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부재 증명과 존재 이유





Clinamen v.9
Céleste Boursier-Mougenot, 2023, Mixed materials, 70 cm × 17 m,
Production supported by the Asia Culture Center


이 블로그의 리뉴얼과 블로그인(bloggin.com) 시절 블로그의 복원은 오래된 숙원 사업이었다.  클로드 덕분에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 이를 실현하게끔 명령어 구문을 짜는 일은 물론 그 전에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까지도. 사실 이조차 정확치는 않다. '원하는 바'란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고 대개 모르고 시작했다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중에서야 비로소 구축되게 마련. 처음에 막연하게 그리고 있었던 그 무엇인가란 아마도 이상에 가까웠겠으나 결과는 그보다는 비루한 그렇지만 어디까지나실존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그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현실, 이상과 현실의 접점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생성)인공지능 그리고/또는 거대언어모델에 의존하지 않고서 이렇게 자동기술/의식의 흐름만으로 한 문단을 써내려간 것, 실로 오랜만이다. 여기까지 쓰니 또 말이, 글이, 줄글이 끊긴다. 툭. 그리고 침묵. 마치 침묵으로 일관한 2년의 시간이 부족했다는 듯이. 엄마가 가끔 쓰는 표현대로 "벙어리 말문 트이듯" 봇물이 터질 줄 알았는데. 눈이 트인 심봉사에게는 잠 자는 시간도 아까웠을 텐데. 이 대목에서 몰리뉴 문제를 떠올리고 몰리뉴의 철자법을 환기하고 관련한 논설을 이어갈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관련해서 몇 줄 아니 몇 자라도 쓸 것 같으면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내용을 직접 확인해야 하나 몸도 마음도 이에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에, 접는다. 동시에 떠오르는 무수하고 다종다양한 생각들. 글쓰기는 이 공간적 사유의 습성을 그나마 어르고 달래서 --마치 데미우르고스가 형상을 수용하도록 코라-질료를 설득하듯-- 시간과 논리의 순서에 맞도록 정돈하는 거의 유일한 방책이었다. 이를 게을리했으니 사유가 정체한 것도 당연하다. 정체가 계속되는 동안 퇴보한 것도 당연하고. 

그러고 보니 수년 전, 아마도. 수십 년 전... 또 하나의 기억이 팝업창처럼 떠올랐지만 이를 줄글로 펼칠 생각을 하니 또 지난하고 아득해질 것 같아 관둔다. 그렇지만 문자가 모여서 문장이, 문장이 모여서 문단이 기계가 아닌 방식으로 "생성"되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으니 (과장을 보태면) 감개무량하다. "기계가 아닌 방식"? 그것이 "자동적" 혹은 "자율적"인 방식, 심지어 "기계적"인 방식이 아니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내가 이런 방식의 "자동기술"이나 번역을 좋아했던 것도 결국은 바로 그러한 "기계적"인 면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측면을 그 누구 아니 그 무엇보다 뛰어나게 수행하는 기계가 득세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배하게 될 세상이 오고야 말았으니. 불과 몇 년 사이에. 3년 전만 해도 바로 이곳에서 바드를 시연한 결과를 옮기며 갸웃했었는데 이제는 일상의 가장 소소하고 내밀한 고민까지도 제미나이와 나누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이런 이야기도 너무 진부해져 버렸다.

사유가 부재했던 지난 2년. 이곳의 공백은 그 부재를 증명한다. 이곳 뿐이랴. 이력서 또한 공백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 기간에, 오,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여러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른다. 그 거대한 사건들 사이를 비집고 솟아났던 사소한 순간들도. 눈이 시린 푸른 하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바위틈 사이에 피어난 들꽃, 반 년에 한 번씩,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꿈에서나 이룰 사랑이나 전생의 인연의 환생인 듯 주위를 맴도는 나비...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그 찰나의, 그렇지만 찰나이기에 지고에 이를 수 있는, 그런 행복감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이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 순간과 감정을 나눌 만한 재주가 나에게는 없는데, 있다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차피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끝나 있을 것이 인생인데, 하고 이내 체념하곤 했던 것이다. 

