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평가서 + 2월 계획서

날이 다시 추워졌다. 지난주 본가에 다녀올 때만 해도 날이 많이 풀려서 상대적으로 얇은 외투를 걸치고 기차에 탔는데, 도착 후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비가 오는 데다 바람 때문인지 쌀쌀하게 느껴지긴 했다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손이 곱아서 자판을 두드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추위는 핑계일 뿐.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단 추위 때문이겠는가. 더군다나 너는 추위를 좀처럼 타지 않는다고 떠벌이면서 주변의 감탄을 사는 일을 즐기지 않았느냐. 더구나 그 감탄에 "보기와는 다르다"는 말이 덧붙여지기라도 하면 한층 들뜨곤 하지 않았느냐. 추위는 핑계, 가공하고 가련한 핑계일 뿐이다. 이전에도 코로나면 코로나, 더위면 더위, 세상 어느 하나 핑계가 되지 않을 것이 없었고 그래서 핑계는 마를 일이 없었다.  그렇게 온갖 핑계의 변주와 향연 속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세월만 보낸 것이 벌써 얼마더냐. 그러는 사이에 방학도 다 지나가고 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방학이 말이다.

1월을 시작하면서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기필코 논문을 마무리해야 했다. 1월 중으로 적어도 한 편, 가능하면 두 편...이라지만 사실 한 편이라도 끝내면 다행인 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어쩌면 그조차도 끝내지 못할 거라는 예감까지도 진작부터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과 또한 예감대로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절반 정도는 끝낸(그보다는 끝냈다고 생각한) 면역 사유와 행성 사유 논문. 에스포지토와 라투르 두 인물의 사상과 둘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려던 것이 원래 계획이었으나, 라투르가 "행성 사유"라는 말을 직접 쓰는 것이 아니고 라투르보다는 차크라바르티와 육 휘가 라투르의 영향권에서 쓰는 말이기 때문에 좀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팬데믹이 두 사유의 연결의 필요성을 일깨웠음을 보이는 것이 관건. 조금만 집중해서 정리하고 종합하면 되거늘 그게 안 되어서 1월 첫 번째 마감을 놓치고 두 번째 마감마저도 놓치고는 오늘에 이른 것이다.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으나 일을 많이 벌인 것도 사실이다. 동료들과 이름하여 인공지능 세미나를 시작해서 인공지능 윤리나 그 밖의 이론/담론을 살피고 있다. 또 "제자"와 프랑스철학 세미나도 시작해서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읽었던 코이레 2차문헌을 읽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인문대 소식지나 잡지 기고문을 수정하는 데도 꽤 많은 공과 시간을 들였다. 거기에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논문 작성법 특강까지. 

그 와중에 1월 중순에는 1주일간 디지털인문학 겨울학교에도 참가했다. 애당초 목표대로 아마도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었던 듯한 "파이선"이 뭔지 대강 알고 실습까지 해봤다는 것으로 만족... 하기보다 이 방법을 내 필요에 맞게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이를테면 당장 번역서 색인 작업이라든지. 앱을 개발할 수도 있겠고. 그러나 네트워크 분석 등 "멀리서 읽기"라는 디지털인문학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고 인문학의 본령과 본분은 어디까지나 "촘촘하게 읽기" 즉 개념과 사상의 분석과 종합에 있다 할 것이다. 겨울학교 강사진 대부분이 이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 일을 적는다 해서 해야 할 일 또는 했어야 할 일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해야 할"일과 "했어야 할 일" 또는 "할 수 있었던 길"은 원래부터 가능태 같은 걸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 일"과 똑같이 그리고 동시에 생긴 일이다(베르그손). 오직 "한 일"만 있고 "한 일"은 "한 일"일 뿐이고 남은 것은 "할 일" 뿐. 아래에 그 일들을 적어보기로 한 것은 거의 전적으로 페이스북의 한 "친구"가 2월의 계획을 빼곡하게 적은 것을 보고는 경외심과 경각심이 생긴 탓이다.

2월 들어서 다른 건 몰라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다음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다룬 후 올해 안으로 완역하기로 한 디디-위베르만의 텍스트 번역과 다음 학기 학부 수업 교재인 두뇌보완계획 100. 각각 하루에 6쪽 및 3장씩 나가기로 했는데 전혀 손대지 못한 채로 일주일이 흘러 버렸다. 실은 지난주 아니 지난 주말까지도 1월 마감 논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던 탓...이라는 것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거기에다 조금 전 부주의로 과일향이 첨가된 비타민 음료를 들이키고 말았으니... 아직까지는 괜찮으나 조금이라도 반응이 올라치면 내일 아침으로 예정된 프랑스철학 세미나를 취소할 참이다. 오늘 아침 인공지능 세미나가 명목상으로는 내 본의는 아니었으나 사실은 그 누구보다 바라마지 않았던 나의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취소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그렇지만 과일이 들어가지 않은 비타민 음료를 겨우 찾고 또 판매처를 겨우 찾아서 10개들이 한 상자를 사다가 냉장고에 채워 놓은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손님용으로 단 한 병 남겨두었던 과일향 첨가 음료를 집어들어 마시고야 말았으니 기가 차도 한참은 찰 노릇인 것은 사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빨리 시작해야 한다.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1. 문제의 면역 사유-행성 사유 논문 완성 및 투고. 거절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이번에는 끝을 내야 한다. 두 가지의 저널 옵션이 있는데 일단은 완성이 우선. 2월 18일까지. 

2. 코이레 해제를 위한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사 논문. 일단 얼개를 짜고 견본으로 삼을 만한 "역자 해제" 탐색 및 탐독 중. 너무 많아서 탈이다. 게다가 너무 많이 보면 겸손을 넘어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역할모델과 선례와 범례야말로 다다익선. 그 밖에 관련 참고문헌 정리 그리고 기존의 쿤 번역서들을 참조해서 초벌 번역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2월 말까지.

3. 젠더연구소 학술대회 사회.  그냥 사회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사회만 보면 그뿐인 것도 아니라 준비가 필요하다.  2월 20일.

4. 여이연 강좌. 버라드의 물질이론과 양자역학과 영화 "오펜하이머" 등.  지난 가을 인문학 강좌에서 출발하되 한참은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당시 쓰려다 역시나 포기한 논문...의 일부는 이미 출간이 되었는데, 남은 부분도 내용상으로는 상당하고 중요성 또한 상당하다. 사실은 좀더 핵심적인, 그런데,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 비껴갔던 부분을 이제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2월 22일. 이걸 더 발전시켜서 3월 여성철학회에서 발표하고 4월 학술지 투고. 

5. 세계철학자대회 발표 신청. 세계철학자대회는 8월 로마에서 열리는데 사실 그보다 7월 빈에서 열리는 과학철학사 학회에 관심이 더 있었으나 발표 신청 마감. 세계철학자대회도 원래 1월 말까지였으나 3월 말로 마감이 연장되었다. 마감이 연장되기도 했고 번역서 자료 조사 차원에서 파리에도 들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지원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으나 뜻대로 될지... 주제는 ㄱ. 광기의 역사와 ㄴ. 코이레-메를로퐁티와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 중에서 고민 중. 3월 말.

