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1.
아침에 일어나 몸을 씻으며 오늘도 오지 않을 너를 생각한다 네가 오지 않는 날이 쌓여갈수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나는 내 안의 너 오늘 하루 너는 또 얼마나 높아질까 오늘은 오늘 하루만은 제발 너 없이 보냈으면 흐르는 물줄기 따라 너도 흘러 갔으면 그런데 내 몸을 따라 흘러 내려간 너는 어느새 한움큼이나 내려앉아 내 머리카락과 어지러이 엉킨 채로 내려가지도 녹지도 않고 자꾸 쌓여만 가는 너라는 앙금
 
2.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너와 싸운다 내 안에서 너는 물어 뜯기고 찢겨 너덜너덜해진지 오래 그런데도 너는 죽지 않는다 이제 좀 잠잠한가 싶으면 어느새 되살아나 달겨든다 아무리 울며불며 저주하고 꼬집고 할퀴고 깨물고 온갖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다 동원해도 사라지지 않는 너와의 끝없는 싸움 이러다 내가 사라지고 말 차라리 그게 나을 너와의 승산없는 싸움

3.
늦은 오후 점심으로 허기를 채우고도 나는 여전히 고프다 네가 고프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우기 무섭게 비워내는 밑 빠진 내 마음 그 자리에 네가 있다 아니 그곳은 네 자리이나 너는 거기에 없다 너를 아무리 비워내고 비워내도 네 자리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 나는 밑이 빠진 줄 알고도 물을 붓고 또 붓고 그러고도 여전히 네가 고파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너라는 허기

4.  
어느덧 날이 지고 세상은 어둑해지는데 너 없는 밤은 또 얼마나 깜깜할까 이제 며칠만 지나면 보름달이 뜨고 또 며칠 뒤에는 동지섣달인데 너없이 그 긴 밤을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님 없는 밤 허리를 잘라내어 둘둘 말아두었다가 님 오는 밤 훌훌 풀어낸다던 여류시인의 풍류를 나는 갖지 못해서 그저 오지 않는 네가 야속하기만 한 길고 긴 겨울밤

Promises Like Pie-Crust - Christina Rossetti

Promises Like Pie-Crust - Christina Rossetti (d'après Carla Bruni)
 
Promise me no promises,
So will I not promise you;
Keep we both our liberties,
Never false and never true;
Let us hold the die uncast,
Free to come as free to go:
For I cannot know your past,
And of mine what can you know?

You, so warm, may once have been
Warmer towards another one; 
I, so cold, may once have seen
Sunlight, once have felt the Sun; 
Who shall show if it was
Thus indeed in time of old?
Fades the image from the glass
And the fortune is not told.

If you promised, you might grieve
For lost liberty again;
If I promised, I believe
I should fret to break the chain.
Let us be the friends we were,
Nothing more but nothing less;
Many thrive on frugal fare 
Who would perish of excess.

파이껍질 같은 약속 - 크리스티나 로제티

내게 아무런 약속도 하지 말아요
나도 아무 약속도 하지 않을게요
우리 서로의 자유를 지켜나가요
거짓도 아닌 진실도 아닌 자유를 
주사위를 던지지 않은 채로 두고
가고프면 가고 오고프면 오게요
나는 당신의 과거를 모르니까요
당신이 내 과거에 대해 모르듯이 

그처럼 따뜻한 당신, 예전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따뜻했겠죠
이처럼 차가운 나도 언젠가 한땐
햇빛을 보고 해를 느꼈을 거고요 
예전에 정말로 그랬는지 아닌지
그 누가 우리에게 알려주겠어요?
거울 속의 이미지는 희미해지고
그 누구도 운명을 말해주진 않죠

만약에라도 당신이 약속을 한다면
곧 잃어버린 자유를 그리워하겠죠
나도 만약에 약속을 한다면 아마도
구속에서 벗어나려 안달할 거고요
우리 예전의 친구 사이로 돌아가요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작은 대가를 치르고 이룬 것들은
지나친 결과로 끝을 맺곤 하니까요

이별가 혹은 <앵콜요청금지> (브로콜리 너마저)에의 헌사

이제 노래는 끝났어요
사실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나 있었잖아요
그대나 나나 알잖아요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노래는 끝나 있었음을
끝만을 반복하던 끝에
다만 이제서야 비로소
끝나기를 멈추었을 뿐

되돌임표 하나를 찍어
다시 처음으로 돌리면
새로운 시작이 끝나고
새로운 끝이 시작되면
다시 시작할 수밖에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나버린 우리의 노래
끊임없이 시작과 끝을
반복해도 끝나지 않을
되돌임표 우리의 노래

난 널 원해


Librement inpiré de
Je te veux (Eric Satie) et I Want You (Bob Dylan)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하지
널 좋아하면 안 된다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오랜동안 혼자이다 지쳐서
잠시 흔들렸을 뿐이라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지
나도 네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야
그저 널 원할 뿐이야

난 널 원해
난 널 원해
오, 난 널 오직 원해

누군가는 나무라듯 말하지
반드시 너여서는 아니라고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고
오래 혼자 지내다 지칠 때
누군가 다가오면 그게 누구든
맘이 잠시 흔들릴 수 있다고
그치만 누구라도 좋은 건 아니야
난 너만을 원할 뿐이야

난 널 원해
난 널 원해
오, 난 오직 널 원해

너도 내게 타이르듯 말하지
꼭 너라서 그런 건 아니라고
혹시 너이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내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그치만 난 지금 널 원하는 걸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듯
누군가를 간절히 원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널 원하듯

난 널 원해
난 널 원해
오, 난 널 지금 원해

나 또한 스스로에게 말하지
꼭 너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네가 아니면 안될 이유는 없다고
오히려 너이면 안될 이유가 많다고
너를 향한 지금의 간절한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라고
그치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너인 걸
오직 너만을 간절히

난 널 원해
난 널 원해
오, 난 지금 널 원해

Lou Reed n'est plus, vive le Lou(p)

Paris, le 28 octobre 2013 23:53 

Ecouté toute la journée cet homme qui n'est plus depuis hier. Un drôle d'effet. J'ai deux disques de lui... enfin un disque et demi : Transformer comme tout le monde, et une compilation des Velvet. Mais ils sont tout de même parmi les disques les plus écoutés de mon modeste répertoire d'iTune. Lou Reed n'a peut-être pas la même place que Bod Dylan ou John Lennon dans l'histoire de la musique, du point de vue musical et lyrique. Ni même vocal : on ne dirait pas qu'iI chantait mieux que ces deux grands (non que ces deux derniers étaient de bons "chanteurs" ; il importe finalement peu, en tout cas pour moi, d'être "bon chanteur"). Mais il avait cette voix magnifique et c'est surtout elle qui m'impressionne le plus chez lui.  

A chaque écoute elle me fait penser à la couleur du ciel bleu, au bleu du ciel clair. Elle a quelque chose d'adolescent, non pas innocent il est vrai, mais, tantôt pudique et réservé tantôt distanciée et indifférente, tout sauf émotionnelle, elle réussit merveilleusement à nuancer ce qu'elle chante -- cynique, décadent et parfois dur--, tout en accentuant et adoucissant le ton. Ce qu'elle gardera heureusement pour longtemps, jusqu'aux dernières années de sa vie paraît-il.

Sur ce point, Reed est pour moi un peu comme Jacques Brel. Brel chantait lui aussi des choses pas toujours très gaies, mais chantées d'une voix un peu trop expressive peut-être à mon goût, rebelle certes et parfois amère, mais toujours juvénile, ces choses-là finissent par ne pas manquer du charme. On a l'impression que c'est quelqu'un qui est éternellement... garçon. Ce qui l'oppose à Brassens qui est, quant à lui, un homme mûr... et viril.
 

La mort d'un homme m'a toujours suscité ou ressuscité l'intérêt à sa vie et à ce qu'il a fait de son vivant. Il en est même qui ne sont entrés dans mon cabinet de curiosité qu'à la mort ou à l'anniversaire de naissance ou de disparition. Comme si c'était une manière de le faire revivre, sinon de le faire naître en moi. Cette année, c'était d'abord Georges Moustaki, que je ne connaissais quasiment pas, puis le voilà Lou Reed, que je connaissais finalement fort peu. Trop tard pour faire connaissance ? Mieux vaut tard que jamais. Même si, comme dans ce cas précis, "tard" et "jamais" avaient peu de différence.

