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auld acquaintance should never be forgot,
as they're always brought to mind...
—박쥐
blogin.com · 2004-12-31
...and auld acquaintance should never be forgot,
as they're always brought to mind...
—박쥐
blogin.com · 2004-12-27
-- 아아, 무슈 고다르, 그러니까 당신에게 영화란 그런 것이었군요. "그런 것이었다"는 말밖엔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어요. 당신도 이해하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당신도 이 영화를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역사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로 끝맺었던 거겠지요.
퐁피두 시네마에서 장 뤽 고다르의《영화의 역사(들)》을 보다. 원제는 Moments choisis des Histoire(s) du cinema. 1998년작. 이 영화는, 감독이 직접 말한대로, 그가 쓴 또 다른 영화사적 작업인 동명 영화의 축소판이기도 하고 축소판이 아니기도 하다. 난 전작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이 대목에서 하품에게 미안하다는 얘길 하지 않을 수 없다. 몇년 전 서울에서 고다르 영화제를 할 때 그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하품을 술먹자고 꼬시면서 "나중에 퐁피두에서 봐. 거기 현대 미술 전시관에서 하루 종일 틀어주니까" 라는 말을 했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그곳서 상영하는 영화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50년대 이후의 동시대 작품들의 경우 전시 목록이 계속 바뀐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었던 것. 그렇지만 예쁘고 착한 하품은 날 너그러이 용서해 줄 거고, 뿐만 아니라 예쁘고 착한 데다가 똘망똘망하기까지 하니까 어떻게 해서든 봤거나 앞으로 볼 수 있겠지 ^^), 어쨌든 상영 시간면에서 축소판으로 취급될 수는 있어도 그 외의 모든 면에 있어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얘기.
모든 걸 떠나서, 가장 먼저 피부에 와닿은 것은 고다르의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등장하는 "오직 영화만이(SEUL LE CINEMA)"라는 말.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씨네필로서 영화에 대해 바칠 수 있는 온갖 찬사들을 아낌없이 바치고 있는 저 거장 감독의 모습이라니.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거기에 가지고 있는 모든 열정과 재능을 쏟아붓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뿐인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러하다. "영화는 영화 자신이 원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고, 또 영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아아, 정말이지,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랴. 그리고 이 말을 하기 위해 다른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영화가 아니라면. 그러니, 이 교조적인, 그러니까 영화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의 한 교주가 전하는 복음 메시지와도 같은 이 영화를 보면서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의 이 모든 애정에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물론, 내 생각엔, 애정이 먼저고 애정에 대한 (합리적) 이유/근거는 나중에 가져다 붙이는 것들에 불과하지만. 모든 종류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이 "기술 복제 시대"에 예술이 예술로서 온전히 남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구현할 수 있는 장이란 오직 영화 속에 있다는 것이 고다르의 생각인 듯. 그리고 그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듯, 고다르는 1시간 반동안 쉴새없이 온갖 감각 기관을 자극한다. 문학, 미술, 사진, 연극, 음악을 넘나드는 수많은 이미지들의 향연.
예전에 《만화의 역사》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작가는 말했다, 만화사를 말하는/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에 대한 만화를 그리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 만화를 그리게 됐노라고. 그래도 만화는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사진의 역사를 사진만으로 말하기/쓰기란 힘들고, 이는 미술이나 그 밖의 다른 예술 장르들은 물론이고, 다른 과학들도 마찬가지다. 철학의 경우, 철학에 대한 역사 혹은 사관이 철학 자체와 무관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일치한다고 보기란 어렵다. 헤겔의 경우가 예외가 되겠지만.
그러니 영화쟁이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들은 자신의 작업을 역사화함에 있어서, 자신의 작업을 메타적으로 성찰함에 있어서 최상의 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메타 언어와 하위 언어가 일치하는 저 경이로운 광경이라니. 비록 고다르는 영화에서 "단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역사화하는 데에는 영원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역사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라고 말했지만, 그 정도가 어딘가. 그리고 그 이상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 이' target='_son'>http://www.centrepompidou.f ... ainementCategorie>이 영화의 공식홈으로는 유일한 퐁피두 센터의 영화 소개 페이지 바로 가기
* 영화' target='_son'>http://www.centrepompidou.f ... ;Arg3=Godard.rm>영화 부분 동영상 바로 보기(리얼 미디어 플레이어용 rm 파일)
* 그냥 넘어가자니 도저히 안되겠어서 덧붙임. Moments choisis (1998) 가 Les histoire(s) du cinéma (1989)의 축소판인가의 여부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양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감독이 후자를 1/4 분량으로 새로 편집해서 만든 것이 전자라고 해야 가장 정확할 듯. 그러니까 후자를 본/볼 사람은 굳이 전자를 볼 필요가 없다는 말.
