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5일 금요일

Fell in Love with My Parents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부모님과!

부모님의 결혼 45주년에 부쳐


귀국 후 4년 남짓한 시간의 대부분을 부모님과 보냈다. 타지에서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 생활을 오래 지속해 오다 고향 서울로 돌아와 말 그대로 “이동의 자유”를 얻었건만, 이 자유를 만끽하자니 또 사정이 여의치 않고, 오랜 독신 생활에 지쳐 이제는 혼자 노는 일을 더 이상 예전처럼 좋아하지 않게 되었으나 불행히도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내게 손을 내밀어 주신 것은 부모님이 거의 유일했던 것이다. 때로는 사위는 언제 데려올 거냐고 혀를 끌끌 차시거나 당신들과 노느라 사람을 못 만나는 게 아니냐고 안타까워도 하셨지만. 부모님이 아니면 놀아줄 친구도 없고 “사위”는 더더욱 찾기가 불가능한 것이 또한 현실이었으니. 

하여간 그렇게 해서 우리 셋은 여느 젊은 연인들이나 친구들 부럽지 않게 서울, 그리고 때로는 춘천의 곳곳을 누비고 맛집을 찾아 다녔다. 

같이 다니면 두 분이 앞서고 나는 뒤쳐지는 일이 잦다 (또 다른 에우뤼디케 상황? 에우리디케 상황은 나의 운명인 것인가?) 그렇게 두 분을 따라 갈 때면 어릴 적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동생과 뒷좌석에 앉은 나는 잎좌석의 두 분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늘 긴장하곤 했다. 다른 부부도 그리 다르지는 않거나 부모님이 유난한 사례는 아니라 생각되지만 두 분은 자주 다투는 편이었다. 특히 할머니댁이나 외가로 향하는 길이면 영락 없었다. 

다행히도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건축공학과 출신 엔지니어인 아빠와 가정관리학과 출신으로 인테리어를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전공에 충실(?)하게 남은 엄마의 공통 관심사는 건축이었다. 아빠야 전공이니 그렇다 치지만 엄마도 못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지나가다 특기할 만한 건축물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마리오 보타, 페이, 가우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코르뷔지에, 김수근, 김석철, 김중업 (아래 사진의 붉은 벽돌 건물은 얼마 전 연희동을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김중업 작품이다) 등 유명한 건축가 이름도 자주 오르내렸다. 

두 분의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흐를 때면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우선은 분쟁이 아니라는 사실에 긴장을 풀고 안도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뿌듯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전부터 나의 자랑이었다. 부모님이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이상으로 나는 부모님이 자랑스러웠다. 독립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하시거나, 부나 명예나 권력 등에서 높은 성취를 이루시거나, 세속적 기준에서 “성공”을 하신 건 아니다. 만약 그러셨더라도 그걸 그리 자랑스런 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내게 자랑스러웠던 것은 부모님의 젊은 감각과 풍부한 교양과 넘치는 활력이었다. 그리고 두 분 사이의 금실. 가끔, 아니 자주,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유지되어 왔다. 무려 45년 동안이나.

그런 두 분과 15년을 떨어져 지낸 뒤 다시 같이 살게 된지 4년. 그 사이에 두 분은 연로해지고, 나는 나대로 중년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게 두 분은 여전히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자랑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랑스러움을 넘어서 한없이 사랑스럽다.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며 타박하기는 해도 실은 그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커플의 삶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두 분은 “커플룩” 차림일 때가 많다. 주로 아빠가 엄마 옷차림을 보고 그에 맞춰 입으시는 편. 엄마는 질색을 하고 심지어 외출 직전에 옷을 갈아 입으시기도 한다. 그래도 체구가 작은 두 노인이 옷을 맞춰 입고 나란히 걷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장면이란 생각을 한다. 오래도록, 언제까지나 보고 싶은 장면.





2021년 9월 11일 토요일

다시 돌아온 자기소개서 쓰는 계절에 다시 읽는 "합격" 자기소개서

자기 소개를 겸하여 혹은 대신하여*


지원서를 제출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모집 광고를 뒤늦게, 그것도 마감 하루 전날, 정확하게는 마감 시각으로부터 6시간 전에서야 봤다는 개인적인 사유가 참작될 리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광고를 보고서도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였던 까닭에 6시간 내에 번역문, 기사, 그리고 자기 소개서를 완성하기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그럴 듯한 변명으로 들릴 리 만무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대개 이런 식입니다. 약속 시간에는 늘 늦습니다. 숙제를 제출할 때나 원고나 기사를 쓸 때면 마감 기한을 넘기는 것이 보통입니다. 시험을 볼 때도 감독관의 짜증이 극도에 달할 때까지 답지를 붙들고 있곤 했습니다. 

