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끔은

너는 알까
아직도 가끔은
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걸
오늘처럼 비오는 날이면
유난히 생각이 많이 나
가슴이 빗소리에 맞추어 뛰다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대어
간신히 붙잡아 둔다는 걸

너는 알까
아직도 가끔은
언젠가 우연히 널
마주치는 상상을 한다는 걸
오늘처럼 봄비가 오거나
아니 모두가 들뜬 금요일 저녁이면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약속 없이 혼자 거리로 나서
우연히라도 마주칠 네게 건넬
첫 마디를 연습한다는 걸

너는 알까
아직도 나는 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네 생각 뿐이란 걸
어쩌다 보니 이제껏 
너만 기다리고 있다는 걸
어쩌면 앞으로도 평생을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프고 약올라 죽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봄꿈 (feat. Aselm Kiefer & 김종학)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Anselm Kiefer, Dormeur du val (extrait)
빌헬름 뮐러의 시에 프란츠 슈베르트가 곡을 붙여 만든 <겨울나그네>. 흔히 <겨울나그네>를 두고 멜로디가 낭만과 서정의 극치인 데 반해 가사를 들어보면 "찌질"하다고들 한다. 실연의 아픔을 호소하는 청년의 자기 연민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꿈꾸고 그 꿈을 집요하다 싶게 좇는 사람은 타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법도 하다. 게다가 그 꿈이 가망도 없고 그럴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이는 것이라면.

그중에서 11번째 곡 "봄꿈(Frühlingstraum)"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자주 생각나고 또 자주 듣던 곡이다. 일종의 봄타령처럼. 5월에 화사하게 피어오른 듯한 찬란한 꽃들,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 들을 꿈꾸던 몽상가. 새벽에 수탉이 울어 눈을 뜨니 세상은 여전히 춥고 어둡고 게다가 까마귀까지 울어대고. 유리창에 낀 성에도 마치 누군가 꽃을 그려놓고서 한겨울에 꽃타령하는 몽상가를 비웃는 것만 같다. 그래도 몽상가는 여전히 꿈꾼다. 사랑을 위한 사랑을. 어여쁜 소녀를. (아마도 소녀의?) 마음과 입맞춤을. 다시 수탉이 울고 마음이 깨어난 몽상가는 홀로 앉아서 꿈을 되새기며 눈을 감는다. 그의 가슴이 뛴다. 언제쯤이면 창가에 푸른 잎이 돋을 것인가? 언제쯤이면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인가?*

안젤름 키퍼는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현대 작가다. "좋아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은"이 좀 더 정확하겠다. 지난 20여 년 동안 두어 번 전시를 가본 것이 고작이니까. 세간의 팬덤 문화나, 꼭 대중문화가 아니더라도, 문화 및 예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바, 그 표현과 방식에 있어 무섭도록 가속화되고 다각화된 수용 패턴에 비추어 볼 때, 나는 그의 편입을 자처하기엔 너무도 게으른 관객인 것이다. 꼭 전시 현장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다른 매체를 통한 접근도 충분히 가능하고 오히려 그 가능성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는 변명의 여지는 있다. 키퍼는 규모와 재료/질료와 재질과 장소적 맥락을 중시하는 구상을 추구하고, 그러한 작품의 속성상 감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작과의 직접적 접촉을 필요로 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것이다.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까지 파리는 키퍼의 세상이었다. 작가는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연을 했고, 라디오 프랑스퀼튀르에 여러 번 출연했으며, 국립도서관과 퐁피두센터에서 동시에 특별전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열심히 들었고, 국립도서관 전시는 틈만 나면 갔고, 퐁피두 전시에도, 언제나처럼 ㄴ 언니 덕분으로, 여러 번 갈 수 있었다. 2015년 11월 13일에 일어난 테러 때문에 모든 파리가 충격에 빠져 있었고 나 역시 그러했지만, 아니 내게 그 충격과 그 뒤로 이어진 불안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지만, 키퍼는 버틸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논문이 늦어지는 바람에 급기야는 이런 일마저 겪는구나"라고 나약하고 비겁한 생각에 빠지는 대신에, "내가 키퍼를 보려고 논문을 늦췄다"라고 공언할 정도의 긍정과 낙관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절박하고 절망적이기까지 당시의 상황을 버틸 수 있었다. 기나긴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봄의 꿈이었달까. 

