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여자가 그린 책읽는 여자

blogin.com · 2006-07-29


베르트 모리조의 1869-70년작. 남쪽 로데브라는 도시에서 그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얘길 듣고는 가고 싶어 달아오른 몸을 달래고 있는 중.

—박쥐

책읽는 익명의 중세 여인

blogin.com · 2006-07-29


2001년 루아르 지방의 한 고성에서 본 그림이다. 보고는 홀딱 반해서 사가지고 온 엽서를 찍은 건데, 화질이나 구도가 좋지 않아도 양해하시길. 원래 남의 사진기 가지고 사진을 찍는 게 남의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지 않은가.

—박쥐

외지에서 나를 묻다

blogin.com · 2006-07-29

이방인/외국인/이주민으로서의 경험으로부터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묻는다.

외지, 즉 자신이 나서 자란, 그리고/또는 살아온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은 실존적 고민을 하는 계기를 주게 마련이다. 물론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타향에서만 가능하고 고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타지에서 외지인으로서 머물게 되는 경우,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혹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을 하루에 적어도 서너 번씩은 듣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 물음을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좀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던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은 질문만큼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 '한국 사람이다', '파리에서 유학 중이다' 등등의, 가장 간단한 술어들 몇 개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답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파리에서 유학 중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술어가 얼마나 많은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는지를. 그뿐이랴. 같은 술어로 묶이는 사람들이라 해도, 저마다 서로 전혀 다른 개인사적 맥락들을 가지고,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이렇듯 ‘우리’ 안에는 ‘같음’보다는 ‘다름’이, 교집합보다는 차집합이 더 크고 넓게, 그리고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서로 다른 ‘너’와 ‘나’는, 각자 ‘너’와 ‘나’로 머무는 데에 만족하지 못하고, 둘 사이의 저 작고 좁은, 그리고 얕은 교집합/공집합에 발을 디딘 채, 하나의 그 무엇이 되려 애쓴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한 번 ‘우리’가 된 너와 나는 계속해서 또 다른 ‘나’들을 만나 더더욱 큰 ‘우리’가 된다.

더 큰 ‘우리’로의 움직임은 계속된다. 나와 너 사이에 교집합으로 묶일 수 있을 만한 속성이라고는 한 가닥 실처럼 얇은 종적 공통성, ‘인간임’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될 때까지. 결국, 이렇게 무한히 확장된 ‘우리’는 ‘나’보다는 그 외의 것들, ‘내’가 아닌 것들로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정체/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이 절실해지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다.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가장 불분명한, 그렇지만,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때로는 없던 것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경계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지점.

특히 프랑스, 그 중에서도 파리라는 공간에서 이 질문은 더더욱 불가피해진다. 프랑스만큼 외국인이 철저한 이방인으로 머물 수 있는 곳도 없으니까(« nulle part on n’est plus étranger qu’en France », Julia Kristeva, Etrangers à nous-même, 1988). 더군다나, 지금/여기, 2004년 이후부터의 일련의 사건들(정교분리laïcité 원칙의 적용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에서부터 방리유 사태, 그리고 주거 정책 및 이민 정책의 문제를 드러낸 저소득층 거주지 화재에 이르기까지)로 인해 ‘프랑스식 모델’이 실패했거나 적어도 예전에 생각됐던 만큼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판명된 2006년의 파리에서라면 말이다. 때로는 프랑스인들의 노골적인/은근한 인종차별주의(그리고/또는 성차별주의) 정책에 분노하면서, 때로는 이네들의 특히 아랍인들(그리고/또는 중국인들)에 대한 태도를 내면화하고 또 그대로 답습하면서, 지금/여기의 우리는 ‘도대체 지금/여기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끊임없이 던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 나는 나를 묻는가?
그걸 알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나.


"이방인"이라는 이름의 카테고리를 개설했던 것은 위와 같은, 자못 실존적인 고민을 본격적으로 그리고/혹은 공개적으로 해보려는 의도에서였던 한편으로, 내 의지와는 별 상관이 없이 참여하게 된 일종의 공동 작업을 내 편에서 또 다른 한 축의 "공동 작업"으로 이끌어 보려는 의도에서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렇다. 요즘 또 "딴짓"에 골몰하고 있는 중이다. 그 딴짓이란 "프랑스 이방인 여성의 존재론"에 관한 것이다. 도서관에서 어떤 한국분이 내 자리를 보고는 여성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단다. 책상에 펴놓은 책이 온통 히잡과 정교분리원칙에 관한 것들이었으니. 난 원래 사람들이 내 책장이나 책상 위를 보고 내 정체를 궁금해 하도록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정말이지 본분을 망각해도 한참 망각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본분을 망각하고 말고의 문제만은 아니다. 자격 요건 혹은 직업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함부로 얘기해도 되는 걸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흑. 어쨌든 여기에 더 이상의 시간을 쏟을 순 없다. 어서 빨리 푸앵카레 선생과 재회해야 한단 말이다. 

사진은 아를르의 한 사진전에서 찍은 것. 아를르에 갔더니 "사진(가들)과의 만남"이 한창이었다. 작가 이름이랑 전시명은 까먹었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