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6일 목요일

꿈의 해석

보통 chauffe-plat 라 불리는 작고 둥글고 납작한 초. 실제로 상 위에서 음식을 살짝 데우는 데에 쓰이지만, 나는 주로 향유를 피울 때 쓴다. 겨울이라 환기가 녹록치 않은 요새 특히 자주 켜곤 했다. 

꿈에서 같은 초를 켰다. 그것도 침대 위에서. 그것도 침대 위에다가. 게다가 이불이 초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언제라도, 당장이라도 불이 옮겨붙을 수 있는 상황. 아니나 다를까. 초 하나가 이불에 옮겨 붙었다. 다행히 이 불은 다른 이불(불-이불!)로 덮어 끌 수 있었다. 그렇잖아도 처음에 켤 때부터 불안했던 마음이 극도로 초조해져 다른 초도 서둘러 입김으로 끄기 시작했다. 그런데 꺼도 꺼도 켜진 초가 계속 나왔다. 언제 켰고 또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아직은 드문 드문 보이는 정도지만 그렇게 언제까지고 계속 나올 것 같았다. 입김이 모자라고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른 초 하나가 이불로 타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 불도 요행히 끄긴 했다. 그러나 얼마나 더 끌 수 있을까. 언제까지 시간을 끌 수 있을까. 

깨고 나서 생각했다. 현 상황에 대한 암시인가? 아니면 예지몽인가? 초를 하나둘 씩 끄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불길이 번지고 정말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 전에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만이라도 보지하는 편이 옳지 않겠는가. 분명한 것은 초를 켠, 그리하여 상황을 자초한 장본인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초 한두 개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랬다면 얼른 훅 하고 불어서 끄면 됐을 테니까. 그러나 나도 모르는 새 초는 계속해서 켜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입김만으로는 모자랄 뿐 아니라 자칫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위험 속에 구원은 자라나니"라는 싯구로 자조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하고 위태로운 상황. 정말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히 떨치고 이불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것일까? 왜 그러지 못하는가? 왜 이불 밖으로 나가질 못하는가? 이제는 이불 속이 아늑하기만 한 것도 아닌데. 이불 밖 세상, 그 세상에서 헐벗은 나를 마주하고 헐벗은 그대로의 나를 내보일 것이 두려워서?

그리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 완전히 상반된 해석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약간의 낙관주의와 희망적 사고를 첨가하면. 희망의 불씨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 꺼져 들었나 싶으면 또 어디선가 나타나 이불 밑 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히는 촛불. 그 불에 타들어가도 좋겠다. 그리하여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면. 실은 기만이요 허상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2015년 2월 21일 토요일

Fortune Cookie Messages for the New Year

음력설을 맞아 열어본 행운의 과자에서 나온 메세지.
Demain, en étant aimable, vous ouvriez toutes les portes.
앞으로 친절해져라. 모든 문이 열릴 것이다. 친절해지는 것까진 좋다. 그렇다고 쉽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문 뒤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기보다는 두렵다면?
 
Un nouveau parfum pourra vous faire rêver.
새로운 향수가 당신을 꿈꾸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꿈은 충분히 꿨다. 그러니 향수는 패스.
  
Un vide sera bientôt rempli.
조만간 공백이 채워질 것이다. 아멘. 
Vous êtes doué pour mettre de l'ordre dans le désordre.
당신에게는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재능이 있다. 즉 정리정돈을 잘한다는 말. 오, 내겐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말인지. 
 
Bravo ! Quel que soit le degré de difficulté de la situation, vous trouverez la solution.
브라보! 상황이 얼마나 어렵든지 간에 당신은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아멘.
 
Vous faites un tabac.
직역하면 담배를 만든다는 뜻인데, 주로 성공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즉 당신은 성공한다. 아멘.

2015년 2월 18일 수요일

베토벤 2중주와 4중주

몇 해 전부터, 해마다 겨울이 끝나가는 이맘 때쯤이면, 베토벤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봄"을 자주 들었다. 에릭 로메르의 <봄 이야기>가 그 효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들을 때면 이 곡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자동으로 상기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영화의 레퍼런스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감상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주로, 커플 사이의 대화, 혹은 좀더 일반화하면, 어떤 동반자 관계가 연상되곤 한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각각이 각자의 악보를 따라서 독립적인 행보를 밟는데, 그 두 행보가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자아내는 것이다. 주부 멜로디를 이끌어감에 있어 둘 중 어느 한 악기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음색으로 치자면 아무래도 바이올린이 부인이고 피아노가 남편에 가까울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 그 반대는 아닐까, 따져 보다가 내린 결론 : 남녀 성역할이 아니라 성격이나 소질로 구분해야 할 문제다. 바이올린이 좀더 외향적이고 자기주장 및 표현이 강한 쪽이라면, 피아노는 내향적이고 좀더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쪽. 각 구성인자가 무엇이고 어디에 대응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둘 사이의 관계다. 독립적이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는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그리하여 상호불가분한.