오랜만이다, 센스 630

센스 630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석사 논문을 쓸 때, 그리고 그보다 조금 후 이곳에서 DEA 논문을 쓸 때 썼던 삼성 노트북이다. 2005년 아이북으로 바꾸면서 내버려 두었다가, ㅇ 언니에게 한 끼 식사를 대가로 넘겼다가, 그 이후에 아주 잠시 ㅅ 언니의 손에 잠시 머물기도 했다가 (지금도 당시에 언니가 남긴 논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다시 ㅇ 언니 집으로 돌아가 (그 사이에 ㅇ 언니는 다른 노트북을 구해 쓰고 있었기에) 자리만 차지하는 흉물로 남아 있었는데... 2010년, 아이북이 부지불식간에 전사한 불상사를 계기로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와… (불과 며칠, 아니, 하루 넘게 걸렸을까, 복구를 시도한 끝에 불가능하다고 판단, 재빨리 맥북프로를 구입해 놓은 상태였기에) 여전히 자리만 차지하는 흉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맥북프로는 본체는 여전히 건재한데 문제는 전원장치였다. 본체와 전선의 연결 부분이 결국 끊어지고 만 것이다. 전선이 지저분해 보이길래 닦는답시고 조금 세게 잡아당긴 것이 화근이었다. 얼마 전부터 접촉이 불안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요령껏 위치를 잡아주면 전류를 통하게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렇게 해서 다시 찾은 센스 630. 쓰다 보니 내가 얼마나 맥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알겠다. 손의 반사신경은 맥북프로의 자판과 단축키, 특히 트랙패드 작동 원리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 그런데 그만큼 하나의 작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 문서 편집기만 열고 작업하면 될 것을, 꼭 하다 보면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이 하나 둘 생겨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사전 두어 개, 에버노트, 비브라텍, 피디에프 문서 대여섯 개 등 수많은 창을 열어놓은 상태가 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저 트랙패드 기능 덕분에 창과 창 사이를 넘나드는 일이 너무나 자유로웠고. 

그렇다 해도 크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낙관론을 펼치기에는 최근 크고 작은 불상사들이 끊이지 않았고, 이 일도 그 연장선상으로 보기 쉬웠던 것이 사실. 이래도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무사안일한 태도로 계속해서 버틸 테냐, 하고 운명의 여신이 호령하는 것만 같다.

내가 얼마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냐 하며는, 최근에는, 남들은 병상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완독할 시간을 내기 힘들다는 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은 아니고 발췌독하던 중이었다. 물론 핑계삼을 사유는, 늘 그렇듯이, 충분히 있었다. 나는 작중 화자가 <되찾은 시간>에서 비로소 작품을 쓰기로 결심하게 되는 순간을 찾고 싶었다.

사실 이것은 정말 기가 막힌 한 방(coup)이다. 장장 7권에 걸친 서사와 인물열전이 아직 쓰여지지 않은, 앞으로 쓰여질 작품이었음을 독자들에게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모든 인물들을, 이 모든 기억을, 영원한 시간 안에, 즉 하나의 작품 속에 위치시키는 일만 남았고, 이제 비로소 그 일을 시작하겠노라는 암시는, 오, 문학사상 커다란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라는 허무한 결론과 유사한 경우인가도 싶지만, 스토리텔링 기법으로는 다소 초보적으로 보일 법도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 마력에 있어서는 동화책에서 "옛날 옛적에"에 준할 만하다. 독자를 현실로부터 끌어내어 허구 세계로 인도하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마법의 말. 그 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이기도 하다. 선택된 독자인 어린이(와 어른이?)에게는 효력을 갖지만 어른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찾아서>에서는 저자와 그 주변인물들이 이전까지 걸어온 여정을 충실하게 따라온, 지극히 소수의 독자들이 이에 해당하겠다.

아직까지 이 선택된 소수에 편입되지 않은 나는 문학사적 가치보다도 어디까지나 그 결심의 계기가 무척 궁금했는데, 이는 작중 화자가, 스스로도 고백하듯, 작가로서 그리 생산적이지 않은 시기를 겪고 있었고, 이 점에서 비슷하게 몇 년째 생산성 저하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있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어느날 알베르틴이 "내가 내일 오지 않으면 그 시간에 꼭 작업에 몰두하라"고 언질을 주자 마르셀은 깨닫는다. 날이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일하지 않을 핑계를 상비해 두고 있었음을. 그는 위험한 결투를 목전에 둔 한량의 예를 든다. 내일 결투에서 목숨을 잃을 것을 생각하는 그의 눈에는 갑자기 모든 것이 아름답고 안타깝게만 보인다. 그는 그에게 내일이 허락될 경우 그가 할 만한 일들을 떠올린다. 대개 그 전에도 충분히 할 수 있었고 할 만했으나 단지 게으름 때문에 하지 않은 일들이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문제의 결투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자. 그러면 그는 이내 전날의 절박한 상황을 모두 잊고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방법적 회의에선지 작가적 불안에선지 못잖게 게으름을 피우던 마르셀이 마침내 작업에의 돌입을 결심하게 되기까지는  <되찾은 시간>에서만 해도 여러 계기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 가장 결정적인 것 중 하나가 생루와 질베르트의 딸, 마드모아젤 드 생루의 등장이다. 이 소녀에게서 마르셀은 극중 앞서 등장했던 인물들 하나하나가 말그대로 현전함을 느낀다. 이 소녀의 할아버지인 샤를르 스완, 할머니인 마담 스완(오데트), 고모 할머니인 마담 드 게르망트 등등. 지금은 세상을 떠났거나 아니면 늙고 지친,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인물들이, 이제 겨우 십대인 소녀의 얼굴을 통해 다시금 태어나는 순간.

그러나 진정한 계기는 자신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깨달음이다. "내게 아직 남은 시간이 있다면 이들을 글에 담으리라."

시간은 또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것이어서 속도에 따라 빠르게도 가고 더디게도 가지만, 그만큼이나 또 부인키 힘든 본질적 속성이 불가역성뭐 여기에 대해서도 어떤 "우주"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는, 즉 시간과 변화가 가역적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어쨌든 현재 이 세계에서는 불가역적임에 분명하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대로 두고 그걸로 앞으로 무얼 할지를 생각해야 하리라. 그것이,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이 센스 630처럼, 나를 다시 과거의 무언가로 데려다 놓는 한이 있더라도.

긴장

최근 몇 번의 경험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뻔했다. 아니 흔들렸다. 그럴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것이 근거없는 일반화와 역시 근거없는 차별논리의 내면화 과정을 거쳐 인간, 특히 특정 집단의 인간에 대한 혐오의 정서로 탈바꿈한다면 문제다. 아니 수치다. 사태를 면밀히 따져 헤아리지 않고 성급하게 가장 흔하고 쉬운, 그래서 가장 뻔하기도 한, 결론으로 내달렸다는 이야기고, 이는 다시 나태의 증거다. 이럴 때일수록 긴장해야 한다.

경이

누구(아리스토텔레스)는 경이가 철학의 출발점이라 하고,
누구(데카르트)는 신이 모든 인간에게 하사하사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기만 하면 알 수 있는 영원 진리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바로 설명되는 바, 그런 한에서 신이 창조한 세계에 그 자체로 경이라 할 만한 것은 없으며 무언가 경이롭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반드시 합리적 설명에 종속될 수 있고 있어야 한다고 하고,
누구(디드로)는 경이는 다만 무지의 소치라 하며,
또 누구(베르그손)는 말하자면 "잘못 놓여진" 경이 때문에, 즉 대수롭지 않은 사실을 대수롭게 여기고--왜 모든 것이 없지 않고 있는가, 왜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가 있는가 등등--, 정작 경이롭게 여겨야 할 부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까닭에 철학의 많은 문제들이 오도되었다고 한다.

누가 누가 옳을까 내기 내기 해보자...기 보다는, 데카르트를 읽다가 문득 자성 혹은 항변의 필요성이 느껴져서. 나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게 경이롭고 신비롭고 의문투성이인데 이는 다만 내가 아직 미몽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가? 현재 상태가 미몽인지 계몽인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현재의 그 상태에 변화를 가하려는 부던한 노력이 중요하다. 한편으로, 언젠가부터, 합리주의적 신념을 저버리고 신비는 그저 신비 상태로 두자는 신비주의 성향을 키운 것은 아닌지 반성. 지적 나태는 아무리 탓하고 나무라도 지나치지 않다.