왜 이렇게 스스로에게 불리한 진술을 계속해서 늘어놓는지 궁금해 하실 줄 압니다. 프랜시스 윈이 쓰고 정영목이 옮긴 『마르크스 평전』에는 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쓰면서 남긴 일화가 나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증상을 알 것이다. 계속 늦추고, 어디 정신을 팔 수 있는 일이 없나 계속 두리번거리고, 당면한 일 외에는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는 상태. 마찬가지로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산주의자 동맹'의 런던 지도자들이 점점 안달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도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1848년 1월 24일 브뤼셀로 최후통첩을 보냈다. […] 마르크스는 보통 마감시간이 다가왔을 때에야 최선을 다했다. 이번 경우도 위의 최후통첩이 효과를 발휘했던 것 같다. […] 마침내 2월 초에 런던에 도착한 문서는 마르크스가 도를레앙가 42번지에 있는 그의 서재의 자욱한 시가 연기 속에서 밤새도록 미친 듯이 휘갈겨 쓴 것이었다.
감히 제 자신과 맑스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윗글을 인용한 것은 글을 쓸 때의 제 행태가 맑스의 그것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 역시 “마감시간이 다가왔을 때에야 최선을 다” 하곤 했었지요. 사실 이런 제 “증상”이 단순히 나쁜 습관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의도적으로 “계속 늦추고, 어디 정신을 팔 수 있는 일이 없나 계속 두리번거리고, 당면한 일 외에는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는 상태”를 부르기도 하거든요. 그 상태를 거친 다음에서야, 즉 마감시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이 충만하게 발휘되고, 또 그런 만큼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웹진은 공적인 글쓰기를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못된 버릇이 초래할 수 있을 위험한 결과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그것이 가져다 줄 수 있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위에서 쓴 것과 같은 시간 관념을 타인에게 피해가 줄 정도로 남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덧붙여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숙제를 늦게 제출해서 감점을 받거나 약속에 자주 늦었다는 이유로 애인으로부터 헤어지자는 통고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원고를 펑크내거나 편집 일정에 차질을 줄 정도로 늦게 보내는 일은 없도록 스스로를 모질게 다그친다는 것이지요. 

제가 <컬티즌>의 필진으로서 일하기에 부족하기는 할지언정 부적합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글 쓰는 사람들의 나쁘지만 그렇게 나쁘지만 한 것은 아닌 버릇을 가졌다는 점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제게는 어떤 것에 대해 한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만 하면, 아무리 그것이 전혀 몰랐던 분야에 속해 있는 것이었을지라도, 어떻게 해서든 이해가능하게끔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제게 이러한 특별한 재주가 있음을 깨달은 것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가 대학원신문의 편집에 참여하면서부터였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부터 저의 관심사는 무척 다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오로지 한 곳에 온 정신을 집중해도 모자를 판에 그렇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핀잔을 듣곤 했었지요. 그런데 대학원신문사에서 학술 기사를 기획하거나 작성했던 경험을 통해, 저의 이 리좀과도 같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강점으로 내세울 방법이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이 학술 논문보다는 학술 기사를 쓰기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자각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각각의 지식을 얕은 수준으로 아는 데에 만족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붙들고 매달릴 만한 주제를 발견하면, 그에 대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꽤 그럴듯한 분석적인 그리고/또는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곤 하지요. 이때의 집중력에 위에서 말씀 드린 “최후 통첩” 효과가 곁들여지면 더더욱 말씀드릴 것도 없겠지요. 제가 대학원신문 일을 좋아하고 또 부끄럽지 않게 해낼 수 있었던 것도, 아나키스트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해서 아나키즘 이론에 밝지도 않았음에도 『아나키즘의 역사』(장 프로포지에 지음, 이소희 • 김지은과 함께 옮김, 이룸: 2003)라는 책의 번역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저는 철학과 대학원에서 수학 및 과학에 관한 논문을 쓴 뒤에 지금은 파리 7대학에서 프랑스 인식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컬티즌>이나 그 밖의 다른 인터넷 언론들을 통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위치해 있는 곳의 “지정학적” 조건을 이용해서 무언가 다른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컬티즌>이라는 공간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021년 5월 18일 화요일