고대 원자론자들이 공백 또는 진공에 존재를 부여했던 것은 그것을 원자들이 운동할, 원자들의 운동을 가능케 할 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그런 점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닌. 실로 부재는 역으로 존재의 이유 따라서 필연성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여 일어나라(탈리다 쿰)"(마르코 5:41)! 그대가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는 것이 일어나지 않을,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1월 평가서 + 2월 계획서

날이 다시 추워졌다. 지난주 본가에 다녀올 때만 해도 날이 많이 풀려서 상대적으로 얇은 외투를 걸치고 기차에 탔는데, 도착 후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비가 오는 데다 바람 때문인지 쌀쌀하게 느껴지긴 했다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손이 곱아서 자판을 두드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추위는 핑계일 뿐.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단 추위 때문이겠는가. 더군다나 너는 추위를 좀처럼 타지 않는다고 떠벌이면서 주변의 감탄을 사는 일을 즐기지 않았느냐. 더구나 그 감탄에 "보기와는 다르다"는 말이 덧붙여지기라도 하면 한층 들뜨곤 하지 않았느냐. 추위는 핑계, 가공하고 가련한 핑계일 뿐이다. 이전에도 코로나면 코로나, 더위면 더위, 세상 어느 하나 핑계가 되지 않을 것이 없었고 그래서 핑계는 마를 일이 없었다.  그렇게 온갖 핑계의 변주와 향연 속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세월만 보낸 것이 벌써 얼마더냐. 그러는 사이에 방학도 다 지나가고 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방학이 말이다.

1월을 시작하면서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기필코 논문을 마무리해야 했다. 1월 중으로 적어도 한 편, 가능하면 두 편...이라지만 사실 한 편이라도 끝내면 다행인 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어쩌면 그조차도 끝내지 못할 거라는 예감까지도 진작부터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과 또한 예감대로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절반 정도는 끝낸(그보다는 끝냈다고 생각한) 면역 사유와 행성 사유 논문. 에스포지토와 라투르 두 인물의 사상과 둘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려던 것이 원래 계획이었으나, 라투르가 "행성 사유"라는 말을 직접 쓰는 것이 아니고 라투르보다는 차크라바르티와 육 휘가 라투르의 영향권에서 쓰는 말이기 때문에 좀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팬데믹이 두 사유의 연결의 필요성을 일깨웠음을 보이는 것이 관건. 조금만 집중해서 정리하고 종합하면 되거늘 그게 안 되어서 1월 첫 번째 마감을 놓치고 두 번째 마감마저도 놓치고는 오늘에 이른 것이다.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으나 일을 많이 벌인 것도 사실이다. 동료들과 이름하여 인공지능 세미나를 시작해서 인공지능 윤리나 그 밖의 이론/담론을 살피고 있다. 또 "제자"와 프랑스철학 세미나도 시작해서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읽었던 코이레 2차문헌을 읽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인문대 소식지나 잡지 기고문을 수정하는 데도 꽤 많은 공과 시간을 들였다. 거기에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논문 작성법 특강까지. 

그 와중에 1월 중순에는 1주일간 디지털인문학 겨울학교에도 참가했다. 애당초 목표대로 아마도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었던 듯한 "파이선"이 뭔지 대강 알고 실습까지 해봤다는 것으로 만족... 하기보다 이 방법을 내 필요에 맞게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이를테면 당장 번역서 색인 작업이라든지. 앱을 개발할 수도 있겠고. 그러나 네트워크 분석 등 "멀리서 읽기"라는 디지털인문학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고 인문학의 본령과 본분은 어디까지나 "촘촘하게 읽기" 즉 개념과 사상의 분석과 종합에 있다 할 것이다. 겨울학교 강사진 대부분이 이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 일을 적는다 해서 해야 할 일 또는 했어야 할 일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해야 할"일과 "했어야 할 일" 또는 "할 수 있었던 길"은 원래부터 가능태 같은 걸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 일"과 똑같이 그리고 동시에 생긴 일이다(베르그손). 오직 "한 일"만 있고 "한 일"은 "한 일"일 뿐이고 남은 것은 "할 일" 뿐. 아래에 그 일들을 적어보기로 한 것은 거의 전적으로 페이스북의 한 "친구"가 2월의 계획을 빼곡하게 적은 것을 보고는 경외심과 경각심이 생긴 탓이다.