Frances Ha & Step (by Vampire Weekend)


< 프랜시스 하>를 보고 나서 뱀파이어 위크엔드의 <스텝> 뮤직 비디오를 떠올린 것은 자유 연상이라기보다는 논리적 추론의 결과였다. <프랜시스 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흑백 화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맨해튼>을 연상시키는데, <맨해튼>과의 연관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스텝>의 클립은 내가 최근에 본 중 가장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사례였기 때문이다. <스텝>의 60년대 뉴욕의 고층빌딩, 거리, 공사현장 등등의 흑백 몽타주를 보며 정확히 똑같은 구성의 <맨해튼>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스텝>를 다시 보다 오히려 <맨해튼>보다는 <프랜시스 하>와 더 강한 선택적 친화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클립 <스텝>의 또 다른 특징은 카라오케 형식의 노랫말 자막이다. 카라오케처럼 노래와 같은 속도와 리듬으로 등장하지만 정확하게 자막은 아니다. 노래가 시작되면 화면을 꽉 채우고 이것이 영상을, 나아가 배경인 뉴욕을 압도한다. 타이포그래피 기법이랄까, 여성주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가 즐겨 썼고 고다르가 <영화의 역사>에서 쓴 기법.

그렇게 전달되는 <스텝>의 가사에서 화자는 한 "소년"이다. 사실 소년이라 하긴 힘들다. 성년을 넘긴 지는 한참 됐다. 그러나 아직 성인으로서의 조건,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 정착할 집이나 가족 등등을 갖추지는 않았다. 삽십세 정도의, 그 누구도 늙었다고 하지는 않으나 또 그 누구도 아직 젊다고 해주지도 않을, 그런 나이. 그리고 한 소녀가 등장한다. "소녀여, 세상에서 널 만날 때마다 넌 한걸음 내딛곤 했지"라는 후렴구의 그 소녀. 후렴구가 등장할 때마다 타이포그라피도 바뀐다. 딱딱하고 현대적인 퓨투라(Furura)체-이 폰트는 뱀파이어 위켄드가 데뷔 앨범부터 줄곧 고집해 왔던 것으로 거의 밴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라 봐도 될 듯-에서 골동품 냄새가 날 것 같은 고문서풍의 잽피노(Zapfino)체로. 노래 전체가 소년이 이 소녀에게 건네는 말이라 봐도 좋을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들린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젊은 시절 여자들이 더 예쁘고 더 감수성도 풍부했다고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그렇지 뭐.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들 하는데, 지혜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녀를 다시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크나큰 착각이었어. 사실 그녀는 내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거야. 우리 모두 언젠가는 늙고 죽겠지.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 하루 하루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셈이야. 그러나, 소녀여, 너는 늙지 않았어. 아직까지는."

< 프랜시스 하>의 프랜시스도 비슷한 나이다. 동갑인 친구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얘길 듣지 않나, 심지어 더 어린 남자애들로부터는 늙다리 취급까지 받는다 ("Frances, the undatable!")... 이제 겨우 스물일곱인데! 열심히 살지만 어딘가 어설프다. 직업적으로나 인간관계 면에서나. 안무가를 꿈꾸나 한 무용단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며 동시에 각종 알바 전전하는가 하면, 남자친구가 있었으나 헤어지고 그러는 동안 단짝 룸메이트는 애인을 좇아 떠나고 그리하여 혼자 남고 등등. 뭔가를 계속 찾고, 헤매고 뛰어다니고 좌충우돌하며, 투자한 열과 성과 시간에 비해 결과는 흡족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누구의 보호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결코 세상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향해 다가선다. 그리고는 결국 한걸음 내딛고야 만다. 그리고 계속해서 내딛고 있는 중이다.

좋아하는 남자배우

얼마 전 좋아하는 남자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도무지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 대화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여배우는 당장 떠오르는 사람만 해도 꽤 되는데 왜 남배우는 없는 걸까, 내 성적 정향을 재고해야 하는 걸까, 하던 중, 갑자기 리스트가 좌르륵. 그래서, 난 적어도 레즈비언은 아니군, 하며 혼자 빙그레.

하긴, 내 원초적 영화 경험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에는 남자 주인공들, 그리고 그와 사랑에 빠져 잠 못 이루고 상대역인 여배우를 질투한 기억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백투더퓨처 의 마이클 제이 폭스가 대표적. 연모의 대상은 배우 개인이기보다는 그가 맡은 가공의 인물에 가까웠겠으나. 아니면 러브스토리 의 경우처럼 인물 자체보단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이고, 인물들은 다만 그 낭만적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로서만 의미를 가졌던 것일 수도. 물론 이성애중심주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재현물을 좀더 자주 접했더라면 또 얘기가 달랐으리라.

하여간 그래서 생각난 배우 중 단연 일순위는 장루이 트랭티냥. 젊은 시절의 그는, 대표적으로 모드네에서의 하룻밤 에선, 단정하고 꽉막히고 보수적인 인상이었다. 그로부터 근 오십년이 지난 후에 찍은 아무르 에서도 그 인상 그대로. 그런데 그 여전한 고리타분함과 고집스러움이 그 사람의 진실함을 대변하는 듯했고, 그게 참 존경스러울 뿐 아니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날 설레게 했던 또 다른 배우는 콜린 퍼스. 퍼스라기보단 오만과 편견 의 미스터 다시라 해야 할까. 아니면 배우 퍼스가 재해석한 미스터 다시. 같은 배우가 이를테면 위험한 관계 의 발몽을 맡은 걸 보면서는 참으로 어색하고 불편하기 그지 없었으니. 어니스트 되기의 중요성 에서처럼, 딱 빅토리아 시대를 전후한 영국의 상류층 인사, 당대의 규범에 충실히 따르고 어느 면에서나 모범적이지만 실은 가슴에는 열정과 정의감을 품은, 그리고 자신의 위치와 기성 질서에 거리를 둘 줄 아는--비록 반성에만 그칠 뿐 변화를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그런 역할에 어울리는 풍모. 그게 이 배우가 내게 호소하는 매력.

요새 배우들 중에서 꼽으란다면... 또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네. 외모니 인상이니를 떠나 작품 고르는 안목이나 배우 혹은 예술가로서의 열정 면에서는 마티유 아말릭, 멜빌 푸포 등. 둘다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하긴 나도 이제는...

논문과 건축

부모님과의 카톡 대화.
9:32am, August 15, 2013, Mom : 세상에 완벽한건 없단다.
[인용자 주 : "단다"체로 봐서 입력자는 아빠인 것 같다. 아래 인용을 보면 알겠지만 엄마는 이렇게 자애로운 문체와는 거리가 있는 분이다]
9:33am, August 15, 2013, you : 그러게요. 그래도 좀더 완벽에 가까운 논문은 나중에 써도 되는데.

9:36am, August 15, 2013, Mom : 기본 설계도와 자재를 살 돈이 있으면 집을 지어야지 좀더 좀더하다가 언제 집을 짓니?

9:56am, August 15, 2013, you : 오! 지금까지 논문과 관련해서 들어본 중 최고의 명언이자 조언! 그러게요. 더군다나 건축주들의  인내심도 한계가 있으니. 언제까지나 그들의 관용을 바랄 수는 없는 일.

9:59am, August 15, 2013, Mom : 네가 건축주야.나머지는 이웃사람아니면 시공업자겠지.너아니면 딴데가서 일자리 구하겠지.
이제 마음 다 잡고 해라.구경꾼도 한계가 있다.

11:16am, August 15, 2013, you : 네에.

논문과 관련한 메타포야 부지기수지만, 그리고 대개는 다 거기서 거기지만, 그 효과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은 타이밍이 아닌가 한다. 논문 작성자의 진척 정도와 그밖의 상황을 고려해서 딱 그 사람과 상황에 맞는 내용과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이를 가장 적절한 순간에 던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뜻이다.

건축 메타포는 여러 맥락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고전적인 사례 중 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인(aitia)론이 대표적이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백지 상태에서 집이 하나 뚝딱하고 지어지는 데에는 재료, 건축가의 설계도, 이 두 가지를 합할 동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완성된 상태의 집이라는 "목적"이 없으면 집의 탄생 과정에 대한 설명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내 역할을 잘못 설정해 왔던 것인가? 설계도를 수없이 그린 것은 기본이고, 집을 지었다 무너뜨린 숫자도 헤아릴 길 없다. 내가 건축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건축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무모한 욕심은 진작에 버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시간적 한계 등등을 좀더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었을 것을... 아닌데? 내 스스로 건축주는 아니라는 자각이 죄책감을 불어일으켜 좀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었을 텐데...?