사실 키퍼를 "꿈"으로 "엮"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꿈은 곧 신화이고 이상이고 관념이기도 한데 이는 독일 민족의 신화, 탈무드 신화, 연금술 등등 그의 라이트모티프요 그의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종학, <잡초> (1987)

원래는 키퍼의 작품론을 이렇듯 장황하고 어설프게 개진하려던 건 아니었다. 오래 소재로 묵혀둔 화두 중 하나가 "봄꿈" 덕분에 소환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덩달아 김종학의 작품도. 지난겨울 서소문 시립미술관에서 김종학의 <잡초>를 보고서는 키퍼의 바로 저 작품을 떠올렸었다. 김종학은 저런 "꽃그림"을 많이 그린 반면에, 키퍼의 저 작품은 그의 세계에서 예외적으로 밝고 화사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그림의 제목은 "무도회에서 잠든 자 (Dormeur du val)", 랭보의 시**에서 따왔다. 랭보의 시는 비극이다. 햇빛이 찬란한 푸른 들판에 젊은 병사가 하나 평화롭게 누워 있는 풍경인데 알고 보니 병사는 숨을 쉬지 않고 붉은 상처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병사 또한 꿈을 꾸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역시 봄을 꿈꾸며 기다리는, "겨울나그네"의 그 마음이지 않았을까.



* 여기에서 따온 가사의 (구글 번역을 초역으로 한) 의역이자 자유로운/창조적인 해석. 가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

Ich träumte von bunten Blumen,
So wie sie wohl blühen im Mai,
Ich träumte von grünen Wiesen,
Von lustigem Vogelgeschrei.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Auge wach;
Da war es kalt und finster,
Es schrieen die Raben vom Dach.


Doch an den Fensterscheiben,
Wer mahlte die Blätter da?
Ihr lacht wohl über den Träumer,
Der Blumen im Winter sah?


Ich träumte von Lieb' um Liebe,
Von einer schönen Maid,
Von Herzen und von Küssen,
Von Wonn' und Seligkeit.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Herze wach;
Nun sitz' ich hier alleine
Und denke dem Traume nach.


Die Augen schließ' ich wieder,
Noch schlägt das Herz so warm.
Wann grünt ihr Blätter am Fenster? 

Wann halt' ich dich, Liebchen, im Arm?

** C’est un trou de verdure où chante une rivière
Accrochant follement aux herbes des haillons
D’argent ; où le soleil, de la montagne fière,
Luit : c’est un petit val qui mousse de rayons.

Un soldat jeune, bouche ouverte, tête nue,
Et la nuque baignant dans le frais cresson bleu,
Dort ; il est étendu dans l’herbe, sous la nue,
Pâle dans son lit vert où la lumière pleut.

Les pieds dans les glaïeuls, il dort. Souriant comme
Souriait un enfant malade, il fait un somme :
Nature, berce-le chaudement : il a froid.

Les parfums ne font pas frissonner sa narine ;
Il dort dans le soleil, la main sur sa poitrine
Tranquille. Il a deux trous rouges au côté droit.

Difference and Repetition

One day my love said to me I miss you 
So I said, don't miss me
Don't be cruel, he said
So I said, enjoy or endure it then

I was so cruel back then
Just as you are to me now
I know you don't mean it
Not as much as I did to him

Now I know why I did that to him
I didn't care about him at all
Not so much as you do about me 
That's why you do that to me 

We are so cruel after all
To the ones who care about us
To care about someone else
Who doesn't care at all 

If you say I love you
You'd never told, so do I
They'd rather say, I don't any more*
That's the way it is after all

I miss you, don't miss me
I love you, I don't any more*
I love you, only if you don't**
That's the way it is after all