그러다가, 작년, 같은 베토벤의 현악 4중주를 접했다. 매개가 된 것은 역시나 영화였는데, 이번에는 고다르였다. 작년 그의 신작 개봉을 앞두고 국영 라디오 방송국인 프랑스뮤직에서 마련한 특집 방송을 통해, 그가 베토벤, 특히 현악 4중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실제로 <결혼한 여자 Une femme mariée> 등의 작품에서 사용되었음도. 물론 고다르 특유의 몽타주 기법을 거쳐 "변주"된 형태로.

그 뒤로는 기회가 닿는대로 베토벤이 남긴 16개의 4중주곡들을 들어보고 있는 중. 아직 전체를 들어보기는커녕, 이것 저것 무차별적이고 비체계적으로, 심지어 한 곡도 모든 악장이 아니라 이 악장 저 악장을, 이 악단 저 악단의 연주로 들은 게 전부. 그래서 일단은 누구의 연주가 됐든 간에 전집을 갖추고서 차례로 들어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얼마 전 시립도서관의 메디아테크에서 줄리어드 4중주단이 녹음한 전집을 발견, 그 꿈을 이룰 날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는 총 8장의 음반 중 마지막 두 음반에 수록된 13번부터 16번까지 옮겨놓고 들어본 상태. 그 중에서 15번(A minor, Opus 132)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2악장은, 아, 8분 51초의 은총.



3악장도 그에 못지 않다.  위키에 따르면 이 악장은 베토벤이 중병을 앓다가 고비를 넘긴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완성, "감사의 성가(Heiliger Dankgesang)", 라 이름했다는데, 과연 그렇다. 2악장이 알레그로 마 논 탄토, 빠르되 너무 빠르지 않게, 경쾌하다면, 3악장에서는, 몰토 아다지오, 아주 느리게, 그래서 다소 힘이 빠졌거나 숨을 죽이는 듯한 긴장이 이어지는데, 그러다가 중간에 한두 번, 모든 악기들이 일제히 나서서 그 긴장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의 순간이 있다. 처음 제1 바이올린을 제외한 다른 악기들이 나서 길을 터놓는 동안, 트레몰로로 다소 조심스럽게 따라가던 바이올린이 마침내 다시 자신감을 얻은 듯 힘차게 다시 주부로 올라서고, 그리하여 다같이 환희에 찬 송가를. 그러다가 4악장, 알라 마르치아 아사이 비바체, 행진곡처럼 힘차게, 그리하여 실제로 힘차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2중주에 비할 때, 4중주에서는 바이올린이 아무래도 수적으로도 우세하니만큼 주도적이지만, 비올라와 첼로도 단지 보조적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선율의 구성에서 못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가족 형태와의 유비를 계속하자면, 커플이 새 구성원을 맞은 뒤에 구축한 4인 가족 체제랄까. 이렇게 얘기하면 동성애 결혼 반대 진영에서 내세우던 전통적 가족상이 떠오르겠지만, 꼭 이성애 부부와 두 자녀의 구성일 필요는 없다. 엄마 둘에 두 자녀, 혹은 아빠 둘에 두 자녀, 그 밖에 다른 조합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다. 나의 경우,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한 발짝 물러난 뒤, 이제 막 무대에 등장, 한창 극을 이끌어가는 중이거나 앞으로 이끌어갈 후속세대를 바라보는, 동시에 조용하게 지지하는, 장년세대를 연상하곤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손주 둘을 무릎에 올려놓고 그 재롱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두 노부부(사실 이 인상의 원형은 비틀즈의 노래 "When I'm Sixty-Four"에 있는데. 일종의 청혼가이자 혹자에 따르면 결혼장려가이기도 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 또한, 아, 사람들이 이래서 결혼이란 걸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변이 바로 이것이었다 : "너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거야 ... 손주들을 무릎에 올려놓고..."). 이런 생각을 하며 들으면 비올라와 첼로 파트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내 파트가 될 날이 점점 가까워져설까.


2015년 2월 15일 일요일

돌아서야 비로소, 계단생각(esprit de l’escalier)

<아멜리 풀랭> 중 한 장면. 아멜리가 사는 몽마르트르 근처 아파트 건물 1층에는 식료품 상점이 있다. 이 가게 주인은 하나 뿐인 점원 뤼시앙을 못살게 구는 악취미를 가졌다. 특히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준다. 뤼시앙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만큼 더더욱 주인이 늘 못마땅했던 아멜리. 늘 뤼시앙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주인에게 던질 톡 쏘는 한 마디가 아쉽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기회가 왔다. 손님이 아티초크를 주문하자 최상품으로 고르기 위해 야채를 하나 하나 어루만지는 뤼시앙을 보고 또 주인이 나무란다. 저 녀석 채소 다루는 꼴 좀 보라는 둥, 야채보다 나을 게 없다는 둥, 아티초크랑 친구나 하라는 둥...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멜리의 등 너머로 들리는 미지의 목소리. 돌아 보니, 건너편 건물, 반지하 창문에서 누군가가 대사를 귀띔하고 있다. 마치 연극 무대의 프롬프터처럼. 게다가 아멜리가 늘 바라마지 않았던 바로 그 적재적소의 대꾸다. 남은 일은 그가 알려준 대사를 그대로 옮기는 일 뿐. "아티초크는 그래도 마음*이라도 있죠. 아저씨한테는 없잖아요?" 손님들은 박장대소하고, 주인은 제대로 한 방 먹은 표정이고, 뤼시앙은 미소 짓는다.

