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Before)... 뼈 아픈 후회(After) : 히스테리의 승화(?)를 위하여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들었던 "철학연습"이란 이름의 철학과 전공수업. 내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수업 중 하나. 요새도 수업 준비하면서 혹은 도중에도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언젠가 이 수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그런데 오늘의 마들렌느는 당시 같이 수업을 들었던 동학의 발제문. 이면지 활용을 위해 보관해 둔 모양이다. 황지우의 시가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국문학도가 썼나 보다. IMF 직후 대학가가 이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뒤숭숭하던 시절, 그러나 그 수업에서는 모두가 참 순수하고 진지했다. 그런데 마들렌느가 또 다른 기억을 환기했으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잘,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전문)  

그때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시의 모든 구절을 매일, 아니 매 순간, 사는 날이 오리란 것을. 아니 에르노가 "단순한 열정"에서 묘사한 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실제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리란 것을. 그리하여 인생의 한때를 바로 그 기다리는 일에 고스란히 바치고 그로 인해 하마터면 인생을 망칠 뻔하게 되리란 것을.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이 "내 가슴에 쿵쿵거"리다 못해 나의 모든 의식을 지배하던 그때. 문 앞에 네가 와 있는 상상이 너무도 쉽게 실제로 네가 와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변해버리던 그때.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지각의 이론의존/적재성이 철저하고 처절한 경험으로 입증되던 그때. 

그 모든 것들로 멀어진 지금. 같은 발제문에 인용된 황지우의 또 다른 시가 눈에 들어온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니 부어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놓아 주는 바람뿐 ("뼈아픈 후회" 전문)

치기 어리고 날이 서 있으나 그런만큼 제법 날카로운, 청춘만이 느끼고 쓸 수 있는 감성. 그러고 보니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네라"(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과 대조/대구를 이룬다. 한쪽은 나를 사랑하느라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고 다른 한 쪽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결과는 같다. 결국 같은 얘기. 

이제사 드는 의문. 승화와 히스테리의 차이는 원인은 같은데 (실연, 억압된 충동, 실현되지 못한 욕망 등등) 결과가 다르다는 데 있는가? 다음 학기 수업을 이렇게 시작해 볼까?

수업을 이렇게 사적인 결산(règlement de compte)으로 수단화하면 안 되겠으나... 안될 것은 또 뭔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푸코가 스스로 광기의 나락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쓴 것이 바로 "광기의 역사"였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 사실을 시인 김선우의 글에서 처음 접한 후 아직까지 "팩트체크"를 못 했으나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수업에서 다루려는 저자가 푸코를 따르고자 한 것이라면, 이런 사적인 관심과 동기가 학문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온당하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한편으로 이 역시 일종의 "승화"이랄 수도? 히스테리의, 히스테리에 의한, 히스테리를 위한 승화... 이 모든 것이 광기의 발로가 아니라면!

Lutte des classes & #MeToo

1.

Je lutte des classes. 프랑스에서 언젠가부터 집회에 심심찮게 등장하곤 하는 구호다. 볼 때 마다 낯설었다. Lutte des classes 하면 계급투쟁이고 이는 맑스가 역사 진보/발전의 기본 원리로 삼았던 개념 아닌가. 즉 역사적 사실이지 지향할 가치나 이념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계급 투쟁을 한다? 등록금 투쟁이나 임금 투쟁을 하듯이?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ㅇ 언니는 계급 타파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호, 그렇다면, 과연, "투쟁" 구호로서 의미가 있다. 심지어 갈수록 의미심장해지고 있다. 계급 제도는 타파는커녕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소리냐고? 신분제가 폐지된 지가 언제고, 왕족과 귀족을 다 갈아엎는 혁명을 겪은 지 250년이 다 돼가는 21세기에?

지금으로부터 어언 이십 년 전, 한국. 나는 이른바 계몽에 대한 <상록수> 식의 몹시 낭만적(! 이름하여 낭만적 계몽주의!)이고 소박한 이상을 품고 야학에 뛰어든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그 시대 특유의 근거 없고 근시안적인(아이엠에프 1년 전) 낙관론에, 그 나이 고유의 치기에, 짝사랑,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진 첫사랑의 열병을 앓으면서, 그 와중에 제국주의의 볼모인 영어 과목 담당으로 겪는 온갖 모순과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 한편, 치열하게 읽고 토론하며 고민하던 시절.

그중에서도 특히 <교육과 계급 재생산>이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같이 세미나를 하던 선배는 이 책의 주요 논제가 원제에 가장 쉽고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했다 : How working class kids get working class jobs, 어떻게 노동 계급의 자녀들이 노동 계급으로 재진입하는가. 특히 근대 국가의 최고의 성과물 중 하나이자 불평등 완화의 수단이라 여겨져 온 공교육 제도가 여기에 어떻게 기능해 왔는가를 다룬다. 답은, 기대와는 전혀 달리, 오히려 그 반대로, 계급 재생산 및 계급 제도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 이는 사실 이제는 거의 고전적인 논제이자 역사적 법칙이 되었고 점점 더 고착돼 가고 있는 듯하다.

프랑스에서 이 문제의 권위자는 단연 피에르 부르디외. 재미있는 것은 부르디외 자신이 교육의 계급 재생산 기능에 관한 자신의 논제에 대한 반례라는 사실. 달리 말하면 그 반대급부인 계급 초월(transclasse)의 사례라는 것. 그러나 일단 역전을 이룬 후 그는 다름 아닌 자신의 2세들을 통해 계급 재생산 법칙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제공했다. 그의 아들인 에마뉘엘 부르디외는 부친의 뒤를 이어 고등사범을 졸업하고 파리 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영화 각본가 및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그가 쓰거나 만든 영화들은 매우 현학적이고 제법 난해한 것이 특징으로, 부르주아 그리고/혹은  지식인 계급의 취향에 최적화돼 있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2.

가히 제4의 페미니즘 물결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시대. #MeToo 로 대변되는 반 성폭력 운동은 시발점이 아니라 이미 전개되어 온 거대한 물결의 한 단면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 확실하다. 
과거 여성주의가 소수 엘리트 여성 중심이었다면 현재의 그것은 계급을 초월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적 혹은 대중추수적이고, 전략에 있어서도 다양성과 대중성을 추구하며, 그런 만큼 효과가 강력하고 파급이 빠르다. 

기존의 여성주의가 참정권 획득이나 호주제 폐지 등 제도적 차원에서 성과를 일구어냈다면, 이제는 심성 및 의식의 차원을 개혁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말이 의식 개혁이지 사실 문화적 사회적 측면뿐 아니라 인간의 인류학적 혹은  생물학적 근원과도 관련이 없지 않아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제도 또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떠올려 보면, 그리 어렵기만 한 일도 아니다. 제도적 차원과 심성의 차원은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의 관계라기보다는 동전의 양면 관계에 가깝다. 이 경우 대대적이고 전면적이면서도, 뭐랄까, 투지보다는 기지로 승부하는 기민한 투쟁이 효과적이고 또 이 시대의 요구에도 부합한다. 미투 운동은 이러한 이념 및 시대의 요청에 적합한 응답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는 새삼스럽게도 낡디낡은 계급론을 환기한다. 바로 일부 (진보) 지식인 남성들의 반발에서. 그리고 다름 아닌 내 자산의 미묘하고 복잡한 반응에서.

내가 보기에 소위 진보 남성들의 여성주의에 대한 거부감의 기저에는 계급적 편견 및 허위 의식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마초 남성 집단과 구별짓기 위한 전략으로서 친여성주의적 면모를 부각시켜 왔다. 마초 남성은 미국으로 따지면 남부의 레드넥, 트럼프 지지자이고, 프랑스로 따지면 무슬림, 방리유 출신들, 아니면 반이민 정서를 가진 하위 계층 노동자들, 아니면 아예 구세대 카톨릭. 이에 반해 지식인 남성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에 위협받을 일 없고 따라서 여성을 경쟁 상대나 혐오의 대상으로 삼거나 아예 관심을 가질 필요조차 없는 고소득에 안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혹은 그러한 사실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가장 기초적인 상식조차 깨우치지 못하고 여성 일반을 대리물이자 희생양으로 삼아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따른, 어떤 면에서는 정당할 수 있는 분노를, 부당하고 엇나간 방식으로 투사하고 혐오 정서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일군의 남성들과 동일시되기를 이들은 거부한다. 한마디로 "나를 저런 낙오자들과 한통속으로 몰지 말라"라는 절규인 것이다. 

