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파랗길래 하 늘색 바지에 하늘색 윗도리를 걸치고 내친 김에 속옷까지 하늘색으로 바꿔 입고는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짙은 구름이 깔리고 장대비가 내리치는 바람에 하늘빛 우산을 집어 들고 망설이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아 버린 오늘은 파리 해방 60주년 기념일.
—박쥐
blogin.com · 2004-08-26
하늘이 파랗길래 하 늘색 바지에 하늘색 윗도리를 걸치고 내친 김에 속옷까지 하늘색으로 바꿔 입고는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짙은 구름이 깔리고 장대비가 내리치는 바람에 하늘빛 우산을 집어 들고 망설이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아 버린 오늘은 파리 해방 60주년 기념일.
—박쥐
blogin.com · 2004-08-22
증세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저께 시내 프낙 (Fnac이라고, 한국으로 치면 위치상으로나 규모상으로나 성격으로 보나 딱 교보문고인 서점이라고 보면 된다. 파리에만도 여러 매장을 두고 있는데, 내가 주로 가는 시내 한복판의 프낙은 올 여름에 확장 공사를 해서 예전보다 훨씬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말 나온 김에 거기에서 감동받은 얘기 하나. 사실 예전까지 프낙의 서적 코너에서 볼 만한 것이라고는 만화나 잘 나가는 소설이 전부였는데, 이번에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인문학 코너를 아주 크게 늘렸다. 이를테면 철학 서적의 경우 예전에 고작해야 서가 두어 개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열 개에 달하는 서가를 꽉 채운 코너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게 됐다) 에서 발견한 책이 어제 하루종일 아른거렸고, 오늘은 끝내 손에 넣고 말았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에밀 부트루의 해설이 실린 라이프니츠의 <모나돌로지>가 그것이다. 뒤에는 앙리 푸앵카레가 라이프니츠와 데카르트를 비교해서 쓴 아티클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1880년에 출판된 책인데, 내가 구한 건 축소판으로 1998년에 나온 판본이다. 분명히 절판됐을 터인데, 1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손에 넣다니!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끔가다 어떤 책들이 나를 "부르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됐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책과의 만남이 "운명"이라고 판단,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고야 마는 습성이 생겼다. 이곳에 온 뒤에는 더더욱 심해졌다. 적어도 4~5 군데의 헌책방과 철학 서점과 헌책+새책을 나란히 꽂아 놓은 책방이 한 데 모여 있는 생미셸街에 다녀오는 날이면 그 후로 몇 끼를 굶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한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얼마 전 헌책+새책을 같이 파는 질베르-조제프의 인문사회과학 분점도 개장되고 프낙에도 볼 만한 책들이 많아졌으니 말이다.
사실 조심해야 할 곳이 그 곳뿐만은 아니다. 어찌 보면 길거리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다. 헌책방이 최소한 다섯 블럭마다 하나씩은 꼭 있으니. 주말마다 열리는 벼룩 시장들 (파리에는 이런 종류의 생 방브, 클리냥쿠르, 몽뢰이유 등 유명한 비상설 벼룩 시장들이 몇 개 있는데, 그곳을 지나다 보면 가끔 서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중고 서적만을 취급하는 벼룩 시장도 있다. 이 시장은 주말마다 조르주 브라상스 공원에서 열린다) 은 또 어떻고. 최근에는 애써 출입을 자제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몽뢰이유의 벼룩 시장에서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초판을 구했을 때의 환희는 잊을 수 없다. 글쎄 그 책의 전주인이 70년 출간 당시 나온 <르몽드>와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서평 기사를 사이에 꽂아두었지 뭔가. 더구나 그 서평은 각각 프랑수아 다고녜와 에드가 모랭이 쓴 것이었다. 게다가 거기에는 같은 시기에 출간된 프랑수아 자콥의 <생명의 논리>에 대한 미셸 푸코의 서평이 나란히 실려 있었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비블리오필입네 하고 자처하다니, 진짜 비블리오필들이 들으면 비웃을 것이다. 사실 나는 경력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정말 보잘 것 없다. 그치만 책수집에의 욕구나 의지에 있어서는 "고수"들 못잖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 처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아니, 어쩌면 그 "불쌍한" 처지에 있다는 점이 책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더 유리한 조건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책을 사더라도 (1) 헌책으로 더 싸게 나온 게 있나 알아 보려 몇 군데나 돌아다닌 끝에 겨우 찾아내고 (2) 차비나 밥값을 아껴서 구입했다면, 어찌 그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즘에는 이 식을 줄 모를 수집욕을 채워줄 또 다른 방법을 발견해서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전자 정보 서비스 갈리카가' target='_son'>http://gallica.bnf.fr/>갈리카가 그것.