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8일 목요일

Fair Playing "Fairest of the Seasons"





"영정 사진에 잘 어울리는 얼굴". 예전에 김승희 시인이 요절한 어느 여류 시인의 장례식에 다녀와서 한 말이다. 한창 나이였던 고인의 죽음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그런 만큼 촬영 당시에는 사진사도 모델도 장차 그럴 용도로 쓰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찍은 사진임이 분명한데도, 까만 뿔테 안경, 그 뒤로 반짝이는 커다란 눈, 창백한 안색 등등 모델이 워낙 우수에 찬 얼굴을 가져서인지 그만 장례식장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사진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니코의 Chelsea Girl 앨범의 첫 곡 "Fairest Of The Seasons"를 들을 때면, 노래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목소리가 장송곡이나 진혼곡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전까지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앨범에서는 니코가 나오면 다음 트랙으로 건너뛰곤 했다. 모름지기 벨벳의 노래는 무엇보다 루 리드가 그 퇴폐적이고 발칙한 노래를, 그 청초하고 담백하며 냉소적이고 체념한 듯한 담긴 목소리로 불러야 하거늘. 그소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전적으로 니코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중저음에 중성적인 목소리가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Femme fatale" 같은 경우는 니코가 아닌 다른 보컬을 상상하기 힘든 것이 사실. 그런데 딕션이 이를 반감시킨다고 생각했다. 노래 처음부터 끝까지 음색 변화 없이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대신, 가사 전달에 있어서는 노랫말마다 음절 하나 하나를 분절하는 부름새가 벨벳의 정신과 너무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All Tomorrow's Parties" 를 to-mo-row-z-par-tee-z 로, 거기에서 또 마지막 z는 길게 늘여서 부르는 식. 뜻도 모르고 그저 앵무새처럼 가사를 외워서 단어 단위도 아니고 음절 단위로 하나 하나, 또박 또박 따라 부르는 품에서, 동요대회에 출전한 아동이 연상되곤 했던 것이다. 의 노래가 무심한 듯해도 진심이 담겨있는 느낌이라면, 니코는 온갖 진심과 정성을 들이는 것은 알겠는데 모종의 아쉬움을 계속 남기곤 했던 것이다. 악센트를 감추려는 의도 같기도 하고, 아니면 유창하기는 해도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노래를 하느라, 그 사실을 매순간 스스로 자각하며, 단어 하나 하나, 음절 하나 하나마다 각성하고 긴장한 상태로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외국어와 불화하며 10년 이상을 살아온 자의 지나친 투사일까. 

그런데 "Fairest of the Seasons", 즉 "가장 찬란한 계절", 그리고 저 노래가 실린 니코의 독집 앨범, Chelsea Girl , 가수로서, 나아가 뮤지션으로서의 그녀에 대한 회의적 평가를 전면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앨범에서 니코는 루 리드, 존 케일, 밥 딜런 등 거물들에게 받은 곡들을 소화하는데, 첫 번째 곡인 이 곡이 단연 압권. 과장하거나 과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슬픔을 애써 억누르거나 감추지도 않고, 담담하게 드러내는 낮은 목소리가 돋보인다. 기타와 현악 위주의 편곡에도 잘 어울린다. 여기에서도 "seasons"를 sea-son-z 로, 또 z는 길게 늘여서 부르는 건 여전하지만, 그것도 도드라지거나 거슬리기보다는 그녀만의 고유하고 개성적인 스타일로 받아들여진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구스 반 산트의 영화 Restless 에서였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뒤 우울증세를 보이며 연고없는 이들의 장례식장 다니는 게 취미인 소년과 시한부 인생인 소녀의 따라서 시한부인 사랑을 그린 영화. 문제의 노래는 영화 마지막 소녀의 장례식 시퀀스에 나온다. 소녀의 행복했던 시간에 대한 소년의 플래쉬백, 그리고 그 시간을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짓는 소년을 배경으로. 거기에 니코의 목소리가 현악 위주의 편곡에 어우러지며 "언제 떠나느냐고 묻거든 가장 찬란한 계절에 떠나리"라 읊조리는데, 거기에는 죽음이라는 비극적 상황 앞에서 바로 그 소년과 같은 미소를 짓게 하는 힘이 있다. 루 리드식의 냉소적이며 자못 패배주의적인 무심함과는 다른, 따뜻함이 느껴지는 담담함이랄까.

한동안 잊고 있던 이 노래를 웨스 앤더슨 헌정 음반인 I Saved Latin 에서 다시 만났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 쓰인, 고로 웨스 앤더슨의 음악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그 자체로 전설들인 곡들을 이 시대 인디밴드들이 커버해서 만든 음반. 벨벳(내가 좋아하는 "Stephanie Says")도 있고 데이빗 보위도 있고 또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Temps de l'amour" 도 있다. "Fairest of the Seasons"는 여기에서는 인디밴드 Trespasser's William 가 불렀다. 단순한데도 몽환적인 기타 반주로의 편곡도 좋고, 보컬은 니코보다 실력이 단연 월등하다. 그러면서도 니코가 연출하던 담담한 목소리를 또 다른 방식으로 살렸다. 떠나야 한다면 찬란한 계절에, 그리고 떠날 때는, 당당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대도, 담담하게,라 전하던 바로 그 목소리.

2016년 12월 1일 목요일

카프카의 "계단"생각

Comment, dans cette vie brève, hâtive, qu'accompagne sans cesse un bourdonnement impatient, descendre un escalier ? C’est impossible ! Le temps qui t'est mesuré est si court... qu'en perdant une seule seconde, tu as déjà perdu ta vie entière, elle n'est pas plus longue, elle ne dure justement que le que tu perds ! t'es-tu ainsi engagé dans un chemin, persévère à tout prix, tu ne peux qu'y gagner, tu ne cours aucun risque ! Peut-être qu'au bout t'attend la catastrophe, mais si dès les premiers pas tu avais fait demi-tour et si tu avais redescendu l'escalier, tu aurais failli dès le début, c'est plus que probable, c'est même certain. Ainsi ne trouves-tu rien derrière ces portes, rien t'est perdu, élance-toi vers d'autres escaliers ! Tant que tu cesseras de monter, les marches ne cesseront pas : sous tes pieds qui montent, elles se multiplieront à l'infini. 
뭐라고? 계단을 내려가겠다고? 그렇잖아도 짧고 서두르면서 또 못참고 징징대는 것이 인생인데? 그건 불가능해! 네게 주어진 시간은 짧아. 일분 일초라도 잃으면 그건 인생 전부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야. 한평생이라 한들 네가 잃은 그 순간보다 더 길다고 할 것도 없어. 그러니까 한번 가기로 한 길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계속 가야 해. 잃을 것은 없어. 위험할 것도 없고. 어쩌면 길의 끝에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만약 첫걸음부터 되돌아갔거나 계단을 내려갔더라면 넌 아마도 시작부터 이미 실패했을 거야. 아마도가 아니라 확실히. 문 뒤에는 아무 것도 없어. 네가 잃은 건 없어. 다른 계단을 찾아 걸음을 디뎌 봐.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면 계단은 계속해서 나올 거야. 네가 계속해서 걷는다면 계단은 끝없이 펼쳐질 거야. 
- Franz Kafka, "Protecteurs" in La muraille de Chine Gallimard, 1950, p. 173. Citation tirée de Tiphaine Rivière, Carnets de thésard, Seuil, 2015

