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31일 목요일

첫 수업을 앞두고 다시 펼쳐 보는 "교육철학기술서"

 “세계의 기원은 모든 사유하는 인간이 끊임없이 천착해 온 문제다. 별들로 가득한 우주를 바라보면서 그 모든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묻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앙리 푸앵카레가 『우주생성 가설에 관한 강의』의 서두에 한 말입니다. 도시에서 자란 제게 별이 빛나는 밤을 직접 목격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중학생 시절, 과학 대중화 서적과 잡지들을 통해 천체물리학과 우주론이라는 학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이성이 제기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이성 자신 힘만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는 사실, 그리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오직 사유를 통해 무한한 공간에 접근한다는 사실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론 천체물리학자의 꿈을 안고서 자연과학대학 자연과학부에 진학, 전공으로 물리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을 택한 후 정작 제 관심을 끈 것은 전공과목보다는 교양수업에서 접한 인문 · 사회과학이었습니다. 특히 여성학과 철학 수업에서 일종의 인식론적 전회를 겪었습니다. 근원적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에 앞서, 그 문제의 의미, 타당성, 가치, 그리고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문제 자체, 나아가 인간의 지적 사유 전반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철학을 부전공으로 택한 뒤,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고자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공부한 철학과 대학원은, 당시 한국 서양철학 연구의 전반적인 풍토가 그러했듯이, 영미 분석철학 전통이 강했고, 대학원 수업과 세미나를 통해 분석철학 특유의 논증적 스타일을 익히면서 철학도로서 더할 나위 없는 훈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석사논문  “수학의 적용과 그 존재론적 함축”은, 수학의 수학 외적인 것에 대한 적용을 하나의 수학철학의 문제로서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학적 대상들의 존재론적 위치를 가늠하고자 한 하나의 시론으로, 당시까지 제가 거친 지적 여정과 훈련을 종합한 결과물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석사과정 내내 저는 다른 방법론에 대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가스통 바슐라르, 조르주 캉기엠, 미셸 푸코라는 세 이름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과학철학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을 포함하는 과학과 지속적인 대화를 추구하고 또 그 성과들을 적극적으로 참조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과학철학은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들과 과학사 전반의 흐름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흔히 “역사적 인식론”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독특한 전통을 보다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저는 프랑스 유학을 준비했고, 파리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연구 주제를 찾던 중에 앙리 푸앵카레라는 이름과 조우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릴 적부터 고민해 온 바로 그 문제, 즉 우주의 기원에 관한 강의를 이 위대한 수학자가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박사논문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연구된 바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이 강의를 출발점으로 삼아, 한편으로는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고전우주론을, 다른 한편으로는 푸앵카레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푸앵카레 연구와 우주론의 역사 및 철학에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파리라는 도시의 지역적 이점, 그리고 제가 속한 과학철학 및 과학사 과정 및 연구소의 특수성 덕분에, 저는 고전 및 현대 물리학과 우주론의 철학과 역사라는 제 연구 주제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들로부터 배우고 또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학회와 세미나에 참여하는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학위 논문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학부 시절 저는 야학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면서 동료들과 교재를 집필하거나, 학과 학생회 소속으로 신문을 제작하는 등, 학과 외의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학업과 학업 외 활동의 병행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저는 학업과 동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학생회 편집부 소속으로 대학원신문을 만들거나, 당시만 해도 처음으로 시도되고 있었던 학부 토론수업의 조교를 맡아 수강생들 사이의 토론을 직접 진행한 일이 그것입니다. 

석사 졸업 후 유학을 준비하던 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저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과학기술과여성위원회나 과학기술 내 여성 참여(WISE, Women in Science and Engineering)와 관련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습니다. 동시에 『아나키즘의 역사 (원제 L'histoire de l'anarchisme)』를 번역 출판하는 과정에서 역자 후기를 담당하는 등 후반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한편 프랑스 사회의 현안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 학술서 『공존의 기술 :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을 동료 유학생들과 공동으로 저술했습니다. 그 밖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고등학교의 철학 교육, 콜레주드프랑스와 같은 고등교육기관이나 국제철학학교와 같은 비제도권 교육기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수업들, 그리고 라디오프랑스와 같은 공영매체에서 대중을 상대로 진행하는 철학 관련 프로그램들 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철학 교육 체계 전반과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학문 안팎의 경험들이 지적 자양분이 되고 있었음을 저는 “철학의 이해”나 “영화로 생각하기”와 같은 교양수업들을 강의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학부 시절부터 과학철학과 관련해서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커리큘럼을 경험했다고 자부합니다. 철학과 전공과목으로 개설된 과학철학 수강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철학도의 길을 걸으면서부터는 영미 과학철학 중심의 독회에 참여하는 한편, 제도권 안팎의 여러 수업과 세미나도 찾아다니면서 과학학 전반을 두루 접했습니다. 대학원 석사 시절에는 “철학과 과학의 만남”이라는 제목의 학과 조교를 맡아 토론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 “과학기술의 인식론과 역사”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던 파리 유학 시절에는, 과학철학 일반이나 물리의 역사와 철학에서부터, 역사학 방법론, 과학사 사례 연구, 과학사회학, 기술의 역사와 철학 등을 배우는 한편으로, 그리고 파리에서 열리는 다양한 관련 학회와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다양한 분야와 시각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과학철학 강의는 제게 지금까지 가장 많이 보고 배우고 또 생각해 온 내용을 정리하고 전달할 최적의 기회요, 또 수강생들에게도 비교적 보기 드물게 다채로운 교수자의 경험을 공유할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 2020년 6월에 적은 글을 2023년 8월 마지막날 옮기다