*아티초크나 배추 같은 채소에서 겉잎을 떼고 남는 속알맹이를 일컬어 coeur라 부른다. 이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심장 혹은 마음. 마음이 자주 바뀌거나 바람기가 있는 사람을 두고 "마음이 아티초크 속 같다(avoir un coeur d'artichaut)" 하기도 한다.

돌아서야 비로소 생각나는 말. 딱 그 순간에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후회할 땐 이미 늦었다. 순발력이 부족한, 그리고/또는 이미 지난 일을 반복 재생하고 몇 번이고 곱씹으며 대안 각본을 구상하며 자책하기를 일삼는 악취미를 가진 나 같은 경우라면 자주 겪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사후의, 이미 늦어버린 후에야 대응하는 경우를 가리켜 "l'esprit de l'escalier"이라 한다. 직역하면 "계단의 정신". 순간적으로 멍해진 나머지, 헤어지고 문 닫고 걸어나와 계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어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는 상황. 계단에서 되찾은 정신. 의역하자면 "뒷북"도 가능하겠으나, 모종의 후회나 회한 등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것 같다.

불어판 위키에 따르면 이 표현의 창시자는 놀랍게도 디드로다. 「배우의 역설 Paradoxe sur le Comédien 」(1773) 중, 한 연회에서 누군가의 예상치 않은 반격에 할 말을 잃었던 본인의 일화를 술회하면서. "나같이 섬세한 사람은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혼란스러운 나머지 계단을 다 내려와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곤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수없이 겪었고 또 앞으로도 겪을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문장의 저자가 기지와 재치에 있어서라면 역사상으로 손꼽힐 만한 위인이라니. 우선은 놀랍지만 또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루소도 <고백록>에서 "계단정신"이란 표현을 직접 쓴 건 아니지만 비슷한 정황을 묘사했다는 사실. 파리 상인에게 무언가 불쾌한 일을 당한 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못하다가 파리를 떠나 한참을 간 뒤에야 "당신 목구멍에나 넣으시지, 이 파리 장사꾼아"라고 외쳤다는 한 사부아 공작의 일화를 전하며 그는 말한다.  "이건 내 얘기다."

그러나 사실 루소의 계단정신은 디드로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디드로의 경우는 정신이 순간적으로 마비되었을 뿐 잠시 후, 즉 계단을 다 내려갔을 무렵이면 회복되는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루소의 증세는 좀더 만성적이고 근본적이다. 그는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노라 말한다. 괄괄하고 열정이 넘치는 기질, 그리고 기민하지 못하고 두서가 없는 사유 패턴. 그 때문에 늘 때를 놓치고 나중에 가서야만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슴(coeur)"과 "정신(esprit)"의 분리에 대해 말한다. 느낌(sentiment)과 생각(idée)의 차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 가슴과 정신이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할지도 모른다. 느낌은 번개보다 더 빠르게 내리닥쳐 영혼을 가득 채우곤 한다. 그러나 빛을 밝히는 대신에 불태우고 눈멀게 한다. 모든 것을 느끼는 동시에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쉽게 화를 내는 동시에 좀 아둔하다. 냉정을 되찾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을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내게 기민하고 예리하며 섬세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즉흥적 기지도 얼마든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자리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놓은 적이 없다. 대화가 편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꽤 화려한 화술을 구사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순발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그에 더해, 하나의 문제에 대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생각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 감상이 풍부한(sentimental) 동시에 앙심으로 가득(ressentimental)하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발언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대화, 나아가 인간 사이의 소통이란 얼마나 힘든 행위였을까. 그런 행위의 장인 사교계, 나아가 인간 사회는 얼마나 괴로운 공간이었을까. 역사상 가장 유려한 문장가 중 한 명인 그였던 만큼 본연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 사이의 간극을 크게 느꼈으리라.