2016년 11월 25일 금요일

안부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일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잘 지내냐"고 묻고  "잘 못 지낸다"고 답하는 것이 전부.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인사라는 걸 알면서 왜 늘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걸까요? 심지어 답이 어떻게 나올지까지 알면서 말이지요. 차라리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는, 그러니까 날씨에 관한 언급 수준의, 알맹이 없는 언사였다면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을 테지요.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만큼 핵심을, 정곡을, 폐부를 찌르는 질문이 또 있을까요?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애써 덮어두려 했던 나의 현재가 있는 그대로, 나의 삶이 가장 헐벗은 상태로 환기되기 때문입니다. 언제쯤이면 의례적으로라도 "잘 지낸다"고 답할 날이 올까요.
... 라고, 2011년 여름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다 나는 적었다. 이제사 보니 그때 주고받던 문답이 저 유명한 "오겡끼데스까/와따시와 겡끼데스"의 실사판이었던가? 영화만큼의 애절함은 물론 없었지만 우리는 제법 간절했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나는 어서 그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이 종료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잘 지낸다는 답까지는 힘들어도 잘 지내냐는 질문만큼은 부담없이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게 되기를. 그랬던 것이 어느새부턴가 우리는 인사는 고사하고 그 어느 형태의 소식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희망의 근거보다는 핑계의 사유로 삼게 된지 오래인 지금. 문득, 부른지 오래되어 하마터면 잊을 뻔했던 그 이름을 불러본다. 그리고 물어본다. 잘 지내느냐고. 

2016년 7월 25일 월요일

의식 흐름의 기록

혹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관한 시론>에 대한 모방의 시도. 결과는 물론 모방의 대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나오리라. <마장동>. <한양도 성>. <공원을 읽다>. 현재 바로 눈앞에 들어오는 한글책들. 이런 책들이 눈앞에 두고 하필이면 또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도서관에서 그 책들과는 전혀 무관한, 무척이나 프랑코프랑스적인 논문을 가지고 전전긍긍하는 상황. 10년째. 이제 조금 있으면 정말 10년을 꼭 채우게 된다. 이곳은 ㅅ 언니가 다녔고 또 논문 심사까지 마친 곳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7년 전. 그리고 그녀는 나보다 7살 위이니, 당시 그녀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그녀가 힘든 여름을 보낸 끝에 가을에 논문을 제출하고 겨울에 심사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녀가 그 여름을 얼마나 치열하게 보냈는지도. 역사의 반복. 그런데 역사는 반복되는가? 푸앵카레에게서의 역사성의 의미에 대해 적다가 만 참이다. 그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사실을 구분한다. 반복되는 사실이 있어 그 사실이 축적되어 자료/소여가 되어야 하고, 그 가운데에서 항상적인 패턴을 발견해야 그로부터 법칙을 수립할 수 있고, 그로부터 예측을 이끌어내는 것이 과학이라면, 역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잘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 않는가? 그러나 반복이라고 꼭 동일한 것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 우선하고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차이라고 들뢰즈는 설파하지 않았는가? 들뢰즈에 대한 오독/모독. 결국 들뢰즈는 제쳐두기로 했다. 대신에 푸코를. 그렇지만 푸코 독해 역시 오독/모독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슈발레나 앙젤 등의 전례를 기억하자. 이들은 과학철학/과학사에서 출발, 각각 양자역학의 역사와 철학, 언어분석철학 및 인지과학의 철학에서 착실한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언젠가부터 푸코의 독자가 되었다. 이에 대해 앙젤이 <에른느> 시리즈의 푸코 편에 실은 글에서 말하길, 70년대에 보낸 학부 시절부터 충실히 푸코를 따라왔다고. 뱅센느에서 들뢰즈의 강의를,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푸코의 강의를 듣느라 주중 내내 바빴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푸코의 강의를 들으려면 두세 시간 전부터 가서 줄을 서야 했다니까. 그러다가 학업을 마친 후 전임강사 시절, 푸코를 초청하여 직접 만나게 되었는데, "예전에 당신 수업을 열심히 들었는데 지금은 논리학자가 되었다"고 하니 푸코가 웃더라고. 앙젤보다는 조금 세대가 앞서지만, 앙젤이 속한 프랑스의 소수파 분석철학 진영의 수장, 자크 부브레스도 최근에 푸코에 관한, 약간 안티푸코 성격을 지닌 저서인 Nietzsche contre Foucault 를 출간했는데, 그 역시 초창기부터 꾸준한 독자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다른 일례로 영미권이지만 이 분야의 정통인 해킹은 또 어떤가. 그의 통계학의 역사나 정신분석학 역사 연구는 푸코의 고고학 방법론에 영감을 받은 바 크다 (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2003-4년 경 푸코 세미나를 열었었다. 그리고 앙젤도 이번 학기에 재직중인 사회고등과학원에서 푸코 세미나를 열었다. 나는 둘 다 가지 않았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독자...라기엔 무척 편파적이요 파편적으로 푸코를 읽긴 하지만, 어쨌든 남몰래 자칭 푸카디엔느가 되어 논문에서 어떻게든 써먹을 요량에 이르게 된 계기는 "고전시대" 때문이었다. 인문학/인간과학의 고고학. 고전시대 광기의 역사. 소위 초기의 인식론자 푸코. 그래서 나는 "지식-권력"이나 생권력 등등으로 환원되는 소위 중기나 <성의 역사> 이후의 후기는 전혀 모른다. 파레지아, 자기 통치, 자기에의 염려 등등의 개념을 양산한 70년대-80년대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연도 전혀 모른다 (계속 "소위"라는 말을 붙이는 까닭은 한 사람의 학문적 인생을 시기별로 구분하는 일은 늘 한계를 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코의 경우 단순한 편리상의 이유나 또 그만큼의 한계를 넘어 그의 사상의 진화를 잘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년 전, 푸코랑 전혀 무관한 한 수학사 세미나에서, 17세기 데카르트 혹은 라이프니츠를 주제로 발표한 한 미국 학자가 그랬다. "고전시대라는 말을 쓰고 싶어요. 푸코의 나라이니까요." 한편 게리 거팅은 A Short Introduction to Foucault 에서 푸코를 소개하는 서너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푸코로 너무 나가 버렸다. 더 길게 잇지 않는 것은 원래의 논의로 돌아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어 쓸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재활이다. 논리력과 집중력 재활 훈련. 원래의 논의로 돌아가서 그 논의를 이어가는 연습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의 논의가 무엇이었더라? 역사. 역사의 반복.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연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의 역사는 어떠한가? 과학 자체는 우연의 지배를 받지 않는데 그것의 역사는 역사이기 때문에 우연의 지배를 받는다 ("과학 자체가 우연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말도 기실은 이미 푸앵카레 시대에 수정되는 중이었다. 우연의 법칙--오늘날 용어로는 통계학 법칙이 물리학에서도 중요한 방법으로 쓰이기 시작하고 또 그 자체 엄밀하고 독립적이고 고유한 방법 중 하나로 인정돼가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푸앵카레는 역시 이 부문에서도 양가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모든 종류의 "신문물"에 대해 그는 참으로 일관적으로 양가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를테면 왜 열역학은 2개의 근본 법칙을 바탕으로 정립되었는가? 왜 2개이고 왜 하필 그것들인지를 연역적으로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푸앵카레는 수립과정을 카르노에서 마이어, 줄, 클라우지우스, 톰슨 등등이 2개 법칙을 어떻게 정립했고 그로부터 어떻게 열역학의 이론들이 구축되었는지 역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열역학 강의> 서문에서 말한다...