6. 그 밖에 다른 학회들도 있고 또 지원사업도 욕심이 나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을 차라리 코이레-메를로퐁티 혹은 더 넓혀서 "고전시대" 연구로? 박사논문의 연장선상으로 말이다. 칸트, 라플라스, 콩트, 쿠르노, 베르그손, 푸앵카레... 영어 논문 출간을 목표로. 한편으로는 중복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베르그손 번역을 아카넷 고전번역에 지원해야 하는데 아마도 올해는 힘들 것이다. 아닌가? 올해 일단 내보고? 어쨌든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신진연구자사업은 지원은 3월 6일까지. 

... 이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단은 여기까지. 이미 지나친 감이 있다. 모자람만 못할 리만치.


보티첼리 비너스와 카카오 어피치


- ㅁ 에게

기억하는지? 2012년 너랑 같이 피렌체에 갔을 때였어. 휴대용 클리넥스를 네가 내게 사주었어.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새겨진. 내가 이걸로 코를 풀지는 못하겠다고 하니 네가 그랬어. 심사 받는 날까지 아껴 두었다가 끝난 후 감격의 눈물을 닦으라고. 그때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루어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6년도 훨씬 넘게 걸릴 줄이야. 

그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번 꺼내 봤어. 그때마다 생각했어. 빨리 감격의 눈물을 그 휴지로 닦을 날이 왔으면 하는 희망, 아니, 단지 왔으면 하는 희망과 기대에 머물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도록 해야겠다는 의지를 되새기곤 했지. 그래서 작년 겨울 짐 정리해서 귀국할 때도 잊지 않고 챙겨 왔고, 또 지난 초여름에 파리로 다시 갈 때도 챙겨갔어. 이걸 이번 여름에 쓸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정작 심사장에는 잊고 갔지 뭐야? 고대하던 그 순간을 놓쳤단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얼마나 애석했는지. 

사실 이제 그 휴지는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커. 이후 이걸 어쩌면 좋을까 볼 때마다 고민했어. 그러다가,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널 보러 춘천에 오면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왔어. 적절한 활용 방안에 대해 너와 얘기해 보고도 싶었겠지.

그러다가 마지막날인 오늘, 들고 다니던 휴지가 똑 떨어졌어.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콧물을 자주 흘려서 휴지나 손수건 없이는 외출하지 못하는지라 곤란하던 차, 네가 내어준 방에 놓인 휴대용/여행용 휴지가 눈에 들어왔어. 네 동생이나 조카가 두고 갔겠지, 아마도? 카카오 프렌즈의 어피치가 그려져 있는. 불현듯, 역시 왠지는 모르겠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카카오 어피치 사이의 교환이라, 기발하고 재미있는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사소한 과거 사실들을 그렇게 잘 기억하느냐고 너는 물었지. 사실 내가 그럴 수 있는 건 결코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야. 미래에 대한 불투명하고 암울한 전망이나 무겁기만 한 현재 상태를 직시하기보다는 안온한 과거로 회귀, 아니 도피하려 하기 때문이야.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었든 아니면 불운 혹은 행운이 겹쳤기 때문이든 간에, 주어진 매 순간에 충실하게 임하다 보니 지금의 네가 되었더란 네 말이 특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어.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느 철학자의 말보다도.

이렇게, 피렌체에서 파리, 그리고 춘천까지의 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음울한 시기를 보내던 나를 지켜본, 그리고 어쩌면 지켜준, 그 휴지(!)를 네게 남긴다. 지켜보거나 지켜줄 그 어느 존재 없이 혼자서 너무도 많은 걸 잘 해왔던 너란 걸 알지만, 그와는 별개로, 네가 지켜보고 또 지켜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만큼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기억했으면 하는 내 작은 소망을 담아서.

Madame la Présidente, Madame et Messieurs les membres du jury

Madame la Présidente, Madame et Messieurs les membres du jury,

Je voudrais d’abord remercier les membres du jury pour avoir accepté de lire ma thèse et de participer à sa soutenance, ainsi que mon directeur de thèse, Monsieur Szczeciniarz, pour son accompagnement et son encouragement qui m’ont permis de mener ce travail à bon terme.

Mes remerciements vont également à ma famille et mes amis pour leur présence aujourd’hui, mais aussi pendant mes années de thèse. Pendant des années bien longues, je dois préciser, puisqu’il m’a fallu un temps bien considérable pour arriver jusqu’ici.

La thèse que j’ai l’honneur de présenter devant vous s’intitule «Du monde mécanique à l’univers physique. Pour une histoire de la cosmologie à l’âge classique, autour de Leçons sur les hypothèses cosmogoniques de Henri Poincaré (1911)».

Je viens de vous parler du temps. S’il a fallu tant de temps pour terminer cette thèse, ce ne serait pas seulement par l’ampleur et la difficulté du sujet que j’avais choisi, mais aussi par la nature même de ce sujet. Mon sujet, vous l’auriez remarqué, est double, Poincaré et la cosmologie, qui réunit deux thématiques qui ne sont pas très favorables à la gestion du temps. Dans un premier temps, j’avais à faire face au temps astronomique, voire cosmologique, au point d’ignorer un peu le temps à l’échelle humaine. La faute serait aussi, au moins en partie, à Poincaré lui-même, qui ne s’effrayait pas de parler du temps infini, et s’intéressait bien peu au passage du temps à court terme au point d’oublier parfois de dater ses écrits, au dam des historiens.

Le choix de ce sujet tient à des rencontres personnelles ainsi que textuelles. La première rencontre avec la première phrase des Leçons était comme un coup de foudre. «Le problème de l’origine du Monde a de tout temps préoccupé tous les hommes qui réfléchissent ; il est impossible de contempler l’Univers étoilé sans se demander comment il s’est formé.»

Longtemps je me suis intéressée au problème de l’origine du monde. Comme tout le monde peut-être, pas plus, tout simplement parce qu’il est impossible de faire autrement en présence du ciel étoilé devant ses yeux, nous vient de dire Poincaré.

Après avoir fait des études en physique et en philosophie à Séoul, je voulais continuer d’étudier la philosophie des sciences, mais dans une autre direction et dans une autre tradition que le courant analytique ou anglo-saxon dominant à l’époque en Corée. Pour mon mémoire de master en philosophie, je me suis préoccupée de l’analyse du langage utilisé en mathématiques. Mon analyse portait entre autres sur l’argument de l’indispensabilité des mathématiques dans les sciences, conçu et développé par Quine et Putnam en faveur du platonisme à l’égard du statut ontologique des objets mathématiques.

Je crois avoir croisé les livres de Poincaré en traduction coréenne dans mes égarements à la bibliothèque. Mais à ce moment-là son nom ne me disait pas grand-chose, en tout cas beaucoup moins que ceux de Bachelard, Canguilhem ou Foucault. J’avais une admiration profonde pour ces héros de l’épistémologie française ; j’adorais son approche versée en histoire, son intérêt au concret, ainsi que son style littéraire. C’est ce qui m’a amenée à entamer des études en France.

