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시네마에서 마야 데런(Maya Deren)의 예술 세계를 그린 다큐멘터리 《마야 데런의 거울속 In the Mirror of Maya Deren (2002)》을 봤다. 추위가 유난히 맹렬했던 지난 주 금요일에. 사실은 볼 생각이 아니었던, 보려던 다른 영화를, 영화관을 못 찾아서 보지 못하는 바람에 꿩대신 닭으로 삼아 본 영화였는데, 이 영화와 그 다음에 바로 이어서 본 《클린》은 꿩 이상의 닭이 되고도 남았다.
그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나로서는, 키예프 공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을 따라 뉴욕으로 망명한 뒤 선구적인 실험 영화 감독--루이 브뉘엘과 동급으로 취급되는--이자 탁월한 인류학자--아이티의 신화와 전통 의식인 부두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로 이름을 날린 이 멋진 여성에게 그저 감탄하고 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저렇게 아름답고 열정적이고 재주많고 똑똑한 언니를 여지껏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중간에 잠깐씩 비춰진 그녀의 작품들 역시 그러한 감탄과 통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실, 만약 그녀가 "마야"라는 예명에 그 이상 잘 어울릴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외모를 갖지 않았더라면 그 정도로 감탄하거나 통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초현실주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각종 영화 및 기타 예술 이론들에 깊이 천착한 듯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그러한 이국적인--동/서양 어디에도 속한 것 같지 않은-- 외모를 천박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이질감이 들지 않게 담아내는 솜씨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나르시시즘이다. "작가"들이 은근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자기 합리화 경향이나 자기애 성향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조차도 무릎을 그저 꿇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런 거다. 어떻게 하면 카메라를 통해 사람 몸의 움직임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녀의 주된 관심사였는데, 그러자니 그 누구보다 '몸'을 '몸'으로 잘 표현할 줄 아는 그녀 자신을 카메라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래서 고다르의 "카메라는 여자들을 좋아한다"는 말은 데런에게로 와서 참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명제가 된다.
흑.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지. 그리고 그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들이 세상엔 왜 이리도 많은지.
사진은 MoMA' target='_son'>http://www.moma.org/collect ... _media_016.html>MoMA 에서 가져왔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