2월 들어서 다른 건 몰라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다음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다룬 후 올해 안으로 완역하기로 한 디디-위베르만의 텍스트 번역과 다음 학기 학부 수업 교재인 두뇌보완계획 100. 각각 하루에 6쪽 및 3장씩 나가기로 했는데 전혀 손대지 못한 채로 일주일이 흘러 버렸다. 실은 지난주 아니 지난 주말까지도 1월 마감 논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던 탓...이라는 것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거기에다 조금 전 부주의로 과일향이 첨가된 비타민 음료를 들이키고 말았으니... 아직까지는 괜찮으나 조금이라도 반응이 올라치면 내일 아침으로 예정된 프랑스철학 세미나를 취소할 참이다. 오늘 아침 인공지능 세미나가 명목상으로는 내 본의는 아니었으나 사실은 그 누구보다 바라마지 않았던 나의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취소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그렇지만 과일이 들어가지 않은 비타민 음료를 겨우 찾고 또 판매처를 겨우 찾아서 10개들이 한 상자를 사다가 냉장고에 채워 놓은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손님용으로 단 한 병 남겨두었던 과일향 첨가 음료를 집어들어 마시고야 말았으니 기가 차도 한참은 찰 노릇인 것은 사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빨리 시작해야 한다.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1. 문제의 면역 사유-행성 사유 논문 완성 및 투고. 거절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이번에는 끝을 내야 한다. 두 가지의 저널 옵션이 있는데 일단은 완성이 우선. 2월 18일까지. 

2. 코이레 해제를 위한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사 논문. 일단 얼개를 짜고 견본으로 삼을 만한 "역자 해제" 탐색 및 탐독 중. 너무 많아서 탈이다. 게다가 너무 많이 보면 겸손을 넘어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역할모델과 선례와 범례야말로 다다익선. 그 밖에 관련 참고문헌 정리 그리고 기존의 쿤 번역서들을 참조해서 초벌 번역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2월 말까지.

3. 젠더연구소 학술대회 사회.  그냥 사회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사회만 보면 그뿐인 것도 아니라 준비가 필요하다.  2월 20일.

4. 여이연 강좌. 버라드의 물질이론과 양자역학과 영화 "오펜하이머" 등.  지난 가을 인문학 강좌에서 출발하되 한참은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당시 쓰려다 역시나 포기한 논문...의 일부는 이미 출간이 되었는데, 남은 부분도 내용상으로는 상당하고 중요성 또한 상당하다. 사실은 좀더 핵심적인, 그런데,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 비껴갔던 부분을 이제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2월 22일. 이걸 더 발전시켜서 3월 여성철학회에서 발표하고 4월 학술지 투고. 

5. 세계철학자대회 발표 신청. 세계철학자대회는 8월 로마에서 열리는데 사실 그보다 7월 빈에서 열리는 과학철학사 학회에 관심이 더 있었으나 발표 신청 마감. 세계철학자대회도 원래 1월 말까지였으나 3월 말로 마감이 연장되었다. 마감이 연장되기도 했고 번역서 자료 조사 차원에서 파리에도 들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지원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으나 뜻대로 될지... 주제는 ㄱ. 광기의 역사와 ㄴ. 코이레-메를로퐁티와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 중에서 고민 중. 3월 말.

6. 그 밖에 다른 학회들도 있고 또 지원사업도 욕심이 나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을 차라리 코이레-메를로퐁티 혹은 더 넓혀서 "고전시대" 연구로? 박사논문의 연장선상으로 말이다. 칸트, 라플라스, 콩트, 쿠르노, 베르그손, 푸앵카레... 영어 논문 출간을 목표로. 한편으로는 중복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베르그손 번역을 아카넷 고전번역에 지원해야 하는데 아마도 올해는 힘들 것이다. 아닌가? 올해 일단 내보고? 어쨌든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신진연구자사업은 지원은 3월 6일까지. 

