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4일 화요일

Les derniers quatuors de Beethoven dans la Recherche

Scarph : PauvRe, Haute, Solitaire et melAnColique: 베토벤 2중주와 4중주: 몇 해 전부터, 해마다 겨울이 끝나가는 이맘 때쯤이면, 베토벤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봄"을 자주 들었다. 에릭 로메르의 <봄 이야기>가 그 효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들을 때면 이 곡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영화...
Ce temps du reste qu'il faut à un individu—comme il me le fallut à moi à l'égard de cette Sonate—pour pénétrer une oeuvre un peu profonde, n'est que le raccourci et comme le symbole des années, des siècles parfois, qui s'écoulent avant que le public puisse aimer un chef-d'oeuvre vraiment nouveau. Aussi l'homme de génie pour s'épargner les méconnaissances de la foule se dit peut-être que les contemporains manquant du recul nécessaire, les oeuvres écrites pour la postérité ne devraient être lues que par elle, comme certaines peintures qu'on juge mal de trop près. Mais en réalité toute lâche précaution pour éviter les faux arguments est inutile, ils ne sont pas évitables.  Ce qui est cause qu'une œuvre de génie est difficilement admirée tout de suite, c'est que celui qui l'a écrite est extraordinaire, que peu de gens lui ressemblent. C'est son œuvre elle-même qui, en fécondant les rares esprits capables de la comprendre, les fera croître et multiplier. Ce sont les quatuors de Beethoven (les quatuors XII, XIII, XIV et XV) qui ont mis cinquante ans à faire naître, à grossir le public des quatuors de Beethoven, réalisant ainsi comme tous les chefs-d'œuvre un progrès sinon dans la valeur des artistes, du moins dans la société des esprits, largement composée aujourd'hui de ce qui était introuvable quand le chef-d'œuvre parut, c'est-à-dire d'êtres capables de l'aimer. Ce qu'on appelle la postérité, c'est la postérité de l'œuvre.  Extrait de: Marcel Proust. « 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 Volume 1. » iBooks.  
한 개인이 어떤 심오한 작품을 관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청중이 진정 새로운 걸작을 사랑하기 전까지 걸리는 수년에서 때로는 수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에 견준다면 지름길이나 다를 바 없다. 천재적 인물은 대중의 외면으로부터 헤어나오기 위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동시대인들은 감상을 위해 필요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고, 후대를 위해 쓰여진 작품은 오직 후대에만 읽혀야 할 것이라고. 어떤 그림들은 가까이서 보면 판단을 그르치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 모든 오류 논증을 피하기 위한 느슨한 경고는 불필요하면서도 불가피하다. 천재적 작품이 탄생한 당시에 칭송받지 못하는 이유는 작품의 작자가 비범한 인물이라 그를 따를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해할 능력이 있는 소수의 정신을 잉태하고, 또 성장하고 증식하는 것은 것은 작품 자신이다. 50년의 세월에 걸쳐 베토벤 4중주(12, 13, 14 그리고 15번)의 청중을 키운 것은 베토벤 4중주 자체다. 이 작품은, 다른 모든 걸작들과 마찬가지로, 나아가 예술가의 가치에 있어서, 적어도 식자층에 있어 향상을 가져왔다. 작품이 탄생한 시대에는 찾을 수 없었던, 작품을 사랑할 능력이 있는 계층. 소위 후대란 작품의 후대를 말한다.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Der schwer gefaßte Entschluß, from Schwarze Sünde (Huillet-Straub, 1989)

장-마리 스트로브가 이전 작품들 몇 개를 모아 엮어서 내놓은 신작 Kommunisten. 이 사람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녹록치 않았음은 당연하다. 그 유명한 스트로브식 트레블링 혹은 고정샷은 감탄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으나 아무래도 너무 오래 지속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등장인물들이 나와 낭독하는 앙드레 말로나 프리드리히 횔덜린이나 이탈리아 작가 체자레 파베제 등등의 유려한 운문 혹은 산문시들을 감상하기에는 아무래도 내 언어 실력이나 문학적 편력이 모자랐는지, 상영 내내 소외감 혹은 거리감에서 헤어날 길 없었는데... 

그러나 뜻밖에 은총의 순간을 맞이하였으니. 영화 말미,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4중주 중 마지막인 동시에 가 생애 최후로 남긴 작품이기도 한 16번의 마지막 악장이 나왔던 것이다 (36:32 가량). 