Ce n’était qu’en France que j’ai découvert les Leçons de Poincaré. C’était un pur hasard que j’ai été conduite aux Leçons en version numérisée sur le site Gallica.fr. Pour le mémoire de DEA, je cherchais un peu maladroitement sur le catalogue de la BNF, sans même savoir qu’il existait une «science» qui a pour objet spécialement la naissance du monde et qu’il y avait un mot qui désigne cette science qu’est la cosmogonie. Le livre de Poincaré a retenu mon attention, d’abord par son titre où paraissait le nouveau mot que je venais d’apprendre, et, surtout, par son auteur, que je commençais à connaitre à peine et de qui je ne m’attendais pas à un livre de cosmogonie d’après le peu que je savais de lui

Mon objectif était de contribuer à une histoire de la cosmologie dans la lignée de Koyré (qui a couvert de Copernic jusqu’à Newton) et Merleau-Ponty, Jacques (de Laplace à Eddington en passant par Einstein), en construisant deux objets que j’ai nommés «monde mécanique» et «univers physique». D’un autre côté, j’avais l’intention de montrer que Leçons, assez connu et souvent cité encore aujourd’hui, sans pour autant avoir fait l’objet d’un travail approfondi, mérite une attention pour l’histoire des sciences, plus précisément de la cosmologie, ainsi que pour les études poincaréennes.

Mon travail a procédé en deux temps. Dans un premier temps, l’histoire de la cosmologie à l’âge classique de Descartes jusqu’aux cosmogonistes au tournant du vingtième siècle, cités dans les Leçons, en passant par Kant, Laplace, Comte et Cournot. Dans un deuxième temps, une étude systématique sur l’œuvre de Poincaré. Puisque Leçons est l’un de ses derniers ouvrages, il m’a fallu parcourir toute son œuvre. L’immensité de cette œuvre oblige, j’ai dû me borner à une de ses parties. Je me suis concentrée sur la partie philosophique de cette œuvre, écrite à diverses occasions et recueillie par les propres soins de son auteur dans les livres comme La science et l’hypothèse.

Dans ma tentative d’une étude systématique de son œuvre, je crois avoir trouvé une réponse possible à cette question difficile, celle de savoir s’il y a un système philosophique ou une philosophie tout court. C’est une philosophie qui se caractérise par la systématicité qui n’est pas dogmatique ni statique, mais prend en compte la diversité et la dynamique des sciences.

Je voulais montrer également qu’elle ne manquait pas d’éléments cosmologiques. Les pistes, trois thèmes-problèmes récurrents dans ces écrits se trouvent aussi «ouverts», pour ne pas dire «dirigés», vers l’univers : le mécanisme, la loi/le principe et l’espace. Si elle n’aboutit pas à une théorie ou un modèle rationnel de l’univers, elle n’en a pas moins de place dans l’histoire de la cosmologie. Quelque part entre la fin de la cosmologie classique et la veille de la nouvelle cosmologie mise en place par Einstein en 1917.

Au cours du travail, j’ai connu plusieurs changements de problématique et de méthode, dont certains étaient plus ou moins radicaux. Tout au début, j’avais l’intention de rapprocher Poincaré de la cosmologie moderne et de le promouvoir, pour ainsi dire, au rang des «précurseurs» des théories de l’univers telles qu’on les connait aujourd’hui. Pourtant, il m’est arrivé de me persuader progressivement que Poincaré faisait partie de la science de l’univers à l’âge du positivisme, comme le dit le titre de l’ouvrage de Merleau-Ponty de 1983. Cette science, si elle n’a pas abouti à une cosmologie proprement dite, sinon la non ou la quasi cosmologie comme Merleau-Ponty caractérisait, avec un goût de formule qu’il avait, constitue un moment non moins significatif de l’histoire de la cosmologie.

Avec cette nouvelle perspective venait le besoin d’une nouvelle méthode. La méthode me préoccupait tout au long du travail, et le résultat en est les «discours préliminaires» qui précèdent chacune de deux parties principales de la thèse. Après plusieurs expérimentations et inversions du plan de thèse, j’ai fini par choisir l’archéologie comme méthode, faisant référence à Foucault. J’ai essayé de suivre les consignes données par l’auteur de L’archéologie du savoir. Privilégier la contemporanéité et la simultanéité de théories hétérogènes, au lieu de chercher à en établir l’homogénéité et la continuité dans le temps, tout en assumant leur discontinuité voire leur rupture à travers de différentes époques, afin de relever leur condition de possibilité, à la fois a priori et historique.

Ce qui m’a amenée à une sorte d’archives de la cosmologie à l’âge classique. Ces archives ont été réunies dans la première partie de la thèse et enrichies dans la deuxième partie, avec l’œuvre de Poincaré. Tout ceci revenait à faire les archives des Leçons de Poincaré qui est aussi, d’une certaine manière, une sorte d’archives des hypothèses cosmogoniques, plus démodées que prometteuses, plus «périmées» que «sanctionnées» au sens bachelardien de ces termes.

En somme, ces archives ne nous renseignent pas grand-chose sur l’origine du monde, pas plus qu’elles n’enseignent la science de l’origine du monde. Sur ce point, je dois rectifier ce que j’ai écrit dans la thèse. J’ai dit, à la page 60, que l’intérêt pour l’histoire s’encadrait strictement autour de l’enseignement chez Poincaré. Mais, en fin de compte, ce ne serait pas tout à fait le cas. Son exposé n’est pas tout à fait pédagogique : en le lisant, on n’a pas le sentiment d’être enseigné ou renseigné, on se sent plutôt interrogé et intrigué ; on a un peu du mal à suivre ses idées, parfois plus associées par analogie qu’elles soient enchainées logiquement. Il ne nous apprend pas tant sur l’origine du monde, mais nous incite à réfléchir sur cette question elle-même en tant que problème cosmologique, l’esprit qui l’aborde et la quête à la solution. Bref, c’est une leçon de philosophie que Poincaré nous a laissée dans ses dernières leçons.

Les premières phrases que j’ai citées tout à l’heure et qui me poursuivaient pendant tout ce temps s’accompagnaient d’une autre phrase non moins mémorable dans La valeur de la science : «La pensée n’est qu’un éclair au milieu d’une longue nuit. Mais c’est cet éclair qui est tout.» En fin de compte, les lois de la nature dans le ciel étoilé et les lois des morales dans mon cœur ne sont pas si séparées comme chez Kant, pas plus que la raison et le cœur comme chez Pascal, si c’est le cœur qui touche et incite la raison à réfléchir.

Poincaré terminait ses Leçons par un point d’interrogation. Je pourrais terminer autant, même plus : pas par un point d’interrogation, mais plusieurs, avec quelques pistes de travail à venir. D’abord un travail archivistique autour des Leçons, que ce soit relatif au cours même de 1910–1911 à la Sorbonne ou à l’édition chez Hermann, avec l’ajout des matériaux comme les procès-verbaux du conseil de l’université ou le contrat avec l’éditeur pour ce qui concerne la seconde édition. Une étude comparative plus approfondie serait envisageable aussi, entre Poincaré et d’autres auteurs, notamment Bergson et Mach. La connexion entre Poincaré et Bergson me parait d’autant plus intéressante et significative qu’il y a plus de points communs et comptables qu’on le croit, alors qu’elle est relativement peu étudiée, en tout cas moins que la confrontation entre Bergson et Einstein, ou encore beaucoup moins que le rapport Einstein et Poincaré.