2023년 8월 12일 토요일

왜 하필 이 시점에

이곳 생각이 났을까. 마감을 이미 넘겨버린 발표문 때문인가? 자포자기? 일생일대 중요한 일들 중 몇 개를 줄줄이 앞두고 그제부터 일이 이상하게 풀리지 않는 느낌. 불안감. 아이폰으로 글을 적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이 아이폰 SE의 성능이 저하된 탓도 있는 듯하다. 애플 뮤직의 굿 바이브 리스트를 틀었는데 라나 델 레이의 나른한 목소리가 나온다. 가사가 달달해선가? 숙대입구에서 충무로 가는 길...

급히 마무리하던 글을 다시 꺼내다. 지금은 이 글을 처음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난 후, 그리고 지금은 다시, 아니 어쩌면 여전히, 충무로다. 

이제껏 이곳에서 지켜오던 원칙을 깨고 지명을 약자가 아닌 실명으로 적은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이었을까? 이 글이 제대로 마무리되었다면, 즉 적어도 통상적인 과정을 거쳤더라면, 그 과정 중에 검열이 시행되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익명화 처리도 이루어졌으리라. 그러나 이번에는 2개월 전의 기록을 있는 보존한다는 취지에서 그대로 남기기로 한다.

지난 2개월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지난 2년도 그랬다. 2번의 이직. 그리고 그보다 최소한 2번의 이사. 그 외에도 자잘한 이동이 여러 번이나. 참으로 역설적인 것이, 15년 가까이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면서는 정작 한 곳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던 반면, 귀국 후 비로소 원주민/토착민으로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 만한 조건을 갖춘 이후로는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유목민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지난 2개월 사이에는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도시에 한 달 새 두세 번을 드나들었고 급기야 오는 9월부터는 바로 그 도시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제 조금은 더 안정적인 삶을 구가하게 된 셈. 그렇지만 당분간은, 적어도 앞으로 1년 간은, 안정까지는 힘들겠고 그저 준안정 상태 정도만 바랄 뿐.

그런데 왜 또 하필 이 시점에 이곳 생각이 났을까? 

우선은 이사를 1주일 남겨둔 상태... 라는 것이 이유겠다. 이것이 어떻게 이유가 될 수 있냐고? 좋게 말하면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예의 그 고질적인 현실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가 하면... 도대체 할 일이 한둘인가? 

우선은 쓰던, 아니 실은 거의 시작도 안 한, 논문을 20일까지 내야 하는데... 20일이 바로 이삿날이고, 이래저래 정리할 시간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논문은 15일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그런데 15일은 마침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개봉일이다. 마침 이 논문은 양자역학 (어쩌면 그리고/또는 양자장론!)에 관한 것이므로 어쨌든 관련 내용을 다루고 마침 개봉까지 한 이 영화를 언급하거나 나아가 분석하면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좋은 접근이 되리라 생각된다. 마침 논문에서 다루어야 하는 저자(캐런 버라드)도 양자역학과 원자폭탄을 다룬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니.

방학까지 번역을 대강 마쳐놓기로 한 "히스테리의 발명". 그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원래는 관련해서 논문도 하나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 상황에서는 벗어났다. 그렇지만 올해 안으로 저 번역을 마쳐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다. 그러나 상황 상 오는 겨울방학을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다른 번역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논문에 대한 부담의 무게를 이전보다는 어느 정도 덜어낸 채로 번역에 임할 수 있게 되어 다행.

기출판 논문 교정 후 개고 및 가이아를 적용한 작품/작가론. 당분간은 불가.

무엇보다도 9월부터 바로 시작할 수업이 무려 세 개나 된다. 게다가 그  중에서 둘은 처음 해보는 윤리학 수업. 물론 이전의 토론 수업에서 윤리학 관련 내용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 바 있으므로 그때 쌓은 콘텐츠를 적극 이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강의는 새롭든 새롭지 않든 늘 부담이긴 매한가지. 

생각해 보니 지난 2개월을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기 중 하나"라 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겠다. 6월은 숨가삐 보냈으나 7월에는 하필 코로나에 확진되는 바람에 거의 아무 것도 못 했으니. 차라리 코로나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확진 후 2주 정도야 증상 때문에 그렇다 쳐도 그 이후에는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낸 것이다.

조금 아까 잠깐 바깥에 나가 보니 바람이 제법 부는 것이 한여름은 다 지나간 것임에 분명하다. 다가올 가을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고조되는 "8월 말, 9월 초" 시기.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동명 영화(Fin août, début septembre)는 박사과정 동안 그야말로 내 인생 영화였는데 지금이라고 달라졌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그러나 사실 심정적으로만 그렇고 에릭 로메르의 "가을 이야기(Conte d'automne)"에 보다 가까워진 것이 현실. 대학생이 된 아들을 두고 아들의 여자친구와 우정을 나누며 그녀의 전 남자친구이자 고등학교 철학교사였던 동년배 중년 남성의 소개를 받는 중년 여성을 그린 그 영화 말이다. 왜 하필 이 시점에 이 영화가 생각났는가 하면... 며칠 전 그 영화 주인공의 나이를 넘어섰기 때문일 수 있겠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과의 불화를 끝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