*Or : neither do I, two meanings of "moi non plus," from Serge Gainsbourg, "Je t'aime, moi non plus"

** "L'amour est enfant de bohème/Il n'a jamais connu de loi/Si tu ne m'aimes pas je t'aime/Et si je t'aime prends garde à toi," from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in Bizet, Carmen (livret : Henri Meilhac et Ludovic Halévy)

오르페우스는 너다

The Reflektor Tapes 의 개봉을 기다리며 뒤늦게서야 들어본 아케이드 파이어의 2013년 앨범 Reflektor. 내게 이들의 음악은 뭐랄까, 너무 그래머러스하달까, 좀 거창하고 버거운데, 그런데도 이들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도전 및 실험 정신이 있고 특히 공연실황을 볼 때면 역력히 드러나는 진지함과 진정성이 ( 버틀러는 지금도 데뷔하던 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열과 성을 다해 노래한다, 고 피치포크의 평론가는 말한다) 마음을 움직이고 그것이 귀까지 열리게 하는 것이다.

이번 앨범에서 유난히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 노래가 둘 있었으니 그것은 사이드 비의 "Awful Sound"와 "It's Never Over". 각각의 부제는  Oh Eurydice 와 Hey Orpheus.

오르페우스 신화는 앨범 재킷에서도 보듯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는데 이 두 곡은 말하자면 앨범 주제곡. 앞 곡은 "끔찍한 소리" 즉 침묵을 견디며 오직 앞만 보고 가야 하는 고통을 하소연하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에게 부르는 노래.  뒷 곡은 그런 오르페우스의 뒤를 따르는 에우리디케의 답가. 아니 에우리디케이기보다는 전지적 화자일까? 강 건너편에서 메아리처럼 (De l'autre côté de l'eau/Comme un écho) 들려오는 목소리.
Hey, Orpheus!
I'm behind you
Don't turn around
I can find you
[...]
It seems so important now
But you will get over
It seems so important now
But you will get over
And when you get over
When you get older
Then you will remember
Why it was so important then
[...]
Then you will discover
That it's never over
돌아보지 말라고. 나 뒤에 있다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정 보고 싶으면 노래를 부르라고 (노래, 그거야말로 오르페우스의 특기 아닌가). 너무 빨리 뒤돌아보지 말고 길을 다 지날 때까지 기다리자고.  끝이 나면 알게 될 거라고. 지금은 중요한 것 같아도 다 잊을 거라고. 이겨낼 거라고. 나이가 좀 더 들면 알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러고 나면, 그러고 나야 비로소, 알게 될 거라고. 왜 그땐 그게 그리 중요했는지. 그리고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것임을. 하! 그리고 그 뒤에 오르페우스 신화의 에피소드를 암시하는 대목들이 암시되는 함축적이고 압축미가 뛰어난 대목들이 이어진다.*

노래를 듣다 문득, 저 목소리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오르페우스는 너다. 돌아보지 말고 길을 끝까지 가야 할 것은 너다. 길의 끝에 어떤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깨달음의 내용이, 지금은 중요한 것 같아도 별 일 아님이 되든,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것임이 되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사실 그 누구도 뒤에서 부르지 않는다. 돌아보는 것은 네 자신이다. 일단은 길을 끝까지 가라.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오직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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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Eurydice!
Can you see me?
I will sing your name
'Til you're sick of me
Just wait until it's over
Just wait until it's through

But if you call for me
This frozen sea
It melts beneath me
Just wait until it's over
Wait until it's through

Seems like a big deal now
But you will get over
Seems like a big deal now
But you will get over
And when you get over
And when you get older
Then you will remember

He told you he'd wake you up
When it was over
He told you he'd wake you up
When it was over
Now that it's over
Now that you're older
Then you will discover
That it's never over

It's never over (it's never over) [8x]

Sometime (Sometime)
Sometime (Sometime)
Boy, they're gonna eat you alive (eat you alive)
But it's never gonna happen now
We'll figure it out somehow

Sometime (Sometime)
Sometime (Sometime)
Boy, they're gonna eat you alive (eat you alive)
But it's never gonna happen now
We'll figure it out somehow