예전에는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다가 최근에 들어서 구석구석을 뒤져보게 됐는데, 세상에, 보물 창고가 따로 없었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 프랑스에서 출판된 저작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영어나 독어로 된 책들도 눈에 띈다. 거기에서 찾은 것이 우주생성론적 가설에 대한 앙리 푸앵카레의 소르본느 강의록. 1911년에 출판됐었고 지금은 당연히 절판된. 인터넷으로 구할 수는 있으나 구하려면 10만원 정도를 들여야 하는데, 그걸 이렇게 책상 머리에서 pdf 파일로 볼 수 있다니. 아마도 나의 논문 주제가 될 듯하다. 그걸 다운로드 받고 나니 정말 온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물론 내 노트북 안에 들어 있는 푸앵카레의 책과 그 책의 1911년판 원본이 갖는 가치는 다르겠지만, 나는 전자를 소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런 면에서 "지적 소유권"의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mp3보다는 CD를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원본과 복사본의 관계는 플라톤이 직시했던 것처럼 존재론적으로도 아주 복잡한 문제다. 책이란 것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푸앵카레의 강의록은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의 노트를 근간으로 출판된 것이다.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가 그러했듯이. 하긴, 설령 푸앵카레나 소쉬르 자신이 직접 썼다 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관념을 물화/물질화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100%로 완성될 수는 없는 기획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수단이 문자였든, 문자 이전의 언어였든, 문자 외의 언어였든 간에) .
물론 이 인터넷 시대가 나같이 가난한 사이비 비블리오필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http://www.chapitre.com>샤피트르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면 아주 비싸고 귀한 책들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책을 찾으려면 전국 방방 곡곡을 돌아다녀야 했을 텐데 말이다. 아, 물론 그런 사이트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여전히 유용하다. 저렴한 중고책들 역시 취급되고 있으므로.
어쨌든 그렇게 해서 책들이 정신없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머잖아 책들을 베고 자야 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를 일.
—박쥐
blogin.com · 2004-08-20
그냥 문득 떠오른, 아직까지 희미하디 희미하기만 한 생각.
사실 아주 뜬금없지는 않지, 거의 모든 "그냥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러하듯이. 얼마 전에 한 선배와 송경아 얘기를 하다가 놀란 적이 있었거든. 난 그녀가 당연히 90년대 이후 학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89학번인 그 선배의 동기라지 뭐야? 읽은지 오래 돼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송경아 소설을 읽으면서 최루탄과 땀이 뒤범벅된 티셔츠와 청바지를 연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구나. 알라딘에서 책을 찾다가 우연히 최근에 소설집으로 나온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조금 읽었거든. 극히 일부만을 읽었지만, 딱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 또래들 얘기가 드디어 나왔구나, 내 또래들이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구나 하는. 물론 반가웠다는 얘긴 절대로 아냐. 거기에 비춰진 '나'는 더없이 세속적이고 자본의 논리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인 데다가 거기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저항감을 느끼지 못하거든. 물론 어느 정도 사실이야. 어느 정도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고. 문제는 이제 그게 진짜 '사실'이 돼가는 낌새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야.
2002년쯤이었나. 91학번들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 "강경대", "이한열"이나 "박종철"이라는 이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여러 번 들은 탓에 어느 정도 귀에 익은 그 "열사"의 이름을 그냥 "경대"라고 부르던 그들에 대한 얘기를. 뭐, 그다지 많은 얘기를 하진 못했지, 당연히. 근데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그래도 자기들이 몸소 살아낸 이야기들을 "역사화"하려는 그들의 몸짓을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는 있었어.