뭐 어쨌든 결론은 하나다. 어떻게든 집은 완공되어야 한다.

르네 톰 -- 장뤽 고다르, 이 불가능한 조합


고다르가 파국이론의 선구자 르네 톰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었구나 싶다. 그런데 막상 보니, 역시 고다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천재 수학자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며 당돌한 질문도 서슴찮는다. 예를 들면 "당신네 수학자들은 월급 받고 무슨 일을 하나요?" 라든지. 그리고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라면 무지가 탄로날까 두려워 절대로 하지 못했을 질문들. "당신이 쓴 방정식이나 도형들이나 숫자 같은 게 실제로 존재한다 할 수 있나요?",  "당신의 그 수식으로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나요?"

처음에는 몽타주의 폭력성에 기가 막혔다. 이를테면 인터뷰이가 수학의 현실세계와의 관계를 논하는데 거기에 수용소나 전쟁 이미지를 삽입하는 식이다. 영상과 음성의 분절-단절이 고다르 특유의 스타일임을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이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카메라는 거의 인터뷰이에 대한 불손에 가깝다. 톰이 칠판으로 설명하려 몸을 일으켜 이동하는데 그에 따르기는커녕 제멋대로 움직이고 심지어 딴청을 피운다.

애당초 톰의 사유를 제대로 배우고 이해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고 단순히 형식적 실험 차원이었던 것일까? 이 모든 걸 형식적 실험으로 치부하면서 가치 평가를 배제하기엔, 글쎄, 오히려 이를 차갑고 메마른 수학적 이성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 나아가 적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었음은 인정할 만하다. 과학에 대한 대중적 혹은 인문적, 나아가 예술적 이해의 차원에서.

나아가 수학에 대한 본질적이고 심오한 통찰력이 돋보인 순간이 있었다. 당신네들이 월급받고 한다는 일이 뭔지 직접 보여달라, 하고 고다르가 주문하자 톰이 칠판에 방정식과 그래프를 그려가며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 모습을 비추는 대신 고다르는 어린 아이가 흰 종이에다 무언가를 그리며 노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바로 플라톤의 메논에 나오는 그 유명한 노예 소년의 예에 대한 참조가 아닌가. 감각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학습을 거치지 않고도 "약간"의 상기와 순수 연역을 통해 도달가능한 체계가 수학이고, 그렇기 때문에 학습과 경험이 전무한 어린 아이들에게 접근가능하고 오히려 어린 아이들에게 접근이 더 용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다르가 실제로 의도적으로 장치한 것인지의 여부는 알 길 없으나, 어쨌든 그는 이 시퀀스에서만큼은 톰이 말하는 수학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듯이 보인다. 게다가 톰은 대표적인 수학적 플라톤주의자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인터뷰 전체가 플라톤의 대화편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무지를 가장한 소크라테스와 비범한 수학자, 이를테면 테아이테토스 사이의 대화. 어디선가 톰이 바로 이 경험을 술회하며 "당시엔 바보같은 인터뷰라 생각했는데 막상 완성된 영상을 보니 고다르가 내 생각을 정확히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는데, 이 말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톰이야말로 고다르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도.

생일



유례없는 축하를 받다. 포문을 연 건 엄마의 카톡 메세지 : "푹하해". 오타가 재미있어 놀리시는 거냐고, 그래요, 저 이제 서른 여섯이에요, 그랬더니, 재작년 환갑을 넘기신 엄마 말씀 : "그거밖에.... 아직 어리네."

그리고 구글. 맞춤형 첫화면에다 커서에는 생일축하 메세지까지. 생일을 기입한 기억이 없는데, 기특도 하다. 내가 입력해 놓고 기억을 못하는 것이겠지만서도.

그리고 지난 십년 간 변변한 연락없이 지냈던 일가 친척들. 친척 오빠는 이젠 부모님도 잘 안해주시는 전화까지 했다. 그리고는 수화기를 넘겨주었는데, 오, 할머니. 작년에 아흔을 넘기셨는데 말씀하시는 품이 너무도 정정하고 청명했다. 공부를 너무 좋아해서 오래 끄는 거 아니냐고 기지넘치는 농담까지. 그리고는 야학 폐교 소식을 전하셨다. 기념식에 사람들이 와서는 내 소식을 물으며 "보고 싶다고 난리"였다고. 이제 정말 돌아갈 때가 온 것 같다.

밀가루 포장이 예뻐서



 ...라기보다 휴대폰 사진 바로 올리기 기능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어쨌든 저 복고풍 포장 참 맘에 든다. 마티스 생각도 나고. 평화라는 이름의 일본 담배도 생각나고.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다시 본 히로시마 내사랑 에도 평화 담배가 나왔다. 원폭의 잔해로 뒤덮힌 채, 그러나 평화라는 글자만큼은 선명한 모습으로.

블로그인


그렇게 찾던 중, 어디선가, 블로그인이 폐쇄된 건 아니고 복구중이란 이야길 들었다.

마음을 비우고 새출발하겠노라 선언해 놓고도 아직 미련을 못 버린 것은... 인지상정이라 둘러대기엔 내 고유한 소질의 요소가 다분하다. 수집벽--이제는 일종의 직업병인 문서(고)에의 집착까지 더해 치유불가능한 지경이 된--, 나르시시즘--이 경우에는 거의 메갈로마니 수준의-- 등등의 복합적 징후 -- 일종의 작가적 집착?

그러고 보니, 가상-전자 공간에서의 문서-자료(도큐멍)란 꽤나 복잡한 문제다. 물론 고전적 의미에서의 문서도 규정할라치면 녹록치 않았다 (푸코, 저자란 무엇인가 ; 지식의 고고학). 그래도 대강 한 작가의 작품의 범위를 출판물 외에 미간행 수고, 강연 혹은 대담 등의 기록물, 일기, 친필서신 등등으로 추릴 수 있었다면, 21세기 작가의 경우에는 그 범위를 블로그 포스트, 이메일 문자 메세지 등등으로 확대, 아니 대체해야 할 것인데...

그러니까 내 말은, 자칭 작가랍시고 내 블로그며 문자 메세지를 보존할 필요성을 역설하려는 게 아니라--그렇다면 내 병명은 더도 덜도 아닌 과대망상증일 것인데...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작가의 개념을 탈신비화할 필요도 있는 것이 사실. 이것이 바로 푸코의 고고학 작업의 가르침 아니었더냐--, 전자화의 시대는 문서의 개념, 그리고 문서 보존의 의미와 가치와 방법의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블로그인의 사례가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말걸기

"거리에서 날 따라오는 사람은 늙고 역겨운 이들 뿐이네"라 에디트 피아프는 노래했는데 이건 그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언젠가 아는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아가씨들에게 거리낌없이 수작을 걸 정도인 프랑스 할아버지들의 배포와 자신감이 놀랍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기사도 정신-궁정문화-낭만주의 등등으로 이어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특유의 갈랑트리의 유산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다 보기에는, 오, 그 수준이란 것이 너무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
문제는 연령이 아니라 방법에 있다. 나이와 외양이 말걸기에 적합한가는 다음 문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거느냐다. 기껏 말을 걸어놓고 묻는다는 게 "중국인이세요? 일본인? 아님 한국인?"이라면 호감은커녕 관심도 사기 힘들다. 질문 자체야 뭐 잘못된 게 아니고 이국적 외모의 소유자에 관한 한 국적이 일차적 관심사인 것도 이해하지만, 문제는, 오, 그게 클리셰가 되어버렸단 사실. 같은 궁금증도 수사와 표현을 조금만 달리 하면 그럴 듯한 변주가 가능하거늘. 이를테면, 국적을 묻는 질문인 "어디에서 왔나요?"를 살짝 변형한 형태인 "당신의 매력은 어디에서 왔죠?"라든지--실제로 누군가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대고 "그게 무슨 질문이죠?"라며 대놓고 면박을 준 것은 아직껏 후회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쨌든지 간에 거리에서의 말걸기에는 그 발상 자체에서부터 동의하기 힘들다. 우연적 만남이 경우에 따라선 운명적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더더욱 그 본질을 가장 잘 살리는 길은... 그냥 스쳐지나가게 놔두고 또 스스로도 스쳐지나가는 것. 그럴 때 비로소 그 만남의 순간에서 영원을 체험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보들레르, 지나가는 여인에게). 비록 브라상스는 또 "사랑의 신이 거리에서 당신을 스쳐 지나갔네/ 어느날 저녁, 어디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그러나 당신은 알지 못했네/사랑의 신은 그만큼 짖궂다네"라 노래하고 있지마는.