저들이 #MeToo 운동에 반감을 느낀다면, 나는 어떤 소외감을 느낀다. 소외감까지는 아니고 불편함이라 해두자. 아니 불편함도 아니고 섭섭함에 가깝다. 일단은 먹물 특유의 허위의식과 스노비즘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성주의의 보편화를 반기는 한편으로 상업화와 대중화에 대한 저항감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계급론보다는 세대론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일 것 같다. 2010년대 이후 여성주의를 주도하는 세력은 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다. 한국에서는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된다. 70년대 후반 태생인 내가 그들과 세대 차이를 논하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나이는, 이 나이야말로,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 여성주의자라 규정하는 데에 늘 주저해 왔다. 학부 시절 여성학 수업을 듣고서 의식화되었고 또 그렇게 해서 갖게 된 여성주의적 관점이 내 진로를 바꾸었음에도, 정통 여성학 이론과 운동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고 또 본격적으로 실천가로 활동한 바도 없다는 이유에서. 내게 여성주의는 여전히 관념이고 이념이었다. 특별한 차별을 몸소 겪지 않고 오히려 남동생 이상의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자랐고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남동생은 또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고 하니 사실과 다른 이야기일 수 있으나 어쨌든 나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대라는 특수한, 그야말로 이상화된 환경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주의라는 이념이 먼저고, 차별과 불평등의 경험적 사례는 그야말로 아 포스테리오리 하게 축적되는 형국이었다. 모든 의식화 과정이 어느 정도는 그러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겠지만서도. 세계관/관점의 변화에 따라 경험세계도 변화하는 것이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등 여성적 조건이 가진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계기들을 전혀 겪지 않은 데다가, 이 모든 것들을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여성이라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간접적으로나 혹은 대리로 경험하게 마련인 30대라는 시기를 온전히 외국에서 보냈다는 특수성이 나에게는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그 동안 모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이래저래 피해왔고, 그런 만큼 문제의식을 함양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젊은 여성주의자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경이감, 거리감, 낭패감, 우수와 향수 같은 정서가 복합적으로 환기된다. 저 친구들은 어쩜 저리도 쉽게,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여성주의를 말하고 여성주의자임을 선언하는가. 객관성과 중립성에 대한 강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편향성 비판에도 주눅 들지 않고서 여성주의 입장을 표명하는가.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 제3세대 여성주의의 세례를 받은 나는 아직도 백인 부르주아 여성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는데, 저 친구들은 그렇게 고민하느라 주저할 시간에 당장 트윗을 날리고 페북을 공유하는 등 행동에 나선다. 에스엔에스로 행동 및 실천 자체가 상대적으로 용이해지고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하나의 이유겠다. 내가 한편으로는 성적 주체화와 성적 해방의 추구,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 및 남성 중심의 성문화에 대한 거부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실상은 비자발적(!) 금욕 실천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저들은 당당히 가슴을 드러내고 구호를 외치는 한편으로 욕망을 표현함에 있어 훨씬 적극적이고 또 자유롭고 풍요로운 성생활을 영위한다. 성적 억압 및 대상화에 저항하되 스스로 성적 매력을 드러냄에 있어서도 주저함이 없으며 성적 주체화를 실천한다. 패러다임 전환기 늙은 과학자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3.

1. 에서 2. 까지의 윗글은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밝히고, 이어 최영미 시인이 동참함으로써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던 시점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글의 역사는 사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급 문제를 다룬 서두는 아주 오래 전에 쓰기 시작했다. 중반부는 말하자면 여성주의의 누벨바그, 즉 새로운 물결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메갈리아나 강남역 살인사건 논쟁이나 미국 대선 등 일련의 사건들과 이에 대한 젊은 여성주의자들의 반응과 행동에서 자극을 받아 쓰기 시작했다. 이 두 문제를 같은 시기에, 그것도 같은 맥락에서 재론하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최근 미투 운동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인데, 2주 전 포스팅을 하던 때만 해도 그때의 들불이 횃불이 되고 이 정도로 번져서 세상을 발칵 뒤집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면서 위 2.에서 전개한 논리(...랄 것이 있었다면!)를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김지영" 세대가 아니라 그 윗세대인 386을 포함하는 이른바 4050 세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는 이미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운동 사회와 문단과 학계의 성폭력을 지적하고 폭로했으나 은폐와 침묵을 강요당하며 좌절했던 경험이 있다. 그랬던 그들이 용기를 낸 데에는, 지난해부터 세계적으로 미투의 반향이 컸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지영"들의 자극과 지지와 연대의식 또한 한몫 하지 않았을까.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플랑크의 악명 높은 냉소적 발언을 인용하며 쿤은 정상과학 패러다임 하에서 평생을 보낸 늙은 과학자들이 혁명 과학에 전도되기를 기다리기란 힘들고 이들이 별세나 은퇴 등등의 이유로 전선에서 물러날 때서야 비로소 혁명이 완수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의 경우는 과학과 달라서 기성 세대가 혁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나아가 선봉장에 서거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좁은 의미에서의 패러다임, 즉 범례가 넓은 의미에서의 패러다임, 즉 문법 체계와 세계관 등등을, 나아가 세계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로맨스 이후

이른바 "로맨스 영화"(로맨틱 코미디, 멜로드라마, etc.)들이 가족 및 사랑 이데올로기를 재현하거나 (재)생산하는 방식에 관하여. 

편의상 이 부류의 영화들을 로맨스로 통칭하자. 이성애 중심의 가족 및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이 짝을 얻고 안정과 평화를 (되)찾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결말로 가는 플롯 구성이 기존 이 부류 영화들의 규칙 중 하나였다. 로맨스는 부부의 생리학이든 연애론이든 간에,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앞으로도 뭔가 새로운 게 나올까 싶고, 새롭건 진부하건 간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을, 보편적이고 영원한 테마틱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장르"를 넘어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 영화들에 어떤 하나의 범주와 그에 준하는 속성을 부여하기란 어렵고, 이런 범주화가 과연 유의미한지 또는 유효한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에스에프나 호러 같은 대표적인 "장르물"을 생각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이 장르야 이미 존재 이유에서부터 내적 기준에 이르기까지 그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있고, 장르의 하위 개념으로서 존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장르라는 개념 자체가 거기에서부터 나왔으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로맨스" 부류는 같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기에는 너무 보편적이며 또 그 변주 또한 너무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어드저스트먼트 뷰로>나 <소스 코드> 같은 버젓한 에스에프 영화들도 로맨스 코드를 버젓하게 갖추고 있는 바, 이런 영화들까지 로맨스로 치자면 도대체 로맨스가 아닌 것이 있겠느냔 말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크로넨버그의 <플라이>를 상영하는 극장 매표소 앞에서, 너무 무섭지 않느냐며 주저하는 한 관객에게 직원이 '사랑 이야기'라며 안심시키는 것도 봤다.

이런 위험과 부담을 무릅쓰고, 대신 이러한 시도의 한계--성급한 일반화, 피상적 분석, etc.--를 숙지한 채로, 일반화 논의를 밀고 나가보자. 

로맨스의 상당수는, "옛날 옛날에"로 시작해서 "그들은 아이를 많이 많이 낳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 좀 더 나간다면 셰익스피어 희극이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에 기원을 둔, 소위 "로맨틱 코미디"이거나, 아니면, 두 주인공이 둘 다 죽거나 아니면 한 사람만 죽고 다른 한 사람은 남겨진 채로 불행한 여생을 보내는 걸로 끝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혹은 [폭풍의 언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비장미 혹은 신파가 넘치는 멜로 드라마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쨌든 이 모든 이야기의 처음이자 끝, 나아가 본질은, 두 영혼의 조합 혹은 합일 여부에 있었을 터다. 나머지는, 매우 거칠게 말해서, 부차적 요소나 극적인 장치에 불과했고.  

