. 은퇴 후 정치 및 시사 문제에 대한 지극히 보수적인 논평을 실은 유튭 개인채널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던 중 2008년, 어업권을 둘러싸고 국제적 분쟁이 벌어졌을 때 일본 고래잡이 어부들을 옹호해서 일부 일본 네티즌들의 호감을 샀고, 이후 "친일파" 성향이 다분한 논평들로 미국보다는 일본에서 더 많은 팬을 거느리기에 이른다. 일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정치와 역사와 사회와 문화 등등을 학습하기 시작한지 불과 몇 년만에 전문가 못잖은 입지를 차지, 식민지 과거사 같은 외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에 관해 그가 피력한 견해를 도리어 일본의 극보수 네티즌들이 인용할 정도.

내가 본 건 프랑스 기자와의 아주 짧은 인터뷰 하나지만, 인터뷰 하나로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그 인터뷰가 아주 가관이다. 예를 들어 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그의 입장은 이러하다 : 1965년 한일협정에서 과거사 문제 종결 짓기로 해놓고 남한 정부는 왜 자꾸 번복하느냐, 일본 정부는 군위안부 배상금을 지급했는데 박정희가 이를 받아 남한의 경제 발전을 위해 썼다, 설사 일본군이 강제 연행했다 해도 전쟁중 민간인 성폭행을 방지하기 위해 군부대 옆에 공창을 두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히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강제성이 있었는지의 여부도 불투명하다, 실제로 강제적이었다면 아녀자들이 강제로 끌려가는 동안 한국 남자들은 뭘 하고 있었다는 말이냐, 사실은 자원이었는데 전쟁 이후 후환이 두려워서 강제되었다고 거짓 증언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2차대전 후 독일군과 관계를 맺었던 프랑스 여성들이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 정도 가관이면 다른 글을 본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싶다.

이처럼 근거없는 사실들을 끌어들이거나 사실과 가치 판단을 혼동하는 일이야 흔하지만, 이 경우는,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거나 하다못해 가장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하겠다. 이 단계에 이르려면 어느 정도의 반성과 문제 자각의 과정이 선행해야 할 것인데, 이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상대방은 전의를 상실하고 만다. 이것이 상대의 전략이고 따라서 거기에 넘어가거나 뒤로 물러서면 안 된다 해도, 안 된다 한들, 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란 말인가, 이렇게 대책없고 대화불가능한 경우에는. 아무리 사료와 증언을 제시해도 음모이론이나 역사조작을 운운하며 믿지 못하겠다는데.

어딜 가나 이런 "*통"은 있게 마련이고, 그 존재가 심정적으로는 한탄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어쩌겠는가, 이들에게도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을. 그래서 이들이 권리를 주장하면 굳이 막지는 않되 그저 귀를 기울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정작 텍사스 대디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한 외국인의 자국에 대한 시선에 열광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다. 그가 자국 문제에 관한 전문가인 것도 아니니 한국에서 브루스 커밍스에 주목하는 것과도 다른 양상이다. 외부, 특히 서구 언론의 시선에 대한 관심과 갈증을 사대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나 쉽고 환원적이다. 설사 그런 측면이 없지 않을지라도 어쨌든 설명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전히 쉽고 거칠기는 마찬가지만 일단 떠오르는 설명적 요인들을 열거해 보면 이러하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인터넷이 등장한 20세기 후반에서 지금의 세기에 고유하게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미디어의 세계화 및 상대화, 개인화(혹은 민주화?), 그리고/또는 소셜네트워크 환경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확장 등등. 천하의 노암 촘스키도 트위터 없이는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또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세상이니. (사회)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외부의 시선을 통한 자기 정체성 확인에의 욕구이고, 이는 결국 허약한 자아상의 반영이자 반향이겠다. 아무리 나르시시스트라도, 아니 어쩌면 나르시시스트일수록 더더욱, 타인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는. 타자의 개입은 나의 나에 대한 애정을 중화시키기도 한편으로 객관화하기도 한다.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됐든 조국이 됐든 간에. 