2016년 7월 20일 수요일

고다르, <언어와의 작별>



프롤로그/요약

이야기는 단순하다
(결혼한) 여자와 (혼자인) 남자가 만난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다투고, 퍼부어댄다
한 마리 개가 도시와 시골 사이를 방황한다
계절이 지나간다
남자와 여자가 재회한다
그들 사이에 개가 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 안에
다른 사람은 한 사람 안에
이제 그들은 셋이다
이전 남편이 등장, 모든 것을 뒤집는다
두 번째 영화가 시작된다
처음 영화와 같은
그러면서도 다른
이제 우리는 인류에서 은유로 넘어간다
영화는 개가 짖는 소리
그리고 아기가 우는 소리로 끝난다[1]

고다르의 2014년작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 이 영화는 3차원이 아니다. 다차원이다. 그리고 다체계다. 다세계라 해도 좋겠다. 각 차원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어느새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의 고다르 (얼마 전 자크 리베트의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럼 이제 남은 누벨바그 감독은 고다르 뿐인가” 했는데, 그 말을 하니 업계 종사자가 즉시, “바르다도 있다”고. 바르다 역시 최근까지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여 귀감이 된 바 있는데, 그녀 역시 최근에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듯 예전만은 못하다는 것이 또다른 업계 종사자의 전언). 보통 그 나이라면 단지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직접 사용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영국여인과 공작>에서 당시에는 이미 흔했던 컴퓨터그래픽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또 어색해 했던 로메르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고다르의 경우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에 관해서는 판단 기준을 달리 하여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한다 : 그저 얼리어답터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데에 그쳤더라면 고다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3차원 기술의 영화적 예술적 가능성을 시험하는 장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이 기술에 존재이유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예전에 나는, 그것도 이제는 한참 된 일인데, 3차원 기술이 영화의 예술적 혹은 기술적 측면에서 진보를 가져왔는지의 여부에 무척 회의적이었다가 그 회의론을 조금이나마 거두게 된 계기로서 스콜세지의 2011년작 <위고 까브레> 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3차원 회의론자다. 그 이후 삼년이라는 기간동안 쏟아져 나온 3차원 영화들을 일일이 챙겨보진 않았지만 기억에 남은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면 말 다했다.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래비티>. 그래도 어쨌든 기본적으로 원본이 흑백인 영화에 색을 입힌 판본을 볼 때면 원본에 익숙해서인지도 모르겠으나 채색이라기보단 퇴색이요 또 퇴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꼭 그런 느낌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길고 긴 설명이 필요하겠다. 이 입장이 이치에 어긋난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은 가시광선 대의 무지개색으로, 또 3차원 공간으로 표상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색을 가질수록, 3차원일수록 실재에 가까워져 본연의 목적 달성에 가까운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추론은 물론 사실주의/현실주의 관점에 입각한 것이다. 즉 영화가 현실 혹은 실재에 대한 충실한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이라 보는 입장에서 전개한 논의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실성과 현실성과 핍진성 등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예술에서 참으로 복잡한 문제인데 영화에서는 더더욱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가 “단지” 시각 예술이 아니라 문학 장르, 특히 서사 예술의 계보에도 속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사실에 대한 충실성을 논할 때 극영화인 경우에도 플롯이나 인물의 심리, 나아가 역사적 고증을 통과했는지의 여부 같은 것들이 고려되는 까닭, 할리우드에서 기술 뿐 아니라 각본에도 못잖게 투자하는 까닭을 생각해 보라. 그래서 나는 말하자면 형식과 내용을 엄격히 이분하고 전자에 우월성과 우선성을 부여하는 태도, 형식(중심)주의와 기술(만능)주의는 영화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내용이란 것이 줄거리나 그 유명한 “작가의 의도”로 환원되지 않는 한, 형식과 내용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예술의 가능 조건인 것이다. 특히 영화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데 칼라나 3차원 등 영화 고유의 기술들은 실재의 재현이라는 기능과 목적과는 별개로, 아니 어쩜 그에 앞서서, 차라리 지각 현상학의 차원에서 흥미로운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 면이 있다. “지각 현상학의 차원”? 말해놓고도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하면 사실 자신이 없는데. 대강 심미적/감성적 esthétique 측면보다 더 원초적이고 지각적인, 미학보다는 인식론, 인지과학의 입장에서 접근해 보자는 말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우리는 미학/감성학의 정체성, 예술(철)학과 미학의 관계 등에 관한 오랜 논쟁을 피할 수 없게 되는데 일단은 이 정도에서 멈추도록 하자. 내가 여기에서 묻고 싶은 바는 이것이다. 언제 우리는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을 실제라고, 실제와 유사하다고 느끼는가? “실감난다”라는 말의 의미는? 사실 “가상현실” 게임, 혹은 아이맥스 영화가 촉발하는 전혀 다른, 이른바 “숭고”에 가까운, 감성적 체험을 떠올려 보면, 3차원 영화가 주는 임팩트는 무척 약하고 덜 직접적인 편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 역시 상대적이다. 처음에 뤼미에르 형제가 역으로 진입하는 기차를 담은 영상을 스크린에 투사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기차가 들어온다고 느끼고 혼비백산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 그런가? 인풋은 같다. 즉 영상이 시신경을 자극하고 또 뇌로 전달되기까지, 전달의 내용도 같고 과정은 같다. 그러나 뇌에서 내리는 해석이 다르고 이것이 전혀 다른 지각 경험을, 즉 아웃풋을 선사하는 것이다. 지각은 기본적으로 해석의존적이다. 그리고 한 시대가 제공하고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기술적이고 문화적이고 사회적 등등의 맥락, 그리고 감상자 개인의 해석적 입장과 관점에 의존한다.