기억이 쓸어간 자리

기억이 쓸어간 자리는 요란하다
지나는 자리마다 일제히
가슴에 아문 상처들이 눈을 틔우고
멍울진 상처는 망울을 터뜨린다

기억이 쓸어간 자리는 소란하다
지나는 자리마다 가시가 돋혀
가슴 곳곳을 헤집고 후벼대고
덧난 상처는 흐드러지게 피어오른다

기억이 쓸어간 자리는 심란하다
지나는 자리마다 파문이 일어
가슴은 부끄러움과 후회로 넘실대고
출렁인 상처는 푸르고 깊어진다

기억이 쓸어간 자리는 혼란하다
지나는 자리마다 돌연히
가슴 곳곳을 휩쓸고 지나고 나면
찢긴 상처는 산산조각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기억이 쓸어간 자리는 찬란하다
한번 지난 자리마다 수차례
가슴이 미어지고 사무치고 흔들리고 나면
남겨진 상처는 추억으로 총총히 박힌다

10년, 반복과 차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곳을 강타했다는 혹서가 다시 찾아온 듯하다. 당시에 나는 아직 이곳에 오기 전이었다. 아마도 가을학기 입학이 완전히 확정된 상태는 아니어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불행히 여름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가을이 다 되어서야 이곳에 왔는데,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해 여름의 기록적 더위를 언급하며 내게 운이 좋았다고들 했다.

도착한 것은 9월 말이었다. 모든 게 힘겹고, 지극히 사소하고 소소한 자극에도 실존의 위협을 느끼곤 하는 가운데서도, 파리의 가을은 이를 보상하기에 충분했다. 거리를 걷고 단풍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마침 10월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예외적인 달, 10월이었기에 ("L'octobre, un mois exceptionnel" : 보부아르의 Les belles images 중에서. 오자마자 산 책 중 하나인).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야 다른 계절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특히 여름은 작년에서야 비로소 발견한 듯하다. 여전히 불규칙적이기는 할지언정 조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시트로앵 공원, 오퇴이 온실 공원, 시인의 정원 등등의 집 근처뿐 아니라 진출 영역을 넓혀 시외의 불로뉴 숲, 생클루 영지, 생제르맹 섬 등등까지. 작년 이맘 때는 그러다가 우연히 베르사이유에서 파리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투르 드 프랑스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정확히는 사이클리스트들의 도착을 기다리는, 더 정확히는 그 전의 광고 차량 행렬을 기다리는 군중과 마주쳤다고 해야겠지만. 어제가 샹젤리제에서의 결승선 도착일이었으니 정확히 1년 전의 일이었다. 

10년을 채우지는 말아야지, 했는데, 이제 정말 얼마 안 있으면 10년이다. 이곳서 인생의 사반기가 넘는 세월을 보낸 것이다. 달라지기로 맘 먹었더라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을 시간. 그러나 여전히 같은 문제들을 안고 있고 또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물론 달라진 게 없지는 않을 거다. 그나마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이런 것일 것이다. 반복은 결코 동일한 것들의 그것일 수 없다. 동일성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차이이므로, 이 미세한/미분적 차이들이야말로 칸트가 발견한 "경이로운 초월성의 영역 (domaine prodigieux du transcendantal)"으로서 모든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기능하므로. 단 하루 동안에도 미세한 차이들이 산만큼 쌓일진대, 그게 10년이나 쌓였으면 분명히 내 경험의 지평을 바꿔도 한참 바꿔놓았을 것이다. 강산도 변한다는데 먼지같은 일개 인간이야 오죽할까. 유약하고 나약한 나같은 경우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하나 분명히 변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아래의 글에서도 말한 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 변했으면 좋겠는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변하고. 그러나 또 한편으로 분명히 변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아직도 한참은 더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일어나서 걸으라, 그대의 다리는 부러지지 않았으니" : 바흐만의 삽십세 중. 서른 즈음에 몇 번이고 읽었던).

변화

살아온 날이 많아질수록, 산 날이 살 날보다 많아질수록, 살면서 이미 적잖이 쌓아놓았다 생각할수록, 변화가 두려워진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긴 싫었는데. 그래봤자 살기는 또 얼마나 살았다고. "쌓아놓은"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변화는 물론이요, 모든 걸 초기화하고 새출발한다 해도 크게 손해볼 게 없을 정도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을, 오히려 변화없는 상태를 두려워야 할, 조건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Misandre (남성혐오)

blogin.com · 2013-05-07

여성혐오를 뜻하는 misogyne의 반대어 남성혐오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다가 이 단어가 그 반대어와는 전혀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 그 자체로 여성주의, 나아가 여성의 역사를 증언하기라도 하듯.

기노gyno/gyne가 여성이고 그 반대인 남성은 andro이니 (그래서 androgyne은 중성 혹은 양성), 역시 misogyne과 같은 방식으로, "혐오"를 뜻하는 접두사 miso(혐오하다 라는 뜻의 동사 migein 에서 온)에다가 andro를 합성한 결과가 misandro 라는 것이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한 일. 그런데 문제는 "미조진"이 꽤 오랜 역사를 지닌 반면 (정확히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19세기 사전 리트레와 앙티도트 사전은 밝히지 않고 있다. 미조진 같은 상용어의 역사에 대해 일언반구 없다니, 이거야말로 정말 의아한 일이다. 참고로 두 사전은 내가 주로 참고하는 것으로, 둘다 단어의 어원과 역사에 관한 한 방대하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편이다), 그 상대어인 "미장드르"의 역사는 불과 40년, 그러니까 1970년대 이후의 일이라는 사실. 즉 여성해방운동(MLF)이 대중적 지지와 기반을 확보하게 된 이후.

그래서 역사는 없고 대신 예문이 소개돼 있는데, 출처는 모두 ≪리베라시옹≫. 이 역시 ≪리베라시옹≫의 면면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다. 중도좌파 성향이고, 여성이나 이민자나 LGBT 등 소수자 문제에 공감...이라기보다 차라리 호감을 감추지 않는 한편으로, 다른 언론에 비해, 뭐랄까, 편집이나 문체 등등에서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유행의 첨단을 따르거나 혹은 유행을 선도한달까. 신조어 사용에 있어서 매우 과감하고 관대함은 물론이고. 예문은 기가 막힌 한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성 및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시선 일반과 관련해서.

   * Une femme misandre n’est pas forcement pour autant lesbienne. 남성혐오 여성이라 해서 반드시 레즈비언인 것은 아니다.
   * Et, ne vous en deplaise, contrairement a ce que vous disiez dans un de vos precedents messages, vous etes bien misandre. 언짢으실지도 모르겠지만, 말씀드리리다. 당신은 남성혐오자요. 당신이 예전의 글에서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역자주: 맥락을 보건대 아마도 독자의 편지에서 발췌한 듯?]
   * Le terme ≪ misandre ≫, qui est son pendant, n’existe que depuis 1970, et la grande majorite des gens n’en ont jamais entendu parler. ["여성혐오"에 대해] 상대어인 "남성혐오"라는 말은 1970년에야 생겼다. 그리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이 "미장드르"라는 단어는 여전히 아카데미가 편찬하는 사전인 Tresor (http://atilf.atilf.fr/dendi ... mbi.htm;java=no)에는 등록돼 있지 않다. 반면 같은 사전의 "미조진" 항목에는 이 단어의 역사가 간략히 소개돼 있는데,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 먼저 정의. [En parlant habituellement d'un homme] (Personne) qui a une hostilite manifeste ou du mepris pour les femmes, pour le sexe feminin. 주로 남성에 대해 쓰이는 말. 여자들, 여성 일반에 노골적인 적대감과 경멸감을 가진 사람.
   * 참고 사항. On ne releve pas d'ex. au fem. dans la documentation. 여성에 대해 쓰인 문헌상의 사례는 없었다.
   * 이 말이 아카데미에서 공인된 것은 1935년. 그러나  용례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 1564년 마르콩빌이라는 작가가  "여성의 적"이라는 뜻으로, 2/1827년 가텔이 "여성에 대해 혐오심을 가진 사람"이란 뜻으로 썼다. Empr. au gr. ≪qui hait les femmes≫, de ≪hair≫ et de ≪femme≫ (v. misanthrope). 인간(일반)혐오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합성된 단어 미조기네스misogynes에서 차용. 3/ Le mot reste rare jusqu'au XIXe s. 이 단어는 19세기까지 드물게 쓰였다.

