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4일 월요일

Difference and Repetition

One day my love said to me I miss you 
So I said, don't miss me
Don't be cruel, he said
So I said, enjoy or endure it then

I was so cruel back then
Just as you are to me now
I know you don't mean it
Not as much as I did to him

Now I know why I did that to him
I didn't care about him at all
Not so much as you do about me 
That's why you do that to me 

We are so cruel after all
To the ones who care about us
To care about someone else
Who doesn't care at all 

If you say I love you
You'd never told, so do I
They'd rather say, I don't any more*
That's the way it is after all

I miss you, don't miss me
I love you, I don't any more*
I love you, only if you don't**
That's the way it is after all



*Or : neither do I, two meanings of "moi non plus," from Serge Gainsbourg, "Je t'aime, moi non plus"

** "L'amour est enfant de bohème/Il n'a jamais connu de loi/Si tu ne m'aimes pas je t'aime/Et si je t'aime prends garde à toi," from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in Bizet, Carmen (livret : Henri Meilhac et Ludovic Halévy)

2016년 3월 5일 토요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차이와 반복

https://www.critikat.com/actualite-cine/critique/un-jour-avec-un-jour-sans/

홍상수의 2015년작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이번에도 제목에 찬사를. 영제 "Right Now Wrong Then" 도 브라보. 프랑스에서는 "Un jour avec, un jour sans" 이란 제목으로 개봉. 직역하면 "하루는 있고 하루는 없고" 정도가 되겠는데, 이 역시 나쁘지 않다). 이 영화 만큼 "차이와 반복"을 주제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체현한 영화가 또 있었을까. 앞으로도 당분간은 또 나올 것 같지 않다. 

이쯤 하면 당장 예상되는 반론 : <라쇼몽>이 있었고, 심지어 바로 같은 감독의 <오, 수정>이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하루가, 같은 사건들이, 같은 순서로, 무한 반복되는 일종의 시간여행 소재의 (탈을 썼으나 사실은 "영원회귀" 교설의 영화적 해석이라 봐도 좋을) 장르 영화로는 Groundhog Day, 최근에는 나로서는 꽤나 재미있게 본 Edge of Tomorrow 가 있었다. 참, <엑스파일> 6시즌의 "Monday" 도 있었다. 두 부류의 영화 모두 영화적 시간성, 아니 시간성 자체(그리고 "영원회귀" 교설/신화!)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고 실험의 소재를 제공하는데, 이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그 두 범주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니면 그 중간 지점에 있거나. 그도 아니면 둘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거나. 