베토벤은 이 마지막 악장에 "Der schwer gefaßte Entschluß", 즉 "어려운 결단"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악장은 육필 악보에 작곡가가 적은 "Muß es sein?", 즉 "그래야 하는가?", 그리고 "Es muß sein!", "그래야 한다!"라는 문구로도 유명하다.  

Schwarze Sünde 는 횔덜린이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에 관해 쓴 동명의 작품을 원안으로 한 위예-스트로브 커플의 1989년 작품이다. 이번 선집에서 편집된 부분은 오직 이 마지막 장면 뿐이다. 화면은 흙바닥에 앉아 두손으로 목을 감싼 채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는 여성 인물에 고정돼 있다. 카메라는 물론이고 그녀 또한 꿈쩍하지 않고 있다. 그 뒤로 문제의 4악장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느리고 가냘픈 선율. 그라베, 마 논 트로포 트라토. 이곳이 "그래야 하는가?"에 해당하는 절이다. 회의와 의심과 의문의 단계. 그러던 어느 한 순간,  그녀가 손을 내리고는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카메라를 향해 결연히 말한다. 아니 외친다. Neue Welt, 새로운 세상. 그와 동시에, 악기들이 원기를 회복한 듯 활기찬 알레그로가 이어진다. 진짜로 "그래야 한다!"고 합창하는 것 같다. 당위와 필연, 남은 것은 결단과 행동 뿐이라는 듯. 

이 장면이 깜짝선물과도 같았다면, 영화 상영 뒤에 이어진 철학자 토니 네그리와의 대화는 덤이었달까. 보충수업 받는 자세로 임했는데 수업이 예상 외로 재미있었던 것이다. 감독 스트로브가 예고 없이 참석, 진행자와 초대손님은 뒷전이고 거의 독무대를 펼친 때문. 알고 보니 이 양반, 이런 자리가 있을 때 유사한 장면을 연출하곤 했던 모양이다. 나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일이 있다. 그게 벌써 수년 전 일인데,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는 걸 보니 어쩐지 웃음이 났다. 타협을 모르는 고집. 독자적 행보. 이런 것들이, 그의 표현대로, 포르노그라피가 범람하는 현대 영화계에서의 그가 갖는 독보적 위치를 가능케 했겠다. 

그는 빨간 실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일종의 아드리아드네의 줄. 그런데 그게 코뮤니스트에게는 색깔이 빨갛게 보이기도 하겠다). 그 실이 던져지는 순간이 있다고.  그러면 실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이것이 바로 "그래야 한다!"의 필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실이 눈앞에 던져지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의심에 부치고 의문을 품을 것 없이 그저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야 한다!"는, "그래야 한다!"야말로, 정언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필연은 가능을 함축한다 (칸트). 그리하여 "그래야 한다!"는 "그럴 수 있다"로 의역될 수 있다. 기왕이면 느낌표는 직역하자. 그럴 수 있다!


참고문헌

String Quartet No. 16 (Beethoven)
La politique de Straub-Huillet par Daniel Fairfax (Période)

2015년 3월 12일 목요일

시인의 봄

내 낡은 아이팟의 셰익스피어 앱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며 <소네트>를 읽는데 아니 원래 이렇게 일방적이고 노골적이면서 은근히 협박조이기까지 한 구애의 변이었던가 새삼 놀라며 그러니까 변론의 요지는 당신의 청춘과 미모도 다 한때이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인데 이를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의 그 청춘과 아름다움을 후세에게 남기는 것이라는 것인데 그리고 결혼이야말로 선이고 인류에 대한 의무이며 싱글로서의 삶은 악이자 책임에 대한 방기라는 것인데 거참 이런 억지가 다 있나 이건 결혼 및 출산 장려가도 아니고 저 호방하면서도 소박한 기사도 정신에 슬며시 웃음도 나오기도 하는 걸 참으면서 계속 읽는데 문득 저런 억지 논리에라도 빠져 보았으면 빠져 들었으면 그러나 그마저도 이제는 아무도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가 이내 사실은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 만든 논리였고 다름 아닌 내 자신이 스스로 함정을 파고 거기에 제발로 빠졌던 것임을 깨닫고는 한없이 부끄러워지려던 찰나 "시인의 봄" 행사를 맞아 지하철 안내 방송으로 시 한 구절이 흘러 나와 위로하듯 다그치니 아직은 시를 다시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봄을 맞을 준비도 하물며 시인의 봄은 요원하기만 하여라 

