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오늘도 온종일

오늘도 온종일 나는 널 생각하느라 
어젯밤 꼬박 네 꿈을 꾸고도 모자라  

어느 책을 봐도 행간과 활자 틈에서
네가 얼굴을 내밀어 내게 눈짓하고

어느 음악을 들어도 선율을 타고서
날 부르는 네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어느 영화를 봐도 장면과 장면 사이
네가 나와서 활짝 웃으며 날 부르고 

어느 거리를 걸어도 골목 어디선가
네가 문득 나타나 안아줄 것만 같아 

세상은 그렇게 온통 너로 가득차서
어서 네게 달려가 안기라 재촉하네



오늘도 온종일 나는 널 생각하느라
해가 지고 밤이 오는 줄도 모른 채 

하루를 꼬박 널 생각하고도 모자라
여전히 네게 가서 안기고픈 생각뿐 
 
너로 가득하던 세상도 어둠에 잠겨 
이제는 너를 비워내고 잠에 드는데

나는 밤의 텅빈 자리를 너로 채우며
꿈속에서 널 다시 맞을 준비를 하네

오늘밤도 나는 너를 꿈꾸며 잠드네
어젯밤 꼬박 네 꿈을 꾸고도 모자라 

오늘도 온종일 널 꿈꾸고도 모자라
세상을 너로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2014년 12월 12일 금요일

<인터스텔라>의 "그들"

헐리웃 블록버스터 역사상 보기 드문 하드SF라 하는데... 등장 인물들이 상대성과 양자역학에 대해 상세히 논구하고 두 이론을 결합하는, 다름 아닌 물리학과 우주론의 최대의 난제가 곧 영화의 그것인 것을 제외하면... 그런데 바로 그 난제의 열쇠를 쥔 것이 결국에는... 사랑. 놀란이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을 보라 : "이 영화는 사랑의 신비를 찬미한다. 사랑에 기하학적인 토대가 있고, 이 토대로써 보다 높은 차원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전제다."

영화의 이론적 용어와 쟁점들은 나로서도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기본적인 줄거리조차 재구성하기 힘들었을 정도--원래 "스토리텔링"이 내 취약 분야이긴 하나.  imdb의 Did you know?와 Nature에 실린 손의 인터뷰 등 몇 개 문서들을 통해 "복습 및 예습"을 거치고서 두 번째로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대충이나마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서사"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것이었음도. 세 번째로, 그리고 그 전이나 후로 킵 손이 쓴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보고 난 뒤에 보면 좀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을 법한데... 그래서 지금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띄엄띄엄 읽는 중이긴 한데, 그리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게 될는지는... 

< 그래비티>가 하드하고 드라이하고 사실주의적이고 미니말리스틱한 점에서 <2001>의 계보를 잇는다면, 이 영화는 그보다는 <솔라리스>와 <콘택트>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히 <콘택트> : 매튜 맥커너히, 외계로부터의 모르스 혹은 바이너리 신호, 아버지와의 강력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어떤 신념으로 시공간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여류 물리학자. <콘택트>가 칼 세이건 원작이었고 그의 자문을 거친 것처럼 <인터스텔라>는 고 세이건의 친구이기도 한 킵 손의 자문을 거쳤고. 경험과 이론의 한계를 초월하는, 칸트가 말하는 이념의 영역이 있고, 이 초월적 영역은 흔히 생각하기 쉬운 것과는 달리 이론 이성을 진리의 추구로부터 오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리에의 길로 안내한다는, 일종의 암묵적 전제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인터스텔라>의 경우에는 더 나아가 이 전제를 더 끝까지 몰아부쳤다 하겠다. 이념--사랑!--이, 그것이 현상계를 재구조화해서든, 아니면 이미, 그러니까 선험적으로, 구성 원리로서 주어져 있었든 간에,  전혀 새로운 진리--궁극의 양자중력 방정식!--로 인간을 인도하여 마침내는 구원(!)의 길로 영도한 것이다. 