이 구도가 복잡해지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아마도, 이른바 "근대적 주체"가 등장하고, 근대 산업화 및 도시화 이후로 이 주체가 더욱더 개인화되고 분자화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두 영혼의 합일 여부에 앞 각 영혼의 개별성과 특이성이 부각되고, 이들 앞에는 이제 "주체"로 거듭나고 자아(정체성)을 실현해야 할 과제가 놓이게 된다. "또 다른 반쪽"이나 "영혼의 쌍둥이", 즉 타자와의 조화나 합일은 더 이상 당위이거나 목표가 아니고, 기껏해야 이 과제를 실현키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역으로, 타자와의 조화나 합일의 당위성을 지적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일이 지배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현대식 가족 및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다. 이제, (악인을 제외한)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안정과 평화와 행복을 찾는 동시에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일정하고 규격화된 메세지-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신성하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등등-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2004년작인 [500일의 썸머]<500>까지만 해도 그랬다. 3인칭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는 "탐이 그 동안의 연애사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우연들에 전 우주적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하고 끝을 맺으려다 "그러나..."를 덧붙인다. 탐이 또 다시, 저 보편적이고 냉엄한 진리를 거스르고,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소한 우연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 내레이터는 말을 잇지 못하고, 탐은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보낸다. 관객에게 자신이 받은 큐피드/우연의 여신의 가호를 관객에게 전수라도 할 기세다. 이렇듯, "사람은 결국 혼자다. 혼자인 것 맞는데..."하고 말꼬리를 흘리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덧붙이고, 거기에 뭔가 더불어 사는 삶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그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 이것이 로맨스의 논리 구조였다. 그 중 어떤 논증들은 진부하거나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어떤 결론들은 기만적이기까지 했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2010년대에 나온 로맨스들은 이러한 전통 서사로부터 자유로운 듯 보인다. 특히, [블루 발렌타인], [벨빌 도쿄], [비기너스] 등, 2010년을 전후로 해서 나온 30대 이성애 커플들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그렇다.  

[블루 발렌타인]은, 아이, 강아지, 일 등등에 치여 살던 30대 부부가 마침내 파경을 맞게 되는 약 48시간의 일과가 이야기의 주축이다. 두 사람 모두 가족에 관한 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남편은 엄마 없이 자랐고, 아내는 애정이 식은 부모(아빠는 가부장) 밑에서 자랐다. 처음에 그들이 꾸린 가정은 이에 대한 보상 기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48시간 동안, 몇몇 사소한 사건들로 갈등이 벌어지고, 이 갈등은 그때까지 쌓인 앙금을 표면화하여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이에겐 부모가 필요하다"는 남편에게 부인은 "원수지간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만큼 아이에게 비극적인 건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뒤돌아 혼자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춘다. 

이 영화에서는 첫 만남에서 결혼까지의 과거, 그리고 맞벌이 부부로 사는 현재, 이 두 시간대가 별다른 구분 없이 맞물린 채로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라고는 하지만 그 시간차는 겨우 5-6년 정도. 시대적 배경이나 인물들의 외모상의 변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근과거"의 재현은 배우를 바꾸거나 배우에게 코스튬을 입히거나 시대를 반영한 세트를 꾸미는 사극/역사물과는 다른 테크닉을 요한다. 이를테면, 딱히 플래시백임을 보여주는 장치 없이 과거 시퀀스들이 현재의 곳곳에 랜덤하게 끼어들면, 보는 사람은 뭐가 현재고 뭐가 과거인지 혼동하게 되고, 플롯을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또는 인과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애를 먹게 될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의 경우가 그러했고, 2011년경 나온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그러했다 (후자는 로맨스와 거리가 멀지만. 멀어도 한참 멀지만. 그런데, 또, 그렇게 먼가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이 본격 첩보물 영화에도 로맨스 코드는 당연히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별다른 장치 없이도 그런 혼란의 소지를 전혀 남기지 않고 있다. 젊고, 첫 만남에 설레고, 임신이나 결혼이라는 변화가 마냥 두렵기만 한 20대의 그들과, 30대로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강아지를 키우고 일터에 나가는 등등의 일상에 치인 현재의 그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테제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벨빌 도쿄]의 주인공은 영화평론가와 영화관 프로그래머인 파리지엥 부부. "벨빌 도쿄"라는 제목은, 극 중 남편이 도쿄 영화제 출장이라는 핑계를 대고 파리에 사는 애인의 집에 며칠 묶던 중에 동양 사람들 (주로 중국인들)이 많은 파리 북동쪽 벨빌의 한 가게에 들어가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임신 중인 아내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아무 것도 모르던 아내는 황당해 하다가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돌아온다. 아내는 또 괴로워하다가 또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지만, 남편이 (생각보다 훨씬) 이중적인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도쿄에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을 파리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 뒤를 쫓다가 애인에 집까지 당도...) 먼저 스스로 떠난다 . 이 영화 역시 주인공이 혼자 뒤돌아 걸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비기너스]는 30대 후반의 미혼 남성인 주인공의 시점을 취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웃음을 잃었다가 파티에서 만난 발랄한 프랑스 아가씨를 만나 애도를 끝낸다.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두 영화는 다르다 하겠다. 우선, 굳이 하위장르를 따져 세분하자면, 내가 개인적으로 "연애입문 및 성장담"이라 부르는 장르(플로베르의 [감성교육]과 발자크의 [골짜기 백합]에서부터 트뤼포의 두아넬 연작이 이에 속한다. 베르테르도?)에 속한다 볼 수 있겠다. 그리고 희극과 비극의 이분법 구도에서는 희극에 가깝다. 감독도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이고, 또 주인공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일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만큼, 발랄한 일러스트 컷도 많고 아기자기한 데코도 많고. 그럼에도 영화는 별로 밝지 않다. 주인공이 어둡기 때문이다. 단지 부친상을 당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의 현재를 장식하는 주변 인물들이 밝을수록, 주인공의 회상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70이 넘어 커밍아웃을 하고 젊은 게이들과 정력적인 정치 및 사교 활동을 펼칠수록, 그의 어두운 면모는 더더욱 부각되며, 이는 프랑스 아가씨가 짐을 싸들고 집으로 같이 살러 왔을 때 이 아가씨가 지닌 어둠의 포스와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위의 영화들이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셋 다 열린 결말이라 보는 편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결말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일 게고, 관객은 자신의 인생관이나 연애관이나 현재의 심리 상태에 비추어 결말에 대해 각자 다른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블루 발렌타인]과 [도쿄 벨빌]의 경우, 영화가 이혼 법정에서 끝나지 않은 이상, '언해피'하지는 않은 엔딩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에 주인공이 뒤돌아서는 마지막 장면들은, 오, 쓸쓸하기 짝이 없다. [비기너스] 같은 경우, 아가씨는 떠나고 주인공은 아가씨를 찾아 뉴욕까지 가서 결국 두 사람이 재상봉하고 있는 만큼, 남녀 주인공 둘이 벽을 깨고 서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행복한 미래를 암시하는 여지를 비교적 충분히 남겨놓고 있는데, 그럼에도, 관점의 주관성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십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열린 결말"은, 이 결말이야말로,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 시인의 명제는 유효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섬에 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그러한 보편 정서를 반영, 자기애 가득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유아론적인 인물이 점차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마침내 결말에 가서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당도하는 과정을 그려왔다. 그런데 위의 세 영화들은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는 첫 명제를 반복하고 거기에 커다란 마침표를 찍는 데에 그친다. 관계에 대해 희망이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고사하고, 회의론을 재고할 최소한의 계기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섬"에 가고픈 열망이 집단의식 차원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나, 아니면 영화가 재현하거나 생산하려는 가족 및 사랑 이데올로기가 변했거나, 둘 중 하나이거나 아님 둘 다이거나.
...라는 것이 2011년 가을 무렵 이 글을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비슷한 주제--30대 이성애 커플의 삶과 사랑--의 영화들을 보며 "어떤 경향"을 읽어내려는 의도에서. 이런 성격의 글이 시기를 놓치면 아무 소용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그냥 버리지는 못하고 어쩌지도 못하고 그렇게 방치한 채로 몇 달을 보내던 중, 아니, 보내는 내내, 그 사이에 나온 다른 영화들을 보며, 관계 불가능성 가설을 검증하고 보완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이 가설을 철회하거나 대대적으로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관계의 원천적 불가능성보다는 관계의 재개념화를 포착했어야 했다.
...라는 것이 2012년 초, 정확히 이맘 때, 처음에 시작했던 글을 끝맺어 보려 다시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5년이 지났다. 하필 30대의 마지막과 겹쳐 버린 그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관계에 대한 나의 입장은 극단적 회의론과 대책없고 위험천만한 낭만주의를 정신없이 오갔고, 그렇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결국에는 다시, 원천적 불가능론으로 복귀하기에 이르렀다. 무릎 위에서 재롱 부리는 손주를 같이 바라보고, 밤에 늦게 들어오면 얄밉기는 해도 밥은 먹여주고, 밸런타인에는 초콜릿도 주고, 전기가 나가면 퓨즈를 갈아줄 누군가와 더불어 예순 네살을 맞이(Beatles, "When I'm Sixty-Four" : 나의 결혼관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여전히 최고의 청혼가라 생각하는 노래)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생각하니 다소 슬프긴 하지만, 이까짓 일시적이고 감상적인 기분 쯤이야, 진리에 바친 삶을 위해서라면야 (vitam imprendere vero)!