Après bien des années d’études, j’ai fini par apprendre qu’une thèse de doctorat est, de par sa nature même, un travail en cours, toujours en construction, une ébauche du travail à venir. Raison de plus, une seconde édition est prévue pour cette thèse, exactement comme les Leçons de Poincaré d’ailleurs, même si ce n’est pas pour la même raison : elle s’impose, pas par le «succès» dans les librairies comme c’était le cas des Leçons, mais par un second dépôt après la soutenance, désormais obligatoire, d’après les nouveaux règlements du doctorat. J’aurai donc la possibilité de tenter une seconde chance et de donner une deuxième vie à cette thèse, possibilité dont Poincaré ne pouvait pas tirer le profit au maximum. Tous vos commentaires, critiques et suggestions, me seront donc extrêmement utiles.

Je vous remercie de votre attention.


Texte de présentation lu le 7 juillet 2018

다시 시작을 논하기에 앞서 다시, 시작의 노래

«Primordial», Australie, 2017. Tamara Dean. Agence VU
«Commencement», Australie, 2017. Tamara Dean. Agence VU


시작 - 최승자
  
한 아이의 미소가 잠시
풀꽃처럼 흔들리다 머무는 곳.
꿈으로 그늘진 그러나 환한 두 뺨.

사랑해 사랑해 나는 네 입술을 빨고
내 등뒤로, 일시에, 휘황하게
칸나들이 피어나는 소리.
멀리서 파도치는 또 한 대양과
또 한 대륙이 태어나는 소리.

오늘밤 깊고 그윽한 한밤중에
꽃씨들이 너울너울 허공을 타고 내려와
온 땅에 가득 뿌려지리라.
소리 이전, 빛깔 이전, 형태 이전의
어둠의 씨앗 같은 미립자들이
내일 아침 온 대지에 맨 먼저
새순 같은 아이들의 손가락을 싹 틔우리라.

그리하여 이제 소리의 가장 먼 끝에서
강물은 시작되고

지금 흔들리는 이파리는 
영원히 흔들린다.

-- ⟪즐거운 日記⟫ (1984)


논문, 논문, 논문... 아직도!




"잔느는 결국 논문 끝냈다니?"
"그게... 끝내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할머니, 잔느 언니는 왜 늘 논문만 써요?"
"그건 아무도 모른단다."



"파티 하시나 봐요?"
"아뇨. 제가 집에 처박혀서 논문을 끝내려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필요한 식량을 구비하는 거랍니다."
"아, 논문 쓰세요? 저도 젊었을 때 하나 썼어요. 
고생물학으로요. 그런데 잘 안 풀려서..."

 
Tiphaine Rivière, Carnets de thésard, Seuil, 2015
 그리고 다시 보는 카프카의 "계단"생각
 

어떤 유비 추리, 그리고 결론

아빠 동갑내기가 먼저 대통령이 되더니,

엄마 동갑내기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이번에는 내 동갑내기가 대통령이 되려는 참이다. 


이는 모두 *사실*이다. 즉 모두 참인 전제들이다. 무의미하고 무익할지언정.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1. 동생 동갑내기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2. 이모 동갑내기가 대통령이 된다.

3.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4. 논문이나 써라... 제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전집 출간

입수(!) 기념해서 올려보는 다른 이야기


육체의 사용 (또는 몸쓰기몸의 쓰임새이른바 " 쓰는 ",  육체노동을 가리키는 말로부터 출발) 끝으로호모 사케르 연작이 완간되면서 아감벤이 97년부터 20 가까이 펼친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개인적으로도 감회가 남다르다. 2007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호모 사케르 1권을 읽은 것을 시작으로 해서, 10년의 세월동안 웅장한 지적 여정에  명의 관객으로 나름대로 참여해 왔으니비록 소극적이고 소심할 뿐더러 게으르기까지 하여 참여는커녕 관찰자로서도 적격이었나 싶을 만큼 불량한 관객이었지만

관객으로서뿐 아니라 독자로서도 불량하여 1 이후로 연이어 나온 책들은 외면했다. 2012 이탈리아 여행  피렌체에서 지배와 영광 이탈리어판을 사온 것을 제외하면아감벤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실 책이 예뻤고 (그에 비하면 쇠이유에서 나오는 불역판은 미적 우수성에서 현저히 떨어진다), 여행 당시 불타오른 이탈리아에 대한 열정이 이탈리아어 학습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이유 (그러나  역시 오래 가진 않았다 열정이란 것이 사실 마담 보바리에게서처럼 도피성에 가까웠기에). 그런데 작년에 불역판 전집이 나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전집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전작들의 확보를 보류하고심지어  논문의 완성마저(!) 보류해 왔던 ...이라 말하면 스스로 비참해지니전건만 말한 걸로 해두자.

전집은 구했지만 당장 읽기는 힘들 것이므로 얼마  우연히 읽은 최근작 명령이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본다 책은 아감벤이 줄기차게 내놓고 있는 엽편 에세이  하나분량상 책보다는 아티클에 가깝고 실제로 세미나 발표문이나 강연문을 전문 그대로 옮긴 경우가 많다대표적인 예로 장치란 무엇인가 있다  모아서 논문집이나 선집으로 내면 딱인 텍스트들이다이것이 이탈리아 출판계의 규범인지 아니면 프랑스로 건너 오면서 귤이 탱자가  사례인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없는 출판 행태그러나 텍스트 자체만으로 보면  가치나 중요성은 상당하다오히려  간명성 때문에 주장과 논증의 명료성이 확보되는 측면이 있다다음은 책을 읽으며 했던  가지 단상.

  • 주제는 명령이다. 혹은 계율이나 계명. 10계명 때의 계명 말이다. 명령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 그런데 고고학이 뭔가. 아르케에 대한 탐구 아닌가. 서양철학의 시원에 있었던 바로 아르케. 만물을 시작하고(commencer) 호령(!)하는(commander) 원리를 탐구하면서 모든 지적 모험이 시작됐고, 이후의 모든 모험은 이러한 원리에 대한 탐구를 따르게 되었다.  
  • 푸코는 아르케를 재개념화하면서 고고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아르케는 시원이자 명령자라는 속성 때문에 만물에 대해 시간적으로도 우선해 있다고 생각돼 왔다. 그러나 푸코는 현재에서 출발한다. 현재가 고고학적 문제의 출발점인 동시에 명령자 (le présent au commencement/commandment).  
  • "태초에 빛이 있었다" 창세기의 첫구절을 보자. 아감벤은 희랍어 문법상 "태초" "명령"으로 바꿔도 무난하다고 말한다. 빛이 있으라 명령이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는 편이 하늘이 있으라 명하매 하늘이 생기고, 땅이 생기고 등등의 뒷구절과도 좀더 맞아 떨어지고.  
  • 희랍인에게는 의지라는 개념이 없었다. 레미 브라그가 그들에게 개인이나 반성적 혹은 인식적 주체 개념이 없었다고 말한 것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되는 말이다. 대신에 잠재태-완성태 개념이 있었다. 그렇다면 근대는 잠재태가 개인-주체의 의지로 이행으로 정의하는 것도 가능하다
  • 명령의 문법 혹은 논리. 아감벤은 여기에서 오스틴의 수행성 개념을 상당 부분 참조하되, 명령의 논리가 그것만으로 환원되지 않음을 보이고자 한다. 평서문의 참과 거짓을 따지는 것으로 한정된 기존의 논리학은 존재(esti : être) 존재론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명령의 논리학은 존재의 존재론이 아니라, 그렇다고 생성(devenir) 존재론(보통 전통적 존재론에 대항해서 나온 니체나 베르그손의 철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자주 쓰인 표현) 아닌, 당위 혹은 의무(esto : devoir être) 존재론에 의거한다.
  • 칸트 윤리학에서 당위-의무는 의지와 동일시된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표어 : devoir pouvoir vouloir. 원하는 바를 있어야만 한다. 하고 싶은 것을 있고 그래야만 한다. 뭔가 해방감을 주는 것도 같지만 사실 괜히 의무론적 윤리학이 아니다. 유명한 정언 명령 "네가 욕망하는 바를 보편 의지와 일치하도록 하라"에서 보듯 의지란 결국 보편의지에 다름 아니다.  
  • 명령에 대한 아감벤의 고고학적 단상은, 나도 그랬지만 아감벤의 독자라면 더더욱 그랬겠듯, 필경사 바틀비의 등장으로 마무리된다. 모든 법의 형식과 명령의 논리마저 무화시키는 것이 바틀비의 j'aimerais mieux pas/I'd rather not 이다. 해야 하는 것도, 있는 것도, 원하는 것도 아닌 무언가를 우리는 과연 " " 있는가?