그러나 결국은 인정욕의 좌절이고 인정투쟁의 실패인가. 디드로건 루소건 앞서 후회나 회한이라 했지만 결국 그 기저에는 상당한 자기애 및 자아도취가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둘 다 결과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 타인으로부터 기대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바로 그 기대치를 애당초 너무 높게 설정한 데에 문제의 근본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음은 발렌타인 기념 계단생각.
  1. 언발렌타인 (One day, a un-Valentine day, which is, like un-birthday, every other day). "당신의 그 매력은 어디에서 왔나요?" 도서관에서 만난 낯선 이로부터 받은 질문. 아마도 그 의도는 출신 혹은 국적을 묻는 가장 평범한 것이었을 텐데, 이를 이렇게 완곡하고도 매혹적인 방식으로 번역하는 정성과 그야말로 재치를 발휘한 그에게 무안을 준 것은 두고 두고 미안하고 생각할수록 아쉽다. 전에도 여기에다 이에 관해 한 번 적은 적이 있는데, 또 이렇게 반복하고 있는 걸 보니 참 많이 아쉬웠나 보다. 그때 이렇게 답했으면 좋았을 것을 : "글쎄요. 아마도 내면에서?"
  2. 발렌타인 전날 (Valentine's Eve, which was yesterday). "어떤 용도로 드실 건가요?" 포도주 가게에서 받는 의례적인 질문. 질문은 의례적이나 질문자는 포도주 가게 주인 혹은 점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젊고 세련된, 뭐랄까, 전형적인 파리지엥 같은 인상이었다. 원래 생각했던 용도는 카망베르 처치(!)용이었고 그대로 말했는데, 역시나 돌아선 뒤에서야 떠오른 답 : "발렌타인에 혼자 마시려고요."
  3. 발렌타인 (Valentine's Day, which is today). 내 앞의 아가씨가 계산대 점원에게서 튤립 한 송이를 받고 고맙다고 인사한다. 발렌타인 기념 행사인가보다. 그래서 나도 고맙단 인사를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값을 치루었는데, 저 계산대 점원 아가씨, 앞 손님과는 달리 내게는 그냥 고맙다, 잘가라,란 의례적인 인사만 할 뿐이다. 그때 하고 싶었던, 해야 했던, 말 : "저는 안 주세요?" 이건 사실 뒤돌아서 생각난 건 아니고, 그 자리에서도 생각은 했는데, 그 얘기를 하자니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관뒀다. 그리고는 도서관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어차피 받았어도 도서관에 들고 가려면 번거롭기만 했을 거라고.
마지막은 계단생각보다는 신포도 논법에 가까운 사례라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신포도라는 이름의 사후 정당화/합리화 논법도 계단생각과 그 메커니즘 면에서는 유사하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가 아니라 꼭 돌아서야 떠오르냔 말이다.

2015년 2월 13일 금요일

파리는 늘 공사중

이 시대 파리지앵의 삶과  인격적 특징을 가장 압축적이고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로 나는 알랭 레네의 <우리가 아는 그 노래 On connait la chanson> 를 꼽는다.

이 영화의 특색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대중음악을 이용, 뮤지컬 영화의 형식을 기발하게 차용했다는 데에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인물들의 대화 한가운데에 불쑥 하고 유행가가 끼어든다. 인물들이 심경을 드러내기 위해, 상황을 인물의 시점에서 묘사하기 위해,  아니면 뭔가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점은 헐리웃 뮤지컬 영화와 같다. 그런데 노래는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게 아니라 입모양으로 흉내만 내고 원곡이 그대로 쓰인다. 이 점은 자크 드미 영화와 같다.

그렇다 해서 레네 고유의 스타일이 살아있지 않은가 하면 물론 아니다. 이를테면 영화의 첫 시퀀스는 이러하다. 2차대전 말, 프랑스에 주둔해 있던 독일군 사령관이 전화로 파리를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는다. 전화를 끊자 오피스에는 침묵과 긴장이 감도는데, 심각한 표정을 짓던 사령관이 갑자기 입을 묘하게 움직이는데 그 입에서는 당대 여가수인 조세핀 베이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부하들은 황당해 하고, 그 뒤로 노래 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멀어지는 기차 경적을 연상케 하는 불협화음의 관현악 연주곡에 묻히면서, 이에 맞춰 카메라는 추락하고 및 페이드 아웃. 그런 뒤 장면은 현대의 파리로 전환. 튈르리 공원 근처에서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말한다. "저기가 독일 점령군 본부가 있던 장소입니다. 바로 저 곳에서 사령관은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하고 역사와 문화의 도시 파리를 지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과거에서 미래로의 시간축상의 이동, 더 간단한 말로는 시간여행을 레네는 그렇게 이미지와 음향의 몽타주를 통해 영화적으로 "실현(réaliser)"하고 있는 것이다.