물론 자기애와 조국애라는 두 심적 상태 사이에 필연적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가장 비근하고 극단적인(!) 예가 있다. 바로 나다. 나는 자기애 성향이 무척 강한 사람인 반면, 이른바 "애국심"이라는 개념이 표상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그것이 갖는 전체주의적 위험을 경계한다... 고 예전에는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고국을 떠나 유목적 삶을 지속하다 보니 생각을 달리하게 된 모양이다. 관념상으로는 여전히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지향하려 애쓰는데도 심정적으로는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불안정한 이주상태가 주는 불안에서 벗어난 토착민의 삶을 꿈꾸다 보니, 토착민 혹은 원주민(autochtone) 특유의 정서, 이를테면 타자에 대한 공포와 경계, 그리고 전통과 소유에 대한 집착 같은 것도 이해가 간다. 우연히 한 세기 이전의 Le temps 이나 Revue scientifique  같은 잡지를 뒤적이다, "동방의 아침 나라" 탐방기를 접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그 관찰의 소박함에 조소를 금치 못하는 동시에 바로 거기에서 내게 모종의 "민족적 자존심"이 작동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나도 조만간 광신적 민족주의자로 변모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족적 자존심이란 얼마나 가볍고 알량한가. 저 탐방기가 갖는 하나의 역사적 증언으로서 갖는 무게를 생각하면. 비록 온갖 무지와 몰이해와 턱없는 환상,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으로 점철된 시선이었을지언정, 바로 그 시선으로 남겨진 선조들의 삶. 나와 같은 공간을 점유했으되 시간대를 달리했던 그들을, 그들과 공간을 달리 했으되 시간을 공유한 한 이방인을 통해 만난 것이다. 바로 그 이방인의 공간에서, 나 자신 한 이방인으로서. 이것은 얼마나 생생한 역사 교육이고 얼마나 경이로운 시공간적 체험인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텍사스 대디의 인터뷰를 우연히 접할 누군가를 생각한다. 역사의 진보가능성 논제를 최소치만 받아들여 이렇게 말해보자. 그가 사는 시대에는 최소한 광신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비상식이라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길. 내가 그래도 최소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성은 가능한 시대에 살듯.

2014년 3월 29일 토요일

난삽한 독서

너를 생각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네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네 생각을 떨치려 듣지 않은 음악이 없고 들추지 않은 책이 없다. 그러나 너를 떠올리지 않고는 어느 음악도 들을 수 없고 어느 책도 읽을 수가 없다. 

감성이 철저히 제거된 분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이론 텍스트를 하나 읽기로 한다. 좀 길고 어렵다 싶으면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부러 짧은 걸로 고른다. 시아마(Dennis W. Sciama)가 쓴 "전체로서의 우주(The Universe as a Whole)". 1973년 출판된 디락 헌정 논문집, <물리학자의 자연관 (The Physicist's Conception of Nature)>에 실렸다. 

"일부 우주론자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궁극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지금 너는 무얼 하고 있을까. 당장 뒤에서 네가 나타날 것만 같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의 시선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네 품에 안길까? 다짜고짜 네게 입을 맞출까... 이런, 네가 또 떠올라 버렸다. 고개를 흔들어 너를 쫓아내고 다시 문장에 집중한다. 

"...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의 우주를 여러 개의 우주 중 하나, 다수의 우주의 집합의 한 원소로서 간주하는 일은 합당하다. 이 우주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의 우주와 다른 구조와 물리법칙을 가질 수 있다...." 