아직도 가끔은

너는 알까
아직도 가끔은
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걸
오늘처럼 비오는 날이면
유난히 생각이 많이 나
가슴이 빗소리에 맞추어 뛰다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대어
간신히 붙잡아 둔다는 걸

너는 알까
아직도 가끔은
언젠가 우연히 널
마주치는 상상을 한다는 걸
오늘처럼 봄비가 오거나
아니 모두가 들뜬 금요일 저녁이면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약속 없이 혼자 거리로 나서
우연히라도 마주칠 네게 건넬
첫 마디를 연습한다는 걸

너는 알까
아직도 나는 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네 생각 뿐이란 걸
어쩌다 보니 이제껏 
너만 기다리고 있다는 걸
어쩌면 앞으로도 평생을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프고 약올라 죽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2021년 2월 6일 토요일

위기 전 생산으로의 회복을 거부하기 위한 철벽 행동의 상상 (브뤼노 라투르)

* 번역의 변 : 브뤼노 라투르가 작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하던 시점에서 쓴 글로, 이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한글본이 없길래 임시로 해보았다. 수정 후 2월말 정도에 페이스북에 올려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라투르측에 요청해서 원문 게시글에 추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 원문 출처 : Où atterrir après la pandémie? ; Where to land after the pandemic?



위기 전 생산으로의 회복을 거부하기 위한 철벽 행동의 상상

 

브뤼노 라투르 

AOC 2020년 3월 20일

 

의료진이 “현장에” 있고,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또 많은 유가족들이 고인을 묻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 이후에 대한 상상은 아마도 부적절할 것이다. 그렇지만 투쟁은 바로 지금이다. 구 기후 체제는 지금까지 다소 공허한 투쟁의 대상이었다. 일단 위기가 지나고 경제가 회복된 후에도 구 기후 체제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바로 지금 맞서 싸워야 한다. 실제로 현재의 보건 위기는 위기라기보다는 (위기는 언제나 일시적이게 마련이다) 지속적이고 불가역적인 생태적 변이에 각인되어 있다. 우리가 운이 좋다면 전자[보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후자[생태적 변이]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두 상황이 같은 수준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자의 관계를 잘 살피는 것은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어쨌든 이 보건 위기를 수단으로 삼아 생태 변이를 맹목적이 아닌 다르게 맞이할 기회로 삼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가장 황당한 것이기도 하다. 단 몇 주일만에 전 세계가 동시에 경제 체제를 중단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모두가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돌리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바로 그 경제 체제 말이다. 생활 양식의 전환에 대한 생태주의자들의 논증은 “진보라는 기관 열차”의 비가역적인 힘에 대한 논증으로 반박되어 왔다. 즉 “세계화 때문에” 열차는 선로에서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지구화라는 특성 때문에 그 유명한 진보도 흔들리게 되었다. 단번에 제동이 걸리고 멈출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지구의 세계화는 다국적 기업이나 상업 협약이나 인터넷이나 “관광 해설사/가이드”만의 소관은 아니다. 이 행성 위의 각 존재자들은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필요한 순간에는 다른 요소들과 결합해서 집합적인 것을 구성한다. 공기 중으로 확산되어 지구의 대기를 높이는 이산화탄소가 그러하고, 신형 독감을 옮기는 철새도 그러하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마찬가지임을 우리는 고통스럽게 되새기고 있다. “모든 인간”을 잇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역량은 겉으로 보이게는 무방비한 우리의 비말이라는 수단으로 전달된다. 마치 미생물들이 수십 억 인간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재사회화할 사명을 띠고 세계화 혹은 반()세계화의 주역을 맡기라도 한 듯이 보인다.

이로부터 믿기 어려운 사실이 확인된다. 세계 경제 체제가 적색 경보를 모두에게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게다가 이 체제는 커다란 금속 손잡이도 갖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국가 지도자들이 그 손잡이를 당기는 즉시 “진보의 기관 열차” 또한 요란한 제동 소리를 내며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착륙[지구로의 귀환]을 위해 90도 각도로 선회하라는 요구는 지난 1월[2020년 1월]까지만 해도 달콤한 환상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에 훨씬 가까워졌다. 모든 운전자들은 안다. 도로를 이탈해서 벽을 들이받는 일이 없도록 구원의 손길을 바란다면 속도를 낮춰야 한다는 사실을.

