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1일 토요일

다시 돌아온 자기소개서 쓰는 계절에 다시 읽는 "합격" 자기소개서

자기 소개를 겸하여 혹은 대신하여*


지원서를 제출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모집 광고를 뒤늦게, 그것도 마감 하루 전날, 정확하게는 마감 시각으로부터 6시간 전에서야 봤다는 개인적인 사유가 참작될 리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광고를 보고서도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였던 까닭에 6시간 내에 번역문, 기사, 그리고 자기 소개서를 완성하기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그럴 듯한 변명으로 들릴 리 만무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대개 이런 식입니다. 약속 시간에는 늘 늦습니다. 숙제를 제출할 때나 원고나 기사를 쓸 때면 마감 기한을 넘기는 것이 보통입니다. 시험을 볼 때도 감독관의 짜증이 극도에 달할 때까지 답지를 붙들고 있곤 했습니다. 

왜 이렇게 스스로에게 불리한 진술을 계속해서 늘어놓는지 궁금해 하실 줄 압니다. 프랜시스 윈이 쓰고 정영목이 옮긴 『마르크스 평전』에는 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쓰면서 남긴 일화가 나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증상을 알 것이다. 계속 늦추고, 어디 정신을 팔 수 있는 일이 없나 계속 두리번거리고, 당면한 일 외에는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는 상태. 마찬가지로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산주의자 동맹'의 런던 지도자들이 점점 안달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도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1848년 1월 24일 브뤼셀로 최후통첩을 보냈다. […] 마르크스는 보통 마감시간이 다가왔을 때에야 최선을 다했다. 이번 경우도 위의 최후통첩이 효과를 발휘했던 것 같다. […] 마침내 2월 초에 런던에 도착한 문서는 마르크스가 도를레앙가 42번지에 있는 그의 서재의 자욱한 시가 연기 속에서 밤새도록 미친 듯이 휘갈겨 쓴 것이었다.
감히 제 자신과 맑스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윗글을 인용한 것은 글을 쓸 때의 제 행태가 맑스의 그것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 역시 “마감시간이 다가왔을 때에야 최선을 다” 하곤 했었지요. 사실 이런 제 “증상”이 단순히 나쁜 습관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의도적으로 “계속 늦추고, 어디 정신을 팔 수 있는 일이 없나 계속 두리번거리고, 당면한 일 외에는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는 상태”를 부르기도 하거든요. 그 상태를 거친 다음에서야, 즉 마감시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이 충만하게 발휘되고, 또 그런 만큼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웹진은 공적인 글쓰기를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못된 버릇이 초래할 수 있을 위험한 결과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그것이 가져다 줄 수 있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위에서 쓴 것과 같은 시간 관념을 타인에게 피해가 줄 정도로 남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덧붙여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숙제를 늦게 제출해서 감점을 받거나 약속에 자주 늦었다는 이유로 애인으로부터 헤어지자는 통고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원고를 펑크내거나 편집 일정에 차질을 줄 정도로 늦게 보내는 일은 없도록 스스로를 모질게 다그친다는 것이지요. 

제가 <컬티즌>의 필진으로서 일하기에 부족하기는 할지언정 부적합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글 쓰는 사람들의 나쁘지만 그렇게 나쁘지만 한 것은 아닌 버릇을 가졌다는 점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제게는 어떤 것에 대해 한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만 하면, 아무리 그것이 전혀 몰랐던 분야에 속해 있는 것이었을지라도, 어떻게 해서든 이해가능하게끔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제게 이러한 특별한 재주가 있음을 깨달은 것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가 대학원신문의 편집에 참여하면서부터였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부터 저의 관심사는 무척 다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오로지 한 곳에 온 정신을 집중해도 모자를 판에 그렇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핀잔을 듣곤 했었지요. 그런데 대학원신문사에서 학술 기사를 기획하거나 작성했던 경험을 통해, 저의 이 리좀과도 같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강점으로 내세울 방법이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이 학술 논문보다는 학술 기사를 쓰기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자각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각각의 지식을 얕은 수준으로 아는 데에 만족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붙들고 매달릴 만한 주제를 발견하면, 그에 대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꽤 그럴듯한 분석적인 그리고/또는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곤 하지요. 이때의 집중력에 위에서 말씀 드린 “최후 통첩” 효과가 곁들여지면 더더욱 말씀드릴 것도 없겠지요. 제가 대학원신문 일을 좋아하고 또 부끄럽지 않게 해낼 수 있었던 것도, 아나키스트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해서 아나키즘 이론에 밝지도 않았음에도 『아나키즘의 역사』(장 프로포지에 지음, 이소희 • 김지은과 함께 옮김, 이룸: 2003)라는 책의 번역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저는 철학과 대학원에서 수학 및 과학에 관한 논문을 쓴 뒤에 지금은 파리 7대학에서 프랑스 인식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컬티즌>이나 그 밖의 다른 인터넷 언론들을 통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위치해 있는 곳의 “지정학적” 조건을 이용해서 무언가 다른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컬티즌>이라는 공간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