맥북 수난이대

맥북프로를 샀던 것이 2010년 여름이었으니 벌써 칠년이 다 돼간다. 그 전에는 아이북을 썼다. 2005년 여름부터 2010년 여름까지, 그렇게 딱 5년 동안이었다. 5년 내내 가끔 팬이 돌기는 해도 대체로 멀쩡하고 속을 썩이는 일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여전히 애플 사용자는 소수였다. 주변의 컴덕들 사이에서는 반애플 정서도 제법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적잖은 비아냥을 감수하면서까지 맥의 전도사(이자 스티브 잡스의 팬)를 자처하는 걸로 지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편이었다. 2010년이었던가, 잡스가 운명했을 때 내게 소식을 전하며 안부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부턴가 주변에서 맥북 시리즈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지인들에서부터 도서관이나 학회장에서 보는 학자들, 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청중까지. 애플이 이렇듯 이 시장을 석권하게 된 사실은 나같은 탐미주의자 그리고/혹은 스노브들을 현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적인 우수성만으로는 설명되기 힘들고,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다. 아이폰의 보급으로 애플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학생 및 교육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백 투 스쿨" 행사가 상당한 파급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내 가설이다. 딱 그 용도, 즉 수업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논문을 쓰고 하는 등등의 이른바 학술적 용도에 맞으면서, 안정적이고 또 맥 특유의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춘 사실도 고려해야겠지만. 이렇게만 놓고 보면, 혹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름대로 선구자이자 트렌드 세터였던 셈인데, 사실 그보다는, 어쩌다 아이북을 쓰게 되고 그 뒤로 쭉 이어온 경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물론 "앺등이" 특유의 페티쉬즘과 스노비즘 성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심지어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대놓고 드러내고 다녔으니 말 다했다. 

어쨌든 그렇게 시대에 앞서(!) 5년 간 고이고이 아껴 쓰던 아이북. 국립도서관 지하 연구관에서였다. 팬소리가 윙 하고 나더니 제멋대로 종료. 그리고 부팅 불가. 하늘이 노래졌다. 그리고 수차례 재시동 시도. 그 지하 연구관이 또 어떤 곳인가. 절대 정숙이 요구되며 일체의 소음도 불허하는 곳 아닌가. 환경도 환경이고 몇 번 시도해도 안되길래 결국 포기. 그리고는 도서관을 나서 파리 동쪽과 북쪽으로 오가며 주변의 같은 기종 사용자를 비롯 컴덕(이지만 반애플 정서의 소유자였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자구책을 모색했다 (그러고 보니 요전에 이 에피소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뒤, 바로 다음날, 덥썩 교체를 결정하고는, 오페라의 애플스토어에서 즉석 구매. 백투스쿨로 할인가에다가 그과 더불어 아이팟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로부터 5년 전 아이북 구입시에도 아이팟을 받았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지 6년째 되어가던 작년. 초반부터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최초의 사태가 일어난 것은 3월 30일 새벽. 아마도 운영 체제인 앨 캐피탄을 업데이트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고, 정확히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이제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유튭으로 동영상을 돌리려던 찰나였던 것 같다. 그 전에도 동영상을 돌릴라치면 팬 소리가 나서, 내가 겁이 난 나머지 강제로 종료하는 일이 더러 있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열어 두었던 논문 작성용 앱인 스크리브너에서부터 모든 앱들이 일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플 컴퓨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아는 공포의 무지개빛 비치볼 회전 (사실 애플 사용자라고 누구나 안다면 과장이다. 정상적인 사용자라면 그다지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애플 좋다는 게 뭔가)! 너무나 놀라서 작업들을 중요하지 않은 순서대로 하나 하나 종료를 해나갔다. 스크리브너의 차례가 오기 전에 사태가 종식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러나 결국은 실패. 강제종료를 한 뒤 수차례 재시동 시도. 복구 모드 및 안전 모드로 시도. 역시나 수차례. 

나름대로 평소 백업에 신경을 쓴다고는 하나 이런 사태가 벌어질 즈음이면 하필 며칠간 경계를 늦춘 상태였다든지, 설사 그랬다고 해도 그 며칠동안 별 성과가 없었다면 크게 애석할 일도 없으련만 하필, 그 전에는 계속 안 풀리던 문제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오랜만에 생산성을 고취하고 있는 시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저 사태는 그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부팅이 안 되어 사태 이전은 물론이요 그 이후의 전개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모든 역사를 무화시켜 버리는 특이점의 사건이었달까. 메타포로 더 적당한 것은 블랙홀 이론이겠다. 지난 10년의 역사, 그리고 향후 최소한 10년 후의 역사를 빨아들인 사건의 지평선. 논문을 그만두라는 계시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사건.

일단은 운영 체제를 재설치하면 되겠는데 (걸핏하면 윈도우를 재설치해야 하는 아이비엠 컴퓨터와는 달리 맥에서는 드문 일. 운영 체제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처음에는 그래도 복구 디스크를 찾아서 복구 모드로 시동이 되더니 시동 횟수가 반복될수록 그마저도 불가능해지나 싶었다. 구입 당시 들어있던 설치 씨디롬으로도 하드웨어 테스트도 해보고, 심지어 아마도 개발자용으로 만들어졌을 벌바팀 모드로도 시동해서 파일 시스템 체크도 하고 (내가 아무리 라텍 사용자라 그 옛날 도스를 방불케 하는 사용 환경을 전적으로 낯설어 하는 건 아니라 해도 갑자기 터미널에서 fsck, cd.. 등의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찌 당황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드디스크 테스트를 해보니 문제가 있어 포맷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포맷을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 역시 맥 쓰면서는 좀처럼 해보기 힘든 일). 다행히 논문을 포함한 각종 데이타들은 비교적 안전히 보관돼 있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그 데이타들을 통째로 복사해서 외장 디스크에 옮기고, 하드 디스크를 포맷한 뒤, 운영 체제를 새로 설치하고 외장 디스크의 복사본을 원래 자리로 되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오, 결코 간단치 않았다. 일단 외장 디스크부터 포맷해야 했다. 거기에는 주로 하드 디스크 공간 확보를 위해 따로 저장해 둔 파일들이 있었다. 논문 자료들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누군가로부터 받거나 내가 따로 모아둔 영화, 음악, 그리고 그밖의 각종 음성 및 영상자료들. 뭐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구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10년의 역사가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찬란했을 시절의 사진들. 잠시 그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눈물을 머금고 삭제를 눌렀다.