세계화된 생산 체계가 갑작스럽게 멈추면서 지구 귀환 프로그램을 추진할 더 없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불행히도 생태주의자들만의 일은 아니다. 20세기 중반부터 행성의 구속을 벗어난다는 생각을 발명한 세계화의 주역들 또한 그들을 세계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로부터 급진적으로 단절할 더 없는 기회라 여긴다. 그들에게는 복지 국가, 가난한 자들의 안전망, 오염 방지를 위한 규제책 등을 해체하고, 또, 보다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이 행성에 짐이 되는 모든 초과 인원을 제거하기 위한 너무나도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1]

이 세계화주의자들이 생태적 변이를 의식하면서도 기후 변화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한편, 지난 50년간 그 결과를 피하고 특권으로 무장한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요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보의 열매”에 대한 보편적 분배라는 근대인의 위대한 꿈을 믿을 만큼 소박하지 않다. 그러한 환영마저 남기지 않을만큼 솔직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새롭다.[2] 매일같이 폭스 뉴스에서 발언하고 또 모스크바, 브라질리아, 뉴델리, 워싱튼, 그리고 런던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기후 회의주의 국가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현재의 상황을 그토록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매일 같이 늘어나는 사망자들이 아니다. 경제 체제의 전반적인 중단은 특히 세계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재고”할 경이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화주의자들이 패배했음을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 기후 변화의 부정이 무한정하게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 지구상의 다양한 지층들과 그들의 “개발” 사이에서 화해할 기회는 더 이상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경제도 예외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무든 수를 써서라도 좀더 지속가능하고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보호할 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태세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세계의 멈춤”이라는 제동, 이 예견되지 않은 휴식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달아날 기회를 제공한다.[3] 이 순간, 그들이야말로 혁명가다.

우리가 행동해야 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서다. 그들에게 기회가 열린다면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열린다. 모든 것이 멈춘다면 모든 것이 재고되고, 변경되고, 선택되고, 분류되고, 중단되거나 반대로 가속될 수 있다. 바로 지금 전수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가능한 빨리 생산을 재가동하자”는 양식의 요구에 “그렇게는 안 된다”는 일성으로 답해야 한다. 무엇보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우리가 이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회복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텔레비전에 눈물을 머금은 한 네덜란드 화훼업자가 나왔다. 그는 고객이 없어 비행기로 전 세계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수톤의 튤립을 폐기해야 했다. 불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피해 보상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카메라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는데 그때 그의 튤립이 인공 조명에서 자란 뒤 바다에 석유를 뿌려대는 쉬폴이라는 화물선으로 이송될 것임을 보여준다. 거기에서 의심이 싹튼다. “그런 종류의 꽃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그러한 방식을 연장하는 일이 과연 유용한가?”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 각자가 우리 생산 체계의 모든 면에 대해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효과적인 세계화 방해꾼이 된다. 우리는, 비록 수백만에 불과하기는 해도, 지구의 세계화에 있어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지구를 세계화시킨 저 유명한 코로나바이러스만큼 효과적일 수 있다. 바이러스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미미한 비말로써 세계 경제의 멈춤을 이루었다면, 우리는 우리의 무의미한 작은 행동으로써, 행동에서 행동으로 전함으로써 생산 체계의 멈춤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각자 질문을 던지면서 거부 행동을 상상한다. 이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대항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복구하지 않기를 바라는 생산 양식에 대한 대항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단지 생산 체계를 회복하고 변경할 것이 아니라 생산을 세계와 관계를 맺는 유일한 원리로 간주하는 데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4]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 픽셀(화소) 단위로의 분해다. 피에르 샤르보니에가 보인 것처럼, 경제에서 이윤의 재분배에만 치중한 지난 100년 간의 사회주의 이후, 어쩌면 이제는 “생산 자체”에 반기를 드는 사회주의를 발명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5] 불의는 진보의 열매를 재분배하는 방식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풍요롭게 만드는 방식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산을 축소하고 사랑과 신선한 물로만 살자는 것이 아니다. 소위 비가역적이라는 체계의 각 부분들을 선택하고, 소위 필요불가결한 연결들을 재고하며,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이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은지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이 부과된 시간을 우선적으로는 각자가, 그리고는 춤, 기술하는 데에 사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부터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다시 꿰거나 아니면 행동을 통해 끊겠다고 결심한 사슬은 무엇인지. 세계화주의자들은 재개 이후 그들이 무엇을 재생하고자 하는지 매우 분명히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못지 않게 분명하되 더 나쁜 것은 석유 산업과 고급 유람선이다. 그들에게 반대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한두 달 안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새로운 “사회적 거리”를 배우고, 보다 연대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병원이 과부하되지 않도록 집에 머물 수 있다면, 이 새로운 철벽 행동의 변화에 대한 잠재력을 상상할 수 있다. 동일한 것의 재개에 대항하기 위해서. 또는 그보다 나쁘게는, 지구 중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완충 장치에 대항하기 위해서.