칼라보다는 흑백을, 3차원보다는 2차원을 선호하는 고전적이고 보수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옹호하다 보니 두서도 없고 길어졌다. 주장이 무리하면 논증도 그리 되는 법. 퇴색이니 퇴행 운운했던 것은 그저 단순히 인상이고 이에서 나아가 하나의 입장으로 세울 생각은 애초에 없었는데. 그리고 진짜 그런 취향인가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어떤 칼라 영화들, 이를테면 루이스 브뤼넬의 경우, 보색 대비나 강렬한 색깔이 주는 시각적 자극에 상당한 쾌감을 느끼곤 하지 않는가. 바로 그런 이유에서 핏빛이 선연한 뱀파이어 영화들도 좋아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다. 고다르는 이 기술에 대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3차원 카메라는 초현실주의적(surréaliste) 장치에 가깝다. 아니 차라리 비현실주의(irréaliste?)라고도 하겠다. 위에서 <그래비티>이야기를 했는데 <그래비티>의 3차원 기술 사용은 “성공적”이라기보다는 아주 “저스트”, 즉 “적절”했다. 무중력 공간에서 손에서 놓친 나사가 “떨어지는” 대신에 “날아가는” 장면이라든지. 즉 적재적소에, 딱 적당한 정도로만. 여기에서 “저스트”란 “미니말”에 가깝다. 연출 자체도 무척 미니말했고. 그것이 강점이었고. <언어에의 작별>의 경우 역시 미니말하다. 그러나 기가 막히다. 이를테면 이런 식. 여자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무척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고정샷. 고다르는 여기에 3차원 효과를 입히는데 어떻게 입히는고 하니 앉은 다리를 잡아 늘인다. 그래서 여자의 몸은 기묘하고 우스꽝스레 변형된다. 그리하여 르네상스 회화에서 원근법의 도입 이후 사진, 영화에 이르기까지 명맥을 이어왔던 재현의 이상은 사정없이 무너진다… 아직까지 유효하기라도 했다면! 현실을 수동적으로 재현하는 대신에 그것을 왜곡하고 비틀어서 현실 이상의, 아니 현실과 무관한, 전혀 다른 차원을 고다르는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영상보다는 어쩌면 음악. 아니 차라리 음성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언어와의 작별>에서 음향은 인간의 육성과 음악과 자연적 인공적 음향들이 한 데 어울어져 영상만큼이나 중심적인 질료 혹은 제재(題材)로서 기능한다. 인물들은 마주 보고 대화하는 법이 거의 없다. 허공을 바라보거나 휴대전화나 디븨디를 튼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그나마 있는 대사는 이전 많은 고다르 영화에서 그랬듯 부조리극을 연상시킨다. 때로는 연극적(theatrical)이고 때로는 시적이거나 잠언적이되 그 어느 순간에도 극적(dramatic)이지 않다. 그래서 차라리 대화는 그 내용보다는 그 내용을 전하는 육성으로 남는다. 책을 읽거나 읊조리는 목소리.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그야말로 육성(肉聲), 몸을 가진, 몸의 소리들이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물소리, 발자국 소리에서부터, 무엇보다, 방귀가 나오거나 대변이 배출되면서 나는, 말하자면 배설음(排泄音)들. 

이에 더해 음악은 “배경”을 넘어 전면으로 드러나 그 자체로 고유하며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기존의 음악이 사용되는 대신 절대로 그대로 차용되지 않고 고다르만의 방식으로 전유되고, 어떤 의미에서 변주된다. 이번에는 특히 베토벤의 7번 교향곡 2악장 알레그레토의 주부 선율이 그렇게 쓰였다. 아마도 순수주의 음악애호가들은 불경죄나 배신을 부르짖을 테나 이 역시 고다르가 예전부터 즐겨쓰던 음악 몽타주 기법이다. 기존의 이미지를 가져와서 자유자재로 콜라주하고 몽타주하는, 고다르의 트레이드 마크이며 <영화의 역사(들)>에서 정점을 이룬, 바로 그 방식으로. 그러나 이렇게 왜곡되고 뒤틀린 음악은 영화 안에서 그 자체로 고유한 기능을 하여 그리하여 영상에 하나의 차원을 더한다. 

그리고 고다르 본인의 육성. 그는 초기작들에서부터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내레이션이나 더빙으로 "목소리 출연"을 하곤 했다. 예전에는 이 점에서만큼은 동의하기 힘들었다. 그다지 미성이 아닌데다 특히 초반에는 스위스 악센트까지 가미되어 더더욱.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그의 목소리에 반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세월(과 담배, 그것도 시가)의 영향일까, 다소 가벼운 편이었던 목소리 톤에 무게가 실리고 그에 따라 특유의 냉소적이고 신랄한 스타일이 많이 중화되어 결과적으로 이 노장 감독은 매우 매력적으로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고다르 본인보다 그의 페르소나인 듯한 중년 배우가 주로 내레이션을 맡았는데, 그래도 고다르 본인의 목소리가 간간이, 어쩌면 간신히 들릴 때마다 나는 까닭모를 애수와 경애심에 젖었던 것이다.

영화가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아기 우는 소리로 끝을 맺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개는 영화 내내 줄기차게 등장하는 고다르 본인의 애견. 이 애견이 자녀 없이 동반자 안느-마리 멜빌과 단둘이 노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2세 혹은 3세의 대리물임을 짐작키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아기 우는 소리는 직접적 환유인가? 그야말로 언어와의 작별이요, 역사와 문명 이전, 그러니까 자연으로의 회귀인 것인가? 그보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졌다. “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 프롤로그에 대응하는 에필로그 격의 주석. 이 영화를 본 것이 벌써 2년 전의 일이고 그 즈음에 시작한 글인데 완성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좀 묵혀두었다가 쓴다는 것이 이젠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세 번이나 봤는데도. 볼 때마다 감동으로 전율했는데도. 기억력의 감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비단 영화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데.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에 다른 종류의 매체, 특히 책에 대한 감응력이 상대적으로 후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지경인데. 그러면 최소한, 말하자면 “영화적 기억력”, 영화 감상에 요구되는 고유한 기억력과 이해력은 좀 계발이 됐을 성도 싶은데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불쑥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으니. 그럴 때마다 단편적으로나마 적어두곤 하던 중, 최근, 노트북 내장 하드를 통째로 날릴 뻔한 소동을 겪은 후, 차라리 이런 방식으로나마 공개하는 편이 자료를 보존하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임을 알았다. 그래서 올리기로. 계속해서, 언제까지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한이 있더라도.  
  • 사진과 요약문은 <언어에의 작별> 보도자료에서 따왔다. 고다르가 직접 쓴 손글씨. 그는 <미치광이 피에로>를 비롯한 몇몇 전작들에서도 자신의 유려한 필체를 자랑한 바 있는데, 본문에서 언급한 목소리와는 달리 젊었을 때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세월도 많이 지났고 손글씨를 쓰기도 보기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이라설까. 놀랍고 기뻤다.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수녀원에 계신 당신께 보내는 세속의 편지

- ㄴ 언니에게

무심히 보낸 짧은 메세지가 이렇게 세심하게 쓰인 장문의 편지로 돌아오다니. 제가 있는 지금의 여기와 차원이 다른 우주 어딘가로부터 날아온 편지 같아요. 수녀원이라는 공간, 그곳에서 당신이 지내신 일주일 남짓한, 아니 이제 이주가 넘어가는 시간, 그 세계와 이 속세는 질서도 논리도 이렇게 다르군요. 