그리하여 외장 디스크 포맷. 여기에 복원용 디스크 생성. 그리고는 하드 디스크 포맷. 그리고 구입당시 받았던 시디롬으로 역시 당시의 운영 체제인 스노우라이언 설치. 아니, 일단은 외장 디스크를 시동 디스크로 설정하고 거기에서 다시 시작했던가? 다행인 것은 애플에서 한두 해 전부터 운영 체제를 무료로 공개, 앱스토어에서 최신 버전 다운로드가 가능해졌다는 사실. 그러나 불행인 것은 집에서 인터넷 연결이 시원치 않아 그 정도 용량의 데이터 전송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타임머신을 타고 5-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 시점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내 집만 유일하게 5년 전 그 상태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달까.

그리하여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고는, 아침 일찍 유선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새 것과 다름 없는 하드 디스크를 새로이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앨 캐피탄부터 시작해서 다른 앱들, 기본 설치에서부터 스크리브너를 포함, 유료 앱들까지 다...는 아니고 정말 필요불가결한 것들만 선별, 이른바 간단 설치를 수행했다. 그렇게 하는 데만 해도 만 하루가 넘게 걸렸다. 그래도 비교적 단시간 안에 5년 간 이 컴퓨터가 초기 상태에서 가장 최근의 상태까지 걸어온 진화의 과정을 재연한, 말하자면 압축적 근대화의 작업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정상화한지 불과 일주일 후인 4월 7일. 다시 비치볼이 돌기 시작하고 모든 앱들이 일제히 무응답하는 일이 발생. 다행히 지난 사태 이후로 타임머신 기능을 활성화시킨 상태였기에 이번에는 비교적 수월할 줄 알았으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다시 안전 모드로 시동하고, 디스크 검사를 하고, 오닉스라는 디스크 관리 앱으로 검사 및 복구를 수행한 끝에 간신히 복구 성공. 대체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앨캐피탄의 한 버전(10.11)에서 파일 시스템 상의 논리적 오류가 발생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무선 인터넷 연결상의 문제는 앨캡 전반에 걸쳐 있는 것 같고. 

그 이후로 한 6개월 간, 제발 이 논문이 끝날 때까지만 버텨주길 빌며 살얼음 걷듯 조심스레 다룬 탓에 비교적 탈없이 잘 쓰고 있었으나... 논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것이야말로 이 모든 사태의 결과라기보다는 궁극적 원인이었던 것이다!), 급기야는 10월 13일 밤, 맙소사, 반년 전과 똑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경험의 힘일까, 줄잡아 하루 정도의 시간은 버리게 생겼지만, 그래도 복구가 가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이전 사태의 영향으로 백업 또한 예전보다는 자주 해두곤 했기 때문에 여파 또한 전보다 더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다음날, 파리로 출장을 와있던 동생이 마침 시간이 나서 저녁을 같이 보내게 되었고, 이때 지난 밤 사태에 관해 들은 동생은, 그렇게 불안해서 어떻게 쓰겠느냐며 구입을 제안했다. 6년 전 아이북 사태 때 새로 구입할 것을 제안한 것도 동생이었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라데팡스 애플스토어에 가서 맥북에어를 구입했다. 일체의 사전 조사 없이, 복권 당첨자라면 모를까, 요새 누가 할까 싶은 무모한 소비 행위였지만, 그렇게 비합리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시간과 타이밍이 문제였기에. 물론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날 새 맥북에어를 들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망가진 맥북프로를 복구하는 일이었다. 이전과 똑같이 지난한 과정 (복구 모드 후 운영시스템 재설치)을 거쳐 사태 직전까지의 데이타를 온전히 복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데이타와 설정을 다시 맥북에어로 옮길 수 있었다. 몇몇 중요한 앱들을 새로 등록을 하고 시리얼키를 입력하는 등의 또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긴 했지만. 

그리하여 맥북프로와 맥북에어를 양손에 거느리는 2원 체제를 갖추게 된지도 어언 4개월여. 새로운 운영체제인 시에라를 설치했다 몇몇 앱과의 호환성 문제로 다시 앨캡으로 다운그레이드한다든지 등의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체제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여전히 문제는 논문이다. 

이번에는 철학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 철학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에 페르디낭 알키에(Ferdinand Alquié) 만한 적격자도 없을 것이다. 데카르트와 칸트의 권위자로 드높은 명성을 지닌 철학사가로서 그가 가진 권위도 권위지만, 무엇보다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사색해 본 이도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1956년 한 강연에서 이 문제를 다뤘고, 강연문은 "Qu'est-ce que comprendre un philosophe ?"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2005년에 재출간된 이 책을 나는 작년 여름에 뽕삐두 센터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그리고 당시 책을 읽으며 적은 노트를 최근에 우연히 발견했다. 알키에가 본문에서 말르브랑슈를 인용해서 말하고 있는 바, 철학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아니라 익숙함에서 낯설음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Unheimlichkeit !?!?), 철학사는 낯설음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 기록을 옮겨 본다. 
데카르트나 칸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유클리드 정리와 같은 비인격적/비인칭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한 심리학적 대상으로서 분석한다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그가 의심이 많은 체질이거나 성장 환경 때문에 의심이 많아졌다든지, 그래서 사람에 대한 신용과 불신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고 그것이 방법으로서의 회의에 영향을 미쳤다든지 하는 전기적, 심리적 인과 분석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철학은 철학적 진리를 말하거나 추구한다. 철학적 진리는 비인칭 진리는 아니지만 보편 진리이다. 철학자와 그의 철학은 인격적/개인적 보편성을 담보한다. 혹은 주관적 보편성. 과학적 진리의 보편성도 아니고 심리학에서처럼 한 개인에게 한정된 개인적 진리도 아닌. 철학적 진리가 개인적이라면, 즉 칸트나 데카르트 개인에 국한된다면, 그것은 특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적 진리는 보편적이고, 이는 특수한 의미에서 그러한데, 그 진리를 주창한 철학자와 연결돼 있다는 의미에서다.

철학자는 세상을 의문에 부친다. 세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모든 철학자는 동시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노라 불평한다. 실제로 이해받지 못했다 느낀 듯하다. 이는 동시대인들과 교환한 서신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는 외롭다. 그는 보편 진리를 발견했음에도 그 진리를 공유하지 못하는 비극적 운명에 처해 있다.

