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때문에 집에 갇혀 지낸지 일주일 째. 이번처럼 강경한 파업은 이곳서 지낸 4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며 옛 글들을 뒤적여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음을 알겠다. 그리고 2년 전(2005년 1월경)에 쓴, 정확히는 쓰다가 채 끝내지 못한, 부끄럼을 무릅쓰고 아래에 붙여 놓은 저 글에 적은 넋두리가 내가 지금/여기에서 늘어놓고 있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걸 보자니, 파업이 잊을 만하면 꼭 찾아오는, 철새못지 않은 주기성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알겠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내 사고가 2년이라는 세월동안 단 한 치도 진전하지 못했음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의도치 않은 자발적 감금 기간 동안, 레몽 크노의 "오딜"을 읽었다. 전후 50년대의 파리. 그 이론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산당 가입을 꺼리고는 있으나 코뮤니스트 친구들의 집회 참석에는 열심인 주인공 트라비는 코뮌 이후로 가장 대규모였다는 가두 집회(역사적 사실은 확인해 보지 못했다)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지금/여기 벌어지고 있는 일과 전혀 무관한 소설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책을 읽고 파업으로 인한 교통 지옥으로부터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무슨 모험담이라도 되듯 이야기하는 것이 고작인 지금/여기의 나는 몹시 부끄러워졌다. 아니면 회한이 들었거나.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