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9일 일요일

불로뉴 숲 산책

blogin.com · 2004-09-19


<사진 설명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1. 이걸 찍는 동안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지나가던 남자가 큰 소리로 "쟤는 뭘 찍는 거지?" 하고 말했다. 그 말 뒤에는 아마도 "뭐 찍을 게 있다고..."가 생략돼 있었을 것이다. 확실히 그가 옳았다. 피사체들은 그다지 포토제닉하지 않았다. 가을이 깊으려면 아직 멀었다.  

2. 마르셀 프루스트는 3살 때 이 숲을 산책하다가 돌아오던 길에 처음으로 천식 발작을 일으켰다.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3. 올여름 바다 한 번 가보지 못한 설움을 달래기에 호수는 역부족이었다.

4. 열매를 찍고 싶었는데, 찍힌 것은 바람이었다.

—박쥐

2004년 9월 12일 일요일

또 하나의 세대론 : 요약

blogin.com · 2004-09-12

대학생들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도덕을 위해서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지 않았으면서,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도덕적이고 순수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분방하면서도 확신에 찬 거대한 동맹의식이었다. 그들이 순수하고 도덕적인 것만큼 그들에게는 가차없는 비판의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 학내 이기주의자들에 대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젊은이였고 대학생이었으니까. 유감이지만 그들은 대다수가 이십 년 후에는 자신의 부모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리라는 것을,--최소한 오직 욕망에 천착하리라는 점에서-- 내면으로는 잘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젊은이고 대학생이므로, 적어도 지금은 누구에게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처럼 무죄이며, 나아가서는 미래지향적이고 혁명적이며 도덕적이고 순수한 것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무지하다고는 할 수 있어도 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어린아이는 도덕을 위해서 어떠한 노정도 밟지 않았고 어떤 수고도 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위한 조그만 고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단지 부도덕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그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오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다. 편리하게도 그들의 이 (일시적인) 행위에 명분을 부여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존재는 언제나 그들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마치 신문이 그들을 '신인류'라고 부르고 그런 이름에 으쓱해지지만, 실상은 무엇이 새롭다는 것인지 그들 자신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들의 새로움이란 것이 부모세대의 경제적 성과를 너무나 당연한 선물인 것처럼 꼭 움켜쥐고 소비문화에 충실한 결과 자연스럽게 발생한 취미의 다양성이나 욕구분출의 자유로움에 따른 정신적 여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진화의 덕택으로 좀더 창의적인 두뇌를 타고났기 때문이며, 게다가 그들은 뭔가 운명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이 우월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풍요한 문물이 넘치는 80년대에 젊은이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기껏 68세대 혹은 4.19 세대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더구나 젊고 신선한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그런 호칭을 부여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기 좋아할 뿐이다. 대학의 상부가 독재적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권위로 가득 찬 관료의 세계라면, 대학의 학생들 또한 거기에 충분히 걸맞게 충실한 군중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온갖 명분을 획득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매달려 호흡하고 양분을 빨아먹고 있으며 오직 그것의 명령과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군중의 맹종이라는 것의 실체를 볼 줄도 모르고 믿지도 않으며, 그들 대부분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유는 그들 중 아무도 자신이 '군중'에 속해 있다고는 감히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쿨!


--배수아, <독학자>, 31~33쪽 (열림원, 2004)


이번에 떠나오기 전 선물로 받은 소설.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바가, 그리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압축적인 방법으로 나타나 있다. 

—박쥐

2004년 9월 10일 금요일

응시 - 연습 혹은 모방

blogin.com · 2004-09-10


드디어 디카를 제대로 쓸 수 있게 된 것을 기념해서. 재미삼아 찍었는데 찍고 나니 벨라스케스의 <메니나>가 생각나서.


오른쪽 그림은 artlex.com 의
"응시(gaze)" 항목 중에서. 

—박쥐

2004년 9월 5일 일요일

꿈인지 현실인지

blogin.com · 2004-09-05

꼬박 나흘 동안,

<데이 에프터 투마로우>, <브리짓 존스의 일기>, <스텐 바이 미>, <슈렉2>, <엘리펀트>, <브링 잇 온>, <거미숲>, <러브 엑추얼리>, <로스트 인 트렌스레이션>, <팻 걸>,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의 영화와 <아일랜드> 같은 드라마를 보다 보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현실이 뭐고 꿈이 뭔지 모르게 되더란 말이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엘리펀트>를 보면서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에 품은 <러브 엑추얼리>와 같은 실현 불가능한(!) 꿈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살다보면, 비행기를 놓쳐 예상치 못했던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아일랜드> 같은 드라마를 내 집 TV로 보게 되거나, 대한민국 대통령 입에서 "국보법은 잘못됐으니 폐지돼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일도 생기니까.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