1630년, 영원진리를 발견한 데카르트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수학적 증명보다 더 자명하게 밝힐 방법을 찾았노라며 메르센느 신부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덧붙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고. 수학적 진리보다 더 자명한데 설득이 불가하다니. 보편적이고 확실함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진리라니. 서구철학은 어찌 보면 몰이해에서 나왔다. 소크라테스 같은 현자가 이해받지 못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플라톤 철학의 출발점이었듯. 그러나 어떤 사실이나 가치가 자명함에도 이해불가한 경우가 드문 곳은 아니라며 알키에는 예를 든다. 창조자가 피조물에 비해 우월하다. 과학을 만드는 정신이 그가 만든 산물인 과학에 비해 우월하다. 알키에에 따르면 이것은 매우 자명한 진리임에도 사람들은 이를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자명한가?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주체의 소외, 상품의 물신화 등등을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알키에는 또 철학과 역사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한다. 특히 철학(자)을 역사 안에 위치시키려는 철학사 방법에 반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헤겔 : 철학을 독살하고 감금하는 역사. 모든 철학, 사유가 역사의 한 순간이요 그 시대의 산물이고 표현이라는 것이 헤겔의 주장. 칸트가 어떻게 과학이 가능한지를 물었다면 헤겔은 어떻게 칸트의 물음이 가능했는지를 묻는다는 것이다 (이 도식으로 보면 헤겔은 푸코의 고고학의 선구자가 되는 셈). 맑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모든 철학과 사유를 단지 (스쳐가는?) 역사의 한 순간으로 만든다는 것이 알키에 비판의 주요 논지다. 모든 철학자들이 고독하지만 그는 그가 주장하는 진리를 들어줄 것을 요청하고 호소한다. 동시대인들에게. 혹은 역사에. 그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와의 대화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대화의 중요성 -- 변증법이 아니라. 플라톤은 물론, 고전시대 말르브랑슈와 베이컨 등까지. 대화란 늘 나와 닮은 누군가, 나와 동등하고 유사한 의식 주체를 상정한다. 그리하여 정신의 평등한 공화정이 성립된다. 그러나 헤겔에게는 그와 같은 유사자가 없다. 각 철학자가 역사와 환경의 산물이라면 철학자들 사이에 유사성이란 성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겔이나 맑스가 전제하는 진보사관에 따르면 후대 철학자가 선대 철학자보다 우월하다. 후대만이 선대를 이해할 수 있으므로. 단지 그뿐은 아니고 전제상 시대와 환경이 다른 철학자의 질문과 답변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답변보다 질문을, 문제를 중시하는 것도 이 같은 접근의 특징 (이 지점 또한 알키에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선대의 질문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은 버클리에게나 우리에게나 중요하고 사실상 답이 아직까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체계? 철학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철학자의 체계를 이해하거나 재구성한다는 것인가? 이것이 실제로 철학사의 가장 고전적인 정의 중 하나다. 한 철학을 이루는 요소들은 그 사이의 논리적 관계와 그것이 전체 내에서의 위치, 전체와의 관계를 통해서라야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체계가 철학의 전부는 아니라고 알키에는 강조한다 (이처럼 알키에는 게루나 뷔유맹 등의 이른바 구조주의적 철학사에도 반대하는 듯하다). 데카르트는 체계의 구축을 목표로 철학을 한 것이 아니다. 그의 목적은 진리 추구였다. 칸트와 버클리도 마찬가지. 무엇보다 체계에 초점을 맞춘 접근은 방법으로서 불완전하다. 심리적 방법, 수학적 방법, 역사적 방법 등 많은 방법이 그러하듯. 무엇보다 체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해석이다. 체계적 접근은 자명하지 않은 요소들을 자명한 것으로 해석하는 태도다. 또한, 체계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라이프니츠의 체계와 칸트의 체계는 엄연히 다르다. 체계적 접근은 각 철학자들의 특수성을 사상한다. 각자 자신의 환경과 교류하고 그에 반응하며 그러한 점에서 열려 있는 고유한 개성을.

그리하여 철학자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알키에가 제시하는 것은 과정/절차démarche를 통한 접근. 생성적 접근. 체계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 각 철학자들이 진리를 추구하면서 한 체계에 이르기까지, 주관적 인식에서 보편적 언명으로 이르기까지 거치는 과정이야말로 개별적이면서 보편적이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의 영원진리의 창조 테제. 그리고 칸트의 경우에는 부정량에 관한 소고에서 보인, 감각적인 것의 개념으로의 환원불가능성 테제. 이로부터 <판단력비판>에 이르기까지 이 감각과 지성의 이분법의 도식은 그대로 유지된다. 여기에서 과정이란 일정한 테마-주제들 사이에 논리적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르브랑슈, 파스칼, 흄, 칸트 등은 너무도 다르지만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연에서 법칙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문제-주제로 삼았다는 점. 필연적이지 않고 우연적인데 충분히 구속적이며 보편적인 법칙의 존재를 의문에 부쳤다는 점. 각자 세부적으로는 다르지만 이 법칙의 필연성 자체가 우연성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즉 자연-대상이 존재론적으로 불충분하다는 것. 그 부족분을 말르브상슈는 신에게서 찾으려 했고 흄은 대상이 아니라 주관에서 찾으려 했다. 이들이 각자 자신의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밟은 절차는 각각 다르다. 이 절차들은 그것을 직접 밟은 철학자 개인에게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개인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기에 그만큼 의미도 한정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절차는 바로 그가 직접 밟았다는 사실에 의해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에 각 절차들은 특수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보편적이다. 동시대인들이건 후대인이건 간에 그들과 닮은 사람들에 의해 거의 그대로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노트가 새삼 눈에 띈 것은, 마침, 푸앵카레를 한 명의 엄연한 철학자로서 보고, 그의 철학을 하나의 체계로서 접근하기 위한 여러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던 중이었던 때문. 그런데 아직도 "모색"이라니!?!?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그렇지만 논문의 주제 자체가 "모색"에 대한 탐구요, 따라서 논문 전체 방향도 모색의 결과보다 과정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논문 또한 모색에 모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주객일치라고 보면 되겠다. 방법론과 기타에 지나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 나머지 주객전도가 되어 버린 감이 없지 않으나. 

어쨌든 온갖 시행착오와 좌충우돌 끝에 기껏 체계로 규정하고 체계의 진화를 추적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알키에가 제시하는 방향과 그리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익숙함"은 위 인용문 마지막 문단에서 전하는 바, 법칙 필연성의 우연성 논제에서 왔다. 이 논제를 푸앵카레 규약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이 내 주장인데 이 논제가 실은 17세기에 이미...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는 물론 고대에서도 유사한 전례가 나올 것이다. 이것이 철학사의 힘이자 한계다. 이 익숙함에서 다시 낯설음을 이끌어내고 새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철학이다.