고대 그리스 사회가 노골적인 남성우월주의에 단단한 성적 및 기타 소수자 차별 논리에 기반을 두었다지만, 과연, 여성혐오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서 대두되었을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그 현상을 지시하기 위해 미조기네스라는 단어가 필요할 정도로까지. 미조기네스는 차라리 남성 동성애자들(의 일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 추측컨대, ≪향연≫ 등등에서 플라톤이 묘사한 바, 동성 파트너들에게는 한없이 매력적인 스승이자 애인이었을 것임에 분명하나, 저 유명한 "악처" 크산티페에게 살가웠을 리 만무하다.  

남성혐오도 그렇지만 여성혐오 역시 비교적 최근에 생긴, 이른바 "근대적"인 병리 현상이란 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양성 대립 구도가 가능해질 정도로 여성의 위치와 권리가 남성과 대등한, 최소한 비교가능한 정도까지 신장된 이후에라야 비로소 가능해진. 다른 한편으로, 이 "혐오"라는 정서 자체가, 좀더 근원적이고 실존적인, 말하자면 본능에 가까운 다른 정서 태도들, 이를테면 우울, 멜랑콜리, 나아가 애호/애착(필리아)이나 공포(포비아)와는 분명 다른 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이고 사회(학)적인 심급에 좀더 가깝달까. 이드보다는 자아나 초자아가 감응하고 감내해야 하는 그 무엇.

—박쥐

선집과 꽃다발

blogin.com · 2013-03-31


"A florilegium of quotations". 한 이탈리아 물리학자가 스리지 콜로크 발표문에서 갈릴레오 등등을 인용하면서 가져다 쓴 말. 플로릴레기움 이 무슨 뜻인지 몰라 영어 사전을 찾다가, 오, 뜻밖의 발견. 검색이 이미 완료된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flori 와 legium 둘다 흔히 쓰이는 어근에 속하므로 조금만 생각했어도 어느 정도의 예측은 가능했을 터인데, 그 조금을 생각하는 게 귀찮아 바로 사전에 호소하다니, 혀가 끌끌 차이누나.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해서 찾은 어원이, 너무 뜻밖의 놀라움과 반가움을 안겨준즉, 사유하는 자로서 나태했던 태도 정도는 용서하기로 한다. 그야말로 생각지 못한 꽃다발 선물을 받은 기분을 안겨주었으므로.

florilegium noun ( pl. -legia or -legiums):a collection of literary extracts; an anthology.
ORIGIN early 17th cent.: modern Latin, literally ‘bouquet’(from Latin flos, flor- ‘flower’ + legere ‘gather’ ), translation of Greek anthologion (see anthology ).

anthology noun ( pl. -gies) :a published collection of poems or other pieces of writing.
ORIGIN mid 17th cent.: via French or medieval Latinfrom Greek anthologia, from anthos ‘flower’ + -logia‘collection’ (from legein ‘gather’ ). In Greek, the word originally denoted a collection of the “flowers” of verse, i.e., small choice poems or epigrams, by various authors.
                                                      from Apple's Dictionary, Version 2.1.3

플로리레기움은 안솔로기온의 라틴어 역어이고, 안솔로기온은 안소스(꽃) + 로기아(모음 : 모으다 라는 뜻의 동사 레게인에서 온 말), 즉 꽃다발. 선집 혹은 모음집이란 뜻의 앤솔로지는 원래 꽃다발이란 뜻이었다. 그러니까 나같이 온갖 앤솔로지로 들어찬 책장이며 컴퓨터 하드를 소유한 그대, 그대는 꽃다발을 이미 몇 아름씩 안고 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것도 세월이 흘러도 시들지도 상하지도 않는.

...다고 믿고 싶으나, 사실은
결국은 또 봄타령

이 역시 봄을 기다리는 자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지도. 아니, 착각 정도가 아니라 환각인지도. 실제로, 봄이 오고 꽃이 피길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제는 그만 지치고 말아, 책을 꽃이라 해도 믿고만 싶고, 아니, 책이 꽃으로 보일 지경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라던 시인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러다 정작 "모란이 피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버리진 않을지.

—박쥐

바다와 나비

blogin.com · 2013-03-27

김기림(1908-?) 작. 아이튠 앱 "김기림 시집"에서 따오다. 봄타령을 잇는 취지에서.

예년 같았으면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 같은 구절이 눈에 밟히거나 하진 않았을 터다. 즉 아직까지도 봄이 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삼월이 다가도록 말이다. 이러니, 날씨 탓처럼 허망하고 나약하며 무의미한 일도 없는 거야 알지만서도, 어찌 탓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올핸 정말 해도 너무 했다.

시 따오기 어려운 시대
또는 시적 인용에 관한 짧은 고찰

이 시를 어떻게 따왔느냐 하면,

1/ 아이팟 터치상의 "김기림 시집" 앱에서 열어서
2/ 전체화면을 저장한 뒤

이 다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3/ 아이팟 터치상의 에버노트에서 새로운 노트를 열어 그림을 저장하고
4/ 위피가 작동하는 틈을 타서 아이팟 터치를 인터넷에 연결하여
5/ 에버노트를 동기화
6/ 그렇게 해서 동기화된 노트를 맥북프로상의 에버노트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받은 뒤에
7/ 그림을 저장하고
8/ 이렇게 해서 저장된 그림을 블로그인 편집창에서 업로드

또는

3'/ 아이팟터치를 맥북노트에 연결하고
4'/ 그림을 바로 저장한 뒤 (이번에 처음으로 발견한 기능. 아이팟터치를 연결하고 아이튠이 아닌 Aperçu 를 열면 그림 파일이 바로 동기화되는 줄을 지금까지는 몰랐다. 지금까진 아이튠으로만 열어봤어서)
5'/ 이렇게 해서 저장된 그림을 블로그인 편집창에서 업로드

두 번째 방법이 그나마 좀 간단하다 하겠으나, 이건, 뭐, 전구 하나 간답시고 네 명이나 달려들어 의자 위에 한 사람 올리고 전구를 붙잡게 한 뒤에 다른 셋은 그 의자를 돌린 격이다. 물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구글링+카피+페이스트다. 어차피 앱의 저자도, 저자 소개 같은 경우는, 위키 같은 데에서 인용하고 있다 스스로 밝히고 있고, 소스로 삼은 텍스트 또한 출처는 웹상의 어딘가였을 것임에 분명하므로.

그보다 더 간단하면서도 훨씬 운치 있는, 고전적인, 게다가가 원본의 "향기"를 살리면서 또 그 본래적/장르적 속성을 충분히 살리는 방법도 있었다. 즉 가장 "시적인" 인용 형식. 바로 외운 뒤 옮기는 것. 마침 짧기도 하니.

그러나, 오, 쇠할대로 쇠한 나의 기억력으로는 불가능했다. 한 이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쯤이야 문제도 아니었을 것인데. 이건 나이 때문이라기보다는 상당 부분 "시대상의 한계" 때문이다 (...혹은 그저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흑). 문자나 숫자를 기억할 일이 점점 없어지다보니 그에 관한 능력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지사.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를 압도하던 시대, 인쇄술 이전 시대를 살던 이들의 기억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횡행하던 각종 기억술에 대한 의존도도 높았겠지만.

기억술의 측면에서라도 그때는 모든 언어가 음악이고 시이지 않았을까. 좀더 나아가 말해 본다면, 서정시건 아니건 시가 불가능한 시대는, 어쩌면 복제기술 시대의 도래로 회화가 사진과 영화에 자리를 내어준, 그 유명한 "아우라의 상실" 시대에 앞서지 않았을까. 인쇄술, 아니 문자가 발명된 그때부터 이미 시는 불가능했던 게 아닐까. 그때부터 이미 산문과 운문의 승부는 이미 결정돼 있지 않았을까.

—박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blogin.com · 2013-03-13


3월 한복판에 함박눈이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봄을 기다렸건만.

 국립도서관 안뜰, 2013년 3월 12일.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봄타령이나 계속할 밖에.