... 이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단은 여기까지. 이미 지나친 감이 있다. 모자람만 못할 리만치.


Performance at (and around) Swiss Embassy

 Opening Event, May 2019





(부분)

전설의 수련, 수련의 전설

https://drive.google.com/uc?export=view&id=1lUByXVkjX1CFv5MTAacfBioC_4n-5ykNhttps://drive.google.com/uc?export=view&id=1NgwDYs0tPDrWAeHNBrBvDHpAuKf4z-FLhttps://drive.google.com/uc?export=view&id=1o5abjE0SvX-_o56h8g1YhdJu6i7wg0nbhttps://drive.google.com/uc?export=view&id=1Tadgx6jWgTMI1m1Fpul1DHrFAp8Vuhechttps://drive.google.com/uc?export=view&id=1YPV04wZQIVfK1e9BXZBGZKbkpKiCQQf5
춘천, 강원대 연적지
iPhone SE

지베르니 모네의 집에서도 저렇게 연못 한가득인 수련을 본 기억이 없다. 아니 수련 자체의 기억이 모네의 그림으로 본 것 말고는 없다. 시뮬라크르로 대체되었던 실재와의 조우. 그런데 조우한 실재는 다시 시뮬라크르로(위의 사진).

에드워드 윌슨은 1993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인류는 자살 성향을 띠는가?”에서 프랑스에서 전해 내려온다는 수수께끼를 언급한다. 연못가의 수련이 한 번 피어나기 시작하면 하루에 두 배씩 늘어난다. 30일 후 연못이 연꽃으로 가득 찬다면 연못의 절반이 채워지는 것은 언제인가? 정답은 당연히 29일째.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든 예다.

이렇게 급수적인 전개는 많은 종류의 위기와 재난에 적용될 수 있겠으나, 또 적잖은 위기와 재난이 돌발적으로 발생하며 그 전개 양상도 변칙적이어서 (가령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31번 환자의 등장과 더불어 확진자 수가 급증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늘 긴장과 경계를 늦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느라 힘이 빠져 정작 위기가 닥쳤을 땐 대처 능력이 없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해마다 아니 날마다 반복되는 이 순환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나도 좀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단 말이다.


위험한 소녀의 조용한 일갈


삼청동, 2019년 9월
iPhone 6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블로그다. 블로그를 방치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언어, 그리고 사유와의 불화 때문이었다. 아,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언어와 사유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호의존적임을.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사유란 자기모순이요 실현은 물론이고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할 말도 쓸 말도 없다는 건 생각이 없다는 것. 그러면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연구한다고 감히 나서 왔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다른 이유는 아이폰 6로 바꾼 후 마땅한 블로깅 앱을 찾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번에 큰맘 먹고 3유로가 넘는 전용 앱을 마련했다 (올케 ㅎ에게 감사).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도, 다른 이유나 핑계나 찾고 뭐고 할 것 없이 무조건 쓰자. 


x

그리고 그에 앞서, 혹은 그와 더불어, 읽자. 이 역시 부끄러운 일이지만 뭐든 제대로 읽은지가 너무도 오래 되었다. 

위의 사진은 지난 9월의 볕 좋은 어느날, 엄마와 삼청동 수제비를 먹고 나오는 길에 찍은 것이다. 보고는 요전 블로그에서 성황리(?)에 진행하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콜렉션이 생각나는 한편으로... 부끄러웠다. “위험한 여자”인지 너무도 오래. 다시 위험해지라, 소녀는 내게 그렇게 일갈하고 있었다.

Madame la Présidente, Madame et Messieurs les membres du jury

Madame la Présidente, Madame et Messieurs les membres du jury,

Je voudrais d’abord remercier les membres du jury pour avoir accepté de lire ma thèse et de participer à sa soutenance, ainsi que mon directeur de thèse, Monsieur Szczeciniarz, pour son accompagnement et son encouragement qui m’ont permis de mener ce travail à bon terme.