"그들" 이후의 "우리"에 대해서도 맘만 먹으면 꽤 재밌는 얘길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물론 맘 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 우선은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여야만 하겠지. 그치만 지금의 딱 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얘기들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딱 지금의 이 상태에서밖에 하지 못할, 다른 때나 다른 곳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얘기들도 있지 않을까?
그냥 떠오르는대로 말해 볼게.
변희재. 알고 보니 이 사람 아주 새파랗게 젊더군. 94학번이더라구. 그가 <내사랑 콩깍지>라는 드라마 얘길 쓴 걸 본 적이 있어. 지금의 (인터넷, 휴대폰)의 자리를 (PC 통신, 삐삐)가 차지하던 "그때 그 시절"의 얘기였다지. 사실 둘은 단절돼 있지 않아. 그보다 둘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하지. 토익+토플, 어학 연수, 영화, 하루키, 학점, 취업 준비 등등이 그러하듯이.
에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네. 역시 시간이 필요한 일인가? 근데 시간이 해결해 줄까? 시간이 지난 뒤에도 뭐라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개성"들을 지닌 세대라고들 하잖아. 근데 진짜 그런가?
—박쥐
blogin.com · 2004-08-18
후훗. 웬 센티멘탈리즘? 어울리지도 않는데. 거 봐, 안 어울리는 짓 하니까 비도 그쳤잖아.
그래도, 이맘 때면, 특히 이렇게 비오는 여름밤이면 여지 없이 생각나는 노래를 듣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이 노래라도 듣지 않으면 밖으로 뛰쳐나가 정처없이 헤맬 것만 같은 밤.
♬ 조국과' target='_son'>mms://211.215.17.148/song/ ... ng_5_usan.asf>조국과 청춘, 우산 (조국과 청춘 5집, 1996)
출처: 노동의' target='_son'>http://www.nodong.com>노동의 소리
—박쥐
blogin.com · 2004-08-14
계몽 시대, 달랑베르와 디드로와 같은 백과전서파들은 지식의 대중화를 꿈꿨다. 그런데 이들의 지식/非지식 혹은 지식을 가진 자(지식인)/갖지 못한 자(대중)이라는 이분법은 이제 유효 기간을 상실한 듯하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대중들이 자신들의 지식에 "지식"이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지식"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으므로.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위키피디아가' target='_son'>http://news.empas.com/show. ... p;e=339>위키피디아가 접속 건수에서 온라인 브리태니커를 앞질렀다는 내용의 기사 가 실렸다. 전자가 무료로 서비스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후자의 오랜 명성과 탄탄한 기반 등을 고려하면 꽤 놀라운 소식이다. 개인적 감상을 덧붙인다면 아주 반가운 일이기도 하고.
위키피디아(Wikipedia) 는' target='_son'>http://en.wikipedia.org/wik ... kipedia) 는 다국어로 서비스되는 온라인 오픈 컨텐트 백과 사전이다. 2001년 카피레프트 운동의 선구자로 유명한 리처드 스톨만을 주축으로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32만 5천여 개의 아티클(영어판 기준)을 구축하는 등 단 3년 만에 웹에서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것치고는 꽤 쓸 만한 백과사전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게 됐다. 불행히도 한국어 버전은 아주아주 미약한 수준이지만 (사실 "버전"이라는 말은 적당치 못한 것이, 위키피디아는 각 언어권별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위키피디아 불어판이 영어판의 불역본인 것만은 아니다. 영어나 미국식 문화의 독점을 경계하고 각 언어권별로 그 문화의 독자성을 존중하려 한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국어판같이 아직까지 인프라가 채 확보되지 못했을 경우에는 문제가 좀 심각해지지만).