다우주 가설 자체는 과학사적으로나 철학사적으로나 사상사 일반의 관점에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새삼스러울 것 없다. 계보를 따지자면, 가장 멀게는 고대 원자론자들, 17세기에는 가능세계론을 주창한 라이프니츠가 있었고, 19세기 후반 볼츠만이 유사한 우주론적 가설을 제시했고, 20세기에는 양자역학 해석의 "지평" 중 하나로서 에버릿이 제안한 평행우주론이 있었고, 그 전후로 해서 루이스가 라이프니츠 가능세계론을 재해석한 바 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몇년 사이에는 우주론자들 사이에서 제법 진지한 가설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름하여 다중우주(multiverse)론. 그래도 1973년이었으면 허랑한 소리로 들렸을 법한데, 이것이 이 탁월한 현대 우주론자의 입에서 진지하게 나온 이야기라니, 흥미로운 일이다. 현대판 다우주론은 그 자체로는 각 우주 사이, 서로 다른 우주에서의 존재자 사이의 동일성이나 차이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없다. 라이프니츠에게서처럼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가능세계에서 아담이 원죄를 지을지의 여부, 원죄를 지은 아담과 그렇지 않은 아담이 동일인물인지의 여부 등등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다중우주론이 라이프니츠적 의문과 이를 둘러싼 다양한 사고실험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에도 나와 동등하거나 유사한 존재가 있을까? 너도 있을까? 너와 나와 유사한 두 존재를 동시에 포함하는 또 다른 우주가 있을까? 있다면 그 우주에서 또 다른 너와 또 다른 나의 두 존재가 만날 수 있을까... 이런, 또 너다. 이제는 이 우주의 너로도 모자라 다른 우주의 또 다른 너까지 합세해서 나의 전 우주를 정복할 기세다. 

"... 은하, 별, 행성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적 생명체는 각각 해당 우주의 구조와 그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에 의존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특정한 하나의 이 우주를 관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우주는 여럿의 우주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 우주가 우리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오직 그 방식으로만, 관찰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간이  팽창중이라든지, 이 팽창속도가 가속하고 있다든지, 137억년 전에 탄생했다든지, 탄생시의 흔적으로 간주되는 배경복사가 현재 공간 전체에 걸쳐 균일하게 퍼져 있다든지 등등의 사실은 우연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accident)이라는 개념을 저자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오직 모든 가능세계에서 성립하는 진리만이 필연적 진리이며, 이를 제외한 다른 모든 진리를 라이프니츠는 우연적 진리라 보았었다. 물리적 사실은 물론이고 실존과 관련된 모든 진리는 단지 일부의 세계에서만 참인 우연적 진리다. 나의 존재도 너의 존재도 다 우연에 불과하다. 물론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다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우주에서 너를 만나서 너를 이토록 생각하는 것은 우연일까 아닐까. 왜 하필 널 만난 걸까. 왜 하필... 이런, 하마터면 또 네 생각에 빠질 뻔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행히도, 네가 뭘 하고 있는지보다는 저자가 어떤 의미에서 우연이 아니라고 하는지가 좀더 궁금하다. 

"... 이 논증은 왜 구조와 법칙이 우리에게 관측되는 바대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을 제공하는데, 이는 다른 우주들에 어떤 의미에서 존재를 부여함으로써다. 이 견해는 그럴 듯해 보이긴 하나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

그와 다른 속성들을 가진 다른 가능한 우주의 존재 가능성만으로 우리의 우주가 가진 속성들이 '설명'된다니. 너무 쉬운 설명이 아닌가? 설명이기는 한가?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설명의 개념인데, 이 역시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과학철학적으로는 물론이고 과학사적으로도 그렇다. 설명항과 피설명항 각각의 선택 기준, 그 사이의 관계 설정 등등을 포함하는 설명 개념의 변화는 과학사의 전개를 가장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방법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에서 왜 물체가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지가 피설명항, 즉 설명의 대상이었다면, 17세기 이후 과학에서 질문은 왜 물체가 하던 운동을 계속하지 않고 변화를 겪는지로 변화한다. 이는 다시, 자명한, 즉 설명을 필요치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실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전자에서 각 물체가 각자 자신의 '장소'에 머무는 정지의 상태가, 그리고 후자에서 물체가 원래의 운동을 지속하는, 이른바 관성운동의 상태가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나란히 설명항도 변화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이 자연현상의 모든 변화에 대한 설명하는 원리들을 제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뉴턴의 운동법칙과 중력법칙은 왜 달이 지구로 떨어지지 않고 자신의 운행을 지속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또 하나의 차이는 바로 이 설명항에 대한 또 하나의, 그러니까  메타적 설명항을 제시하는지의 여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왜 원인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그 이상도 아닌 넷인가, 왜 넷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한다. 반면, 왜 중력법칙이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원격작용'은 아닌지, 고대 및 중세 자연철학에서나 논의되던 비합리적 원리들-사랑, 미움, 신의 숨결 등등-과 어떻게 다른지 등등에 대해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함구한다. 바로 이 맥락에서 그 유명한 "나는 가설을 지어내지 않는다(Hypotheses non fingo)"이 나온다. 사실 이만큼 반어적인, 심지어 자기모순적인 말도 없는데, 왜냐하면 도대체 일말의 가설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과학 이론도 불가능하므로. 뿐만이랴. 삶도 가능하지 않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러하다. 삶에 관한 한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보편타당한 판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다가올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이 가설을 현실에 시험하고 적용하고 검토하고 재검토하고 수정하고 재수정한다. 나는 지금도 너에 관한 가설을 세운다. 아니다. 어느 가설도 세울 수 없다. 너에 관한 한은 오직 의문만 떠오른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나는 너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걸까. 왜 너는 그토록 먼 거리에서도 나를 이토록 강하게 끌어당기는 걸까. 네가 내가 미치는 작용만큼 너도 나의 작용을 느끼고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해 나는 그 어느 가능한 답도 가정할 수 없다. 어느 가설도 제시할 수 없다. 아니, 그러기가 두렵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너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느 우주에 있든. 그 우주가 무엇이든.*

