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에 일어나 몸을 씻으며 오늘도 오지 않을 너를 생각한다 네가 오지 않는 날이 쌓여갈수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나는 내 안의 너 오늘 하루 너는 또 얼마나 높아질까 오늘은 오늘 하루만은 제발 너 없이 보냈으면 흐르는 물줄기 따라 너도 흘러 갔으면 그런데 내 몸을 따라 흘러 내려간 너는 어느새 한움큼이나 내려앉아 내 머리카락과 어지러이 엉킨 채로 내려가지도 녹지도 않고 자꾸 쌓여만 가는 너라는 앙금
2.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너와 싸운다 내 안에서 너는 물어 뜯기고 찢겨 너덜너덜해진지 오래 그런데도 너는 죽지 않는다 이제 좀 잠잠한가 싶으면 어느새 되살아나 달겨든다 아무리 울며불며 저주하고 꼬집고 할퀴고 깨물고 온갖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다 동원해도 사라지지 않는 너와의 끝없는 싸움 이러다 내가 사라지고 말 차라리 그게 나을 너와의 승산없는 싸움
3.
늦은 오후 점심으로 허기를 채우고도 나는 여전히 고프다 네가 고프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우기 무섭게 비워내는 밑 빠진 내 마음 그 자리에 네가 있다 아니 그곳은 네 자리이나 너는 거기에 없다 너를 아무리 비워내고 비워내도 네 자리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 나는 밑이 빠진 줄 알고도 물을 붓고 또 붓고 그러고도 여전히 네가 고파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너라는 허기
4.
어느덧 날이 지고 세상은 어둑해지는데 너 없는 밤은 또 얼마나 깜깜할까 이제 며칠만 지나면 보름달이 뜨고 또 며칠 뒤에는 동지섣달인데 너없이 그 긴 밤을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님 없는 밤 허리를 잘라내어 둘둘 말아두었다가 님 오는 밤 훌훌 풀어낸다던 여류시인의 풍류를 나는 갖지 못해서 그저 오지 않는 네가 야속하기만 한 길고 긴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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