2015년 3월 10일 화요일

피해망상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

가해망상. 타인의 비난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경우에 보이기 쉬운 증상. 쉽게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내 탓이오(mea culpa),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사도신경)로 요약되는 죄의식과 죄책감이라는 기독교 정신을 스스로 육화하기라도 한 양(실제로 기독교 정신을 체화하고 내면화한 데에서 비롯된 경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개인사의 궤적을 볼 때 내 존재 자체를 부채로서 인식하고 모든 크고 작은 불행을 내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된 것은 기독교에 입문 이전의 기원적 사건이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특별히 도덕감이 투철하거나 도덕주의자여서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순전히 그리고 단순히 타인으로부터 받을지 모를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스스로를 비난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비난할 기회를 차단하거나 아니면 타인의 비난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그 유명한 방어기제. 그런데 이것이 과도해지면 과대망상(megalomania)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세상의 모든 불행과 악이 심지어 자신에게 비롯된 것인 양. 내가 무슨 결정권이라도 쥐고 대단한 영향력이라도 있는 사람인 양. "내탓이오" 신드롬의 징후가 보이거들랑 즉시 다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나약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미천한 존재임을. 사람들이 나 때문에 불행해지거나 불편해지거나 아니면 아주 사소하게는 불쾌해진다고 보기에 그들은 훨씬 건강하고 강건한 자아를 가졌거나 관대하거나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2015년 3월 1일 일요일

루와 롤리타

장 바티스트 보튈이라고,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한 철학자가 있는데 혹시 아시는지? 아는 게 이상한 거고 모르는 게 정상인 무명의 철학자죠. 경력이나 이력상으로 독학자나 소장 학자에 가깝고. 소르본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고 하고, 철학 박사논문 대필(!)로 생계 유지를 했다거나 남긴 말을 보면 수준이 상당하긴 해요. 그런데 자기 이름으로 남긴 저술은 거의 전무. 소크라테스의 대화 및 구술 전통을 잇는 취지였다나요.

이 사람의 마지막 생계 유지 수단이 택시 운전이었어요. 시작한 뒤에는 승객을 대상으로 철학 강의를 펼쳐 유명해졌다네요. 그야말로 홍세화 선생이 말하던, 플라톤을 논하는 파리 택시 운전사의 원형.

그러다가 하루는 한 십대 소녀를 승객으로 태우는데 그 소녀의 부모에게 고소를 당해요. 무슨 저녁 강연을 들으러 나선 소녀가 새벽이 되어서야 귀가했다는 거죠. 심각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어쨌든 부모는 운전사가 수상하다며 택시노조에 항의해요. 이에 택시노조는 일종의 징계위원회를 열고 보튈에게 증언을 요구하죠.

여기에서 보튈은 처음부터 사건 경위를 보고하는 대신 니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요. 저녁에 시작한 위원회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나고. 그 진술을 기록한 게 <니체, 정오의 악마>라는 책이에요. 책이라지만 사실은 진술서인 게죠.

진술의 대부분은 니체, 그리고 니체의 연인이자 보튈 자신의 연인이기도 했던 루 살로메에게 할애되죠. 보튈에 따르면 루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의 좌절이 결국 니체의 광기의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건데.

니체도 그렇지만 왜 그렇게 많은 남성들, 그것도, 릴케와, 아마도 프로이트까지 포함한, 걸출한 인물들이 루 살로메에게 빠졌는가? 이를 보튈은 "정오의 악마(démon de midi)"라 불리는 중년 남성의 권태와 무기력증과 의욕상실 등등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심리 상태로 설명해요. 심리 상태나 정서라기보다는 차라리 그 자신 하나의 독립된 존재라고도 하죠. 바이러스나 미생물에 준할지언정 어쨌든 나름의 존재론적 가치를 갖는. 우리말의 魔 같은 것.

보튈의 해석에 따르면, 정오의 악마가 하는 일이란 이제 막 성징을 드러내는 소녀를 통해 원초적 여성성과 생명성의 태동을 환기하고 새로운 탄생 혹은 재탄생에 대한 희망과 착각을 제공한다는 건데. 이 시대 독자들로서는, 저 같이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경우를 포함해서, 롤리타 컴플렉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죠. 20년대이니 아직 나보코프 소설이 나오기 전이긴 하지만. 참고로 루 살로메의 본명이 리올리타였어요. 다만 우연의 일치이고 나보코프가 이를 참조했다는 증거는 없지만요.