서사 구조를 놓고 보자면 주인공이 한둘로 압축되지 않고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 대여섯의 등장 인물들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나와 서로 얼키고 설키는 코랄 영화. 흔히 말하는 "프랑스 영화"에서 유독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인데, 그 중에서 레네는 대표 주자격이라 하겠다. 그는 특히 늘 같은 한 무리의 배우들과 지속적으로 작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 극단을 이끄는 단장이나 연출가 같달까. 씨네아스트보다 메퇴르엉센느(metteur en scène), 즉 무대/장면 연출가라는 직함이 더 잘 어울리는. 특히 희곡을 각색하거나 희곡 작가가 쓴 각본으로 주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래서 나는 레네 영화들이 연극적이라고, 영화 고유의 예술적이고 매체적 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떤 연극성을 지향한다고, 영화와 연극 사이의 어떤 접점이나 합의점을 계속해서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도 여지없이 이른바 레네 레이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떤 대표성을 띤다...고 보기엔, 영화가 나온 지 거의 20년 째 되어가는 지금의 기준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백인" 그리고 "부르주아" 중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나. 어쨌든 각 인물들의 면면이 아직까지도 그 유효 기간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 법한 파리지앵 및 파리지엔느의 어떤 전형 혹은 이상형을 드러내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 관광 가이드로 일하면서 중세사로 박사논문을 쓰는 카미유 (그녀도 영화 내에서 결국 논문을 끝낸다), 번듯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미숙해서 곧잘 손해를 보곤 하는 카미유의 언니 오딜, 제멋대로인 오딜에 비해 침착하고 그녀를 뒤에서 챙기지만 그런 그녀에게 넌더리가 나기도 했는지 몰래 다른 여인을 만나는 오딜의 남편 클로드, 파리를 떠났다 다시 돌아와 고급차 운전 기사로 일하는 오딜의 옛 남자친구 니콜라, 그리고 파리에서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칠 일이 있으나 그 마주침이 늘 유쾌하지만은 않은 직업 종사자, 부동산 중개인 마르크  등등. 그리고 그들과 마주치는 다른 수많은 파리지앵들 : 구직자, 은퇴자, 관광객, 카페 주인...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

니콜라는 이 의사 저 의사를 전전하는 건강염려증 환자다 (당시만 해도 주치의 등록 제도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듯. 요새 그렇게 했다간 진료비 환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천하의 건강염려증 환자도 감당키 어려울 것... 물론 건강염려증 환자이면서 갑부라면 또 모르겠다). 영화에서 그가 만나는 의사들이 하나 같이 스타일이 다르고 각자 상반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걸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던 사례는 한 여의사.

다른 의사들에 비해 훨씬 권위적이고 진지해 보이는 그녀는 다른 의사가 내린 처방전을 보더니 "어떻게 의사로서 이런 처방을..." 하며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는 부언하려는 니콜라의 말을 막고 처방된 약의 해악에 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공사장 드릴 소리가 들리면서 그녀의 말을 막는다. 그리고는 그녀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후렴구 혹은 추임새처럼 계속되는 드릴 소리 :
만약 이 약을 계속 복용하면... (드르륵) 그 부작용 때문에 나중에는... (드르륵) 정말 심각한 상황이... (드르륵) 제가 충고하건대... (드르륵) 당장 그 약은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드르륵)
드르륵이 계속될 때마다 그녀의 표정과 어조에서 감정이 고조되고 나아가 격앙되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 과정이 바로 저 음향 몽타주 덕분에 상당히 리듬감 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레네의 연출 실력이 특별히 돋보인 시퀀스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너무나 파리다운 상황. 사람 사는 곳이고 더군다나 거주 공간이 밀집해 있는 이런 대도시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또 그 소음이 들리는 일이야 흔한 것이 당연하겠지만... 왜 꼭 내가 가는 곳마다 공사중이냔 말이다. 스스로 먹구름을 몰고 다니는 탓에 가는 곳마다 비를 맞는 만화 주인공처럼, 공사 바람이라도 몰고 다니는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건너편에서 건물을 아예 부수고 새로 올리느라 한참 드릴 소릴 들어야 했고, 집을 완전 개조라도 하는지 몇 달이 넘도록 계속 공사중이었던 아랫집이 그제부터는 좀 잠잠해지나 했는데, 오늘 온 시립 도서관은 또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건물 위쪽에서 공사중이어서 드릴 소리에 귀가 얼얼하다. 개발우선구역(ZUP, zone à urbaniser en priorité)인 것도 아닌데. 정작 개발우선구역인 외곽은 개발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러다 다시 반성.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의 아빠 아닌가. 그리고 그런 공사 끝에 나온 결과물들을 보면 경탄하게 되지 않는가.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그에 기여한 정신 및 육체 노동을 생각하면 숙연해지고.

그러다 보니 지금은 다시 잠잠해졌다. 그리고 무슨 음악이 들린다. 음악 소리를 따라 가보니, 아, 씨디와 디븨디로 가득한 공간이 나온다. 조금 아까 드릴 소음을 보상이라도 하듯. 언제나 어디서나 공사중인 파리. 그런데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떠나지 못하겠는 것은, 떠나더라도 여전히 그리울 것 같은 것은, 바로 이런 보상 체제 때문이겠다.