해밀토니안 상념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의 일. 한 선배의 논문심사가 끝난 후 사람들과 카페에 갔다. 아는 사이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불문학을 전공하는 한 분이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내심 반가웠다. 더구나 지금은,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18세기 여류 시인을 공부한다니, 더더욱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역시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철학을 하는 ㅌ 선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모른다고, 학부는 다른 학교에서 했다고 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나야말로 다른 학교이고 심지어 대학원도 다른데, 내가 "선배"라고 해서 그 학교 후배인 줄 안 모양인데... 이 말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그 학교 출신일 거라고 짐작한 것은 내가 먼저인데, 그래서 그분도 똑같이 짐작했나 본데, 이런 선판단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그 판단을 전달하는 것은 또 어떻고, 정치적 올바름까진 아니더라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문제의 그 학교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특권적 위치가 아니었다면 또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인가,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보니 정정할 기회를 놓쳤다.

또 그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새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학부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길래 무슨 밴드냐고 물었는데, 어디 어디 라고 답을 하는데, 아무래도 학내에서는 유명했나 본지, 말을 하면 내 쪽에서 알리라 짐작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자신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전제하에. 그런데 여기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나중에서야 계단생각으로 떠오른 답 : "그렇게 유명한 밴드는 아니었나 보네요. 다른 학교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또 다른 예. "전에는 어디에서 공부하셨나?"라는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의 질문에, 출신 대학에 관한 질문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서 "물리학과에서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때는 옆에 있던 사람이 정정 혹은 보충 답변을 해주었다.

사실 나는 내 출신 학교가 부끄럽지 않다. 그곳에서 보낸 7여 년은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시기였으며 -- 물론 이때가 20대 초반의 꽃다운 시절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와 같은 기회를 누린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가장 중요한 사상적이고 정서적 토양의 상당 부분은 그곳에서 나왔고, 그것이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나의 이 "출신 성분"은, 굳이 사회적 코드가 아니더라도, 나를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뺄 필요도 없고 심지어 빠져서는 안 되는 사항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졸업 후, 특히 외지에 나와 살면서부터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의 이 전기적 사실을 밝혀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차라리 프랑스나 다른 외국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짐짓 자랑스럽게 덧붙일 때도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여자대학이라고.

처음에는 내가 나온 학교가 가부장 사회의 편견, 게다가 요새는 여성혐오 정서까지 가세, 표적이 되는 경우가 워낙 많아 이에 따라 발생할지 모를 불필요한 갈등과 불이익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인가 했는데, 꼭 그건 아닌 것 같고 (다행히 그런 문제를 직접 겪어 본 적은 없다. 같은 학교 출신, 그러니까 나에게는 동문이 되는 이와의 소개팅 담을 늘어놓는 경우는 더러 있었어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모종의 특권의식을 경계하는 태도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이 학벌 사회에 대한 저항의 표시인 것 같지도 않다. 그보다는, 내가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 자체(이건 내가 그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가 나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그리 많지는 않고, 더욱이 그 학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관념이 나에 대한 그릇된 인상(그 유명한 "ㅇ대 나온 여자"!)을 심지 않을까, 혹은 나 스스로가 그 인상을 재확인하는 사례로 추가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 해두자. 어느 쪽이든 나와 큰 상관은 없지만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그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정체성 확인 및 구별 짓기 전략, 그리고 너무 안일하고 상투적인 유형학적이고 분류학적 사유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류학적 사유의 경우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그러한 사유에 사용되는 범주에서의 상상력의 부족이 문제다. 이러한 나의 정서 태도는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끊임없이 국적/출신을 환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더구나 여기에서 "출신"은 곧 근본(origine)이 아닌가. 사실 국적에 대한 정보가 나에 대한 편견으로 직결되기에는 내 출신 국가라는 것이 이네들에게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차피 편견은 국적에 대한 정보 습득 이전에 이미, 그리고 히잡이나 키파 같은 종교적 상징으로 애써 가시화 수단을 쓰지 않더라도, 외양이나 이름을 통해 동양인, 게다가 여성, 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이미 결정되는 사태. 나는 그렇게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판단 기제, 그 속에서 작동하는 상징 권력의 기제가 거북한 것이다. 물론 그런 모든 부문에서 판단중지를 하고 순수히 개별자 대 개별자로 만나기란 쉽지 않거나 거의 불가능한 일. 그 개별자란 것도 결국 결코 단적으로 독립된 존재일 수 없고, 어느 종류든 집단의 구성원이거늘.

물론 그런 인상비평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나아가 상호 피상적 인식을 벗어나 나를 알리고 너를 알고 어슴푸레한 너의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편견을 교정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내가 그럴 만한 의지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된 데에 있다. 단순히 (그러잖아도 부족했던) 사교능력의 퇴화 때문만은 아니고, 그 기저에는 사실 자존감 상실이 있을진대. 스스로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자각. 겉으로 드러나는 바 이상의 심오하고 본질적인 이면, 말하자면 나의 본질--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사르트르는 그런 것 없다고 했다--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더더욱 나를 알리는 게 두려워졌단 얘기다.  

"물리학과 나왔으면 해밀토니안이랑 라그랑지안 알겠네." 이것이 물리학과 출신 불문학도가 내게 한 말이다. 덕분에 나는, 처음에 던진 미숙하고 무례하고 어찌 보면 불온한 첫 질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중에, 어느 정도나마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의도했고 심지어 의식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그분은 사소한 듯 던진 한마디로 선행을 베푼 것이다. 내가 어찌 반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고맙고 미안한 기억은 계속 남아 있다. 그래서 해밀토니안이 나오면 그분 생각이 나곤 한다.

그런데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 라그랑주는 라그랑주 방정식의 바로 그 라그랑주다. 뉴턴역학을 해석(解析)적으로 해석(解釋)한 해석역학을 정립, 고전역학을 완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인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동등한 또 하나의 해석역학 체계를 마련한 것이 해밀턴. 이들이 만든 연산자, 해밀토니안과 라그랑지안은 각각 운동에너지와 포텐셜에너지의 합(H=T+V)과 차이(L=T-V)으로 정의된다. 일종의 보존량. 한 역학계가 시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갖든지 간에 이 양은 보존된다. 고전역학계에서 해밀토니안은 계의 에너지 총량과 일치하고, 따라서 우리가 중학교 때 배웠던바, 역학적 에너지 보존 법칙과 등가가 된다.