논문을 쓰기 위해선 오롯이 혼자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당신. 재미있는 것이 마침 저는 그와 전혀 반대인 깨달음을 얻고 그에 따라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이었거든요. 너무도 오랜동안 혼자서 살고 쓰고 사유해 왔고, 이것이야말로 지체 및 퇴보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거죠. 사실 이 깨달음도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에요.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물체는 자기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이 근대역학의 근간이 된 관성원리. 이 원리는 제가 논문에서도 조금 다루는데 볼 때마다 제 경우에 비춰보곤 했죠 (실제로 데카르트와 갈릴레오에 의해 정립된 이 원리에서 인간학과 윤리의 기본 원리를 유추한 경우가 제법 있었죠. 스피노자, 루소 등. 덧붙이면 속도가 변치 않은 상태로 제 운동을 지속하는 물체는 자신의 운동 상태를 말하자면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은 멈춰있고 다른 물체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인지한다는 것이 갈릴레오 상대성원리). 너무도 오래 관성 운동을 지속해 오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웬만한 외부 자극에는 꿈쩍도 않게 되었던 것인데. 그러다 얼마 전,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새삼스런 자각에, 바닥에 남은 마지막 용기와 의지를 끌어모아 외부 세계를 향한 창을 다시 열게 된 것이죠. 

십수 년만에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안경을 맞춰서 쓰기 시작했어요. 써보니 그 동안 얼마나 흐릿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또 살아왔는지 알겠더라고요. 작년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하면서 파리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는데, 이번에는 그 이상이에요. 신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그야말로 계몽, 즉 미몽의 상태에서 깨어난, 나아가 새로 태어난 기분.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실로 너무나도 오래만에, 콜로크 하나에 참석했어요. "사상사"가 주제였는데 푸코에 대한 언급이 많았죠. 딱히 푸코를 전공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가 재직했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열린 만큼, 그리고 그가 해당 혹은 유사 분야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니만큼. 덕분에 지적인 자극과 자신감을 동시에 얻었어요. 푸코의 고고학을 방법론적으로 차용해서 고전시대 우주론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제 논문 1부의 목표거든요. 꼭 푸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만 푸카디앙임을 천명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내 주장과 주관이 확실하고 그 안에 나만의 고유한 해석을 녹여내면 그것만으로도 의의를 찾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 (푸코나 사상사와는 무관하게 얻은 것이지만 사후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면 푸코랑은 전혀 무관하지는 않겠네요. 다 그가 다룬 주제들) : 순수한 앎에의 의지, 지적 욕망보다, 일정한 지적 수준을 인정받고 싶은, 그야말로 인정욕, 그리하여 결국에는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고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말하자면 권력에의 의지가 앞서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이것이 그동안 내 논문에, 나아가 삶에서 얼마나 큰 장애물로 작용해 왔는가.

근처에 간 김에 오랜 만에 푸앵카레 연구원 도서관에, 그리고 저녁에는 주느비에브 도서관에 갔는데, 주느비에브에선 아,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주느비에브는 제가 이곳에 온 직후 자주 드나들었던 도서관. 당시 수업이 주로 근처 쥐시유에서 있었고, 또 당시만 해도 저녁 늦게까지 개관하는 도서관이 퐁피두 말고는 유일했던 까닭에. 처음에는 도서 대출 및 출입 시스템을 몰라 입구를 마비시킨 일도 있었고, 그밖에도 당시에는 수치심으로 죽을 듯 괴로웠지만 이제사 다시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  기억들로 가득한 곳. 높은 천장, 철제 궁륭, 넓은 열람실, 낡고 삐걱대는 책상과 의자, 청록빛 유리갓을 쓴 책상램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복제한 벽화, 모든 것이 그대로인 걸로 보였어요. 지난해 테러 이후 등록 및 재등록시 신분증을 요구하는 걸 빼면. 아, 무선인터넷이 가능해진 것도 있네요. 그리고 이는 무척 큰 변화.

그리고 무언가 일을 하나 도모했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시도를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정도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심각한 무기력증에 시달려 왔는지 짐작할 만하죠. 과감하고 무모해진 김에 지도교수에게도 메일을 보냈어요. 얼마 전 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어 불안해 하던 차였거든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답장이 왔는데 건강에 문제가 있어 답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기다리라는 내용이었어요. 순간 걱정이 많이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하고 불경하다고도 할 안도감이. 내가 잊혀지거나 아주 많이 밉보인 것은 아니구나, 그래도 희망이 없지 않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록 불행한 소식이고 가슴은 아프긴 해도 어쨌든 그로 인해 내겐 시간이 좀더 주어지게 된 셈이구나, 하는 생각도.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것이 정말로 마지막 기회겠구나, 하는 경각심이.

이제 당신이 돌아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돌아온 당신에겐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거고요. 나도 또 다른 기쁜 소식을 전하는 주인공이면 좋겠지만, 이번엔 힘들겠네요. "혹시 알아? 돌아와 보니 그 동안에 다 썼다고 할지?"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당신을 놀라게 해주고도 싶었는데. 그래도 다음에는, 조만간에는 꼭.

2016년 5월 19일 목요일

해밀토니안 상념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의 일. 한 선배의 논문심사가 끝난 후 사람들과 카페에 갔다. 아는 사이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불문학을 전공하는 한 분이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내심 반가웠다. 더구나 지금은,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18세기 여류 시인을 공부한다니, 더더욱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역시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철학을 하는 ㅌ 선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모른다고, 학부는 다른 학교에서 했다고 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나야말로 다른 학교이고 심지어 대학원도 다른데, 내가 "선배"라고 해서 그 학교 후배인 줄 안 모양인데... 이 말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그 학교 출신일 거라고 짐작한 것은 내가 먼저인데, 그래서 그분도 똑같이 짐작했나 본데, 이런 선판단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그 판단을 전달하는 것은 또 어떻고, 정치적 올바름까진 아니더라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문제의 그 학교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특권적 위치가 아니었다면 또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인가,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보니 정정할 기회를 놓쳤다.

또 그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새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학부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길래 무슨 밴드냐고 물었는데, 어디 어디 라고 답을 하는데, 아무래도 학내에서는 유명했나 본지, 말을 하면 내 쪽에서 알리라 짐작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자신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전제하에. 그런데 여기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나중에서야 계단생각으로 떠오른 답 : "그렇게 유명한 밴드는 아니었나 보네요. 다른 학교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또 다른 예. "전에는 어디에서 공부하셨나?"라는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의 질문에, 출신 대학에 관한 질문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서 "물리학과에서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때는 옆에 있던 사람이 정정 혹은 보충 답변을 해주었다.

사실 나는 내 출신 학교가 부끄럽지 않다. 그곳에서 보낸 7여 년은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시기였으며 -- 물론 이때가 20대 초반의 꽃다운 시절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와 같은 기회를 누린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가장 중요한 사상적이고 정서적 토양의 상당 부분은 그곳에서 나왔고, 그것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나의 이 "출신 성분"은, 굳이 사회적 코드가 아니더라도, 나를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뺄 필요도 없고 심지어 빠져서는 안 되는 사항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졸업 후, 특히 외지에 나와 살면서부터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의 이 전기적 사실을 밝혀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차라리 프랑스나 다른 외국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짐짓 자랑스럽게 덧붙일 때도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여자대학이라고.