2015년 2월 6일 금요일

나도야 샤를리

오후 2시. 일요일 아침 장이 파하는 자리를 지나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한 상인이 상을 거두다 말고 동료에게 "나는 샤를리"를 펼쳐 보인다. 일요일인데 웬일로 역앞 키오스크가 열려있다. 그리고 <리베라시옹> 특별판이 나와 있다. 1면에는 전날 집회에서 한 참여자가 하늘 높이 올려든 "나는 샤를리" 팻말 사진이 전면으로 실려 있다. 주인이 손님에게 말한다. "이럴 때일수록 일해야죠." 주인에게 1유로를 건네고 돌아서는데 벌써부터 특별한 일요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역 안에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찮다. 다들 가방도 없이 간편한 차림. 가족 단위도 많다. 사람이 많을 거라, 더구나 레퓌블리크 역을 지나는 이 9호선은 특히 붐빌거라, 예상은 했지만, 서쪽 끝 종점에 가까운 역에서 타서 안전한 자리를 확보하면 동서를 횡단해서 목적지까지 가는 데에는 무리가 없으리라는 판단은 착오였다. 일종의 도착적 효과랄까. 모두가 나와 똑같은 과정의 추론을 거쳐 똑같은 결론에 이르고 이에 따라 행동한 결과, 각각의 행동이 합해진 전체가 개별 수준과는 반대의 결과를 낳은 경우.

얼마 후 도착한 차는 이미 절반이 승객들로 들어차 있다. 포기할까 하다 겨우 들어선다. 다음 역부터는 출구가 반대편에서 열리므로 일단 안심. 그렇게 해서 원하던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몸을 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아까 사든 <리베라시옹>을 펼쳐서, 아니 접은 상태에서 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 와중에도 바로 옆자리 승객은 문고판 책을 꺼내들어 읽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주로 동행인과 얘기를 나누거나 가끔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트기도 한다. 옆의 젊은이들이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며 실실 웃다가 말한다. "시덥잖은 농담으로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한 여자분, 쾌활한 말투로 괜찮다고 말하고 이어 묻는다. "그런데 툴루즈에서 왔다고요? 오직 집회 때문에? 거기에서도 하지 않나요?" "그렇죠. 그런데 아무래도 파리만큼의 열기는 없어서요."

평소 같으면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느라 놓쳤을 이런 대화들. 귀를 열어두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반대편을 향한다. 무척 한산하다. 어쩌다 눈에 띄는 사람들은 아마도 틀림없이 관광객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들은 안도와 경이가 뒤섞인 표정으로 이쪽 지하철 안을 바라본다. 9호선은 관광 중심지를 고루 지나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평소에는 관광객 비율이 높은 편. 그런 9호선이 이렇게 "현지인"들로 가득한 광경은 나로서도 실로 경이롭다. 평소에 이렇게 붐비는 지하철을 탔더라면 반대편의 한가한 풍경에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며 하필 이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기로 결심한 스스로를 탓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쪽에 탄 사실이 뿌듯하다. 그리고 이쪽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인 저들이 안타깝다. 저들은 꼭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여 서쪽으로 향하는 차를 타야 했을까. 각자 일정이 있겠지만, 이런 이례적인, 어쩌면 역사에 남을지도 모를 이 순간, 하다못해 구경거리로서도 유례가 없을 이 사건을 눈앞에서 놓치다니, 안타까운 일이지 않은가.

그러다 문득, 내 위치를 생각한다. 이 간신한 자리야말로 그 위치에 대한 강력한 상징이요 은유다.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관광객과 이쪽에서 현지인들, 딱 그 사이의 경계인이자 이방인. 비록 최소한 물리적으로는 분명히 이쪽에 속해 있긴 해도, 기껏해야 그 경계에 머물 뿐이고, 경계에 머문다고 해봤자 시선은 여전히 제한돼 있고, 그저 드문드문 들려오는 말들과 이래저래 조합해서 그저 추측하는 정도가 전부. 그렇게 해서 구축한 관점을 통해 창문 바깥 저쪽을 바라본다.

바로 눈앞에 창문이 펼쳐져 있고, 창문 밖 저쪽은 분명히 보일만한 거리임에도, 시선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저쪽이야말로 내가 "원래" 속해 있었던, 지금도 속해 있어야 할, 아마도 앞으로도 속해 있을 곳. 그러나 이제는 한없이 멀고 낯설게만 보인다. 이쪽에서 인생의 1/3 가량을 이쪽에서 보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네들의 세계관과 삶의 양식 같은 것들을 완전히 체화하고 내면화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인 동경과 모방의 시기는 지났다. 이쪽에 동화되려는 의지보다는 그보다는 계속해서 나를 내 출신/근본(오리진)인 저쪽으로 귀환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 거기에서 전제되는 선입견, 그에 의존해서 추론을 전개하는 반사적이고 관성적 태도가 싫었다. 나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출신과는 무관한 독립적인 한 인격체이거나 궁극적으로는 세계시민이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이쪽에서는 이쪽대로의, 저쪽에서는 저쪽대로의, 이중소외. 그러면서 창없는 모나드에 가까워졌다. 이쪽에 서서 저쪽을 바라본다 해봤자 결국에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자신의 이미지의 투영에 불과한.

