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blogin.com · 2013-03-27

김기림(1908-?) 작. 아이튠 앱 "김기림 시집"에서 따오다. 봄타령을 잇는 취지에서.

예년 같았으면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 같은 구절이 눈에 밟히거나 하진 않았을 터다. 즉 아직까지도 봄이 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삼월이 다가도록 말이다. 이러니, 날씨 탓처럼 허망하고 나약하며 무의미한 일도 없는 거야 알지만서도, 어찌 탓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올핸 정말 해도 너무 했다.

시 따오기 어려운 시대
또는 시적 인용에 관한 짧은 고찰

이 시를 어떻게 따왔느냐 하면,

1/ 아이팟 터치상의 "김기림 시집" 앱에서 열어서
2/ 전체화면을 저장한 뒤

이 다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3/ 아이팟 터치상의 에버노트에서 새로운 노트를 열어 그림을 저장하고
4/ 위피가 작동하는 틈을 타서 아이팟 터치를 인터넷에 연결하여
5/ 에버노트를 동기화
6/ 그렇게 해서 동기화된 노트를 맥북프로상의 에버노트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받은 뒤에
7/ 그림을 저장하고
8/ 이렇게 해서 저장된 그림을 블로그인 편집창에서 업로드

또는

3'/ 아이팟터치를 맥북노트에 연결하고
4'/ 그림을 바로 저장한 뒤 (이번에 처음으로 발견한 기능. 아이팟터치를 연결하고 아이튠이 아닌 Aperçu 를 열면 그림 파일이 바로 동기화되는 줄을 지금까지는 몰랐다. 지금까진 아이튠으로만 열어봤어서)
5'/ 이렇게 해서 저장된 그림을 블로그인 편집창에서 업로드

두 번째 방법이 그나마 좀 간단하다 하겠으나, 이건, 뭐, 전구 하나 간답시고 네 명이나 달려들어 의자 위에 한 사람 올리고 전구를 붙잡게 한 뒤에 다른 셋은 그 의자를 돌린 격이다. 물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구글링+카피+페이스트다. 어차피 앱의 저자도, 저자 소개 같은 경우는, 위키 같은 데에서 인용하고 있다 스스로 밝히고 있고, 소스로 삼은 텍스트 또한 출처는 웹상의 어딘가였을 것임에 분명하므로.

그보다 더 간단하면서도 훨씬 운치 있는, 고전적인, 게다가가 원본의 "향기"를 살리면서 또 그 본래적/장르적 속성을 충분히 살리는 방법도 있었다. 즉 가장 "시적인" 인용 형식. 바로 외운 뒤 옮기는 것. 마침 짧기도 하니.

그러나, 오, 쇠할대로 쇠한 나의 기억력으로는 불가능했다. 한 이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쯤이야 문제도 아니었을 것인데. 이건 나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상당 부분 "시대상의 한계" 때문이다 (...혹은 그저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흑). 문자나 숫자를 기억할 일이 점점 없어지다보니 그에 관한 능력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지사.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를 압도하던 시대, 인쇄술 이전 시대를 살던 이들의 기억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횡행하던 각종 기억술에 대한 의존도도 높았겠지만.

기억술의 측면에서라도 그때는 모든 언어가 음악이고 시이지 않았을까. 좀더 나아가 말해 본다면, 서정시건 아니건 시가 불가능한 시대는, 어쩌면 복제기술 시대의 도래로 회화가 사진과 영화에 자리를 내어준, 그 유명한 "아우라의 상실" 시대에 앞서지 않았을까. 인쇄술, 아니 문자가 발명된 그때부터 이미 시는 불가능했던 게 아닐까. 그때부터 이미 산문과 운문의 승부는 이미 결정돼 있지 않았을까.

—박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blogin.com · 2013-03-13


3월 한복판에 함박눈이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봄을 기다렸건만.

 국립도서관 안뜰, 2013년 3월 12일.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봄타령이나 계속할 밖에.

봄볕을 밟자

    퐁
          당
  퐁
                  당

햇 볕 을밟자

   동장군 몰래 햇 볕 을밟자

해-앳 볕아   퍼-어 져라
널 리 널 리  퍼        져           라

 건너 편에 앉 아 서
 망 설이고 있는
 봄 처녀맘 달 래서
 얼른 데려 오 너 라

—박쥐

봄볕 한 뼘

blogin.com · 2013-03-02

창밖으로 햇빛이 반짝
봄이 오는가 싶었는데
햇빛이 잠시 반짝인 틈
그 틈새로 눈이 나린다

도시의 음습한 대기에
봄을 전하려던 햇빛은
내려오던 길을 잃고는
이내 눈속에 파묻힌다

봄을 기다리는 자에게
늦겨울 한 줄기 햇빛은
다만 빛바랜 희망일 뿐
약속은 눈처럼 흩어진다

체념하고 눈길을 나서
몸을 움츠리고 걷는데
지난 봄의 기억이 문득
눈덮인 보도를 스친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아보면
눈틈을 비집고 온기가
어느새 발밑이 포근하다

여름에도 빛들지 않는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
햇살은 한 뼘이나 자라
쬐면 볕이 제법 따스하다

봄을 기다리는 자여
그러니 절망은 이르다
한 뼘의 햇볕으로 봄은
이미 그대에게 와있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