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금요일

Me and you and...

blogin.com · 2005-10-21

난 포스팅을 할 때마다 글자 색깔을 고르는 일에 꽤 신경을 쓰곤 한다. 사진이나 글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색을 선별한답시고 나름대로 애를 쓴다는 게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워낙 감각이 없는 터라서 결과에 별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 포스트에서만큼은 선택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심지어 이렇게 말할 자신도 있다 : 분홍이 아닌 다른 색깔로 이 영화,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 (Miranda July, 2004)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

감독 자신이 분한 주인공 크리스틴은 비디오/퍼포먼스 아티스트다. 요양원 노인들을 위해 운전 봉사를 하기도 하는데, 그곳서 사귄 할아버지와 함께 백화점 구두 매장에 갔다가 매장 직원인 리처드를 만난다. 리처드는 한달 전부터 부인과 별거에 들어간 뒤 아들 둘과 살고 있는데, 왼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부인과의 "이별"을 "기념"한다는 명목 하에 자신의 왼손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던 탓이다. 그것도 아들들이 보는 앞에서. 크리스틴은 "발에 맞지 않는 구두 때문에 고생하기에 당신은 너무 고귀한 사람"이라며 혹하게 만들어 결국 예정에 없던 신발을 구매하게 만든 리처드에게 호감을 느껴 그 이후에도 계속 그가 있는 매장의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겠다시피, 해피엔드.

물론 두 주인공 간의 우연한 만남-갈등-갈등 해소가 전부는 아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들, 그러니까 리처드의 두 아들들, 리처드의 직장 동료, 리처드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10대 소녀들, 이웃집 소녀, 크리스틴의 친구인 할아버지와 그의 애인 등등. 심지어 이웃집 소녀가 어항 가게에서 산 금붕어까지. 크리스틴을 별 볼일 없는 풋내기 작가로 생각하고 냉대했던 미술관 큐레이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주인공이나 다른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이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이웃집 소녀와 더불어 내면의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를 포함, 이 모든 조연들은, 주인공들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바로 그 점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발한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외롭고 섬세하고 상처입기 쉬운 영혼들이다. 그런 그들이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상처가 생겨도 아무렇지 않도록 면역력을 키우는 것. 그렇지만 그들은 항체를 만들만한 힘조차 없이 한없이 약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서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고 입은 상처는 서로서로 보듬는 것이다. ))〈〉((, 이렇게 말이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없이 따뜻하다. 거창한 인류애나 쓸데없는 동정이나 연민, 혹은 가족주의/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말끔하게 싹 걷어낸,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런데 그 시선은 무턱대고 따뜻하지 않다. 감독 역시 그런 그들을 냉정하거나 우월감 혹은 동정심에 젖어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여리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 큰 매력이다. 그래서 소박하게 착하기만 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이 착하기 짝이 없는 영화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내 미적 감각을 신뢰할 수 없긴 하지만. 어여쁜 감독 언니로 인해 호감도가 상승했음을 부인하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74년생(!)인 그녀는 팔방미인, 이 단어의 모든 내포/외연을 스스로 체현하고 있는 사람이다. 인정받는 퍼포먼스 아티스트이자 단편집 출간을 앞두고 있기도 한 소설가인가 하면, 영화는 또 영화대로, 이 첫 작품으로 꺈느, 선댄스를 비롯, 상도 여러 개 받았으니. 그 뿐인가? 그녀와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틴 사이에는 한 치의 거리도 없을 것임에 분명한데, 그렇다면 그녀는 성격마저 좋은 인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니, 세상이 불공평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인물 리스트에 그녀를 추가할 수밖에.

))<>((
forever



1. 음악도 좋다. 특히 코디 체스트넛의 노래. http://elginpark.com/meandy ... usite1.html>여기 에 가면 들을 수 있다.

2. 위의 그림은 영화 홈피에 소개된 공식 포스터 중 하난데, 최종적으로는 선택되지 않은 것 같다. 난 시중에 나와 있는 것보다는 이게 맘에 든다. 샛분홍에 딱 저 이모티콘과 "포에버"만 찍혀 있는 영화 포스터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3. 줄라이의 http://meandyou.typepad.com/>블로그 에 가니 그녀가 시사회를 위해 파리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난 그 사진에서 배경으로 쓰인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다른 극장에서 볼까 하다가 그곳으로 간 거였는데. 그렇다. 이것은 자랑이다. 그 누구도 자랑이라고 생각지 않겠지만.

4. 줄라이가 시나리오를 쓴 다음 영화의 제목은 "Are You the Favorite Person of Anybody ?"란다. 긴 제목을 좋아하나 보다. 어쨌든 제목 예쁘다. 이번 것도 그랬고.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