카프카의 "계단"생각

Comment, dans cette vie brève, hâtive, qu'accompagne sans cesse un bourdonnement impatient, descendre un escalier ? C’est impossible ! Le temps qui t'est mesuré est si court... qu'en perdant une seule seconde, tu as déjà perdu ta vie entière, elle n'est pas plus longue, elle ne dure justement que le que tu perds ! t'es-tu ainsi engagé dans un chemin, persévère à tout prix, tu ne peux qu'y gagner, tu ne cours aucun risque ! Peut-être qu'au bout t'attend la catastrophe, mais si dès les premiers pas tu avais fait demi-tour et si tu avais redescendu l'escalier, tu aurais failli dès le début, c'est plus que probable, c'est même certain. Ainsi ne trouves-tu rien derrière ces portes, rien t'est perdu, élance-toi vers d'autres escaliers ! Tant que tu cesseras de monter, les marches ne cesseront pas : sous tes pieds qui montent, elles se multiplieront à l'infini. 
뭐라고? 계단을 내려가겠다고? 그렇잖아도 짧고 서두르면서 또 못참고 징징대는 것이 인생인데? 그건 불가능해! 네게 주어진 시간은 짧아. 일분 일초라도 잃으면 그건 인생 전부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야. 한평생이라 한들 네가 잃은 그 순간보다 더 길다고 할 것도 없어. 그러니까 한번 가기로 한 길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계속 가야 해. 잃을 것은 없어. 위험할 것도 없고. 어쩌면 길의 끝에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만약 첫걸음부터 되돌아갔거나 계단을 내려갔더라면 넌 아마도 시작부터 이미 실패했을 거야. 아마도가 아니라 확실히. 문 뒤에는 아무 것도 없어. 네가 잃은 건 없어. 다른 계단을 찾아 걸음을 디뎌 봐.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면 계단은 계속해서 나올 거야. 네가 계속해서 걷는다면 계단은 끝없이 펼쳐질 거야. 
- Franz Kafka, "Protecteurs" in La muraille de Chine Gallimard, 1950, p. 173. Citation tirée de Tiphaine Rivière, Carnets de thésard, Seuil, 2015

의식 흐름의 기록

혹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관한 시론>에 대한 모방의 시도. 결과는 물론 모방의 대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나오리라. <마장동>. <한양도 성>. <공원을 읽다>. 현재 바로 눈앞에 들어오는 한글책들. 이런 책들이 눈앞에 두고 하필이면 또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도서관에서 그 책들과는 전혀 무관한, 무척이나 프랑코프랑스적인 논문을 가지고 전전긍긍하는 상황. 10년째. 이제 조금 있으면 정말 10년을 꼭 채우게 된다. 이곳은 ㅅ 언니가 다녔고 또 논문 심사까지 마친 곳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7년 전. 그리고 그녀는 나보다 7살 위이니, 당시 그녀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그녀가 힘든 여름을 보낸 끝에 가을에 논문을 제출하고 겨울에 심사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녀가 그 여름을 얼마나 치열하게 보냈는지도. 역사의 반복. 그런데 역사는 반복되는가? 푸앵카레에게서의 역사성의 의미에 대해 적다가 만 참이다. 그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사실을 구분한다. 반복되는 사실이 있어 그 사실이 축적되어 자료/소여가 되어야 하고, 그 가운데에서 항상적인 패턴을 발견해야 그로부터 법칙을 수립할 수 있고, 그로부터 예측을 이끌어내는 것이 과학이라면, 역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잘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 않는가? 그러나 반복이라고 꼭 동일한 것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 우선하고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차이라고 들뢰즈는 설파하지 않았는가? 들뢰즈에 대한 오독/모독. 결국 들뢰즈는 제쳐두기로 했다. 대신에 푸코를. 그렇지만 푸코 독해 역시 오독/모독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슈발레나 앙젤 등의 전례를 기억하자. 이들은 과학철학/과학사에서 출발, 각각 양자역학의 역사와 철학, 언어분석철학 및 인지과학의 철학에서 착실한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언젠가부터 푸코의 독자가 되었다. 이에 대해 앙젤이 <에른느> 시리즈의 푸코 편에 실은 글에서 말하길, 70년대에 보낸 학부 시절부터 충실히 푸코를 따라왔다고. 뱅센느에서 들뢰즈의 강의를,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푸코의 강의를 듣느라 주중 내내 바빴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푸코의 강의를 들으려면 두세 시간 전부터 가서 줄을 서야 했다니까. 그러다가 학업을 마친 후 전임강사 시절, 푸코를 초청하여 직접 만나게 되었는데, "예전에 당신 수업을 열심히 들었는데 지금은 논리학자가 되었다"고 하니 푸코가 웃더라고. 앙젤보다는 조금 세대가 앞서지만, 앙젤이 속한 프랑스의 소수파 분석철학 진영의 수장, 자크 부브레스도 최근에 푸코에 관한, 약간 안티푸코 성격을 지닌 저서인 Nietzsche contre Foucault 를 출간했는데, 그 역시 초창기부터 꾸준한 독자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다른 일례로 영미권이지만 이 분야의 정통인 해킹은 또 어떤가. 그의 통계학의 역사나 정신분석학 역사 연구는 푸코의 고고학 방법론에 영감을 받은 바 크다 (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2003-4년 경 푸코 세미나를 열었었다. 그리고 앙젤도 이번 학기에 재직중인 사회고등과학원에서 푸코 세미나를 열었다. 나는 둘 다 가지 않았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독자...라기엔 무척 편파적이요 파편적으로 푸코를 읽긴 하지만, 어쨌든 남몰래 자칭 푸카디엔느가 되어 논문에서 어떻게든 써먹을 요량에 이르게 된 계기는 "고전시대" 때문이었다. 인문학/인간과학의 고고학. 고전시대 광기의 역사. 소위 초기의 인식론자 푸코. 그래서 나는 "지식-권력"이나 생권력 등등으로 환원되는 소위 중기나 <성의 역사> 이후의 후기는 전혀 모른다. 파레지아, 자기 통치, 자기에의 염려 등등의 개념을 양산한 70년대-80년대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연도 전혀 모른다 (계속 "소위"라는 말을 붙이는 까닭은 한 사람의 학문적 인생을 시기별로 구분하는 일은 늘 한계를 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코의 경우 단순한 편리상의 이유나 또 그만큼의 한계를 넘어 그의 사상의 진화를 잘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년 전, 푸코랑 전혀 무관한 한 수학사 세미나에서, 17세기 데카르트 혹은 라이프니츠를 주제로 발표한 한 미국 학자가 그랬다. "고전시대라는 말을 쓰고 싶어요. 푸코의 나라이니까요." 한편 게리 거팅은 A Short Introduction to Foucault 에서 푸코를 소개하는 서너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푸코로 너무 나가 버렸다. 더 길게 잇지 않는 것은 원래의 논의로 돌아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어 쓸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재활이다. 논리력과 집중력 재활 훈련. 원래의 논의로 돌아가서 그 논의를 이어가는 연습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의 논의가 무엇이었더라? 역사. 역사의 반복.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연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의 역사는 어떠한가? 과학 자체는 우연의 지배를 받지 않는데 그것의 역사는 역사이기 때문에 우연의 지배를 받는다 ("과학 자체가 우연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말도 기실은 이미 푸앵카레 시대에 수정되는 중이었다. 우연의 법칙--오늘날 용어로는 통계학 법칙이 물리학에서도 중요한 방법으로 쓰이기 시작하고 또 그 자체 엄밀하고 독립적이고 고유한 방법 중 하나로 인정돼가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푸앵카레는 역시 이 부문에서도 양가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모든 종류의 "신문물"에 대해 그는 참으로 일관적으로 양가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를테면 왜 열역학은 2개의 근본 법칙을 바탕으로 정립되었는가? 왜 2개이고 왜 하필 그것들인지를 연역적으로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푸앵카레는 수립과정을 카르노에서 마이어, 줄, 클라우지우스, 톰슨 등등이 2개 법칙을 어떻게 정립했고 그로부터 어떻게 열역학의 이론들이 구축되었는지 역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열역학 강의> 서문에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