   
*예전에 썼으나 그냥 내버려 두었었다. 누군가에게 공개했다가 완곡하지만 뜻은 분명한 혹평을 들었던 데다가, 내가 봐도 그럴 만도 했고 볼수록 부끄럽기만 했기에. 그런데 최근, 몇 가지 "마주침" 덕분에 다시 생각이 났고, 이 우연적 어울림이 만들어낸 마주침의 사건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나머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우연한 마주침의 "상대"는 다음의 세 가지였다 : 짐 자무시의 <사랑하는 자들만이 살아남는다>, 허수경의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중), 그리고 마종기의 "차고 뜨겁고 어두운 것". 우주론에서 모티프를 가져오되 이를 시적으로 전유하고 있는 것이 셋의 공통점. 언젠가 이에 대해 좀더 얘기할 기회가 있기를.

2014년 3월 3일 월요일

Tombée sur cette phrase : grind out two pages

Tombée sur cette phrase :
He managed to grind out two pages of his essay. (trad. fr.) Il est laborieusement arrivé à pondre deux pages de sa dissertation.
Je cherchais l'expression "grincer des dents". D'abord sur le dictionnaire coréen-anglais, pour tomber sur "grind one's teeth" (mais quel étrange mot, ce verbe "grind" ! Je le connaissais avec les compléments d'objet comme "coffee" ou "coarse", par intermédiaire de "coarse-grinding" comme technique... de la théorie de la probabilité. Bref, je ne savais pas qu'on "grinçait" ses dents comme on "moulait" du café ou de la graine !), avant d'aller vers le dictionnaire anglais-français. Quel chemin ai-je parcouru pour arriver à si peu de choses ! Un autre acte de détournement, intentionné, voulu, pour tarder à faire face aux problèmes... qui sont pourtant très souvent juste en face.

Mais il y a aussi ceci : il se peut que je grince mes dents. C'est qu'il m'arrive de me réveiller en pleine nuit, à la suite d'un rêve tantôt agréable tantôt cauchemardesque, mais pas mémorable dans la plupart des cas... ne serait-ce que parce que j'ai une mauvaise mémoire en la matière. Mais ce qui me réveille, c'est moins le rêve lui-même que la prise en conscience qui lui fait la suite, un appel de la part de ma conscience dirais-je, du fait que je harcèle et torture mes dents. Quelle horreur ! Qu'est-ce que je serais horrible à voir ! La seule chose qui me console, c'est que je n'ai personne à terroriser par cette scène horrible, par à ce côté terrible de moi. 

De quoi tout cela serait-ce un symptôme ? Surement quelque chose de psychologique : plus je suis stressée, plus je grince. Comme si j'avais tellement à aspirer, que je voulais tout dévorer, vider et épuiser, si désespérément, avidement et expressément. Ou bien sont-ce la rancune, la rancoeur, voire la haine que j'éprouve là ? Contre qui ? Contre quoi ? 