처음에는 내가 나온 학교가 가부장 사회의 편견, 게다가 요새는 여성혐오 정서까지 가세, 표적이 되는 경우가 워낙 많아 이에 따라 발생할지 모를 불필요한 갈등과 불이익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인가 했는데, 꼭 그건 아닌 것 같고 (다행히 그런 문제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다. 같은 학교 출신, 그러니까 나에게는 동문이 되는 이와의 소개팅 담을 늘어놓는 경우는 더러 있었어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모종의 특권의식을 경계하는 태도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이 학벌 사회에 대한 저항의 표시인 것 같지도 않다. 그보다는, 내가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 자체(이건 내가 그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가 나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그리 많지는 않고, 더욱이 그 학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관념이 나에 대한 그릇된 인상(그 유명한 "ㅇ대 나온 여자"!)을 심지 않을까, 혹은 나 스스로가 그 인상을 재확인하는 사례로 추가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 해두자. 어느 쪽이든 나와 큰 상관은 없지만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그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정체성 확인 및 구별 짓기 전략, 그리고 너무 안일하고 상투적인 유형학적이고 분류학적 사유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류학적 사유의 경우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그러한 사유에 사용되는 범주에서의 상상력의 부족이 문제다. 이러한 나의 정서 태도는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끊임없이 국적/출신을 환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더구나 여기에서 "출신"은 곧 근본(origine)이 아닌가. 사실 국적에 대한 정보가 나에 대한 편견으로 직결되기에는 내 출신 국가라는 것이 이네들에게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차피 편견은 국적에 대한 정보 습득 이전에 이미, 그리고 히잡이나 키파 같은 종교적 상징으로 애써 가시화 수단을 쓰지 않더라도, 외양이나 이름을 통해 동양인, 게다가 여성, 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이미 결정되는 사태. 나는 그렇게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판단 기제, 그 속에서 작동하는 상징 권력의 기제가 거북한 것이다. 물론 그런 모든 부문에서 판단중지를 하고 순수히 개별자 대 개별자로 만나기란 쉽지 않거나 거의 불가능한 일. 그 개별자란 것도 결국 결코 단적으로 독립된 존재일 수 없고, 어느 종류든 집단의 구성원이거늘.

물론 그런 인상비평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나아가 상호 피상적 인식을 벗어나 나를 알리고 너를 알고 어슴푸레한 너의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편견을 교정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내가 그럴 만한 의지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된 데에 있다. 단순히 (그러잖아도 부족했던) 사교능력의 퇴화 때문만은 아니고, 그 기저에는 사실 자존감 상실이 있을진대. 스스로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자각. 겉으로 드러나는 바 이상의 심오하고 본질적인 이면, 말하자면 나의 본질--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사르트르는 그런 것 없다고 했다--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더더욱 나를 알리는 게 두려워졌단 얘기다.  

"물리학과 나왔으면 해밀토니안이랑 라그랑지안 알겠네." 이것이 물리학과 출신 불문학도가 내게 한 말이다. 덕분에 나는, 처음에 던진 미숙하고 무례하고 어찌 보면 불온한 첫 질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중에, 어느 정도나마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의도했고 심지어 의식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그분은 사소한 듯 던진 한마디로 선행을 베푼 것이다. 내가 어찌 반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고맙고 미안한 기억은 계속 남아 있다. 그래서 해밀토니안이 나오면 그분 생각이 나곤 한다.

그런데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 라그랑주는 라그랑주 방정식의 바로 그 라그랑주다. 뉴턴역학을 해석(解析)적으로 해석(解釋)한 해석역학을 정립, 고전역학을 완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인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동등한 또 하나의 해석역학 체계를 마련한 것이 해밀턴. 이들이 만든 연산자,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은 각각 운동에너지와 포텐셜에너지의 합(H=T+V)과 차이(L=T-V)으로 정의된다. 일종의 보존량. 한 역학계가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갖든지 간에 이 양은 보존된다. 고전역학계에서 해밀토니안은 계의 에너지 총량과 일치하고, 따라서 우리가 중학교 때 배웠던바, 역학적 에너지 보존 법칙과 등가가 된다.

일반역학 강의에서 배운 기억은 난다. 내가 물리학과에서 배운 것은 대개 그런 식이다.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현재 전혀 무관하지 않은 주제로 공부하는 까닭에 직간적접으로 도움이 되는 바 없지 않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파편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아 무용한 것들이 대부분. 그래서 실질적 도움보다는 오히려 주로 학부 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회한이라는 부수 효과 혹은 역효과만 양산할 뿐. 그래도, 당시 부족했던 이해를 보완하고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 인가, 과연? 어째 모든 일에서 이렇게 일관적으로 뒤늦단 말인가. 계단 이해. 계단 답변. 계단 논문. 계단 인생.

2016년 4월 4일 월요일

장미 화분 이야기를 해볼까

전에도 얘기했던 그 장미 화분 말이야. 수퍼마켓에서 파는 한 철용 싸구려였지. 원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그저 물을 가끔 주는 것 빼면 무관심으로 일관해선지 언젠가부터 줄기가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했지. 무관심하긴 해도 신경은 좀 쓰였었는지, 어느 날엔가는 안 되겠다, 안됐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가망 없는 건 잘라내고 줄기 두 개만 남겨놓고는 분갈이를 했지. 그랬더니 남은 줄기는 되살아나고 제법 잘 자라서 지난해에는 한두 송이나마 꽃도 피워내더군. 그 꽃이 지고 나서도 한참은 잘 자랐어. 잎도 별로 없고 병약해 보이긴 했어도. 그래도 잎들이 제법 고왔어. 붉은빛이 감도는 짙은 녹색. 그런데 문제는 그 잎이 달린 가지들이 밑단에서부터 고르게 뻗지 않고 위쪽 부분에만 집중돼 있었다는 거야. 아마 밑의 줄기들은 그사이에 떨어져 나갔었나 봐. 그래도 윗부분은 잘 자라고 있었으니 별문제는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줄기만 삐죽 솟은 모습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 중간을 잘라서 키를 줄이면 딱 좋겠다 싶었지. 그러던 어느 일요일. 줄기를 자르고 접붙이기 시도를 감행했지. 밑동과 줄기 부분을 잇고 막대를 덧대어 이 세 부분을 끈으로 묶어서 말이야. 그랬더니 원래 가지들은 시들해진 대신 새로운 잎이 나기 시작했어. 파릇파릇하던 잎들을 잃은 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기뻤어. 새로운 생애를 선사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마저도 오래 가진 못했어. 줄기가 마르기 시작했어. 이어 붙인 부분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거야. 봉합이 부실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화분 밑에 고인 물을 빼느라 화분을 들었다 놓느라 그 부분을 움직였던 것이 주요인이었던 것 같아. 며칠, 아니 몇 주는 고민을 한 끝에, 어느 일요일. 재수술을 시도했어. 붕대를 풀고,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이는 부위를 절단하고,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윗동과 밑동을 잇고 새로운 부목을 덧대고 다시 붕대를 붙였지. 지난번처럼. 아니, 그래도 지난 번보다는 그래도 요령이 생겨서 붕대도 제법 솜씨 있게, 좀 더 단단히 감았어. 그랬다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또 새잎이 그래도 나더라고.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사실 지난번이랑 똑같았는데, 그래도 차이가 없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였겠지. 그러던 어느 날 밤, 바람이 세차게 불었어.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접합 부위가 엇나가고 붕대 사이로 노출돼 있는 거야. 다시 자세를 잡아 주고 며칠 예후를 지켜보았어. 그리고 생각을 해보았어. 또다시 재수술을 시행한다 한들 차도가 있을까. 소수에 불과할지언정 그래도 경험이 쌓이고 요령을 터득했으니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삼세번은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잘린 줄기를 통째로 쓰레기통에 넣었어. 사실 이번에는 특별히 숙고를 거치지는 않았어. 그저 순간적으로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뿐이야. 사실 애당초 결론은 나와 있었어. 맨 처음 가지를 잘라내던 그 순간부터. 근거없 희망적 사고요, 에 모든 걸 파스칼적 도박이었던 것이지. 데, (), 지. 그 모든 숙고는 합리화와 정당화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고, 그에 따른 그 모든 시도 또한, 결론을 재확인할 순간을 지연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순간적 판단, 아니 차라리 충동이, 그 모든 것을 무화시켰어. 충동을 결단으로,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무척 쉬웠어. 쓰레기통에 담긴 줄기와 잎사귀를 보니 헛웃음이 났어. 지난 몇 주, 아니 몇 달간 쓰레기를 키운 셈이었던 거지.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옆에 나 있던 다른 줄기가 보이기 시작했어. 뿌리는 같은데 가지도 없고 그저 몸통만 남아 있어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이 줄기가 글쎄, 이웃 줄기가 몸이 잘리고 두 차례 대수술을 받고 하는 동안에,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던 거야. 뿌리로부터 공급되는 영양을 독점하게 되면서부터는 성장률이 가속되기 시작했어. 가지도 제법 뻗고 끝에는 푸른 싹도 보이고. 그리고는 마침, 마침내, 봄이 왔어.