Cause it's never over
It's never over (it's never over) [6x]

We stood beside
A frozen sea
I saw you out
In front of me
Reflected light
A hollow moon
Oh Orpheus, Eurydice
It's over too soon

베토벤의 유머



Che fa, che fa il mio bene?
Perchè, perché non viene?
Vedermi vuole languir 
Così, così, così!
Oh come è lento nel corso il sole!
Ogni momento mi sembra un dì,
Che fa, che fa il mio bene?
Perchè, perché non viene?
Vedermi vuole languir 
Così, così, così!
- L'Amante Impaziente, Op. 82/3, 4

"님은 뭐하시나, 왜 안 오시나, 내가 병나는 걸 보고 싶으신가, 아, 해는 얼마나 긴지, 매 순간이 온종일 같네..." 이런 애교와 앙탈로 점철된 가곡을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목소리로 듣고 있자면, 그것만으로도 참 신선하고 의외여서, 거참,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네, 하다가, 아참, 이게 베토벤 가곡 음반이었지, "아델라이데"와 "이히 리베 디히"가 들어 있는, 하고 상기하고는 이내, 세상에, 거참, 이게 그 베토벤 맞나, "아델라이데"와 "이히 리베 디히"와, "비창"과, 그래, "엘리제를 위하여"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천상의 4중주를 만든 그 베토벤이 맞는지 반문하고는, 이내, 그래 맞긴 맞는데, 그렇다면 거참, 별 일이네, 진짜 오래 살고 볼 일,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인데.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제법 복잡한 오류추리 및 추론을 거치긴 했지만, 어쨌든 이제껏 살은 이유와 앞으로 살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이 노래가 찾게 해준 셈.

문제의 노래, "참을성 없는 연인" 은 주로 "아델라이데"를 들으려 구했던 앨범 Beethoven: An Die Ferne Geliebte; Brahms: Vier Ernste Gesänge (Dietrich Fischer-Dieskau, Jörg Demus) 에 수록돼 있다. 당시 비엔나에 머물며 그곳 왕실의 궁정악장 살리에리(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저주받은 경쟁자로 그려진 바로 그 살리에리)에게 사사하고 있던 청년 베토벤의 초기 작품. 즉 베토벤이 아직까지는 현재 우리가 아는 베토벤이 아니던 시절에 습작으로, 아니 거의 장난 삼아 만든 곡. 도대체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고 장난기 가득한 이탈리아식 보드빌에 대한 파스티슈랄까. 도대체 장난과는 거리가 멀고 숨쉬는 것 같이 아주 간단한 일에조차 진지하고 장중하게 임했을 것 같은 인물이 그래도 어린 시절에는 이런 가벼운 면모도 간직하고 있었구나, 하고 웃자니, 사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그 이후에도, 작곡가로서 완숙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가볍고 산뜻한 작품들을 남기지 않았으리란 법이 있나. 

당장 생각나는 예는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Waldstein", Piano Sonata #21 In C, Op. 53). 내게는 무엇보다 로메르가 각본을 쓰고 고다르가 만든 초기 단편 <남자애들 이름이 죄다 파트릭 Tous les garçons s'appellent Patrick> 에 쓰인 곡으로 기억되는데, 그래선지 들을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실제로 같이 사는 여주인공 둘이 거의 동시에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같은 사람인 줄 모르고 "어떻게 만난 남자애들마다 이름이 죄다 파트릭이냐?"하고 깔깔대는데, 그러나 사실 문제의 파트릭은 신분을 속인 채 이 여학생 저 여학생에게 접근하는 사기꾼이었고, 실명 또한 속였을 가능성, 즉 실제 이름도 파트릭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한 등등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누벨바그 초기의 가벼움과 자유로움과, 무엇보다 장난기가 묻어나서. 이후 로메르와 고다르 둘다 공통적으로 베토벤 음악을 즐겨 쓰곤 한 것을 생각하면 그 전조격이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천상의 4중주 중에도 못잖게 발랄한 작품이 있으니, 그것은 7번 (in F Major, Op. 59). 그런데 내가 이 곡을 들으며 역시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것은 역시나 거의 전적으로 고다르 덕분 혹은 탓이다. 1964년작 <결혼한 여자 Une femme mariée>에서 저 명곡을 창조적이거나 신성모독에 가깝게 사용한 것이다. 그것도 추격 시퀀스에서. 그것도 부부 사이에서 벌어진. 그것도 집안에서, 응접실과 발코니와 침실을 오가며. 애들처럼, 아니 애들보다 더 유아적으로 말이다. 이 장면을 또 고다르는 마치 히치콕의 <이창>처럼 건너편 건물에서 들여다 보듯하게 찍었다. 그뿐이랴. 문제의 7번 4중주도 그냥 있는 그대로 튼 게 아니라(만약 그랬다면 고다르가 아니었을 것), 극중 주인공들이 들어놓은 엘피에서 흘러나오는 히스테릭한 웃음소리와 겹쳐 놓았다.