순수 차이와 순수 반복. 그중에서도 반복의 역할이 결정적이며 거의 초월적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아무 설명 없이 그저 반복만으로 생겨나는 차이.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 차이란 것도 너무나 미묘해서 이런 종류의 담론에서 곧잘 인용되곤 하는 카오스 이론의 이른바 "나비 효과", 즉 원인에서의 미묘한 차이가 결과상의 커다란 차이를 낳는다는 논변은 부적절하다. 원인상의 차이도 미묘하고 결과상의 차이도 미묘하다... 영화 서사를 구성하는 사건들 사이에 원인과 결과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굳이 원인과 결과를 꼽자면, 전자는 남주인공의 여주인공에 대한 태도겠고, 결과라면 헤어지고 각자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결말일 것인데. 여기에서 각 사건을 "태도"나 "결말"이라 이름 붙여도 되나 싶은 것이, 사실 각각은 그보다 훨씬 더 미세한, 심지어 미소하다(infinitésimal)고도 할, 그런 종류의 사건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1부에는 남주인공이 호텔방 안에 드러누워 "너무 예뻐. 조심해야지. 하룬데" 라며 중얼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2부에는 없고, 1부에서 화가인 여주인공의 작품에 대한 무성의하지만 그럴 듯해 보이는 견해("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뭔지 모르면서")를 밝히는데 2부에서는 좀 회의적이고 냉소적이지만 그런만큼 그냥 쉽게 내던진 건 아님을 짐작케 하는 의견("퀄리티는 좋은데 좀 상투적인 것 같아요. 작품으로 위로를 받으려 해서 그래요. 원래 위로는 상투적이어야 하잖아요" :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논변이었지만)을 제시하는 등등 차이(그런데 여기에서 에릭 로메르의 옴니버스작 <파리의 랑데부 Rendez-vous à Paris> , 특히 그 중 한 단편, "Mère et enfants 1907" 을 떠올린 건 나뿐일까? 남녀의 역할만 바꾸면 정황과 대화의 내용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여기에서는 회화 전문 출판업자의 아내이자 본인 스스로도 식견이 높은 여성이 남성인 화가에게 "아직 정착하지 않고 뭔가를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하고 말하는데 이 말을 화가는 맘에 들어한다. 이 영화는 보통 로메르의 평작으로 평가되고 나도 이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지만 이 단편만큼은 좋아한다. 특히 마레 지구 골목을 따라 걸어가며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수작을 펴는 장면을 발걸음 및 대화에 맞춰 리듬감 넘치게 담은 시퀀스 샷). 가장 결정적인 차이라면, 아무래도, 1부에서는 남주인공이 자신의 결혼 사실에 대해 의도친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솔직하지도 않았던 데에 반해, 2부에서는 자진해서 밝힌 데에 있을 것이다. 같은 사실과 서사 구성 요소라도 어느 맥락에, 그리고 어느 시점에 놓여지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그런데 바로 그러한 미묘한 차이들이 영화 전체, 그에 대한 감상에 미치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그리하여 영화는, 지방으로 내려간 영화감독이 현지 여인을 만나 수작을 걸고, 여인은 넘어오기도 하고 안 넘어오기도 하고 등등, 홍상수 영화에서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인물 구성 및 서사에서 출발했음에도, 결국, 홍상수 영화에서는 이례적으로, 웬만한 로맨틱 코미디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너무나 산뜻하고 따뜻한 결말을 맺기에 이른다. 2부 마지막. 어디부턴가 살짝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고, 뒤에서 어젯밤 헤어진 그녀가 나타나고, 둘은 수줍은 소년 소녀처럼 대화를 나누고, 그가 악수를 청하자 그녀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가면서까지 흔쾌히 답하고... 그리고는 끝인 줄 알았더니, 웬걸, 그가 다시 극장으로 들어와 그녀를 찾고, 어둠 속 객석에서 둘은 속삭인다 : "보고 싶었어요" "나도요" "이제 감독님 영화 다 볼 거에요" 그렇게 헤어지고 극장을 나온 그녀가 함박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샷은 비현실적이라기보다 차라리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이 홍상수의 세계임을 감안하면.

또 하나의 차이와 반복. 대개의 홍상수 영화가 그랬듯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음악이 전혀 나오지 않는 대신(이 역시 참으로 로메리앙한 측면), 1부의 처음과 2부 시작하기 전, 그리고 피날레로는 같은 음악이 흘러 나온다(로메르 영화에도 가끔 예외가 있었는데 <녹색 광선>이 그 중 하나였다. 처음과 끝, 그리고 중간에 잠깐 무반주 현악곡이 흘러 나온다. 로메르 자신이 작곡한). 그리하여 음악은 오페라 같은 악극에서 서곡이나 일종의 표제곡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 생각해 보니 <옥희의 영화>에서도 그랬다. 거기에서는 위풍당당 행진곡이 무척 생경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에서는 현악으로 편곡한 "봄이 오면"이다. 편곡이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봄이 오면"의 가사를 떠올려보니 제법 그럴싸하다 :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건넛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 가주" 꼭 봄바람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마음이 흔들릴 일이 없겠는가. 그 흔들림에 대처하는 자세를 영화는 두 가지 사례로 보여준 셈인데. 사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차이라고는 식별하기 힘든 디테일이 전부지만, 그 디테일의 변화가 참 많은 차이를 낳는다. 실제 삶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