일반역학 강의에서 배운 기억은 난다. 내가 물리학과에서 배운 것은 대개 그런 식이다.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현재 전혀 무관하지 않은 주제로 공부하는 까닭에 직간적접으로 도움이 되는 바 없지 않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파편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아 무용한 것들이 대부분. 그래서 실질적 도움보다는 오히려 주로 학부 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회한이라는 부수 효과 혹은 역효과만 양산할 뿐. 그래도, 당시 부족했던 이해를 보완하고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 인가, 과연? 어째 모든 일에서 이렇게 일관적으로 뒤늦단 말인가. 계단 이해. 계단 답변. 계단 논문. 계단 인생.

플라톤, 데플레솅의 마들렌느

아르노 데플레솅의 새 영화, <젊은 날의 세 가지 추억 Trois souvenirs de ma jeunesse>는 요전 에 언급한 바 있는 그의 96년작 <나는 어떻게 싸웠는가 Comment je me suis disputé...>의 시퀄이자 프리퀄이다. 

20년 전 철학 박사 논문을 쓰던 폴 데달뤼스는 인류학자가 되어 세계 전역을 떠돌며 살고 있다. 그러다 "다언어 구사자라는 이유로" 외무부 발령을 받고 귀국하는데, 입국 절차를 밟던 중 신분증이 문제가 되어 다소 곤란을 겪게 된다. 이로써 그와 단지 동명이인일 뿐 아니라 국적과 생년월일과 출생지까지 모든 것이 꼭 같은 인물이 실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는 그가 고등학생 시절, 구소비에트로의 수학여행 중에 한 유대인에게 자신의 여권과 비자를 이행함으로써 이스라엘 입국을 도운 사실에 연유한 것(80년대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이 꽤나 있었던 모양이다. 몇 년 전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로써 폴은 지금껏 그 유대인이 자신의 신분을 간직한 채로 살아오다 2년 전에 사망했음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가 전제. 이를 계기로 폴은 과거를 회상하고, 영화는 그의 플래시백을 프롤로그, 유년 시절, 고교 시절, 청년기, 그리고 에필로그라는 참으로 교과서적인 구성으로 보여준다. 

물론 세부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그리고 세부 하나하나가 기가 막히고 어떤 것들은 숨이 막히게 아름다워서 그것이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다. 데플레솅의 작품들은 참으로 섬세해서 다른 장점도 많지만 특히 세부가 전부인 것이 강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강점이 특히 돋보였던 작품이 <나는 어떻게...>였다. 주인공 폴의 책상 앞에 붙은 포스트잇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경이감을 굳이 숨기지 않은 채 짚어 내려가던 카메라, 몇 달째 소식이 없던 월경이 되돌아 오자 환희에 차 담배를 무는 여주인공 에스테르를 환히 비추던 아침 햇빛 등등. 인물들의 현학적이고 문어체적인 어투가 종종 조소의 대상이 되곤 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 정도는 유진 그린 같은 노골적 반자연주의에 비하면 준수하고 그렇게까지 과장도 아니다...고 강변하고 싶을 정도로 내가 이 영화와 감독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은 부인키 힘들다. 

<세 가지 추억>은 나 같은 팬들에 대한 거의 노골적인 팬서비스였으니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전적인 지지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겠다. 게다가 유년기에서 청년기 사이의 성장담이다 보니 전작을 지배하던 실존적인 무게는 걷히고 훨씬 산뜻하고 자유로운 공기가 영화 전반을 감싸고, 인물들 사이에 흐르던 팽팽한 긴장감도 훨씬 누그러진 데다, 무엇보다 싱그러운 십대 배우들이 향수를 자극하는 80년대 의상 및 머리를 하고서 화면을 채우다 보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밝지만은 않다. 전작에서도 다루어진 바, 주인공을 둘러싼 다소 병리적인 관계들은 여기에서도 여전하다. 폭압적이고 혐오의 대상인 엄마, 무기력하고 부재중인 아버지(그러나 이번에는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반면에 지도교수로는 여기에서는  흑인이자 여성인 인류학 교수가 등장, 주인공과는 훨씬 부드럽고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맺는다. 단지 스승이 아니라 엄마의 대리이자 대안적 부모 역할까지. 그리고 에스테르. 폴과 그녀의 관계는 힘겹고 아슬아슬하고 요즘 말로 하면 "밀당"의 지리한 반복이다. 사랑이라기보다는 격정이고, 그래, 정념에 가까운. 그럼에도 이 모든 것에서 과거에 대한 자족적이고 나르시시스틱한 향수라기보단 젊음에 대한 동경과 경이가 지배적으로 느껴진 정서. 