Mes remerciements vont également à ma famille et mes amis pour leur présence aujourd’hui, mais aussi pendant mes années de thèse. Pendant des années bien longues, je dois préciser, puisqu’il m’a fallu un temps bien considérable pour arriver jusqu’ici.

La thèse que j’ai l’honneur de présenter devant vous s’intitule «Du monde mécanique à l’univers physique. Pour une histoire de la cosmologie à l’âge classique, autour de Leçons sur les hypothèses cosmogoniques de Henri Poincaré (1911)».

Je viens de vous parler du temps. S’il a fallu tant de temps pour terminer cette thèse, ce ne serait pas seulement par l’ampleur et la difficulté du sujet que j’avais choisi, mais aussi par la nature même de ce sujet. Mon sujet, vous l’auriez remarqué, est double, Poincaré et la cosmologie, qui réunit deux thématiques qui ne sont pas très favorables à la gestion du temps. Dans un premier temps, j’avais à faire face au temps astronomique, voire cosmologique, au point d’ignorer un peu le temps à l’échelle humaine. La faute serait aussi, au moins en partie, à Poincaré lui-même, qui ne s’effrayait pas de parler du temps infini, et s’intéressait bien peu au passage du temps à court terme au point d’oublier parfois de dater ses écrits, au dam des historiens.

Le choix de ce sujet tient à des rencontres personnelles ainsi que textuelles. La première rencontre avec la première phrase des Leçons était comme un coup de foudre. «Le problème de l’origine du Monde a de tout temps préoccupé tous les hommes qui réfléchissent ; il est impossible de contempler l’Univers étoilé sans se demander comment il s’est formé.»

Longtemps je me suis intéressée au problème de l’origine du monde. Comme tout le monde peut-être, pas plus, tout simplement parce qu’il est impossible de faire autrement en présence du ciel étoilé devant ses yeux, nous vient de dire Poincaré.

Après avoir fait des études en physique et en philosophie à Séoul, je voulais continuer d’étudier la philosophie des sciences, mais dans une autre direction et dans une autre tradition que le courant analytique ou anglo-saxon dominant à l’époque en Corée. Pour mon mémoire de master en philosophie, je me suis préoccupée de l’analyse du langage utilisé en mathématiques. Mon analyse portait entre autres sur l’argument de l’indispensabilité des mathématiques dans les sciences, conçu et développé par Quine et Putnam en faveur du platonisme à l’égard du statut ontologique des objets mathématiques.

Je crois avoir croisé les livres de Poincaré en traduction coréenne dans mes égarements à la bibliothèque. Mais à ce moment-là son nom ne me disait pas grand-chose, en tout cas beaucoup moins que ceux de Bachelard, Canguilhem ou Foucault. J’avais une admiration profonde pour ces héros de l’épistémologie française ; j’adorais son approche versée en histoire, son intérêt au concret, ainsi que son style littéraire. C’est ce qui m’a amenée à entamer des études en France.

Ce n’était qu’en France que j’ai découvert les Leçons de Poincaré. C’était un pur hasard que j’ai été conduite aux Leçons en version numérisée sur le site Gallica.fr. Pour le mémoire de DEA, je cherchais un peu maladroitement sur le catalogue de la BNF, sans même savoir qu’il existait une «science» qui a pour objet spécialement la naissance du monde et qu’il y avait un mot qui désigne cette science qu’est la cosmogonie. Le livre de Poincaré a retenu mon attention, d’abord par son titre où paraissait le nouveau mot que je venais d’apprendre, et, surtout, par son auteur, que je commençais à connaitre à peine et de qui je ne m’attendais pas à un livre de cosmogonie d’après le peu que je savais de lui

Mon objectif était de contribuer à une histoire de la cosmologie dans la lignée de Koyré (qui a couvert de Copernic jusqu’à Newton) et Merleau-Ponty, Jacques (de Laplace à Eddington en passant par Einstein), en construisant deux objets que j’ai nommés «monde mécanique» et «univers physique». D’un autre côté, j’avais l’intention de montrer que Leçons, assez connu et souvent cité encore aujourd’hui, sans pour autant avoir fait l’objet d’un travail approfondi, mérite une attention pour l’histoire des sciences, plus précisément de la cosmologie, ainsi que pour les études poincaréennes.

