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would say that we're all strangers, or not at all. But will there be anyone who can say where all of these feelings are come from ? why I have a such a feeling so wierd that I can't explain what it exactly is, a fortiori where they're coming from ?
Peut-être dois-je me résigner à tout ça... C'est trop. On ne cesse de parler des bornes de l'esprit humain. Mais c'est bien loin de cela qui m'agace (je serais moins énervée, au contraire, plus heureuse si j'arrivais à l'accepter). C'est que tout ce qu'on appelle "esprit" m'échappe. Comme s'il y avait rien qui ressemble à la pensée sur moi.
케르테츠를 알게 된 것은 SY 언니로부터 스물 아홉 번째 생일 선물로 사진집을 받으면서였다. 후에 나는 그가 '독서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이 사진집의 표지에 실린 사진을 올리고 싶었으나, 올리기에 마땅한 판본을 구하지 못한 관계로, 이걸로 대신한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괴로웠다. 언젠가는 고쳐서 올리리라는 다짐을 수차례씩 했건만, 그건, 내가 하는 다짐이란 것들이 늘 그러했듯이, 의미는 고사하고 음가조차 없는 비존재 혹은 무로 화했을 따름이었다. 이는 한편으로, 이 "이방인의 존재론"을 운운한 이 경우에 있어서는, 아직 내 이방인됨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다른 한편으로, 보다 일반적으로는, 언젠가부터 날 잠식하기 시작, 이제는 고착되어 버린 각종 병증--실어증, 무기력증, 우울증, 기억상실증, 그 모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아니 내게 있어서는, 정신적 나태함을 그 병인으로 하는 것들--의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증거다.
요즘 들어 가장 낯선 존재가 내 안에 있는, 나조차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최근엔, 영어 배우던 시절에 정말 신기하고 재밌다고 생각했던 표현, "I found myself (in such a sitation)"을 어느새 "나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라는 식으로 어설프게 변형해서 쓰고 있는 걸 보며 놀란 경험이 있다. 나같은 유아론자에게 있어 이전까지 모르던 자신의 어떤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일은 없다. 그 모습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경우, 그 공포는 더더욱 커진다. 그런데 요즘에는 첫 번째의 경우, 즉 "사유하는 나"와 "존재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주는 혼란이 더욱 무섭고 끔찍하다.
외지, 즉 자신이 나서 자란, 그리고/또는 살아온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은 실존적 고민을 하는 계기를 주게 마련이다. 물론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타향에서만 가능하고 고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타지에서 외지인으로서 머물게 되는 경우,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혹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을 하루에 적어도 서너 번씩은 듣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 물음을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좀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던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은 질문만큼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 '한국 사람이다', '파리에서 유학 중이다' 등등의, 가장 간단한 술어들 몇 개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답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파리에서 유학 중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술어가 얼마나 많은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는지를. 그뿐이랴. 같은 술어로 묶이는 사람들이라 해도, 저마다 서로 전혀 다른 개인사적 맥락들을 가지고,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이렇듯 ‘우리’ 안에는 ‘같음’보다는 ‘다름’이, 교집합보다는 차집합이 더 크고 넓게, 그리고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서로 다른 ‘너’와 ‘나’는, 각자 ‘너’와 ‘나’로 머무는 데에 만족하지 못하고, 둘 사이의 저 작고 좁은, 그리고 얕은 교집합/공집합에 발을 디딘 채, 하나의 그 무엇이 되려 애쓴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한 번 ‘우리’가 된 너와 나는 계속해서 또 다른 ‘나’들을 만나 더더욱 큰 ‘우리’가 된다.
더 큰 ‘우리’로의 움직임은 계속된다. 나와 너 사이에 교집합으로 묶일 수 있을 만한 속성이라고는 한 가닥 실처럼 얇은 종적 공통성, ‘인간임’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될 때까지. 결국, 이렇게 무한히 확장된 ‘우리’는 ‘나’보다는 그 외의 것들, ‘내’가 아닌 것들로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정체/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이 절실해지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다.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가장 불분명한, 그렇지만,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때로는 없던 것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경계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지점.
특히 프랑스, 그 중에서도 파리라는 공간에서 이 질문은 더더욱 불가피해진다. 프랑스만큼 외국인이 철저한 이방인으로 머물 수 있는 곳도 없으니까(« nulle part on n’est plus étranger qu’en France », Julia Kristeva, Etrangers à nous-même, 1988). 더군다나, 지금/여기, 2004년 이후부터의 일련의 사건들(정교분리laïcité 원칙의 적용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에서부터 방리유 사태, 그리고 주거 정책 및 이민 정책의 문제를 드러낸 저소득층 거주지 화재에 이르기까지)로 인해 ‘프랑스식 모델’이 실패했거나 적어도 예전에 생각됐던 만큼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판명된 2006년의 파리에서라면 말이다. 때로는 프랑스인들의 노골적인/은근한 인종차별주의(그리고/또는 성차별주의) 정책에 분노하면서, 때로는 이네들의 특히 아랍인들(그리고/또는 중국인들)에 대한 태도를 내면화하고 또 그대로 답습하면서, 지금/여기의 우리는 ‘도대체 지금/여기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끊임없이 던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 나는 나를 묻는가?