역을 하나둘 지날 때마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사람들이 내리지는 않고 계속 타기만 하는 까닭이다. 독서광 승객도 어느새 책을 내려놓았다. 현재 9호선 승차율이 급격히 상승한 상태이니 승차시 불편하더라도 양해해 달라는 운전사의 안내 방송. 정차할 때마다 입구쪽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실례합니다. 좀 들어갑시다." "자리 없어요. 다음 차 타세요. 몇 분 뒤면 올 겁니다.") 운전사는 또 안내 방송을 하고 입구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운전사의 방송 내용을 그대로 전한다. 파리 중심가로 접근하면서부터는 지하철공사 직원이 나와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생라자르를 지나 그랑 불르바르에 가까워지자 다시 방송이 나온다. 레퓌블리크부터 나시옹까지는 안전상의 이유로 역이 폐쇄되었으니 그 전에 내려야 하고, 집회에 가려면 본느누벨 역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하면 된단다. 내 머릿속 지도상으로 본느누벨에서 레퓌블리크까지는 거리가 상당하지만, "좋은 소식"이라는 예쁜 이름 때문에 좋아하는 역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여, 내렸으면 싶지만, 반대편 출구까지 돌파구를 만들어서 나갈 자신이 없다. 그런데 마침 이웃 아주머니 중 한 분이 동행에게 숨통을 트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내리자는 제안을 해서 옳다구나 한다. 이들이 터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겠다.

내리니 역사도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지상에 닿는 순간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두근두근하다. 가로수가 보이고, 가로수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이어서, 아, 사람들로 가득 들어찬 거리. 그랑 불르바르, 그 큰 차도를 사람들이 뒤덮고 있다. 그들을 따라 나도 거리로 들어선다. 이제서야 <리베라시옹>을 펼친다. 그리고 1면을 앞세우고 걷기 시작한다. 나도야 샤를리.

2015년 1월 11일 

2015년 2월 2일 월요일

일요 아침 운동 단상... 그리고 4개월 후

드디어 가을.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10월 초에 이런 따뜻한 햇살이라니 아무리 인디언 섬머라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했는데.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만에 찬바람이 불고 밤새 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거리에는 낙엽이 가득하고 청소부들은 그 낙엽을 치우느라 바쁘다. 여름을 헛되이 보낸 나 같은 자에게는 만끽할 자격이 없지만, 그렇다고 단념하기에는, 오, 너무도 아름다운, 파리의 가을.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그 만큼 또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름다움과 무관하게 해가 갈수록 그 잔인함은 더해 가지만, 그래도 어쩌랴. 가로수가 물들고 거리가 낙엽으로 덮이기만 하면 나는 또 사정없이 약해져 "아, 이 광경을 보려고 나는 논문을 또 한 해 미루었던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포르트 오퇴이를 지나 모네의 마르모탕이 있는 포르트 뮤에트-파시까지. 목표물은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 있는 독퇴르 블랑슈 가. 코르뷔지에도 코르뷔지에지만, 얼마전에 본 아르테의 TV 영화 <독퇴르 블랑슈의 정신병동>  때문에.  19세기 중반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는 고급 요양원으로, 네르발에서부터 고흐에 이르는 유명인사들이 거쳐간 걸로 유명한 블랑슈의 이 "메종", 실제로 파시에 위치해 있었다길래, 그쪽에 가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집을 나와 가을이 거리에 내려앉고 공기에 가득찬 걸 보고는 선택에 다시 한 번 만족...
여기까지 적어 놓고 뒤를 마저 잇지 못한 채로 자그마치 네 달을 넘겼다. 도대체 이런 경우가 한둘이더냐. 아무리 많은, 아니 대부분의, 아니 모든, 글들이 본질적으로 미완성(inachevé)에 열린 작품(oeuvre ouverte)이며 미래에야 도래할 책(livre à venir)이라 하더라도 그렇지. 이게 핑계가 될 리 만무하잖은가. 도대체 언제까지 제목에 서두만 채워진 글을, 그런 글만, 수없이 양산할 셈인가. 텍스트와 글쓰기의 본질 운운은 해석학자나 해체론자들이 할 일이고, 저자로서의 네 의무는 네 차원에서는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끝을 보는 것이다. 화룡점정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용두사미라도 좋다. 차라리 그게 낫다. 어떻게든 끝을 맺었다는 얘기고,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최소한 겸손함과 양심과 용기와 결단력 면에서는 저자를 인정할 만하단 얘기다.

