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에 다녀왔다

blogin.com · 2005-07-30



도시 곳곳에서 아찔한 "중세의 매혹"을 느낄 수 있는 곳. 잔잔한 종소리, 그리고 아련한 갈매기 우는 소리가 인간의 소음에 지친 귀를 감싸 안는 곳. 잔 다르크의 마지막 숨결, 그리고 그녀가 남긴 재가 흑사병에 희생된 사람들의 넋과 더불어 남아 있는 곳. 모네에게 "인상"을 준, 그리고 내가 본 중 가장 큰 성당이 있는 곳. 그 곳, 루앙.

Merci à 미영!

그리고 여기에도


디에프의 바다.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가 아니어도, 눈부시게 흰 모래 사장이 없어도 좋았다. 파도가 자갈들을 간질이자 참다 못한 자갈들이 데굴데굴 굴렀다. 하늘에선 갈매기가 고고하게 날고 있었다. 결코 떼지어 몰려 다니는 법이 없는 저 갈매기들, 저들이야말로 조나단 리빙스턴의 후예가 아닐런지.

—박쥐

몇 가지 변화들

blogin.com · 2005-07-19

동생 부부와 그들의 친구와 함께 있었던 1주일을 포함해서 엄마와 보낸 2주일 동안, 제법 많은 일이 있었다. 엄마가 도착한 첫날 밤, 나는 매트리스를 올려 놓은 반 2층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 굴러 떨어졌다. 덕분에 양 팔뚝에 지중해빛 멍이 들었다. 다음날 런던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때마침 런던에 도착한 동생 부부로부터 전화로 전해 들었다. 그들이 런던 공항에 도착하기 2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루에 로댕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을 한꺼번에 도느라 지칠대로 지쳐 있던 나는 소식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 전에도 엄마와 싸우면서 울고 있었다. 내가 무심코 동성애 관련 발언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나더러 "네가 그런 생각도 하는 앤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쉴새없이 싸우고 또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싸움의 원인은 대부분 각자의 산책/여행 패턴의 차이였다. 나는 길을 가다가 곧잘 헤매고, 헤매면 헤매는대로, 아니 헤매기는 하되 낯설고 새로운, 때로는 음침한 골목길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하곤 하는 반면, 엄마는 일단 길을 나섰으면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으로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한다든지 하는, 뭐 그런 차이. 취향이라기보다는 입장의 차이였을 수도 있다. 파리는 처음인 그들과 파리에서 2년째 산 나, 누나/시누이/딸 얼굴도 보고 구경도 할 겸 해서 온 그들과 시험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도 못한 채 각종 논문에 대한 부담을 잔뜩 짊어진 채 동생/올케/엄마를 귀찮게만 생각하는 나.

동생 부부와 그들의 친구는 그저께, 엄마는 어제 떠났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며. 아빠가 보내온 메일에도 "수고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내가 "수고"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족들이 일제히 "수고했다"는 말을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어쩐지 가족들 사이에서 오갈 만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미안하다"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한해 남짓 떨어져 사는 동안, 우리 "가족"은 그렇게 "수고했다"라는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난 2주 동안 바라마지 않았던 대로, 다시, 늘 그랬던 것처럼, 혼자가 되었다. 변한 것은 없다. 몇 가지는 빼놓고. 엄마가 가지고 온 음식물들이 냉장고를 꽉꽉 채우고 있고, 그 안에 김치가 넘쳐나고 있다. 그 동안 못견디게 그리워 했던 기형도와 백석 전집--엄마는 이 두 책을 비행기 안에서 읽으며 "왜 이 아이는 시를 읽어도 꼭 이런 시만 읽을까" 하며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도 되찾았다. 엄마의 조언 덕에, 이 작은 방--아빠의 표현에 따르면, "'좁다'라는 표현도 부족한 좁은 방"--이 예전보다 좀더 넓어졌고, 디오티마는 더 이상 위로 가지를 뻗는 '고문'을 당하지 않고 제 본성에 따라 자라게 되었으며, 행주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그리고 동생 부부 덕에 새 노트북과 아이포드가 생겼다. 시바와 하품을 비롯한 여러 친구들 덕에, 또 똑지와 그녀의 동생 덕에, 갖고 싶었던 씨디, 담배--내가 좋아하는 레종, 그리고 하품이 선물한, 하품을 꼭 닮아 가늘고 새하얀 독일 담배--, 그리고 맛있는 비타민도 생겼다.

그러고 보니 변한 게 많다. 이제 내가 변할 차례다.

—박쥐

Ma chère Diotima

blogin.com · 2005-07-04



Une fleur... ni du mal ni du bien...mais "par-delà bien et mal"

녀석이 봉오리 두어개를 달고 있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 정도로 꽃을 애타게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다른 봉오리들은 꽃을 피우지 않은채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고, 단 하나만이 살아남아 저리 꽃을 피웠다. 그렇게 해서 그토록 기다리던 꽃을 보고야 말았지만, 그 꽃은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심지어 혐오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보통보다 큼지막한 저 망울에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봉오리들이 세상을 보기도 전에 스러져 갔던 게 다 저걸 살리고 또 저렇게 살찌우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아, 너야말로 진정한 "악의 꽃"이 아니었더냐.

하. 그런데 아니었다. "악의 꽃"이 지고 난 뒤의 어느날 아침,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새순이 돋고 있었다. 디오티마를 덮고 있는, 내 실수로 스러져 간 히파티아의 숨결이 남아있는 바로 그 흙에서. 나는 왜 그렇게 성급하고 안일하게 그 꽃에게 "악의 이름"을 부여했던가. 무릇, 善도 惡도 모두 사람이 지어낸 바인 것을. 자연의 이치에 견주어 본다면 한없이 하잘 것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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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티마가 이만큼 자랐다. 한 프레임 안에 잡아내기 힘들 정도로.

그렇다면 나는? 자란 것도, 변한 것도 없는 듯하다. 덜 주관적인 평가는, 곧 있으면 올 엄마나 동생 부부에게 맡길 수밖에. 그런데, 그래도 좀 착한 딸/누나/시누이 노릇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 시간을 뺏기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원망을 듣는 일이 없게끔 각본을 짤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별로 성숙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예전보다 훨씬 간교/간사해진 것 같긴 하다.

* 안부를 묻고 소식을 궁금해 해준 분들께 감사를, 새로운 포스트를 기다린 분들께 미안함을 전합니다.
 
저는 "밥은 먹고 다"닙니다. 그런데 글쓰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네요. 뭐, 포스팅할 시간조차 없이 바쁜 건 아닙니다. 사실 그만큼 바빠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말보다 불어가 더 익숙해지는 경지에 도달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한국말도 불어도 잘 안 되는, 두 언어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상태에 있다고 해야 보다 정확하겠지요.
 
이 미칠 듯한 더위가 좀 가시고, 지금 날 묶고 죄고 또 옭아매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에서 좀 헤어나왔다 싶으면, 그땐 이곳도 어떤 식으로든 달라질 수 있겠지요. 아, 그렇다고 블로그를 닫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쉰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 블로그가 지금의 무책임하고 불친절한 성격을 당분간은 유지한다는 뜻이지요 (말은 이렇게 해놓고 일주일만에 열혈 포스팅 모드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좀 말려 주시길. "네가 지금 이럴 때냐?" 하면서요).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