어쨌든, 요컨대, 그리고 반복컨대, 어떤 이들에게는 자명하고 사소할지라도 내게는 이렇게 진기하고 재미있는 사실들이 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래서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들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가족이 나오는 꿈

꽃, 나비, 나무, 하늘, 바람, 별, 강물, 물고기, 강아지 등등으로 가득한 친환경적이고 도교적인 세상. 그러나 그 세상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이 있으니. 그 순간, 꽃은 숨겨두었던 가시를, 나비는 날개의 상처를 드러내고, 나무는 누군가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는 화살이 되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강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그 바닥 위에서 물고기는 힘겹게 파닥대고, 강아지는 어둠을 향해 컹컹 짖는다. 루시드폴 노래를 듣다 보면 가끔 그런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는 미선이 시절부터 이미  "송연" 이나 "치질" 등 가시가 돋힌 가사들을 써왔다. 그러나 아무래도 독집부터는 서정의 정서가 지배적. "사람이었네"와 앨범 <레미제라블>의 몇몇 노래들에서는 세상의 불의에 선연히 분노하는 것 같긴 했으나, 그 표현이 절대로 직접적인 일은 없었고 어디까지나 은유의 차원에 머물 뿐이었다. 현실에의 "참여"라 해도 지극히 은밀하고 소극적이이어서, 세상을 향해 열린 창 없이 오직 자기 안에 표현된 세상을 노래하는 모나드 같은 느낌. 즉 근본적으로 내향적(introspectif)이란 얘기고 그 노래도 결국은 내성(introspectoin)이라는 얘기다. 부적응자이거나 자폐아이거나 자급자족형이어서라기보다는, 세상 어디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대는 태생적 이방인이어서라는 것이, 내 자신의 경우를 투사한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해석.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으로만 보자면 앞의 세 병리와 다르지는 않겠으나.

이러한 내향적 인간 특유의 현실에 대한 태도에서 보이는 것과 처음에 말한 그림자는 좀 다르다. 그것은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어두움이다. 평소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숨겨 놓지만 가끔씩 드러나고 마는 어둠의 그림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은 그 어둠의 그림자가 숨겨져 있었다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꽃은 말이 없다> 앨범에 실린 "가족"이라는 노래는 그가 만든 중 최고로 어두운 것 같다. 듣다 보면 지난 세기 초, 민중의 빈곤하고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른바 사실주의 가요(chanson réaliste) 생각이 난다.

다락방에 모여 사는 가족이 서로 떨어지지 말자고, 무너지지 말자고 소리친다. 아이도 소리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듬성듬성 붙어 있는 천정의 벌레들/금세 울음이라도 터질 듯한 얼굴들"와 같은 묘사는 무척 사실적이고 섬뜩하다. 조르주 브라상스의 "기도(La prière)"나, 좀더 멀게는 토머스 하디의 <주드>에서 "because we are too many"라는 말을 남겨 놓고 동생들을 죽이고 스스로도 목을 맨 어린 소년이 생각나는 대목.