봄볕을 밟자

    퐁
          당
  퐁
                  당

햇 볕 을밟자

   동장군 몰래 햇 볕 을밟자

해-앳 볕아   퍼-어 져라
널 리 널 리  퍼        져           라

 건너 편에 앉 아 서
 망 설이고 있는
 봄 처녀맘 달 래서
 얼른 데려 오 너 라

—박쥐

봄볕 한 뼘

blogin.com · 2013-03-02

창밖으로 햇빛이 반짝
봄이 오는가 싶었는데
햇빛이 잠시 반짝인 틈
그 틈새로 눈이 나린다

도시의 음습한 대기에
봄을 전하려던 햇빛은
내려오던 길을 잃고는
이내 눈속에 파묻힌다

봄을 기다리는 자에게
늦겨울 한 줄기 햇빛은
다만 빛바랜 희망일 뿐
약속은 눈처럼 흩어진다

체념하고 눈길을 나서
몸을 움츠리고 걷는데
지난 봄의 기억이 문득
눈덮인 보도를 스친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아보면
눈틈을 비집고 온기가
어느새 발밑이 포근하다

여름에도 빛들지 않는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
햇살은 한 뼘이나 자라
쬐면 볕이 제법 따스하다

봄을 기다리는 자여
그러니 절망은 이르다
한 뼘의 햇볕으로 봄은
이미 그대에게 와있다

—박쥐

너는 마땅히 그것에 도달해야 한다

blogin.com · 2013-02-23

“너는 마땅히 그것에 도달해야 한다(Du muβes erreichen)!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지금 이 현상 유지는 아닌 좀더 다른 것, 좀더 생동하는, 좀더 진지하게 공부하고 사색하는 것, 좀더 철학하는 것, 근원(Ursprung)의 향수를 가진 생활 태도가 필요하다. 환경이나, 모두 다 어느 퍼센트까지는 구실이다. 우리는 어디서든지 자기의 최대 한도를 다해서 살 수 있는 것이니까.... 어제 야스퍼스의 책을 조금 읽고 감동했다. 철학하는 생활 태도는 명상과 초월성의 욕망과 전달(Kommunikation)에 의해서 우리의 나날과 연결되고 그 태도가 매일매일 반복됨으로써 하나의 생활 분위기(Lebensstimmung)를 낳기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성실이 결국 반복의 의욕과 그것을 견디는 것일 줄이야! 정말로 권태가 들어올 여지없이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는 혼자서 자기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필연적으로 전달이 요청되는 것이다....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에 의해서 24시간 통일된, 정돈된 생활을 갖는 것, 근면할 것, 그것 밖에 내가 할 최고의 것은 결국 없는 것이다. 반복(Wiederholung), 똑같은 고통스러운 작은 일, 일, 일의 똑같은 반복을 견디자. 아니 나아가 그것을 사랑하자. 거기에 네가 있다!”

전혜린, 1961. 1. 25 일기 중에서



한 철학과 교수님이 유학 시절 헤겔 정신현상학의 한 구절을 읽고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제 아무리 미천해 보이는 존재일지라도 모두 절대정신의 품안(!)에 있는 한 고귀하며, 전체의 조화를 위해서는 빠져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존재 필연성을 갖는다는 것이 요지였던 걸로 기억된다. 선생님은 그 구절 하나로 당신의 존재이유와 자존감을 되찾았고, 이후 수업 시간에 교수한테 당당히 "it doesn't make any sense!"하며 받아칠 정도가 되었다 하셨었다. 이후 자존감 상실에 허덕일 때면 그 일화가 생각나곤 했고, 그럴 때마다 해당 구절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아직 못 찾았다.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아주 시적이고 헤겔 특유의 과장법과 장엄미가 생생히 느껴지는 구절이었는데.

굳이 정신현상학이 아니더라도, 그때 선생님이 되찾은 삶의 의지나, 전혜린이 야스퍼스를 읽으며 받았던 감동, 그런 것들을 다른 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래저래 찾아다녔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방법이 틀렸었음을 깨닫는다. 사실은, 다른 데에서 변화와 전환의 계기를 찾을 것이 아니라, 반복을 바라고(volere/vouloir) 또 견뎌야(pati/pâtir) 했던 것이다. 진정한 반복,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담보하고 변화와 생성의 가능성의 장으로서의 반복. 게다가 소통! 반복과 소통, 이 두 가지야말로 요즘의 내게 결핍된 그 무엇 아니더냐. 결국은 성실과 진지의 문제다. 한때는, 밤새워 공부한 뒤 아침을 맞으며, 전혜린이 "머리가 하얗게 새는 듯"이라 묘사했던 느낌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생각하곤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부끄럽고 부끄럽다. 그러고 보니 부끄러움이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던 시절도 있었다.

—박쥐

Un essai bergsonien

blogin.com · 2013-02-12

지금으로부터 십수년 전 이맘때. 나는 아마 입학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엄마랑 새 옷을 사러 다니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지나 3월이면, '국어와 작문'이라는 이름의 수업 시간을 맞아, 자전적 에세이를 써보라는 강사의 주문에, "애비는 건축쟁이었다. 여름이 되어도 바다에 가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게 될 것이었다.

인용이나 모방을 일삼는 글쓰기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이었던 듯싶은데, 입시를 준비한답시고 논술 훈련을 받으면서는 그나마 있었던 창조력마저 감퇴하고 말았으니. 그럼에도,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하긴 했어도, 강사로부터 "이공계생치고는 제법"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바로 그 에세이가, 오늘, 문득, 생각난 것은...

실은 Bergsonisme 을 읽던 중이었다. 들뢰즈가 쓰고 김재인이 번역한 『베르그송주의』를 읽은 것은 아마 학부 4학년, 철학과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기억에 남은 것이라곤, 왜 '베르크손'이 아닌 '베르그송'으로 표기해야 했는지를 유려한 문장으로 역설한 역자 서문이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원본인 Bergsonisme 을 읽다 보니 다른 기억들도 떠올랐다. 기억이라기보다 추억이라 해야겠다, 베르그손에 충실하려면. 아니, 추억-이미지라 해야 할까. 그냥 통속적인 의미에서의 이미지라 해야겠다, 진정으로 베르그손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그러니까 내게 떠오른 것은 베르그손의 중심 개념인 "기억"과 "지속"에 대해 당시 내가 가졌던 이미지였다. 기억이 이런 저런 몸/물질 사이에서 자유로이 유동하면서 지속하는 이미지, 『베르그송주의』는 내게 이런 이미지로 남았었다. 그리고 그 인상을 소재로 시랍시고 몇 자 끄적였던 기억. "들뢰즈가 쓰고 김재인이 번역한 『베르그송주의』를 읽는다/들뢰즈가 쓰고 김재인이 번역한 『베르그송주의』를 읽는 나는..." 운운. 아직 있을까? 다시 보면 재미있을 것도 같은데. 텍스트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로 점철된 실패작, 나아가 흉작(!)일 것임이 틀림없지만.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까 싶다만. 그때는 그래도 "시적 허용"이라는 핑계를 내세울 용기는 있었는데.

『베르그송주의』의 기억에서 대학 새내기 시절의 에세이에 대한 기억으로. 둘 사이에 모종의 연관 관계를 확립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그저 의식에 떠오르는대로. 의식까지 안 떠오르고 무의식에 머물러도 좋다. 지금 나는 의식의 흐름 기법 혹은 무의식의 자동기술을 실험하는 중이다. 감히 이런 기법들을 들먹이는 걸 보면 무지한 자 특유의 용기는 여전한 듯.

문제의 에세이는 "애비는 건축쟁이었다. 여름이 되어도 바다에 가지 않았다"라며 미당의 시구를 패러디 하는 것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바람'을 다른 무언가로 바꿨음이 분명한데,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간에 "나는 한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났다"라는 문장을 삽입하기도 했었는데, 쓰면서는 '중산층 가정'의 정의에 대해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이 문장을 적으며 나는 아마 이런 말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애비'는 건축을 전공한 엔지니어다. 미술에 재능이 있으나 배를 곯기는 싫어 공대에 진학했고, 졸업한 뒤에는 대기업 계열의 건설회사와 건축 사무소를 전전했다. 기술사 자격증을 땄지만 건축사 시험에는 실패, 그쪽 업계 용어로 "쌍술사"가 되지는 못하고, 시공 감리 전문가로 남았다. 전문직이긴 하나 의사나 변호사처럼 널리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같은 직업군에 속하는 설계사에 비한다면, 뭐랄까, 현장 노동에 가까운 직업. 그래도 전공이 전공인지라 집에는 건축 관련 서적들이 꽤 있었고, 엄마 또한 인테리어 전문가 지망생이기도 했었기에, 두 사람의 대화에는 아이 엠 페이니, 가우디니, 마리오 보타니, 김수근이니 하는 건축가의 이름들이 종종 오르곤 했다. 차를 타고 가다 이름 있는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 보이면 지적하고 논평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를 키운 팔할은 엄마, 더 정확하게는 엄마에 대한 애정 갈구와 동시에 보호 심리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정신분석의라면 나를 두고 아마 엄마로부터의 분리에 실패한 사례라 할 것이다.