이 와중에 나는 또 <영화의 역사들>의 고다르를 생각한다. 1초 안에 일어난 일을 쓰는 데에는 1시간이 걸리고, 1분의 일에는 하루를 꼬박 소일해도 모자라고, 하루 일어난 일에는 영원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로 역사 서술은 불가능하다. 정확히 이런 급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충 이런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그렇다. 나의 가장 중요한 장애물이 바로 그것이다.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을 글에 담고, 담으면서 담는 그 순간에 느끼고 생각한 바를 덧붙이고, 하다 보면 도대체 어디에서 멈출 수가 없게 된다. 일종의 자발적이자 의도치 않은 "감성교육"에 힘입어 감성이 예민해졌을 수는 있으나, 그리고 이것이 논리적으로 사유하고 무엇보다 논문 쓰는 데에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나, 그게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렇다고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가 하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 이는 오직 생각의 많고 적음이 깊고 얕음과 구분된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러하다. 생각이 양적으로 증가했다면 그 상당수는 말하자면 가용하지 않은, 즉 쓸데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은 대부분 "인식론적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들. 그러나 고다르, 나아가 역사 서술을 내 경우와 동급으로 취급하기에 나는, 오, 아직은, 아니 이제는 더 이상, 그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다. 내 경우는 대상과 주제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 기인하는 것이다. 내 주제를, 내 깜냥을 인정하기가 나는 아직까지도 두려운 것이다.
"너 걔한테 무슨 감정 있니? 걔가 너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니? 왜 걔한테 그렇게 못되게 구니?"
"걘 너무 오만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논문도 못 끝내고 말이야... 혹시 끝냈니?"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리고 논문 못 끝내는 게 죄니?"
"죄는 아니지. 끝낼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그렇지만 걔는 그게 아냐. 오만해서 그래. 망칠까봐 두려운 거야. 그거야말로 바보같은 거야."
-- 아르노 데플레솅 <나는 어떻게 싸웠는가... (나의 성생활)&gt Comment je me suis disputé... (ma vie sexuelle); 중 한 대화.
이 영화의 촬영 당시 데플레솅과 공동으로 각본을 쓴 에마뉴엘 부르디외(피에르의 아들)은 한창 박사논문을 마무리하던 중이었는데, 그가 핵상 앞에 붙여 놓은 메모판을 본 데플레솅이 이를 찍어다가 그대로 가져다 썼다고 한다.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문제의 "걔"--주인공 폴과 그 옆에 어지러이 펼쳐져 있는 각종 자료들, 그리고 메모판을 차례로 비춘다. 그 중 한 메모 :



라이프니츠 : 확률은 가능성의 크기다. 라플라스. 해킹, <확(률의) 탄(생)> 125쪽. 셋 다 내 논문에도 등장하는 이름들.

결국 이 영화는 폴이 논문을 끝내는 걸로 끝을 맺는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 서문에서 철학책은 공상과학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혀 모르거나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뭔가 할 말이 생기는 것이다. 자못 글이란 지식의 첩점, 지와 무지를 가르는 그 한계 지점에서, 그 지점을 오가면서 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글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무지를 채운다는 것은 글을 내일로 미루거나 아니 쓰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흔히들 말하는 죽음이나 침묵보다 오히려 무지와의 저 위태한 관계야말로 글쓰기에는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런 자세로 들뢰즈는 과학을 건드렸노라 말한다. 그 방식이 과학적이진 않았음을 스스로 충분히 느끼면서도.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얼마나 지쳤으면, 얼마나 안타깝고 안쓰러우면, 얼마나 할 말을 못 찾겠으면. 그러면서도 혹시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고심하며 거르고 거른 끝에 남은 격려의 문구가 그것이겠다. 내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난 시간들이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을지. 알량한 고집으로 무지를 덮는 일에 급급하느라 셈하지 못한 그 날들. 이젠 정말 끝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지난 토요일에 네 달 전의 바로 그 코스를 다시 밟았다. 독퇴르 블랑슈가에 있는 코르뷔지에 재단으로 향했다. 당시, 그리고 그 후로도 얼마 간, 공사중이었던 코르뷔지에 재단은 이제 재개장을 한 상태였다. 그 동안 닫혀있던 빌라의 철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서 투명한 유리벽으로 비친 내부를 잠깐 올려다 보았다. 부자 혹은 사제 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방문하고 나왔는지 건물 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에, 조만간에, 부모님과 와서 제대로 보리라 생각했다.

나와서 프티트 생튀르로 들어갔다. 파리 남단의 동서부를 연결하던 기찻길을 고쳐서 만든 산책로다. 그 기찻길 이름을 그대로 따 "작은 허리띠"라는 이 예쁜 이름으로 불린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직 한겨울임에도 나무향이 유난히 진하다. 연말연시를 보내고 사람들이 내다놓은 크리스마스 나무 가지들을 길에다 뿌려놓는 까닭이다.

이 숲길을 지나 마르모탕 쪽에 이르니,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커다란 가로수 사이로 유난히 가늘고 쭉 뻗은 인도. 왜 예전엔 보지 못했을까. 몇 번이나 와본 길임에도. 접근각을 조금 달리 해설까. 그저 프레임의 방향을 아주 조금 틀었을 뿐인데, 이렇게 조금만 달리 해도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구나. 세상이 다 새롭게 보이는구나. 그래서 힘껏 뛰었다. 새 세상에서. 새 발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