그 중에서도 특히 "가족들이 나오는 꿈은 늘 불안하지/온통 걱정스런 눈빛만 가득하니까"라는 구절은 들을 때마다 도망가고 싶어진다. 이 노래를 들은 뒤로 실제로 꿈에 가족이 나오면 불안해지기도 했다.

바로 그 가족이 나오는 꿈을 며칠 전에 꾸었다. 야학 모임에 가는 꿈. 개교 몇 주년이거나 기타 기념 행사였을 것이다. 할머니도 오셨다.

이게 왜 가족이 나오는 꿈이고 또 "야학"과 "할머니"가 무슨 연고인가 할 수 있겠는데,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보통은 상관 관계가 있기 힘들겠고, 하다못해 자유연상으로도 연결이 자명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내 개인사의 맥락에서는 그러하니, 나의 친할머니가 바로 서울의 한 야학에서 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계셨고, 나는 바로 그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을 했던 것이다.

다시 꿈에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내게 "이 분이 당신의 할머니되시는 분이다"라고 소개해주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분명 보통은 아닌 상황. 그러나 이 또한 그럴 법도 한 것이, 나는 친손녀라 해도 못 뵌지 5년이 넘은 데 반해, 야학의 제자들과 선생들은 가끔 모여서 찾아뵙고, 또 최근 "폐교" 행사에서는 다들 모였다고도 하니. 그런데 내 눈앞의 할머니는 몹시 앳된 얼굴과 표정이었다. 그저 아흔을 넘기고도 정정함을 유지한 수준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소녀였다. 그것도 사춘기 소녀. 수줍어하면서도 또 눈빛은, 걱정스럽기커녕, 천진난만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그 와중에 생각했다. 다들 모이는 거면 그도 올까? 그랬더니 실제로 멀리서 걸어 들어오는 그가 보였다. 교수가 됐다더니, 회색 정장을 한 말쑥한 차림. 가는 눈. 내리깐 시선.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그럼에도 나는 단숨에 알아 보았다. 할머니는 알아뵙지 못했는데. 그도 나를 보았는지, 알아보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알아채기 전에 꿈에서 깼다.

두 사람 모두 내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인물. 최근에는 할머니 생각이 부쩍 늘었다. 어느새 아흔을 훌쩍 넘기셨는데, 빨리 가서 뵈어야 하는데. 문제의 "그"는 계속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불현듯 생각이 났다.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리워지기도,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보지 못할 것이다.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가족(과 한때 최소한 가족만큼, 아니 가족보다 훨씬, 친밀했던, 일종의 유사가족)이 나오는 이 꿈에서 모종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걱정스런 눈빛이 가득해서가 아닌, 그와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눈빛이 걱정스러우면 차라리 좋겠다. 눈빛이 아예 사라지거나, 아니면 더 이상 나를 향하지 않을 것, 그것이야말로 더 걱정되고 또 걱정할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래 전 두고 온, 너무 오래 비워둔 내 자리, 지나온 시간,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한 환기.

오늘도 온종일

오늘도 온종일 나는 널 생각하느라 
어젯밤 꼬박 네 꿈을 꾸고도 모자라  

어느 책을 봐도 행간과 활자 틈에서
네가 얼굴을 내밀어 내게 눈짓하고

어느 음악을 들어도 선율을 타고서
날 부르는 네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어느 영화를 봐도 장면과 장면 사이
네가 나와서 활짝 웃으며 날 부르고 

어느 거리를 걸어도 골목 어디선가
네가 문득 나타나 안아줄 것만 같아 

세상은 그렇게 온통 너로 가득차서
어서 네게 달려가 안기라 재촉하네



오늘도 온종일 나는 널 생각하느라
해가 지고 밤이 오는 줄도 모른 채 

하루를 꼬박 널 생각하고도 모자라
여전히 네게 가서 안기고픈 생각뿐 
 
너로 가득하던 세상도 어둠에 잠겨 
이제는 너를 비워내고 잠에 드는데

나는 밤의 텅빈 자리를 너로 채우며
꿈속에서 널 다시 맞을 준비를 하네

오늘밤도 나는 너를 꿈꾸며 잠드네
어젯밤 꼬박 네 꿈을 꾸고도 모자라 

오늘도 온종일 널 꿈꾸고도 모자라
세상을 너로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Promises Like Pie-Crust - Christina Rossetti

Promises Like Pie-Crust - Christina Rossetti (d'après Carla Bruni)
 
Promise me no promises,
So will I not promise you;
Keep we both our liberties,
Never false and never true;
Let us hold the die uncast,
Free to come as free to go:
For I cannot know your past,
And of mine what can you know?