* Les histoire(s) du cinéma (1989) 전편이 오는 2월 27일 씨네마떼끄에서 상영될 예정.
—박쥐
blogin.com · 2004-12-26
그러고 보니 올해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참 많이도 받았네요. Eglise
d'Auteuil 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 시작해서, 엄마가 보내준, 먹거리가 잔뜩 든 소포에다가, 수오기 언니의 '커피와 담배', 눈크 언니의
문어-양 책꽂이(요 옆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건 분명히 오리-토끼 그림의 또 다른 버전임에 분명해요), 라디오 프랑스에서 받은 브리지의
씨디, 그리고 E 언니의 초대, 그 자리에서 받은 무수한 하트 세례,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저녁의 몽마르트르
거리.
그러니까 조금은 행복해 해도 되는 거였겠지요? 크리스마스였으니까요.
* 트랙백
기능이 또 먹통인 관계로, 눈크,' target='_son'>http://nuncblog.egloos.com/850558>눈크, S, E 와 함께 한 크리스마스
저녁에 대한 눈크의 멋지구레한 포스트 를 직접 링크합니다. 눈크' target='_son'>http://nuncblog.egloos.com/>눈크
언니의 블로그 는 지금 크리스마스날 저녁의 몽마르트르 거리를 찍은 아주 멋진 사진들로 가득해요.
—박쥐
blogin.com · 2004-12-21
수오기 언니가 빌려주고 간 에미코 야치의 《공주님의 요람》을 읽자마자 내게도 이런 일이! 수오기와 눈크, 두 사람이 내 '행운의 보석'이었나 봐요. ^___^
—박쥐
blogin.com · 2004-12-16
1.
그저께, 오랜만에 꿈을 꿨다. 뭐, 사실, 꿈이야 매일 꾸지만, 꿈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심지어 꿈을 꾸기는 한 건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에 꾼 꿈은 그 지각적 생생함 때문에 또렷이 기억난다.
엄마였던 것 같다. 엄마가 옆에 있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말을 하려는데 입 안에 뭔가 물리기 시작했다. 이빨이었다. 이빨들이 하나 둘씩 빠져 나가고, 아니 뭔가에 쓸려 나가고 있었다. 도미노처럼. 바람 따라 누운 갈대처럼. 옥수수가 자신의 알갱이들이 하나씩 뜯겨 나갈 때 딱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 속의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그 사태를 현실 속에서 내가 겪은 일들에 비추어 판단하는 습관이 있다. 이번에도 꿈 속의 나는 생각했다. 요즘 들어 담배 때문인지 치통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빨이 모조리 빠져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곤 하는데, 드디어 일이 터졌구나.
그렇지만 나는 엄마에게 하려던 말을 해야 했다. "왜 말을 못하니?", "이빨이 모조리 빠져서", "이빨이 왜 그렇게 됐어?", "담배 때문인가봐", 모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일은 없어야 했기에. 이것은, 어떻게 하면 "여자애가 어떻게 담배를 피우니?" 하는 말을 하지 않고도 딸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다행히 말이 나왔다. 꿈 속의 나는, 이빨이 다 빠졌는데도, 아무 문제 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2.
꿈만 꾸면 해몽을 검색해 본다는 스노우캣의 말이 생각났다. 네이버 지식인에 들어가 "이빨이 빠지는 꿈"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하고 있는 일에 큰 변화가 생긴단다.
불안해졌다. 내 하고 있는 일이란 게 뻔하지 않은가. 지도 교수에게 그나마 좀 제대로 된 논문 계획서를 보내놓은 것이 엊그제의 일. 그는 아직까지 답장을 주지 않았다. 어제 수업에서 한 다른 교수가 학교 전체의 메일 서버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길 듣고 안심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지도 교수가 나를 거부할 것이라는 말인가.
그런 저런 생각 속에, 그리고 오늘 있었던 불어 시험 때문에,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시험도 보느니 마느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찌라시 기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 재빨리 끝낸 뒤에 잠이나 푹 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3.
와보니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찌라시" 뉴스 편집장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당분간 일을 맡기지 못하겠다는 전갈이었다.