Mon travail a procédé en deux temps. Dans un premier temps, l’histoire de la cosmologie à l’âge classique de Descartes jusqu’aux cosmogonistes au tournant du vingtième siècle, cités dans les Leçons, en passant par Kant, Laplace, Comte et Cournot. Dans un deuxième temps, une étude systématique sur l’œuvre de Poincaré. Puisque Leçons est l’un de ses derniers ouvrages, il m’a fallu parcourir toute son œuvre. L’immensité de cette œuvre oblige, j’ai dû me borner à une de ses parties. Je me suis concentrée sur la partie philosophique de cette œuvre, écrite à diverses occasions et recueillie par les propres soins de son auteur dans les livres comme La science et l’hypothèse.

Dans ma tentative d’une étude systématique de son œuvre, je crois avoir trouvé une réponse possible à cette question difficile, celle de savoir s’il y a un système philosophique ou une philosophie tout court. C’est une philosophie qui se caractérise par la systématicité qui n’est pas dogmatique ni statique, mais prend en compte la diversité et la dynamique des sciences.

Je voulais montrer également qu’elle ne manquait pas d’éléments cosmologiques. Les pistes, trois thèmes-problèmes récurrents dans ces écrits se trouvent aussi «ouverts», pour ne pas dire «dirigés», vers l’univers : le mécanisme, la loi/le principe et l’espace. Si elle n’aboutit pas à une théorie ou un modèle rationnel de l’univers, elle n’en a pas moins de place dans l’histoire de la cosmologie. Quelque part entre la fin de la cosmologie classique et la veille de la nouvelle cosmologie mise en place par Einstein en 1917.

Au cours du travail, j’ai connu plusieurs changements de problématique et de méthode, dont certains étaient plus ou moins radicaux. Tout au début, j’avais l’intention de rapprocher Poincaré de la cosmologie moderne et de le promouvoir, pour ainsi dire, au rang des «précurseurs» des théories de l’univers telles qu’on les connait aujourd’hui. Pourtant, il m’est arrivé de me persuader progressivement que Poincaré faisait partie de la science de l’univers à l’âge du positivisme, comme le dit le titre de l’ouvrage de Merleau-Ponty de 1983. Cette science, si elle n’a pas abouti à une cosmologie proprement dite, sinon la non ou la quasi cosmologie comme Merleau-Ponty caractérisait, avec un goût de formule qu’il avait, constitue un moment non moins significatif de l’histoire de la cosmologie.

Avec cette nouvelle perspective venait le besoin d’une nouvelle méthode. La méthode me préoccupait tout au long du travail, et le résultat en est les «discours préliminaires» qui précèdent chacune de deux parties principales de la thèse. Après plusieurs expérimentations et inversions du plan de thèse, j’ai fini par choisir l’archéologie comme méthode, faisant référence à Foucault. J’ai essayé de suivre les consignes données par l’auteur de L’archéologie du savoir. Privilégier la contemporanéité et la simultanéité de théories hétérogènes, au lieu de chercher à en établir l’homogénéité et la continuité dans le temps, tout en assumant leur discontinuité voire leur rupture à travers de différentes époques, afin de relever leur condition de possibilité, à la fois a priori et historique.

Ce qui m’a amenée à une sorte d’archives de la cosmologie à l’âge classique. Ces archives ont été réunies dans la première partie de la thèse et enrichies dans la deuxième partie, avec l’œuvre de Poincaré. Tout ceci revenait à faire les archives des Leçons de Poincaré qui est aussi, d’une certaine manière, une sorte d’archives des hypothèses cosmogoniques, plus démodées que prometteuses, plus «périmées» que «sanctionnées» au sens bachelardien de ces termes.