위키피디아가 이렇게 놀랍도록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운영 체제 덕이다. 기존 백과사전의 경우 각 항목에 해당하는 글을 그 분야에 관한 전문가에게 의탁하는 것이 보통인데, 위키피디아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다. 아티클에 대한 편집권 역시 모두에게 열려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니까 필자를 충원하는 방식에서는 요즘 각 포털 사이트에서 운영되고 있는 "지식 검색"과 비슷하되(누구나 저자/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티클이 작성되거나 참조되는 방식에서는 전통적인 "백과사전"에 좀더 가까운 형태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물론 그게 전부였다면 굳이 얘길 꺼내지도 않았을 거다. 하이퍼 텍스트 형식이 아주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기존 백과사전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각 항목과 관련된 인터넷 링크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사전에 실릴 만한 항목이 어느 소수의 편찬 위원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원하는 항목이 없을 경우 그 항목을 신설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정말 참신한 항목들이 많다. 사전 치고는 거의 "실시간 업데이트"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문학 카테고리의 경우, 시대별 구분에 21세기의 문학까지 소개돼 있다든가, 만화도 포함돼 있다든가. 정말 기대되고 흥분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전/백과사전에 실릴 항목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인 일인지를 생각하면, "정보 민주주의"란 게 말처럼 쉽지도 환상적이지도 않은 일임을 감안하면.
문제는 각 내용들이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갖췄느냐 하는 것일 텐데, 정 의심스러우면 운영진이 각 아티클들 중 질적으로 훌륭하다고 뽑아놓은 것만 참조하면 되긴 하는데, 내가 찾아본 것들의 경우 나쁘지 않았다. 뭐, 논문에다가 직접 인용하기에는 뭣하겠지만 논문 주제랑 관련된 항목을 쉬엄쉬엄 읽어 내려가다가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을 듯. 단,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링크들을 하나 하나 다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이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주의해야 할 것이다.
—박쥐
blogin.com · 2004-08-11
왜 그럴 때 있잖아.
텅빈 모니터 화면이 망망대해처럼 보일 때.
저걸 언제 다 채우나 하면서 한숨을 짓고 있는데
커서가 깜빡거리면서 마구 약을 올릴 때.
간신히 손을 자판 위에 올려 놓았는데
그 손에서 한 문장도, 아니 한 단어도 흘러나오지 않을 때.
녹슨 머리를 삐걱거리며 굴리고
말 안 듣는 손을 토닥거리며 움직여서
애써 써놓은 글이 그만 사라져 버렸을 때.
너무 화가 나거나 아니면 한없이 무기력해져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플 때.
아니, 말이 되든 되지 않든 고민하지 않고
그저 소리나 한 번 시원하게 내질렀으면 싶을 때.
그럴 때 가서 놀기 좋은 곳, jacksonpollak.org' target='_son'>http://www.jacksonpollock.o ... g/>jacksonpollak.org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잭슨 폴락도 이런 기분으로 캔버스 위를 뛰어다니며 물감을 흩뿌린 게 아니었을까? 한 마흔 번 중에 한 번 쯤은.
—박쥐
blogin.com · 2004-08-08
게다가 잠까지 안 올 때,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까?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하지 못했을 혹은 일부러 하지 않았을 일을 하는 게 좋겠지.
1. 시를 쓴다 → 그런 말을 함부로 하다니, 시한테, 시인들에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2. 산더미같이 쌓인 읽거리를 해치운다 → 하, 참 읽기도 하겠다.
3. 옛 애인에게 국제 전화를 한다 → 근데 전화 번호도 모르잖아.
4. 지하철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전화를 한다 → 아, 그가 그렇게 끈적끈적하게 굴지만 않았어도.
5. 청소를 한다 → 그렇지만 청소는 이미 했는걸. 청소하느라 오후 한나절을 고스란히 날려 버렸단 말이지.
6. 설거지를 한다 → 그런데 그러다 또 그릇 깨면 어쩌려고?
7. 블로깅을 한다 → 이것이 정답일세. 지금 하고 있잖아.
8. 잠을 부르기 위해 한 잔 더 한다 → 그런데 술이 없는걸. 그리고 정답이 이미 나왔는데 왜 계속 이러고 있는 거니?
9. 읽어야 할 것들 말고, 읽고 싶었으나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읽지 못했던 것들을 읽는다. 이를테면 스포츠신문 연재 소설이나 아나이스 닌의 準포르노급 로맨스 소설 같은 것들 → 근데 스포츠신문 읽으려면 로그인을 해야 하잖아. 아이디도 기억 못하면서.