많이 알려져 있듯 루 살로메는 신체적 매력에서는 보잘 것 없었다 하죠. 특히 빈약한 가슴은 조롱거리였고 (보튈은, "네가 빈약한 가슴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네 심장과 내 심장이 가까이 맞닿을 수 있으니" 라는 볼테르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한다는 말이, 니체가 볼테르 정도의 유머 감각이 있었더라면 루에게 허락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처음에는 좀 기가 막혔는데, 다시 보니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그렇다면 그녀의 매력은 온전히 정신적, 관념적인 수준으로 한정되어 있었던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성적인 대상이긴 했으되, 그것이 환기하는 욕망을 실제로 충족시키기보다는 대상을 상징의 차원에 한정하도록 하면서, 아니 오히려 그런 까닭에, 결국 욕망의 주체들을 파멸에 이르게 한. 딸내미도 그렇지만 어쨌든 소녀는 금기의 대상이니까요. 루의 매력은, 소위 지성미와는 별개로, 소녀/소년/아이를 연상시킴으로써 금기의 욕망을 자극하는 육체에 있었다는 거죠.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의 그야말로 모호한 대상.

그러고 보니 뷔뉘엘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 이 지점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고 볼 수 있겠네요. 중년 남성, 그리고 동정녀와 창녀를 동시에 육화한 젊은 여성, 정조대, 피묻은 흰 속곳, 그리고 마지막의 폭발 사고...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알레고리는 배우에게서 나오죠. 여주인공 콘치타의 역할을 두 여배우가 맡아서 교대로 출연하는데, 얼굴이나 몸매나 억양이나 전체적인 분위기 등등에서 둘 사이에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고 유사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는 머리(둘다 갈색 머리)와 의상이 유일한 정도. 대신 일관성, 혹은 도식성은 어느 정도 지켜져서, 콘치타의 동정녀로서의 측면이 강조될 때면 호리호리한 몸매에 지적인 분위기의 소유자인 카롤 부케가, 반대의 측면을 위해서는 풍만하고 강한 억양을 쓰는 스페인 여배우가, 각각 등장하는 식. 둘 다 십대 소녀의 역할을 맡기에는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이 역시 뷔뉘엘 특유의 초현실적 장치이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거랑 한국 30-40대 남성들의 이른바 소녀시대/아이유 신드롬-"삼촌"팬덤 현상은 어떤 관계인가? 과연 이들이 소녀 아이돌에 열광하는 것이 권태와 무기력증이라는 일종의 "실존적" 정서의 다른 표현인가? 따뜻한 미모 때문에 잉그리드 버그만을 좋아한다며 수줍게 말하던 노년의 피천득 선생의 감성과 같다고 볼 수 있는가? 일전에 해당 인구층에 속하는 누군가에게 이를 지적하면서 "욕망에 솔직한 게 뭐가 나쁘냐면 할 말 없지만 욕망을 너무 떳떳하고 무반성적으로 드러내면서 거기에다가 이를 어떤 소년적이고 순수한 감수성으로 포장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힌다"라고 제가 막 몰아붙인 적이 있어요. 말해 놓고선 내가 너무했나 싶기도 했는데, 막상 그 사람이 내 말을 부인하지 않고 욕망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를 솔직히 시인하니까 오히려 실망감이... 사실 부인해 주길 내심 바랐는지도.

제가 요사이 이 문제에 민감해진 건 사실이에요. 나이듦, 특히 여성으로서의 나이듦, 여성성, 성적 매력 등등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그 중에서 가장 반동적이고 문제적인 걸 꼽자면, 나의 "(여)성적 매력"이란 것이 갈수록 반감되고 있고 (예전에 그런 것이 제게 어느 정도 있었다는 가정 하에. 이 가정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와 비례해서 나의 존재 가치가 하락하고 위치가 강등되고 있다는 박탈감과 자격지심. 사람들이 서로를 그런 식으로 가치를 매기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나를 그런 잣대로 평가하고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거라 생각하면, 더 끔찍하게는, 예전에도 그랬고 그런 관점에서 내 연애사 또한 재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때 누구누구가 나를 거절한 이유가 결국에는 성적 매력의 결핍 때문이었다니"), 너무 속상하고 실망스러워요. 가장 끔찍한 건 이런 생각이나 하는 제 자신이지만.

- 2013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