En somme, ces archives ne nous renseignent pas grand-chose sur l’origine du monde, pas plus qu’elles n’enseignent la science de l’origine du monde. Sur ce point, je dois rectifier ce que j’ai écrit dans la thèse. J’ai dit, à la page 60, que l’intérêt pour l’histoire s’encadrait strictement autour de l’enseignement chez Poincaré. Mais, en fin de compte, ce ne serait pas tout à fait le cas. Son exposé n’est pas tout à fait pédagogique : en le lisant, on n’a pas le sentiment d’être enseigné ou renseigné, on se sent plutôt interrogé et intrigué ; on a un peu du mal à suivre ses idées, parfois plus associées par analogie qu’elles soient enchainées logiquement. Il ne nous apprend pas tant sur l’origine du monde, mais nous incite à réfléchir sur cette question elle-même en tant que problème cosmologique, l’esprit qui l’aborde et la quête à la solution. Bref, c’est une leçon de philosophie que Poincaré nous a laissée dans ses dernières leçons.

Les premières phrases que j’ai citées tout à l’heure et qui me poursuivaient pendant tout ce temps s’accompagnaient d’une autre phrase non moins mémorable dans La valeur de la science : «La pensée n’est qu’un éclair au milieu d’une longue nuit. Mais c’est cet éclair qui est tout.» En fin de compte, les lois de la nature dans le ciel étoilé et les lois des morales dans mon cœur ne sont pas si séparées comme chez Kant, pas plus que la raison et le cœur comme chez Pascal, si c’est le cœur qui touche et incite la raison à réfléchir.

Poincaré terminait ses Leçons par un point d’interrogation. Je pourrais terminer autant, même plus : pas par un point d’interrogation, mais plusieurs, avec quelques pistes de travail à venir. D’abord un travail archivistique autour des Leçons, que ce soit relatif au cours même de 1910–1911 à la Sorbonne ou à l’édition chez Hermann, avec l’ajout des matériaux comme les procès-verbaux du conseil de l’université ou le contrat avec l’éditeur pour ce qui concerne la seconde édition. Une étude comparative plus approfondie serait envisageable aussi, entre Poincaré et d’autres auteurs, notamment Bergson et Mach. La connexion entre Poincaré et Bergson me parait d’autant plus intéressante et significative qu’il y a plus de points communs et comptables qu’on le croit, alors qu’elle est relativement peu étudiée, en tout cas moins que la confrontation entre Bergson et Einstein, ou encore beaucoup moins que le rapport Einstein et Poincaré.

Après bien des années d’études, j’ai fini par apprendre qu’une thèse de doctorat est, de par sa nature même, un travail en cours, toujours en construction, une ébauche du travail à venir. Raison de plus, une seconde édition est prévue pour cette thèse, exactement comme les Leçons de Poincaré d’ailleurs, même si ce n’est pas pour la même raison : elle s’impose, pas par le «succès» dans les librairies comme c’était le cas des Leçons, mais par un second dépôt après la soutenance, désormais obligatoire, d’après les nouveaux règlements du doctorat. J’aurai donc la possibilité de tenter une seconde chance et de donner une deuxième vie à cette thèse, possibilité dont Poincaré ne pouvait pas tirer le profit au maximum. Tous vos commentaires, critiques et suggestions, me seront donc extrêmement utiles.

Je vous remercie de votre attention.


Texte de présentation lu le 7 juillet 2018

They lived where I live... lived

Paris 16e, fin 2017

Henri Bergson (1859-1941)
21 boulevard de Beauséjour

Marcel Proust (1871-1922)
96 rue La Fontaine

Claude François (1939-1978)
46 boulevard Exelmans

논문, 논문, 논문... 아직도!




"잔느는 결국 논문 끝냈다니?"
"그게... 끝내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할머니, 잔느 언니는 왜 늘 논문만 써요?"
"그건 아무도 모른단다."



"파티 하시나 봐요?"
"아뇨. 제가 집에 처박혀서 논문을 끝내려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필요한 식량을 구비하는 거랍니다."
"아, 논문 쓰세요? 저도 젊었을 때 하나 썼어요. 
고생물학으로요. 그런데 잘 안 풀려서..."

 
Tiphaine Rivière, Carnets de thésard, Seuil, 2015
 그리고 다시 보는 카프카의 "계단"생각
 

빨주노초파남보




Villa Dufresne et autour, 2016-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