그리고 트뤼포에 대한 거의 노골적인 오마주. 로맨티시즘, 그리고 여성에 대한 찬미 (특히 에스테르 역을 맡은 신인 여배우는 정말로 르느와르 그림의 주인공이 살아난 듯한 외모를 지니기도 했지만 특히 데플레솅의 카메라에서는 더더욱 눈부시다. 전작에서도 칙칙한 남자인물들에 비해 여배우들은 다들 빛이 났었다. 에스테르 역을 맡았던 에마뉴엘 드보에서부터 단역으로 나왔던 앳된 마리옹 코티야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사소하게는 전작에서도 나왔던 "영상편지" 장면. 그러니까 에스테르가 폴에게 보낸 편지를 영상화함에서, 보통 같으면 보이스 오프의 내레이션으로 깔고 화면 상으로는 실제 편지라든지 아니면 발송인이나 수신인을 비추는 식으로 연출했을 것을, 그게 아니라 직접 카메라를 향해 편지의 내용을 구두로 읊는 에스테르를 비추는 것이다. 이 영상편지 기법은 트뤼포가 <두 영국여인과 대륙 Deux Anglaises et le continent>에서 쓴 걸로 유명하다. 나는 트뤼포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즐겨 쓰던 이런 영화적 장치들은 너무나 좋아한다. 누벨바그 특유의 기법이기도 했고. 기법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특별한 기술 없이 그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인물과 상황을 연출한 것인 뿐임에도, 이렇게 사소한 터치 하나로 사실과 허구, 실제 대상과 표상 사이에 위치한 어떤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공간이 열리고 그곳에서는 또 극중 인물들과 관객의 만남의 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는 정말 압권. 플래시백이 끝나고 영화는 다시 현재 40대 폴의 시점으로 돌아온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외무부에 출근하며 독신 파리지앵의 삶을 영위하던 폴. 그러다 청년기를 함께 했고 에스테르와 삼각관계에 놓이기도 했던 친구 장-피에르의 편지를 받는다. 에스테르 생각이 났는데 혹시 연락처를 알 수 있겠냐는 내용의. 그러던 중 폴은 음악 공연을 보러갔다 바로 그 장-피에르를 우연히 만난다. 부인과 대동한. 부인의 제안으로 셋은 한 잔 하러 가는데, 거기에서 폴은 과거사와 장-피에르가 편지를 보낸 사실을 폭로하며 쌓였던 분노와 배신감 등등을 폭발적으로 드러낸다. 마티유 아말릭의 배우로서의 진가가 돋보이기는 했지만 보기 힘들었던 장면. 그러다가 화면은 다시 과거의 폴과 에스테르가 사랑을 나누던 침대로 돌아간다. 환한 아침 햇빛을 뒤로 눈부신 몸을 드러낸 채 에스테르가 폴에게 낯선 말로 책을 읽어주는데, 처음에는 무슨 언어인지 몰라 히브리어인가 했더니, 세상에, 희랍어였고, 책은 플라톤이었다. 아마도 <파이드로스>. 바칼로레아도 겨우 통과했을 정도로 공부에는 통 관심이 없어 보였던 그녀가 인류학 전공생인 폴에게 플라톤을 희랍어로 읽어주다니. 거의 "금발의 역전"이랄까. "왜 희랍어를 관뒀니? 잘 하는 것 같은데" 하고 묻는 폴. 이 질문은, 극중 앞서 폴이 지도교수와 처음 대담할 때 희랍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받았던 면박("어떻게 희랍어도 모를 수가 있어? 그러면서 감히 내 지도를 받겠다니!)과 절묘하게 대치된다. 그리고 다시 장면은 전환되고 30년 후의 폴. 아마도 장-피에르 부부와 헤어져서 나오는 길이었던 것 같다. 센느 강의 다리를 지나는 그의 머리 위로 웬 종이들이 흩날린다. 한 장을 들어 들여다 보는 폴. 희랍어로 쓰여진 책장들이다. 에스테르가 희랍어는 더 이상 관심 없다면서 폴에게 가지라며 건넨 바로 그 플라톤. 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물질과 기억>에서의 베르그손의 구분에 대한 "기억"에 의존해서 써보건대, 이전까지의 플래시백이 그야말로 "추억(souvenir)"이라면, 의도적으로 복기된 것이라면, 이것은 그야말로 "기억(mémoire)", 자발적으로 환기되는 것이다. 어떤 촉발의 계기들을 통해. 프루스트에게 마들렌느였던 것이 데플레솅에게 와서는 플라톤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조야한 줄 알면서 감히 말해 본다면, 플라톤화된 마들렌느 (Madeleine platonisée). 과거는, 기억은, 그렇게 "있"다. 행복한 것이든, 아픈 것이든 간에. 그리고 어떤 순간에 현전한다. 주로 기대치 않은 순간에. 그러면 어떻게든 맞아야 하는 것이다. 맞거나 아니면 맞서거나.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민망한 제목이지만 어쩌겠는가. 자꾸 이 말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이어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내 평생 그토록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네라" 등등의 문구들도. 이 모두를 쫓아내기 위해서라도, 이를 둘러싼 모든 생각을 비워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써야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비교적 최근 기형도를 다시 떠올린 계기가 있었다. 최근이라 해봤자 기록을 보니 1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모든 슬픔은 논리적으로 규명되어질 필요가 있다"에 관해 ㅅ 언니와 얘기하면서. 당시에 기쁨, 슬픔, 노여움, 즐거움, 요컨대 희로애락의 정서(affect) 혹은 정념(passion)에 관해 얘기를 나누던 중 문득 떠오른 시가 바로 그것이었다. 도대체 이 정서나 정념이라는 것이 내게는 도통 개념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어서 당시에 조금 공부를 해보다가 관두었지만, 그리고 그 이후로도 가끔씩 생각해 보지만,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중 단연 흥미로웠던 것은 스피노자의 정서(affectus) 개념. 정서보다는 감응 혹은 감응소라는 말을 나는 더 좋아하고 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에티카> 3부는 이런 종류의 감응을 그야말로 "논리적으로 규명"하는 기획이다. 이를 모든 정신과 합리적 이성에 반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그리하여 대개는 배척의 대상으로 보았던 다른 합리론자들과는 달리, 스피노자는 부적합한 관념이 아니라 적합한 관념, 즉 원인을 알고 원인을 내부에 포함하는 관념일 수 있다고 본다. 감응은 정신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신체와 유기/조직적이고 평행한 관계를 맺은 결과로서 나오는, 혹은 그러한 관계의 증거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순수 관념과 다르다. 단지 외부 자극이나 정신의 상태에 대응하는 신체적 혹은 신체상의 반응이거나 반작용이 아니라, 정신과 신체가 감응/변용(affectio)의 원인이거나 결과로서 함께 참여해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감응은 능동적/적극적인 것과 수동적/부정적인 것의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내가 내 변용의 원인에 대한 명석하고 판명한 관념을 갖지 못할 때 그것은 수동적인 감응, 즉 정념이 된다. 즉 외부의 어떤 것에 영향을 받을 때. 정확히는 그렇다고 생각, 아니 실은 착각할 때. 실은 외부의 자극-나의 반응이라는 과정이 일방향적이지 않고 그 자극을 감각하고 인지함에서부터 이미 나 자신 그 변용 과정에 참여하고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모르기 때문에 내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감응 발생의 또 다른, 좀더 근본적인 원리는 일종의 관성 원리. 모든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완전해지기 위한 경향성을 지니는데, 원인에 따라서, 변용에 따라서, 그 존재가 가진 역량 혹은 행위 능력은 증감된다. 어떤 원인으로 인해 내 존재가 감소/위축되면 이것이 내게는 슬픔이 되고, 슬픔은 다시 증오, 분노, 질투 등등 다른 모든 부정적인 감응들의 토대가 된다. 반면에 이 변용의 양태에 따라  내 존재의 역량이 상승하여, 내가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할 때 나는 기쁨을, 그 기쁨의 원인을 제공하는 대상에 대해서 나는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그 대상 또한 나와 같은 방식으로 감응하기를 갈구한다.

그러면 그 사랑을 잃었을 때에는? 내가 느꼈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사실은 원인(을) 제공(했다 생각했던) 자에 대한 그릇된 관념으로 인한 부적합한 관념의 소산이었다면? 답 : 그건 사랑이 아니었던 게다. 정념이었던 게다. 완전성은커녕 내 이 한 줌의 존재조차 가누지 못하게 만든. 그래서 더 무서운. 그런만큼 단연코 벗어나야 할.

두 가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내 앞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왜들 저리 날을 세우는지 알 수 없었다. 다들 마그네슘 결핍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 저들도 많이들 지쳤나 보다, 힘든가 보다, 그래서 예민해졌나보다,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발밑은 가시밭길인데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가시나무나 고슴도치뿐인 세상. 하루빨리 그 모든 가시가 거두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깨달았다. 하필이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들 삶에 지치고 나약해진 게 아니라, 나를 만나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보는 편이 설명으로서는 훨씬 간명하고 개연성이 있음을. 칸트는 인식의 형식과 원리들을 대상이 아닌 주관에 근거하도록 함으로써 대상적/객관적 인식의 문제를 (잠정적으로나마) 해결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상대적으로) 간소화하고, 이를 스스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부른 바 있다. 과연, 온 천상계가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보면, 천문학의 많은 난문이 해결되거나 간소화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내 앞에서 유독 과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반응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무언가가 내게 있다는 얘기. 요전에 말한 가해망상의 징후인지도 모르겠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질문이라고 다 순수한 게 아니고 (그 유명한 유도질문, loaded question!) 내가 던지는 질문이야말로 그 전적인 예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가졌던 또 하나의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왜 내가 마음을 둔 사람들은 내게 마음을 주지 않을까. 내게 그렇게 매력이 없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이, 내게 마음을 준 사람도 없지 않았으니까.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그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는 거니까. 혹시 너무 쉽게 마음을 주는 것이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마음 주는 일이 실제로 "쉽"기라도 한 양. 그러나 마음이 오간다는 것은 쉽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그저 어쩔 수 없는 일. 합리적 사고나 의지와 무관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음"에 관한 이러한 소박하고 단순한 낭만주의-신비주의가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태도는 아닐 것이다. 또 하나의 가설은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끌리게 되면, 그 누군가 앞에서는 긴장을 해선지 아니면 마음을 숨기려는 의도에선지, 엉뚱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어 그나마 있던 매력마저 스스로 손상시키는 결과를 낳곤 한다는 것.