철벽 행동을 위한 길잡이


주장은 실천적 수행과 연결하는 것이 좋다. 독자에게 이 간단한 설문을 제안한다. 설문은 직접 체험된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할수록 더더욱 유용할 것이다. 관건은 당신의 머리에 와닿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황을 기술하고 나아가 또 다른 설문으로 확장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여러 기술들을 중첩해서 풍경이 생성되도록 답변을 한다면, 당신은 구체화되고 자세한 정치적 표현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는 불가능하다.


주의할 것은 이것이 질의서도 설문 조사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기 기술을 위한 길잡이이다.[6]


이제 할 일은 현재의 위기에서 어떤 활동으로 인해 당신이 박탈감을 가지고 당신의 삶에 본질적인 조건에 위협을 느끼는지 알아보고 그러한 활동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각각 활동에 대해서 당신이 (예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재개하고 싶은지, 더 하고 싶은지, 아니면 전혀 재개하고 싶지 않은지 선택할 수 있다. 다음의 질문에 답해 보라.

 

1.     지금 멈춘 활동 중 당신이 재개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2.     다음을 기술하라. ㄱ) 왜 그 활동이 당신에게 해로워/불필요해/위험해/비일관적으로 보이는가? ㄴ) 그 활동의 종식/일시 중지/대체가 당신이 선호하는 다른 활동을 보다 용이하게/더 일관적으로 만들었다면 어떤 점에서인가? (질문 1.에 대한 답변에서 열거된 각 항목에 대해 별도로 답변할 것)

3.     당신이 멈춘 활동을 계속할 수 없는 노동자/직장인/수행원/기업가들이 다른 활동으로의 전환을 용이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는가?

4.     현재 멈춘 활동 중 당신이 발전되거나 재개되기를 바라는 것은? 혹은 어떤 활동이 대안으로 발명되어야 하는가?

5.     다음을 기술하라. ㄱ) 왜 그 활동이 당신에게 긍정적으로 보이는가? ㄴ) 그 활동은 어떻게 당신이 선호하는 다른 활동을 보다 쉽게/조화롭게/일관적으로 만드는가? ㄷ) 또 당신이 비호감을 표시한 활동에 맞서 저항하도록 만드는가? (질문 4.에 대한 답변에서 열거된 각 항목에 대해 별도로 답할 것)

6.     노동자/직장인/수행원/기업가들이 그 활동을 재개/발전/창조할 역량/수단/도입/소득/도구를 취득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다음으로는 당신의 기술과 다른 참여자들의 기술을 비교할 방법을 모색하라. 답변을 모으고 겹쳐서 보면 충돌, 연합, 논쟁, 대립의 선들로 이루어진 풍경이 서서히 그려질 것이다.)


[1] 미국의 고삐 풀린 로비스트들에 관한 마크 스톨러의 기사를 보라 : 우리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구체책은 기업들의 한 탕이 될 것이다. 『가디언』, 2020년 3월 24일,

[2] 우리는 더 이상 같은 행성에 살지 않는다, AOC 2019년 12월 18일.

[3] Danowski, Deborah, and Eduardo Viveiros de Castro. Larrêt de monde. De lunivers clos au monde infini (textes réunis et présentés). Ed. Hache, Emilie. Paris: Editions Dehors, 2014. 221-339. [드보라 대노프스키,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세계의 멈춤」, 『닫힌 우주에서 무한 세계로』, 에밀리 아슈 편, 2014]

[4] Dusan Kazic, Plantes animées- de la production aux relations avec les plantes, thèse Agroparitech, 2019. [『살아 있는 작물 : 작물의 생산에서 작물과의 관계로』. 파리농업공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5] Pierre Charbonnier, Abondance et liberté. Une histoire environnementale des idées politiques. Paris: La Découverte, 2020. [피에르 샤르보니에, 『풍요와 자유 : 정치 사상의 환경사, 2020』

[6] 자기 기술은 『어디에 착륙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정치적 방향성을 잡을 것인가』에서 제안되었으며 이후 일련의 예술가, 연구자들에 의해 발전된 새로운 진정서(cahier de doléance)의 절차를 복구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