사랑 타령도 그렇지만 문제는 "그들"이다. 토성 근처에 웜홀을 만들고, 웜홀도 그냥 웜홀이 아니라 충분히 안정적이어서 시공간 이동을 가능한 종류의 것으로 하고, 웜홀의 다른 구멍 밖으로는 또 바로 블랙홀을 만들고, 그런데 블랙홀도 그냥 블랙홀이 아니라 자전속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아서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이 둘 이상 될 정도는 되는 종류의 것으로 하고, 그런데 또 충분히 그 속도가 충분히 빠르기도 해서 그 상대론적 효과로 인한 시간 딜레이가 2시간이 지구상의 28년과 등가가 되도록 하고... 3차원적 시공간 지각 능력을 가진 인간 (및 기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하이퍼스페이스를 만들고 이를 통해 중력을 이용해서 블랙홀 내 데이타를 지구로 전송하게끔 하고... 그리하여 머피로 하여금 양자중력 방정식을 풀도록 하고... 이 모든 것이 지구를 구하도록 하기 위한 "그들"의 간지였다는 것이다. 서사 기법으로 볼 때는 고대 그리스 희곡의 기계장치 신(deus ex machina)에 가까워 보일 법도 하다. 물론 여기에서의  "신"는 그보다는 좀더 치밀하고 정교한 전략을 구사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행동 및 그로 인한 우주의 역사의 전개는 현대 우주론자들이 말하는 "인류 원리"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브랜든 카터, 프랭크 티플러, 마틴 리스 등 이 원리의 주창자 및 옹호자들은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인류라는 지적 생명체의 탄생이라는 결과를 낳기 위해 우주가 구조화되어 있고 또 그렇게 진화해 왔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가정은 규제적 원리인 동시에 구성적 원리로 사용된다. 인류의 탄생은 단지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궁극적 "목적",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던 "목적인"에 가깝다. 이에 따라 우주의 구조와 역사에 대한 이론은 방법론상으로도 이 "목적"을 중심으로 한 목적론적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인터스텔라>의 경우에도 "머피와 쿠퍼를 매개로 한 지구 구하기"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거의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이것이 블랙홀 내부 초공간에서 쿠퍼가 깨달은 바다. 결국 쿠퍼가 과거에 경험했던 사건들, 특히 중력 이상 현상이 사실은 미래의 자신이 초래한 결과였다는, "그들"이 사실은 바로 "우리"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필 그가 경험하는 다양체--테서랙트--의 모든 입면들이 이 머피의 방의 우주선(line of universe)으로 이어져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일종의 역행 인과(backward causation). 기존의 인과론적 설명 모델의 기준에서 보자면 논점선취의 오류이거나 순환논리이거나 인과율에 위배되는 것 같지만, 목적론적 설명 모델에 따르면 말이 전혀 안 되지는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왜?"에 대한 답이라면, "어떻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그러나, 아무리 사랑의 힘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그렇다. 웜홀의 생성에서부터 블랙홀 시스템의 위치 선정, 나아가 테서랙트의 설치 등등은 아무래도 초월적 존재에 호소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들"이 누구인지 영화가 명확히 제시하고 있지 않음에도("사랑"의 인격화된 형태가 아니라면. 그런데, 만약에, "사랑"을 인격화한 신이라면... 비너스나 에로스?), 아니,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초월론적으로 혹은 신비주의적으로 해석되기 쉬운데, 물론 그럴 위험이 있고 실제로도 그런 감이 없지 않으나, 그렇게 너무 쉬운 해석은 창작자도 해석자도 피해야 할 것이다 (세이건이 대표적인 반창조론자에 무신론자, 최소한 불가지론자였던 만큼이나 놀란도 또한 그러할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  굳이 그가 다윈의 나라 출신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최소한 작품에서만큼은 세속 원칙을 벗어나고 있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콘택트>의 외계 지적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터스텔라>의 "그들"(<2001>의 모노리트와 <솔라리스>의 초지성체도 있지만 일단 생략)이 보통 "신"이라 이름되는 초월자와 다른 점은 바로... 초재적/초월적(transcendant)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록 초공간적(hyperspatial)이고 고차원적(hyperdimensional)이긴 해도. 그런 점에서 "그들"은 17세기 데이즘(자연신론)의 이신(理神)에 가깝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법칙을 창조하고 세계를 연속 창조하는 데카르트의 신이나 세계 체계의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뉴턴의 시계공 신이거나 내재론적 신, 그러니까 스피노자의 자연이거나. 아니 어쩌면 라플라스의 초지성체에 가까울 수도 있다. 3차원 공간+1차원 시간을 넘어서는 5차원의 시공간 구조(벌크)를 지각하는 존재들이야말로 결국 라플라스가 말하던, 우주의 가장 작은 원자에서부터 거대한 물질까지, 과거에서부터 미래에 이르는 모든 상태를 한 눈에 볼 줄 안다던, 초지성체의 다른 이름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라플라스가 "신이라는 가설"을 필요로 하지 않았듯 이 영화도 "신"에 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은 열려 있다. 영화도, 지금의 이 글도.

... 그런데 "열린 결말"이야말로 이 시대의 기계 장치 신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