Je décide d'étudier ce cas moi-même, sans trop savoir par où commencer. Faute de mieux, j'ouvre Vocabulaire de la psychanalyse de Laplanche et Pontalis, pour cette simple raison qu'il est le seul qui soit venu à l'esprit pour le moment (et le seul que j'aie chez moi). Le mot "morsure" est renvoyé au "stade oral" avec celui de... "succion". Ces deux comportements, avec lesquels Freud avait caractérisé le premier stade du développement de la sexualité chez l'enfant, sont distingués par Abraham en deux sous-stades : oral-précoce et oral-sadique. Si la succion est liée à l'incorporation avec l'objet --que représente la mamelle--, la morsure, qui arrive après la poussée des dents, à la destruction de ce même objet. Désir qui n'aboutit évidemment pas, détruit par la mère. Ce qui finit par la séparation entre sujet-objet et prépare ainsi le prochain stade, le stade anal. Or, Melanie Klein n'acceptera pas la distinction : pour elle manger et être mangé, c'est à peu près la même chose ou du moins l'un va toujours avec l'autre.   

Mais la morsure est-elle la même chose que le grincement ? La morsure a pour objet quelque chose qui n'est pas de moi, que j'ai envie de posséder ("incorporer"). En revanche, l'objet du grincement, si "objet" il y a, c'est quelque chose de moi, qui m'appartient, ne m'est pas séparé en tout cas -- en l'occurrence mes dents. En les grinçant je les perds plus que je ne les possède ; je risque même de ne pas conserver le peu que je possède. Plus déposséder que posséder, et plus autodétruire que détruire. Idem quand je me gratte (hélas oui, j'ai ça aussi), même si, dans ce cas, c'est plus la physiologie (la notoire "peau à tendance atopique") que la psychologie qui joue... ou bien est-ce ? En tout cas, tout cela c'est plus fort que moi... ou bien est-ce ? Et si j'étais plus forte que je ne pense... ?  

Mais cette fois-ci (comme c'est souvent le cas d'ailleurs), le plus fort, ce n'est pas moi mais le hasard. Ce hasard qui a voulu que je tombe sur cette phrase "grind out two pages"... comme s'il voulait me rappeler ce que j'ai à faire. Qu'ai-je, en effet, sinon des pages à pondre ? 

D'ailleurs, si "grinding out" peut se traduire par "pondre", le grincement ne serait pas aussi détruisant que cela ; il peut être aussi productif. Même s'il n'y a pas de quoi se réjouir dans le résultat ni dans le moyen ("grind something out" : "produce something dull or tedious slowly and laboriously"), qu'importe, si cela produit quelque chose ? D'ailleurs, il est une autre expression relative au verbe "grind" qu'est "grind away/for" : "work or study hard". 

2014년 1월 7일 화요일

비아리츠로 향하는 기차 안

비아리츠로 향하는 기차 안. 창밖으로 아침해가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지평선 부근에서 붉은색과 하늘색이 조금씩 섞인 모습. 아름답다. 순간적으로는 하늘이 아니라 바다처럼 보이기도. 검은 부분은 섬, 다른 부분은 해가 아주 조금 물들인 바다. 남태평양에 섬이 드문 드문 펼쳐진 광경을 연상케 하는. 

기차가 조금 더 달려 구름이 제법 낀 지역에 이르니, 그리고 해가 좀더 높이 솟으니, 이번에는 정말 장관이 펼쳐진다. 양떼구름으로 덮인 하늘이 다시 선연히 붉은 햇빛으로 덮인 모습. 

오랜만의 여행이라 긴장이라도 했던 걸까.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다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 잠들었는데, 새벽에는 꿈 때문에 깼다. 피를 토하는 꿈. 아침에 일어나 기침을 했는데 피가 나왔다. 그러자마자 든 두 가지 생각 : 왜 하필 집 떠나는 날 이런 사고가 터진 걸까, 여행지에서 다른 사람 고생시키면 어쩌나, 그렇잖아도 신세지러 가는 건데 ; 카페트에 떨어진 저 핏자국이 안 지워지면 어쩌나. 요사이 내 염려와 강박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례. 