10. 지금 하고 있는 이 짓을,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하고 세듯이, 잠 올 때까지 한다 → 그러다 날 새겠다. 그리고 지금 이 답안은 7. 이랑 중복되는데?
11.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 털어놓지 못한 얘기를 한다. 이를테면, 이제 만으로도 스물 일곱 살이 돼버렸다는 얘기라든지, 아니면 바보같은 짓--서연 언니의 말마따나 "철학도가 아니라면 하지 못했을"--을 하는 바람에 9월에 한국에 또 갈 수밖에 없는 바보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얘기라든지 → 이런! 벌써 몇 번째 중복 답안인 거야?
—박쥐
blogin.com · 2004-08-02
이 말을 하려는데 왜 영화 <카미유 클로델>에서의 그 장면이 떠오르는지. 카미유가 동생 폴에게 랭보를 발견한 기쁨을 전하기 위해 직접 학교로 찾아가던. 그 날은 공교롭게도 빅토르 위고가 죽은 날이었지. 학생들이 "빅토르 위고가 죽었다"고 외치면서 거리로 우르르 몰려가고, 폴 클로델은 그렇게 쏠려 나가는 학생들 틈에서 "깊고 반짝이고 푸른 눈"을 가진 누나 카미유를 발견하고, 그녀를 본 폴의 친구는 그에게 "네 누나니? 네 말대로 정말 깊고 반짝이고 푸른 눈을 가졌구나" 하고 속삭이고, 그 얘기를 들은 폴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고, 랭보를 발견했다며 그렇잖아도 반짝이는 눈을 한층 빛내며 말하는 카미유에게 폴은 "빅토르 위고가 죽었어" 하고 냉정하게 말하고.
제임스 왓슨과 공동으로 DNA 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이 7월 29일에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한다( <가디언>의' target='_son'>http://www.guardian.co.uk/l ... tml><가디언>의 기사 ). 나야 "프랜시스 크릭이 죽었다"라는 소식을 접하고서도 별 느낌 없지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생물학과 연이 닿아있는 사람들에게 그 소식은 아마도 클로델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에게 위고의 죽음이 가져왔던 것만큼의 효과를 가져왔으리라. 1953년에' target='_son'>http://www.nature.com/genom ... tson-crick/>1953년에 <네이처>에 실린 이들의 2페이지짜리 논문이 이후 50년 간의 생물학, 그리고 그 인접 학문들을 뒤집어 놓았음은 분명하므로.
DNA 구조의 발견은 아마도 과학사에 기록된 유명한 발명/발견들 중 가장 최근의 것에 속할 터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견"이라는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과학적 발견에 대한 지극히 일반적인 서사--"한 명 혹은 소수의 천재에 의해", "우연히", "각종 이해 관계나 여타의 맥락들과는 무관하게, 오직 '진리'의 탐구에 대한 열정으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이 잘, 그리고 널리 팔리긴 한 모양이다. 그에 비해 크릭의 책이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퍽 유감스럽다. 왓슨이 다소 쇼비니스트인 데가 있어 주변 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 너무나 미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었던 데 반해(특히 발견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결정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에 대한 왓슨의 악의적인 서술은 악명이 높다), 크릭은 확실히 훨씬 관대하면서도 겸손하며 차분한 자세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이 그 역사적' target='_son'>http://www.nature.com/genom ... watson-crick/>역사적 논문"을 쓸 때만큼은, 내 추측이지만, 크릭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했던 것 같다. "아마도", "~라고 믿는다", "~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든지, 논문의 상당 부분이 선배 혹은 스승 혹은 동료들의 연구 성과를 언급하는 데에 할애되고 있다든지 하는 사실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컨대. 그들이 "세기적 커플"로 남을 수 있었던 데에 크릭의 인내심이 한몫했음에는 틀림없다. 오죽하면 크릭이 한 학회장에서 처음 만난 생물학자로부터 "아,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이었어요? 저는 크릭 씨의 이름이 왓슨인 줄 알았었는데" 하는 말까지 들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