You, so warm, may once have been
Warmer towards another one; 
I, so cold, may once have seen
Sunlight, once have felt the Sun; 
Who shall show if it was
Thus indeed in time of old?
Fades the image from the glass
And the fortune is not told.

If you promised, you might grieve
For lost liberty again;
If I promised, I believe
I should fret to break the chain.
Let us be the friends we were,
Nothing more but nothing less;
Many thrive on frugal fare 
Who would perish of excess.

파이껍질 같은 약속 - 크리스티나 로제티

내게 아무런 약속도 하지 말아요
나도 아무 약속도 하지 않을게요
우리 서로의 자유를 지켜나가요
거짓도 아닌 진실도 아닌 자유를 
주사위를 던지지 않은 채로 두고
가고프면 가고 오고프면 오게요
나는 당신의 과거를 모르니까요
당신이 내 과거에 대해 모르듯이 

그처럼 따뜻한 당신, 예전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따뜻했겠죠
이처럼 차가운 나도 언젠가 한땐
햇빛을 보고 해를 느꼈을 거고요 
예전에 정말로 그랬는지 아닌지
그 누가 우리에게 알려주겠어요?
거울 속의 이미지는 희미해지고
그 누구도 운명을 말해주진 않죠

만약에라도 당신이 약속을 한다면
곧 잃어버린 자유를 그리워하겠죠
나도 만약에 약속을 한다면 아마도
구속에서 벗어나려 안달할 거고요
우리 예전의 친구 사이로 돌아가요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작은 대가를 치르고 이룬 것들은
지나친 결과로 끝을 맺곤 하니까요

이별가 혹은 <앵콜요청금지> (브로콜리 너마저)에의 헌사

이제 노래는 끝났어요
사실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나 있었잖아요
그대나 나나 알잖아요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노래는 끝나 있었음을
끝만을 반복하던 끝에
다만 이제서야 비로소
끝나기를 멈추었을 뿐

되돌임표 하나를 찍어
다시 처음으로 돌리면
새로운 시작이 끝나고
새로운 끝이 시작되면
다시 시작할 수밖에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나버린 우리의 노래
끊임없이 시작과 끝을
반복해도 끝나지 않을
되돌임표 우리의 노래

난 널 원해


Librement inpiré de
Je te veux (Eric Satie) et I Want You (Bob Dylan)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하지
널 좋아하면 안 된다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오랜동안 혼자이다 지쳐서
잠시 흔들렸을 뿐이라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지
나도 네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야
그저 널 원할 뿐이야

난 널 원해
난 널 원해
오, 난 널 오직 원해

누군가는 나무라듯 말하지
반드시 너여서는 아니라고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고
오래 혼자 지내다 지칠 때
누군가 다가오면 그게 누구든
맘이 잠시 흔들릴 수 있다고
그치만 누구라도 좋은 건 아니야
난 너만을 원할 뿐이야

난 널 원해
난 널 원해
오, 난 오직 널 원해

너도 내게 타이르듯 말하지
꼭 너라서 그런 건 아니라고
혹시 너이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내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그치만 난 지금 널 원하는 걸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듯
누군가를 간절히 원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널 원하듯

난 널 원해
난 널 원해
오, 난 널 지금 원해

나 또한 스스로에게 말하지
꼭 너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네가 아니면 안될 이유는 없다고
오히려 너이면 안될 이유가 많다고
너를 향한 지금의 간절한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라고
그치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너인 걸
오직 너만을 간절히

난 널 원해
난 널 원해
오, 난 지금 널 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