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in.com · 2005-07-19
동생 부부와 그들의 친구와 함께 있었던 1주일을 포함해서 엄마와 보낸 2주일 동안, 제법 많은 일이 있었다. 엄마가 도착한 첫날 밤, 나는 매트리스를 올려 놓은 반 2층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 굴러 떨어졌다. 덕분에 양 팔뚝에 지중해빛 멍이 들었다. 다음날 런던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때마침 런던에 도착한 동생 부부로부터 전화로 전해 들었다. 그들이 런던 공항에 도착하기 2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루에 로댕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을 한꺼번에 도느라 지칠대로 지쳐 있던 나는 소식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 전에도 엄마와 싸우면서 울고 있었다. 내가 무심코 동성애 관련 발언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나더러 "네가 그런 생각도 하는 앤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쉴새없이 싸우고 또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싸움의 원인은 대부분 각자의 산책/여행 패턴의 차이였다. 나는 길을 가다가 곧잘 헤매고, 헤매면 헤매는대로, 아니 헤매기는 하되 낯설고 새로운, 때로는 음침한 골목길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하곤 하는 반면, 엄마는 일단 길을 나섰으면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으로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한다든지 하는, 뭐 그런 차이. 취향이라기보다는 입장의 차이였을 수도 있다. 파리는 처음인 그들과 파리에서 2년째 산 나, 누나/시누이/딸 얼굴도 보고 구경도 할 겸 해서 온 그들과 시험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도 못한 채 각종 논문에 대한 부담을 잔뜩 짊어진 채 동생/올케/엄마를 귀찮게만 생각하는 나.
동생 부부와 그들의 친구는 그저께, 엄마는 어제 떠났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며. 아빠가 보내온 메일에도 "수고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내가 "수고"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족들이 일제히 "수고했다"는 말을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어쩐지 가족들 사이에서 오갈 만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미안하다"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한해 남짓 떨어져 사는 동안, 우리 "가족"은 그렇게 "수고했다"라는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난 2주 동안 바라마지 않았던 대로, 다시, 늘 그랬던 것처럼, 혼자가 되었다. 변한 것은 없다. 몇 가지는 빼놓고. 엄마가 가지고 온 음식물들이 냉장고를 꽉꽉 채우고 있고, 그 안에 김치가 넘쳐나고 있다. 그 동안 못견디게 그리워 했던 기형도와 백석 전집--엄마는 이 두 책을 비행기 안에서 읽으며 "왜 이 아이는 시를 읽어도 꼭 이런 시만 읽을까" 하며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도 되찾았다. 엄마의 조언 덕에, 이 작은 방--아빠의 표현에 따르면, "'좁다'라는 표현도 부족한 좁은 방"--이 예전보다 좀더 넓어졌고, 디오티마는 더 이상 위로 가지를 뻗는 '고문'을 당하지 않고 제 본성에 따라 자라게 되었으며, 행주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그리고 동생 부부 덕에 새 노트북과 아이포드가 생겼다. 시바와 하품을 비롯한 여러 친구들 덕에, 또 똑지와 그녀의 동생 덕에, 갖고 싶었던 씨디, 담배--내가 좋아하는 레종, 그리고 하품이 선물한, 하품을 꼭 닮아 가늘고 새하얀 독일 담배--, 그리고 맛있는 비타민도 생겼다.
그러고 보니 변한 게 많다. 이제 내가 변할 차례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