그러다 깨달았다. 하필이면 내가 마음을 둔 사람들이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주로 끌린다는 것이다. 나야말로 내게 마음을 주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 마음이란 것이 작동하는 원리는 매우 범속한 욕망의 메커니즘에 가깝다. 욕망의 대상이라는 것은 단지 충족되지 않음으로써만 비로소 유효하고 충족되는 순간 무화되는, 일종의 맥거핀이고, 실제 대상은 욕망 그 자체라는 것. <스완의 사랑>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 처음에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오데트에게 안색이 창백하다느니 광대뼈가 도드라졌다느니 하는 이유를 들어 다소 시큰둥하던 스완. 그러던 그가 오데트의 마음을 갈구하게 되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품에서 떠나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다. 그러나 그녀를 품에 정작 안는 순간, 스완은 깨닫는다. 그녀가 심지어 자신의 "타입"마저도 아니었음을. "그 많은 세월을 허비하고, 죽고 싶어지기까지 하고, 더없이 큰 사랑을 했구나. 내게는 매력도 없고 내 타입도 아닌 여인 때문에."† "타입"에 속한다 해도 마음에 들까말까인데 그 타입의 조건에마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타입-토큰 이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늘 뒤늦게서야 온다. 요전에 말한 "계단생각"을 변주해서 말하자면 계단전회 (révolution de l'escalier). 모든, 최소한 많은, 전회/혁명이 그렇듯.§



* 사실 전회의 방향은 반대. 코페르니쿠스의 경우 천구 운동의 중심을 지구에서 세계-태양-으로 돌렸다면, 칸트는 역으로 인식의 근원을 세계에서 자아로 돌렸기 때문이다.

† « Dire que j'ai gâché des années de ma vie, que j'ai voulu mourir, que j'ai eu mon plus grand amour, pour une femme qui ne me plaisait pas, qui n'était pas mon genre! » -- Extrait de: Marcel Proust. « Du Côté de Chez Swann. » iBooks. https://itun.es/fr/pNCUD.l

§ 벤야민? Référence à venir.

이게 다 볼테르와 루소 탓

집중력, 이해력, 논리력, 한 마디로 지적 능력 일반의 감퇴. 대신에 감성적인 것에 대한 감응력은 인플레이션 단계. 그러나 이 부문의 성장은 그저 상대적일 뿐이다. 즉 지성의 자리를 감성이 대신하게 된 것일 뿐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과의 유비로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다. 정신 능력의 총량이 일정하다면 지적 능력의 부분이 감성적 능력으로 변환한 것이다... 총량이 일정하다는 전제 하에. 그리고 감성에 있어 "능력"을 논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고 미적 판단력이 나아졌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판단력 일반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나 능력으로서의 취미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계발되었다 볼 수 있겠다. 특히 청각과 미각에 관한 한.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순간적인데, 특히 청각과 미각이 그렇다. 덧없는 것들. 그렇다고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의미가 있는 것들인데. 단지 순간적으로만 현전함으로써 오히려 영원할 수 있는. 아니면 이렇게 말해보자. 다른 종류의 시간성을 지녔다고. 측정가능한 물리적 시간과도 다르고,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넘어서 있는, 즉 탈시간적(atemporel)인 논리 및 이데아의 세계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닌. 심리적 시간? 아니면, 아인슈타인이 베르그손을 겨냥해서 말한, "물리학자의 시간"과 구분되는, "철학자"의 시간? 프루스트의 마들렌느와 성당 종소리, 기차소리, 스푼으로 찻잔을 두드리는 소리, 뱅퇴이 소나타 등등의 시간. 흔히 베르그손의 지속과 비교되는 그 시간 말이다. 그 유명한 커피 속 설탕의 시간. 커피에 설탕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프루스트나 베르그손에게 특권적인 예가 청각과 미각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다. 영화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는 사실도. 왜? 로고스가, 즉 언어가, 즉 이성이 개입하므로. 베르그손에게는 지성. 베르그손은 아예 지성을 영화적이라 특징 짓는다. 끊임없이 생성하고 유동하는 실재-지속을 지성화하고 박제화하는 것이 바로 로고스-이성이다. 

이게 다 지난 12년 간의 감성교육 탓이다. 데카르트적 합리주의 및 계몽주의의 현현인 동시에, 그것이 그에 대한 반작용인 낭만주의의 계보와 늘 긴장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에서 오래 산 때문이다. 요컨대 이게 다 볼테르와 루소 탓*이다.


*« On est laid à Nanterre,
C'est la faute à Voltaire,
et bête à Palaiseau,
C'est la faute à Rousseau.

Je ne suis pas notaire,
C'est la faute à Voltaire,
Je suis petit oiseau,
C'est la faute à Rousseau.

Joie est mon caractère,
C'est la faute à Voltaire,
Misère est mon trousseau
C'est la faute à Rousseau.

Je suis tombé par terre,
C'est la faute à Voltaire,
Le nez dans le ruisseau,
C'est la faute à....  »

Extrait de: Victor Hugo. « Les misérables Tome V. » iBooks.

가족이 나오는 꿈

꽃, 나비, 나무, 하늘, 바람, 별, 강물, 물고기, 강아지 등등으로 가득한 친환경적이고 도교적인 세상. 그러나 그 세상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이 있으니. 그 순간, 꽃은 숨겨두었던 가시를, 나비는 날개의 상처를 드러내고, 나무는 누군가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는 화살이 되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강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그 바닥 위에서 물고기는 힘겹게 파닥대고, 강아지는 어둠을 향해 컹컹 짖는다. 루시드폴 노래를 듣다 보면 가끔 그런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는 미선이 시절부터 이미  "송연" 이나 "치질" 등 가시가 돋힌 가사들을 써왔다. 그러나 아무래도 독집부터는 서정의 정서가 지배적. "사람이었네"와 앨범 <레미제라블>의 몇몇 노래들에서는 세상의 불의에 선연히 분노하는 것 같긴 했으나, 그 표현이 절대로 직접적인 일은 없었고 어디까지나 은유의 차원에 머물 뿐이었다. 현실에의 "참여"라 해도 지극히 은밀하고 소극적이이어서, 세상을 향해 열린 창 없이 오직 자기 안에 표현된 세상을 노래하는 모나드 같은 느낌. 즉 근본적으로 내향적(introspectif)이란 얘기고 그 노래도 결국은 내성(introspectoin)이라는 얘기다. 부적응자이거나 자폐아이거나 자급자족형이어서라기보다는, 세상 어디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대는 태생적 이방인이어서라는 것이, 내 자신의 경우를 투사한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해석.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으로만 보자면 앞의 세 병리와 다르지는 않겠으나.

이러한 내향적 인간 특유의 현실에 대한 태도에서 보이는 것과 처음에 말한 그림자는 좀 다르다. 그것은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어두움이다. 평소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숨겨 놓지만 가끔씩 드러나고 마는 어둠의 그림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은 그 어둠의 그림자가 숨겨져 있었다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꽃은 말이 없다> 앨범에 실린 "가족"이라는 노래는 그가 만든 중 최고로 어두운 것 같다. 듣다 보면 지난 세기 초, 민중의 빈곤하고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른바 사실주의 가요(chanson réaliste) 생각이 난다.

다락방에 모여 사는 가족이 서로 떨어지지 말자고, 무너지지 말자고 소리친다. 아이도 소리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듬성듬성 붙어 있는 천정의 벌레들/금세 울음이라도 터질 듯한 얼굴들"와 같은 묘사는 무척 사실적이고 섬뜩하다. 조르주 브라상스의 "기도(La prière)"나, 좀더 멀게는 토머스 하디의 <주드>에서 "because we are too many"라는 말을 남겨 놓고 동생들을 죽이고 스스로도 목을 맨 어린 소년이 생각나는 대목.

그 중에서도 특히 "가족들이 나오는 꿈은 늘 불안하지/온통 걱정스런 눈빛만 가득하니까"라는 구절은 들을 때마다 도망가고 싶어진다. 이 노래를 들은 뒤로 실제로 꿈에 가족이 나오면 불안해지기도 했다.

바로 그 가족이 나오는 꿈을 며칠 전에 꾸었다. 야학 모임에 가는 꿈. 개교 몇 주년이거나 기타 기념 행사였을 것이다. 할머니도 오셨다.

이게 왜 가족이 나오는 꿈이고 또 "야학"과 "할머니"가 무슨 연고인가 할 수 있겠는데,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보통은 상관 관계가 있기 힘들겠고, 하다못해 자유연상으로도 연결이 자명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내 개인사의 맥락에서는 그러하니, 나의 친할머니가 바로 서울의 한 야학에서 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계셨고, 나는 바로 그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을 했던 것이다.