2016년 3월 14일 월요일

Difference and Repetition

One day my love said to me I miss you 
So I said, don't miss me
Don't be cruel, he said
So I said, enjoy or endure it then

I was so cruel back then
Just as you are to me now
I know you don't mean it
Not as much as I did to him

Now I know why I did that to him
I didn't care about him at all
Not so much as you do about me 
That's why you do that to me 

We are so cruel after all
To the ones who care about us
To care about someone else
Who doesn't care at all 

If you say I love you
You'd never told, so do I
They'd rather say, I don't any more*
That's the way it is after all

I miss you, don't miss me
I love you, I don't any more*
I love you, only if you don't**
That's the way it is after all



*Or : neither do I, two meanings of "moi non plus," from Serge Gainsbourg, "Je t'aime, moi non plus"

** "L'amour est enfant de bohème/Il n'a jamais connu de loi/Si tu ne m'aimes pas je t'aime/Et si je t'aime prends garde à toi," from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in Bizet, Carmen (livret : Henri Meilhac et Ludovic Halévy)

2016년 3월 5일 토요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차이와 반복

https://www.critikat.com/actualite-cine/critique/un-jour-avec-un-jour-sans/

홍상수의 2015년작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이번에도 제목에 찬사를. 영제 "Right Now Wrong Then" 도 브라보. 프랑스에서는 "Un jour avec, un jour sans" 이란 제목으로 개봉. 직역하면 "하루는 있고 하루는 없고" 정도가 되겠는데, 이 역시 나쁘지 않다). 이 영화 만큼 "차이와 반복"을 주제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체현한 영화가 또 있었을까. 앞으로도 당분간은 또 나올 것 같지 않다. 

이쯤 하면 당장 예상되는 반론 : <라쇼몽>이 있었고, 심지어 바로 같은 감독의 <오, 수정>이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하루가, 같은 사건들이, 같은 순서로, 무한 반복되는 일종의 시간여행 소재의 (탈을 썼으나 사실은 "영원회귀" 교설의 영화적 해석이라 봐도 좋을) 장르 영화로는 Groundhog Day, 최근에는 나로서는 꽤나 재미있게 본 Edge of Tomorrow 가 있었다. 참, <엑스파일> 6시즌의 "Monday" 도 있었다. 두 부류의 영화 모두 영화적 시간성, 아니 시간성 자체(그리고 "영원회귀" 교설/신화!)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고 실험의 소재를 제공하는데, 이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그 두 범주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니면 그 중간 지점에 있거나. 그도 아니면 둘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거나. 

순수 차이와 순수 반복. 그중에서도 반복의 역할이 결정적이며 거의 초월적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아무 설명 없이 그저 반복만으로 생겨나는 차이.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 차이란 것도 너무나 미묘해서 이런 종류의 담론에서 곧잘 인용되곤 하는 카오스 이론의 이른바 "나비 효과", 즉 원인에서의 미묘한 차이가 결과상의 커다란 차이를 낳는다는 논변은 부적절하다. 원인상의 차이도 미묘하고 결과상의 차이도 미묘하다... 영화 서사를 구성하는 사건들 사이에 원인과 결과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굳이 원인과 결과를 꼽자면, 전자는 남주인공의 여주인공에 대한 태도겠고, 결과라면 헤어지고 각자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결말일 것인데. 여기에서 각 사건을 "태도"나 "결말"이라 이름 붙여도 되나 싶은 것이, 사실 각각은 그보다 훨씬 더 미세한, 심지어 미소하다(infinitésimal)고도 할, 그런 종류의 사건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1부에는 남주인공이 호텔방 안에 드러누워 "너무 예뻐. 조심해야지. 하룬데" 라며 중얼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2부에는 없고, 1부에서 화가인 여주인공의 작품에 대한 무성의하지만 그럴 듯해 보이는 견해("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뭔지 모르면서")를 밝히는데 2부에서는 좀 회의적이고 냉소적이지만 그런만큼 그냥 쉽게 내던진 건 아님을 짐작케 하는 의견("퀄리티는 좋은데 좀 상투적인 것 같아요. 작품으로 위로를 받으려 해서 그래요. 원래 위로는 상투적이어야 하잖아요" :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논변이었지만)을 제시하는 등등 차이(그런데 여기에서 에릭 로메르의 옴니버스작 <파리의 랑데부 Rendez-vous à Paris> , 특히 그 중 한 단편, "Mère et enfants 1907" 을 떠올린 건 나뿐일까? 남녀의 역할만 바꾸면 정황과 대화의 내용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여기에서는 회화 전문 출판업자의 아내이자 본인 스스로도 식견이 높은 여성이 남성인 화가에게 "아직 정착하지 않고 뭔가를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하고 말하는데 이 말을 화가는 맘에 들어한다. 이 영화는 보통 로메르의 평작으로 평가되고 나도 이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지만 이 단편만큼은 좋아한다. 특히 마레 지구 골목을 따라 걸어가며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수작을 펴는 장면을 발걸음 및 대화에 맞춰 리듬감 넘치게 담은 시퀀스 샷). 가장 결정적인 차이라면, 아무래도, 1부에서는 남주인공이 자신의 결혼 사실에 대해 의도친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솔직하지도 않았던 데에 반해, 2부에서는 자진해서 밝힌 데에 있을 것이다. 같은 사실과 서사 구성 요소라도 어느 맥락에, 그리고 어느 시점에 놓여지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그런데 바로 그러한 미묘한 차이들이 영화 전체, 그에 대한 감상에 미치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그리하여 영화는, 지방으로 내려간 영화감독이 현지 여인을 만나 수작을 걸고, 여인은 넘어오기도 하고 안 넘어오기도 하고 등등, 홍상수 영화에서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인물 구성 및 서사에서 출발했음에도, 결국, 홍상수 영화에서는 이례적으로, 웬만한 로맨틱 코미디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너무나 산뜻하고 따뜻한 결말을 맺기에 이른다. 2부 마지막. 어디부턴가 살짝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고, 뒤에서 어젯밤 헤어진 그녀가 나타나고, 둘은 수줍은 소년 소녀처럼 대화를 나누고, 그가 악수를 청하자 그녀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가면서까지 흔쾌히 답하고... 그리고는 끝인 줄 알았더니, 웬걸, 그가 다시 극장으로 들어와 그녀를 찾고, 어둠 속 객석에서 둘은 속삭인다 : "보고 싶었어요" "나도요" "이제 감독님 영화 다 볼 거에요" 그렇게 헤어지고 극장을 나온 그녀가 함박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샷은 비현실적이라기보다 차라리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이 홍상수의 세계임을 감안하면.