깨니 맞춰둔 자명종이 울린다. 5시 45분. 7시 28분 몽파르나스역 출발이니 6시에 일어나 6시 20분경 나가면 되겠다는 계산에서 맞춰둔 시각. 아침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후자는 실패. 며칠 전부터 속이 더부룩한데 큰일이다. 예전부터 여행지에서는 늘 화장실 문제로 늘 골치가 아프곤 했다. 골치가 아프다면 사실은 과장이고, 사실 유일한 문제는 안색. 집이 아닌 곳에서 맘이 편치 않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배가 편치 않아 흙빛인 얼굴을 하고 다니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한 지인은 외지에서 처음 봤을 때의 나를 까만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가 파리에서 보니 하얘서 놀랐다고 할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며 랜덤하게 틀어놓은 아이팟에서 <마술피리>의 한 대목이 나온다. 타미노, 파파게노 그리고 3인의 마녀(?)들의 5중창. 그녀들이 타미노와 파파게노가 시험을 받느라 말을 걸어도 묵묵무답이자 포기하고 떠나가는 장면. Auf Wiedersehen. 그래, 안녕이다. 온 세상이, 심지어 아이팟마저도, 내게 떠나라 하고 있잖은가. 그런데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Stephanie Says. 이크, 이건 내가 당시에 자주 들으면서 흥얼거리던 노래인데. 

오랜 만의 홀로운 기차 여행. 예전부터 무언가를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을 때 여행이라는 방법을 이용하곤 했다. 전환의 계기라기보다는 그 결과 중 하나랄까. 정확히는 전환을 위한 다짐의 결과. 그렇다고 그 자체로 실제적 결과를 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상징 차원에 머물렀을 뿐이지만, 오히려 그 역효과-부작용도 상당했지만. 이를테면 리듬 변화로 인한 후유증이나 이후의 경제적 여파 같은 것들 말이다. 어쨌든, 돌이켜 보면, 즉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인생의 전환점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해왔던 셈. 2006년의 생장드뤼즈, 2008년의 스위스, 2010년의 고국... 그리고 올해 2013년의 비아리츠. 여기에 2011년 마지막날 이탈리아 피사로 떠났던 행적을 포함시켜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 이 여행의 경우에는 앞에 열거한 사례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 관둔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대신에, 기억이 확실하게 나지는 않지만, 99년경 겨울 대천행과 2002년 혹은 2003년 역시 겨울의 춘천행을 포함시켜야 하겠다.
 
이번의 비아리츠행은... 내게는 이미 오래 전에 받은, 그러나 다행히도 유효기간이 끝나지 않은, ㄴ언니의 비아리츠 초대권이 있었다. 비아리츠에 초대해 줄만한 친절하고 여유있는 친구를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에릭 로메르작 <녹색광선>의 주인공 델핀처럼 말이다. <녹색광선>의 델핀은 비아리츠로 갔다 떠나는 날 기차역에서 만난 낯선 이와 생장드뤼즈로 향한다. 2006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7년 전, 생장드뤼즈까지 가면서 그보다 파리로부터는 한 정거장 전이고 훨씬 유명세도 높은 비아리츠에는 발조차 디디지 않았던 것은 <녹색광선>의 영향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야 비아리츠에 가는 중이니 델핀의 행적을 거꾸로 밟고 있는 셈.

 
조금 더 가니 하늘은 어느새 붉은 기색 하나 없이 창백한 안개로 뒤덮여 있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다. 이번에 녹색광선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으나. 이 기상현상은 해가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순간, 굴절된 끝 부분이 보통보다 파장이 길어지면서 광선이 일시적으로 녹색으로 보이게 된 데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안개라면 해가 지는 것조차 볼 수 있을지 의문. 그래도 올해 마지막 해를 비아리츠에서 맞는다 생각하니, 여러 면에서 충동적이고 무리하게 강행한 여행이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2013년 12월 30일
비아리츠행 기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