다시 꿈에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내게 "이 분이 당신의 할머니되시는 분이다"라고 소개해주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분명 보통은 아닌 상황. 그러나 이 또한 그럴 법도 한 것이, 나는 친손녀라 해도 못 뵌지 5년이 넘은 데 반해, 야학의 제자들과 선생들은 가끔 모여서 찾아뵙고, 또 최근 "폐교" 행사에서는 다들 모였다고도 하니. 그런데 내 눈앞의 할머니는 몹시 앳된 얼굴과 표정이었다. 그저 아흔을 넘기고도 정정함을 유지한 수준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소녀였다. 그것도 사춘기 소녀. 수줍어하면서도 또 눈빛은, 걱정스럽기커녕, 천진난만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그 와중에 생각했다. 다들 모이는 거면 그도 올까? 그랬더니 실제로 멀리서 걸어 들어오는 그가 보였다. 교수가 됐다더니, 회색 정장을 한 말쑥한 차림. 가는 눈. 내리깐 시선.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그럼에도 나는 단숨에 알아 보았다. 할머니는 알아뵙지 못했는데. 그도 나를 보았는지, 알아보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알아채기 전에 꿈에서 깼다.

두 사람 모두 내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인물. 최근에는 할머니 생각이 부쩍 늘었다. 어느새 아흔을 훌쩍 넘기셨는데, 빨리 가서 뵈어야 하는데. 문제의 "그"는 계속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불현듯 생각이 났다.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리워지기도,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보지 못할 것이다.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가족(과 한때 최소한 가족만큼, 아니 가족보다 훨씬, 친밀했던, 일종의 유사가족)이 나오는 이 꿈에서 모종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걱정스런 눈빛이 가득해서가 아닌, 그와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눈빛이 걱정스러우면 차라리 좋겠다. 눈빛이 아예 사라지거나, 아니면 더 이상 나를 향하지 않을 것, 그것이야말로 더 걱정되고 또 걱정할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래 전 두고 온, 너무 오래 비워둔 내 자리, 지나온 시간,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한 환기.

피해망상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

가해망상. 타인의 비난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경우에 보이기 쉬운 증상. 쉽게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내 탓이오(mea culpa),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사도신경)로 요약되는 죄의식과 죄책감이라는 기독교 정신을 스스로 육화하기라도 한 양(실제로 기독교 정신을 체화하고 내면화한 데에서 비롯된 경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개인사의 궤적을 볼 때 내 존재 자체를 부채로서 인식하고 모든 크고 작은 불행을 내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된 것은 기독교에 입문 이전의 기원적 사건이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특별히 도덕감이 투철하거나 도덕주의자여서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순전히 그리고 단순히 타인으로부터 받을지 모를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스스로를 비난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비난할 기회를 차단하거나 아니면 타인의 비난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그 유명한 방어기제. 그런데 이것이 과도해지면 과대망상(megalomania)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세상의 모든 불행과 악이 심지어 자신에게 비롯된 것인 양. 내가 무슨 결정권이라도 쥐고 대단한 영향력이라도 있는 사람인 양. "내탓이오" 신드롬의 징후가 보이거들랑 즉시 다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나약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미천한 존재임을. 사람들이 나 때문에 불행해지거나 불편해지거나 아니면 아주 사소하게는 불쾌해진다고 보기에 그들은 훨씬 건강하고 강건한 자아를 가졌거나 관대하거나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꿈의 해석

보통 chauffe-plat 라 불리는 작고 둥글고 납작한 초. 실제로 상 위에서 음식을 살짝 데우는 데에 쓰이지만, 나는 주로 향유를 피울 때 쓴다. 겨울이라 환기가 녹록치 않은 요새 특히 자주 켜곤 했다. 

꿈에서 같은 초를 켰다. 그것도 침대 위에서. 그것도 침대 위에다가. 게다가 이불이 초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언제라도, 당장이라도 불이 옮겨붙을 수 있는 상황. 아니나 다를까. 초 하나가 이불에 옮겨 붙었다. 다행히 이 불은 다른 이불(불-이불!)로 덮어 끌 수 있었다. 그렇잖아도 처음에 켤 때부터 불안했던 마음이 극도로 초조해져 다른 초도 서둘러 입김으로 끄기 시작했다. 그런데 꺼도 꺼도 켜진 초가 계속 나왔다. 언제 켰고 또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아직은 드문 드문 보이는 정도지만 그렇게 언제까지고 계속 나올 것 같았다. 입김이 모자라고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른 초 하나가 이불로 타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 불도 요행히 끄긴 했다. 그러나 얼마나 더 끌 수 있을까. 언제까지 시간을 끌 수 있을까. 

깨고 나서 생각했다. 현 상황에 대한 암시인가? 아니면 예지몽인가? 초를 하나둘 씩 끄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불길이 번지고 정말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 전에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만이라도 보지하는 편이 옳지 않겠는가. 분명한 것은 초를 켠, 그리하여 상황을 자초한 장본인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초 한두 개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랬다면 얼른 훅 하고 불어서 끄면 됐을 테니까. 그러나 나도 모르는 새 초는 계속해서 켜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입김만으로는 모자랄 뿐 아니라 자칫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위험 속에 구원은 자라나니"라는 싯구로 자조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하고 위태로운 상황. 정말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히 떨치고 이불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것일까? 왜 그러지 못하는가? 왜 이불 밖으로 나가질 못하는가? 이제는 이불 속이 아늑하기만 한 것도 아닌데. 이불 밖 세상, 그 세상에서 헐벗은 나를 마주하고 헐벗은 그대로의 나를 내보일 것이 두려워서?

그리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 완전히 상반된 해석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약간의 낙관주의와 희망적 사고를 첨가하면. 희망의 불씨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 꺼져 들었나 싶으면 또 어디선가 나타나 이불 밑 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히는 촛불. 그 불에 타들어가도 좋겠다. 그리하여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면. 실은 기만이요 허상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일차소스와 이차문헌

그 사람이 일차소스인 건 알겠지만 어떻게 그것만 보고 논문을 쓰냐, 이차문헌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려다, 문득, 아, 나는 이차문헌으로 남을 운명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아무리 탁월한 주석이라 봤자 원본만 못하고 어디까지나 원본의 그림자로 남아있을, 기껏해야 사본으로만 존재해야 할. 그렇잖아도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욕망의 직접 대상이 되지 못하고 늘 간접 보격 (complément d'objet indirect)일 뿐인, 욕망의 "이차적" 대상 (objet "secondaire" du désir)이거나 오직 이차적으로만 욕망의 대상(only secondly desirable), 내 존재 양태는 이렇게 규정되는 것이 아닐까. 참으로 비참한 존재 조건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런데도 나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유아론, 나르시시즘, 내향성 등등의 내 주어진 소질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적절한 방식이라고도 생각했던 것이다. 소유와 독점 같은 방식의 관계에서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고, 내가 상대방에게 스스로를 전적으로 투자하고 그와의 관계에 전력 투구할 자신이 없는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같은 태도인 편이 낫지 않은가 했던 것이다. 이는 윤리적 문제와는 무관한, 거의 전적으로 에너지의 문제였다. 심적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은 내 자신에게 투자해야 하고, 그러기에도 빠듯한 마당에, 그걸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기란 상당히 벅찬 일인데, 그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나 심지어 복수의 요구자와의 관계란 불가능하다, 등으로 요약되는 추론. 반면 상대방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일차소스가 아니어도 좋았다. 전공자 그 중에서도 그 주제로 박사논문 쓰는 사람이나 겨우 들여다볼까 말까 한 가장 주변적이고 사소하며 비밀스러운 문헌으로 남아 있어도 좋았다. 아니 차라리 그게 나았다. 어차피 내게도 영원한 제일의 소스인 내가 있고, 상대방은 다만 이차문헌이었을 따름이니까. 그러나 그것도 내가 상대방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을 때나 비로소 유효하고 타당한 추론이었음을 이제 알겠다. 내 안에 비축해 놓은 에너지가 그래도 제법 있어서 굳이 다른 에너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나 가능한. 지금처럼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황에서는, 그렇다고 대체 에너지원을 개발할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는... 오로지 자립과 절약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