허무해졌다. 짤리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과외를 하다가 짤렸던 적은 있지만, 사실은 제법 되지만, 너무나 오래 전의 일이라 그 기분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가 떨어졌음을 확인하는 일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 이유가 경기 불황이든, 학생의 성적 저하든, 그 무엇이든 간에.
그러다가 꿈 생각이 났다. 그렇담 이것이, 바로 그, 그 큰 변화였다는 말인가? 갑자기 유쾌해졌다. 그래, 큰 변화이긴 하지. 한 달 생활비가 들어오던 창구가 막혀버린 셈이니. 그래도 그 정도의 변화라면 감당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변화가 아니라는 게 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4.
비가 내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눈을 내려줄 것처럼 굴다가 속절없이 빗방울만 추적추적 뿌리고 말아버리는 파리의 하늘이라니. 그래도, 이 무너질 듯 무거운 하늘 아래에도, 솟아날 구멍이 없진 않겠지.
어쩌면 이번에 뽑은 이들은 내가 오래 전부터 앓고 있었던 것들인지도 모른다. 이빨이 뽑혔다면 새 이가 나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것을 박아 넣으면 될 일이다. 그도 안되면 잇몸으로 씹으면 된다. 어쨌든 그렇게 해도 살아지지 않더냐. 어쨌든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 않느냐.
—박쥐
blogin.com · 2004-12-12
동물원의 노래를 듣다 보면 가끔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보라, 이 30대 화이트 칼라 남성들이 어떻게 자신들만의 정서를 공통의 것으로 전유해 내고 있는지.
그들은 알까? 이런 회한이나 비애 같은 것들도 자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을. 그들이 9 to 5 의 삶에서 느끼는 공허함조차 그들만큼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사치스럽기만 한 감정이라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그들의 노래에서 위안을 찾는 나는 또 뭔지. 심지어 주말만 되면 이 노래를 찾아 듣는 버릇을 들여놓기까지 했으니.
어쨌든 좋은 주말이 되길 바라며. 당신에게도. 내게도.
—박쥐
blogin.com · 2004-12-09
2004년 가을의 어느날, 몽파르나스,
어느 이름 모를 가족의 무덤에서.
내가요, 이래서, 비록 사이비이긴 하지만, 카톨릭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얘길 못한다니깐요. 그/그녀가 누군지, 그/그녀가 존재하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그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고 또 지금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다 그/그녀가 자신의 정체나 존재 여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그/그녀를 위해서 혹은 그/그녀의 이름으로(그저 이름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라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 그런 것들 때문에 그/그녀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깐요.
—박쥐
blogin.com · 2004-12-03
1.
문득, 사람들이 나를 수, 라고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절대로 그 때문이 아니야, 하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 때문인 것만은 아니야, 하고 말한다 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다. jEeSUn 가지고 조합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되고, 그가 테리 이글턴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소설 여주인공 중에서는 최초의 (의식적) 페미니스트라는 Sue가 나 역시 좋았고, 그녀를 닮고 싶었고, 가끔씩 그녀와 비슷한 행동을 하거나 하려는 날 보며 놀랄 때도 있고, sur 보다는 sous 가 나랑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내 사는 꼴도 euro 보다는 sou를 연상시키는 맛이 없지 않아 있으니까. 무엇보다, '수'는 그 어느 나라 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음운학적/음성학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까 (그런 면에서 하품이 무척 부러웠다). 아니, 그보다는, '썬'이 주는 기만적인 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빠는 나를 가끔, 아니 꽤 자주 '써니'라고 부르곤 했다).
2.
그래서 앞으로 누가 넌 널 어떻게 부르니, 하고 물으면 난 나를 수라고 불러, 라고 답해야지, 하고 결심했다.
3.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네 이름이 뭐니, 하고 물었다. 차마 내 이름은 수야, 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난 나를 수라고 부른다, 는 거짓이 아니지만, 내 이름은 수다, 는 명백한 거짓이고, 불행히도 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은 잘 하지 못하게끔 길들여졌으니까.
4.
그래서 난 아직까지 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L여사가 수오기, 가 되었다. 사실은, 어쩌면, 아주 간단한 일일 지도 모르는데, 내 이름 발음하기 어려우면 나를 수라고 불러도 좋아, 라는 말을 난 왜 죽어도 못하겠는 걸까.
—박쥐
scarph · Scarph : PauvRe, Haute, Solitaire et melAnCol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