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8일 목요일

전설의 수련, 수련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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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강원대 연적지
iPhone SE

지베르니 모네의 집에서도 저렇게 연못 한가득인 수련을 본 기억이 없다. 아니 수련 자체의 기억이 모네의 그림으로 본 것 말고는 없다. 시뮬라크르로 대체되었던 실재와의 조우. 그런데 조우한 실재는 다시 시뮬라크르로(위의 사진).

에드워드 윌슨은 1993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인류는 자살 성향을 띠는가?”에서 프랑스에서 전해 내려온다는 수수께끼를 언급한다. 연못가의 수련이 한 번 피어나기 시작하면 하루에 두 배씩 늘어난다. 30일 후 연못이 연꽃으로 가득 찬다면 연못의 절반이 채워지는 것은 언제인가? 정답은 당연히 29일째.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든 예다.

이렇게 급수적인 전개는 많은 종류의 위기와 재난에 적용될 수 있겠으나, 또 적잖은 위기와 재난이 돌발적으로 발생하며 그 전개 양상도 변칙적이어서 (가령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31번 환자의 등장과 더불어 확진자 수가 급증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늘 긴장과 경계를 늦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느라 힘이 빠져 정작 위기가 닥쳤을 땐 대처 능력이 없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해마다 아니 날마다 반복되는 이 순환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나도 좀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단 말이다.


위험한 소녀의 조용한 일갈


삼청동, 2019년 9월
iPhone 6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블로그다. 블로그를 방치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언어, 그리고 사유와의 불화 때문이었다. 아,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언어와 사유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호의존적임을.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사유란 자기모순이요 실현은 물론이고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할 말도 쓸 말도 없다는 건 생각이 없다는 것. 그러면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연구한다고 감히 나서 왔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다른 이유는 아이폰 6로 바꾼 후 마땅한 블로깅 앱을 찾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번에 큰맘 먹고 3유로가 넘는 전용 앱을 마련했다 (올케 ㅎ에게 감사).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도, 다른 이유나 핑계나 찾고 뭐고 할 것 없이 무조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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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에 앞서, 혹은 그와 더불어, 읽자. 이 역시 부끄러운 일이지만 뭐든 제대로 읽은지가 너무도 오래 되었다. 

위의 사진은 지난 9월의 볕 좋은 어느날, 엄마와 삼청동 수제비를 먹고 나오는 길에 찍은 것이다. 보고는 요전 블로그에서 성황리(?)에 진행하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콜렉션이 생각나는 한편으로... 부끄러웠다. “위험한 여자”인지 너무도 오래. 다시 위험해지라, 소녀는 내게 그렇게 일갈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