엄마는, 앞서 말한대로, 인테리어 전문가를 꿈꾸며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국비장학생 시험에 실패하고는 맞선으로 만난 아빠와 결혼해서 주부로 안착했다. 엄마는 이른바 "명문여대", 아니, 그 뿐인가, "명문 여중고" 출신이었다. 이는 그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심지어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누구' 엄마이기에 앞서 '어디' 출신으로 기억되곤 했다. 그 '누구'에 해당하는 내가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축에 속해서였을까. 사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앞으로 나서기를 극도로 꺼려했던 내게, 사교적이며 이른바 '육성회의'를 비롯, 어느 모임에서나 주도적 역할을 하곤 하는 엄마의 존재는 부담이었다. 동시에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을까. 아니면, 사실은, 타인에게 엄마를 빼앗길 것이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식 석상이 아닌, 사적 공간, 즉 집에서의 엄마는 내게 무한한 애정의 대상이었다. 당시 엄마의 이른바 '사교육'은 이제사 생각컨대 흠잡을 데 없었다.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원칙하에 피아노 교습을 강요한 걸 빼면, 공부에 관한 한 이렇다 할 강요는 없었다. 대신 나와 동생의 손을 잡고 1주일에 한 번 꼴로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사고, 동방아트홀의 이중섭 전시회에 데려가고, 명동 에스콰이어 소극장의 「올리버 트위스트」 공연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그 시절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도리어 이것이 이후의 성장에 있어 장애물로 작용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와의 비분리 상태가 너무 안락하고 행복했기에 이 상태로부터 벗어나기를 거부하고, 그럼으로써 엄마로부터의 독립이 지연되고, 엄마에 의해 강제적으로 분리가 행사된 이후에도 이를 소화하지 못한 채 분리 이전의 원상태로 복귀하려는 퇴행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  

세월이 지나 나는 엄마의 모교에 입학함으로써 분리에 다시 한번 실패한다. 하필이면 또 그녀가 다닌 가정대 건물에서 진행된 수업 시간에 과제로 제출한 자전 에세이에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났다"라 적는다. 이 말을 적으며 실제로 위에 적은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하고 싶었다 해도 할 수 있었을지. 한다 해도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로부터 또 몇 년인가 지난 후에, 가족사를 술회할 다른 기회가 또 있었다. 누군가가 나와 내 부모의 계급적 위치에 대해 내린 특정한 판단에 격한 반발심을 느끼고는 반박을 준비했다. 판단의 주관성과 임의성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른다. 판단이 주관적이고 임의적이며 무의미한 만큼, 반박할 여지도 그럴 가치도 사실 없었다. 반박이랍시고 내가 적은 것은 "부모님은 나를 부족함 없이 키우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가 고작이었다. "나는 부족함 없이 자라났다"였는지도 모른다.  

『베르그손주의』의 촉발로 사정없이 몰려들고 있는 추억의 물결. 까딱하다가는 이 "생명의 대양", "순수 상태의 시간"에 익사하게 생겼다. 이제 다시 '지성'을 환기시켜 '긴장'하고 지금/여기의 '공간'으로 복귀할 '시간'이다.

복귀하기 전에 잠시
Un clip bergson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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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베르그송주의』를 처음 읽던 2000년대 초 무렵,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베르그손의 기억 및 지속에 대한 꽤 그럴 듯한 해석이라 생각했었다. 스플릿 스크린으로 공간의 외재화와 분리의 기능을 보여주는 점이라든가, 화면 상단의 "순수 과거"라는 흐름의 첨점이 화면 하단의 현재와 조응하도록 함으로써 시간의 속성을 표상하고 있는 점에서. 상하단 모두 컷 없이 원테이크로 찍은 것은 '지속'에 대한 표현이겠고. 베르그손까지 안 가더라도 최소한 프루스트까지는 되겠다. 비누방울이나 노란 꽃 등등은 마들렌느의 대리물이고.

—박쥐

호퍼를 논하면서

blogin.com · 2013-01-12

그가 그려낸 무수한 책읽는 여인의 초상을 언급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관련 주제에 관한 코너까지 마련되어 있는 이 공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지금껏 호퍼의 작품이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음은 이번 회고전에서 본 작품 두 개.
먼저 Hotel Room. 1931년.  

그런데

호텔방의 그녀가 읽고 있는 것은 분명히 책이 아니다. 편지도 아니다. 편지라면 세로로 긴 종이였을 것이다. 난 전보라고 생각했다. 호텔방에 들어와 짐을 막 풀자마자 도착한 전보. 그런데 어느 평에서 보니 형태로 보았을 때 기차 시간표라고 한다. 그녀는 도착한 게 아니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가 하면 다음 그림의 주인공은 떠나고 있거나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Compartment C, Car 193. 1938년.

—박쥐

Philosopher avec Hopper

blogin.com · 2013-01-10

호퍼와 함께 가는 철학의 길.

[원본 이미지 링크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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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into Philosophy. 1959년작.

[원본 이미지 링크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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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 the Sun. 1960년작.

이러저러한 이유로 미술관 출입을 삼가게 된 지 오래. 그래서인지 더더욱, 아니, 그렇다는 사실을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그랑팔레의 호퍼展 (http://www.grandpalais.fr/g ... pper/)  은 근래 본 파리의 전시 중 최고였다. 이미 지난 11월부터 예매가 불가능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또 아직까지도 그렇다는데, 가서 보니 과연 그럴 만도 했다. 작품 수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적당한 규모. 유명한 작품에서부터 새롭게 발견하거나 재발견할 만한 초기작에서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테이트 모던을 연상케 한 널찍한 공간 사용. 내 기억에 따르면 예전 그랑팔레는 이렇지 않았다. 몇몇 전시는 인산인해에 작품들도 다닥다닥 붙여놔서 도무지 제대로 된 관람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더더욱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준 ㅅ 언니께 감사. 그녀와의 동반 덕에 쾌적한 관람 환경에 유쾌한 기분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위의 그림은 이번에 발견한 두 작품. 첫째 그림을 철학입문서의 표지 그림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ㅅ언니가 하는데, 조금 더 가니 두 번째 그림이 나왔다. 그러면 두 번째 그림은 뒷표지에 넣어야겠다는 말에 나는 반대했다. 책이 팔리도록 하려면 순서를 바꿔야하지 않겠냐고. "철학으로의 외유"가 저렇게 어둡다면 누가 그 외유를 하러 나서겠냐고. 진리의 빛이 사람들을 향해 손짓하고, 사람들은 또 그 빛을 일제히 응시하고 있는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 편이 철학으로의 초대와 환대로서 적절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끌지 않겠냐고. 그런데, 그러면, 철학서에 상품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보다 심각한 도덕적/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절망으로 가득한 철학이란 상품을 희망으로 과대포장하는 거야말로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절망적인 "외유"에서 시작하더라도 "해바라기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걸로 끝나는 편이 좀더 솔직하고 철학 본연의 사명에 가까운 태도이리라.

호퍼는 플라토니스트였던가?

호퍼의 부인에 따르면 "철학의 외유"에 등장하는 책은 플라톤의 "향연"임에 틀림없단다. 이 작품을 작업할 무렵 호퍼가 플라톤을 다시 읽고 있었다면서. 후기로 갈수록 선과 미의 이데아를 상징하는 태양-빛의 존재가 더더욱 뚜렷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란다. 누군가는 책의 어느 부분이 펼쳐져 있는지 추측하기도. "향연" 중 소크라테스가 육체적 욕망에 대한 정신, 즉 그 유명한 "플라토닉한 사랑"의 우월성을 역설하는 대목이리라는 것. 꽤 그럴 듯하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