또 하나의 차이와 반복. 대개의 홍상수 영화가 그랬듯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음악이 전혀 나오지 않는 대신(이 역시 참으로 로메리앙한 측면), 1부의 처음과 2부 시작하기 전, 그리고 피날레로는 같은 음악이 흘러 나온다(로메르 영화에도 가끔 예외가 있었는데 <녹색 광선>이 그 중 하나였다. 처음과 끝, 그리고 중간에 잠깐 무반주 현악곡이 흘러 나온다. 로메르 자신이 작곡한). 그리하여 음악은 오페라 같은 악극에서 서곡이나 일종의 표제곡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 생각해 보니 <옥희의 영화>에서도 그랬다. 거기에서는 위풍당당 행진곡이 무척 생경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에서는 현악으로 편곡한 "봄이 오면"이다. 편곡이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봄이 오면"의 가사를 떠올려보니 제법 그럴싸하다 :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건넛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 가주" 꼭 봄바람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마음이 흔들릴 일이 없겠는가. 그 흔들림에 대처하는 자세를 영화는 두 가지 사례로 보여준 셈인데. 사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차이라고는 식별하기 힘든 디테일이 전부지만, 그 디테일의 변화가 참 많은 차이를 낳는다. 실제 삶도 그럴 것이다.

2016년 2월 23일 화요일

과학철학 및 과학사 개론서에 관해 답함

저도 무척 반가웠어요. 질문도 무척 반갑네요. 전공자로서 인정받은 일은 실로 오랜만이어서. 그것도 전도유망한 동학에게.

더구나 개론서 혹은 입문서는 제 오랜 관심사 중 하나이기도 해요. 개론서라는 것을 단지 초심자를 위해 접근성과 대중성, 나아가 상업성을 추구하는 일종의 하위장르라 볼 게 아니라 생각하거든요. 한 분야 전공하다 보면 대개는 세부전공에만 주력하느라 거시적이고 개괄적 관점을 놓치기 쉬운데, 그리고 그것이 특히 철학도에게는 때로 치명적 결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을 보완하도록, 최소한 그에 대한 주의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개괄서랄까요. 전공자라면 아무래도 자기 분야 개설서에는 비판적 시각에서 접근할 거고, 유사 혹은 근접 학문 전공자--이를테면 현대 프랑스 철학 전공자에게 과학철학이 그렇듯--라면 비판적 시각에 참신함을 더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틈만 나면 제 분야 및 유사 분야에 새로 나온 개론서 없나 확인하고 또 가능하면 수집도 하는 것이 제 취미랍니다.

그런데 철학사적으로 다룬 과학철학 및 과학사 개론서라. 의외로 어렵네요. 게다가 방법론에 참고가 될만한 것으로. 흔히 프랑스 인식론이라 하는 프랑스 과학철학을 말하는 건가요, 아님 영미권 포함한 전반? 들뢰지엔느에겐 아무래도 전자가 맞을 것 같으니 그렇게 가정하고 답을 해보면. 일단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이미 알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바, 프랑수아 샤틀레 François Châtelet 가 편집한 Histoire de la philosophie 에 4권에 실린 글이에요. 알다시피 들뢰즈가 구조주의 관련 글을 맡아 썼고 이것이 마지막 권인 현대 편에 실렸는데, 같은 책에 미셸 피샹 Michel Fichant이 인식론을 개관하는 글을 실었죠. 옛날 글이긴 한데, 책 전체의 기조나 필진 면면을 볼 때 추구하는 방향성과 맞을 것 같고, 또 글 자체도 바슐라르, 캉기옘, 까바이예스 등등 이쪽 계보에 관해 간명하게 정리한 글로는 제가 본 중 손에 꼽을 정도이기도 하고.

좀더 일반적이고 무난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닌 입문서로 저도 아직까지 즐겨 찾는 책으로는 끄세주 Que sais-je 총서의 Épistémologie 가 있어요. 이게 있고 또 같은 총서로 나온 Philosophie des sciences 가 있는데, 저는 좀더 프랑스 인식론 계보를 따르는 전자를 선호해요. 후자는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라는 책 저자로도 유명한 도미니크 르쿠르가 썼는데 좀더 스탠더드한, 영미권 과학철학까지 포괄하는 좀더 균형 잡힌 접근을 보려면 이 책이 더 나을 수도.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과학철학/사를 철학사적으로 접근하는 시도에 대해 생각을 해봤어요. 앞서 언급한 피샹은 과학사와 철학사의 접목을 시도한 모범적이면서 또 전형적 사례라 하겠는데, 이는 이분 주전공인 라이프니츠라는 인물의 과학자인 동시에 철학자인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17세기, 나아가 최소한 19세까지 철학자와 과학자 진영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생각하면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어요. 이 전통을 이어, 그리하여 역사성을 담보하는, 여기에서 역사라 해서 헤겔이나 하이데거의 사례에서 보듯  독일 철학의 어떤 관념론적 전유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아니라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정신의 흐름에 주목해 온 것이 프랑스 철학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게루, 뷔유맹 같이 걸출한 철학사가인 동시에 과학사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고. 

좀 다르지만 들뢰즈도 이 전통으로부터 멀지 않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요? <차이와 반복>의 다종다양한 참고문헌 목록에서 이미 드러나듯. 철학사가로서의 하물며 과학사가로서의 들뢰즈에 대한 평가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철학사와 과학사를 사상의 재료로 삼는 방식만큼은 모범적이었고 또 전형적이기도 했다고 볼 수도. 물론 그런 의미에서 훨씬 더 전형적이면서 모범적인 사례로는 단연코 푸코를 꼽아야겠지만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썼더니 정작 도움이 될 얘기는 없는지도. 다음에 만나면 또 얘기해요. 그런데 생각나면 또 쓸 수도. 제가 워낙 계단생각 esprit de l'escalier 에 익숙한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