그걸 알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나.
"이방인"이라는 이름의 카테고리를 개설했던 것은 위와 같은, 자못 실존적인 고민을 본격적으로 그리고/혹은 공개적으로 해보려는 의도에서였던 한편으로, 내 의지와는 별 상관이 없이 참여하게 된 일종의 공동 작업을 내 편에서 또 다른 한 축의 "공동 작업"으로 이끌어 보려는 의도에서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렇다. 요즘 또 "딴짓"에 골몰하고 있는 중이다. 그 딴짓이란 "프랑스 이방인 여성의 존재론"에 관한 것이다. 도서관에서 어떤 한국분이 내 자리를 보고는 여성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단다. 책상에 펴놓은 책이 온통 히잡과 정교분리원칙에 관한 것들이었으니. 난 원래 사람들이 내 책장이나 책상 위를 보고 내 정체를 궁금해 하도록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정말이지 본분을 망각해도 한참 망각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본분을 망각하고 말고의 문제만은 아니다. 자격 요건 혹은 직업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함부로 얘기해도 되는 걸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흑. 어쨌든 여기에 더 이상의 시간을 쏟을 순 없다. 어서 빨리 푸앵카레 선생과 재회해야 한단 말이다.
사진은 아를르의 한 사진전에서 찍은 것. 아를르에 갔더니 "사진(가들)과의 만남"이 한창이었다. 작가 이름이랑 전시명은 까먹었다.
나는 왜 늘 우회할까? 푸앵카레의 중요한 수학, 천체역학, 철학에서의 논의들보다는 요즘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 우주생성론을, 푸앵카레보다는 데카르트나 콩트를, 데카르트나 콩트의 중요한 저서들보다는 그들의 주변적인 저작들을, 나는 읽는다.
이렇게 계속 돌고 돌다 보면, 나중에 뭔가 보일까? 그러다 예측하지 못했던 전혀 엉뚱한 길로 빠지게 될 수도 있지만. 마치 바슐라르가 '전과학적 정신', 즉 과학정신들의 인식론적 장애물을 솎아서 버리는 작업을 하다가, 결국 나중에는 그 장애물들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던 것처럼.
그렇지만 어떤 저자가 평소에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 그것이 그를 이해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그의 사유를 보다 폭넓고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간과하면 안 될 부분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코기토가 데카르트 철학의 구심점 역할을 함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로르 아들러(와 스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플라마리옹, 2006). 어쩌면 나는 이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선수를 뺏긴 기분이랄까. 내가 언젠가, 기회와 능력만 허락된다면, 써보고 싶었던 종류의 책 중 하나니까. 그렇지만 막상 책이 나오고, 그 책을 손에 넣고 나니, 마치 내가 낸 것인양 뿌듯하다. 앞질러 가면서 "용용 죽겠지?" 하다가 이내 다시 내 뒤로 돌아와서 힘내라며 등을 두들기고 있지 않은가. 내 작은 "책읽는 여자 컬렉션"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얄밉게 구는 듯하지만 알고 보면 사실은 속깊고 든든한 동지(들) 덕분이다.
교문이 닫힌 지도 벌써 두 주째. 어제는 책을 반납하러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국립도서관은, 아마도, CPE에 반대하나 파업에 찬성하지는 않을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집에 오는 길, 시위에 참가하는, 그러나 경찰 진압에 익숙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최루탄 연기에 맞서는 법"에 대한 "리베"의 기사를 보자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지난 주 소르본느 근처에 다녀왔던 선배는 최루탄 냄새를 풍기면서 지하철에 올라탄 앳된 학생들을 보면서 옛 생각이 났다 했다. 누군가는 학생들이 소르본느 광장 앞 까페와 상점의 유리문을 깬 일을 두고 "애들이 집회 경험도 없고 제대로 된 조직도 갖추지 못해서 저런다"고 평했다. 그렇다 해도 그 "애들"이 생각이 전혀 없는 애들은 아니다. GAP 매장은 부수고 그 옆에 있는 철학 전문 서점 Vrin은 그대로 놔둔 걸 보면.
어쩌면 후세에는 제 2의 68로 기억될지 모를 이 역사적 현장을 나는 이렇게 경험하고 있다.
지금 동네 앞 맥도날드에서 무선 인터넷을 하고 있는 중. 예전에 그토록 경멸하거나 경원시했던 맥도날드가 내 살아있음을 증거케 해주는 몇 안 되는 장소로 변하다니.
이사한 지 한 달. 새 동네에도 서서히 정이 붙어 간다. 어떤 관광 책자에 '아니, 여기도 파리야?'하고 묻게 만든다는 곳으로 설명된, 도시 외곽의 한적한(그렇지만 부유해 보이지는 않는) 주택가를 연상케 하는, 낡고 삐걱대지만, 인터넷도 전화도 쓸 수 없지만, 내게는 한없이 아늑한, 이 곳.
2006년이다. 이렇게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해가 오는데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날짜나 시간 가는 데에 무심한 것과 무감한 것의 차이. 난 대체로 무감하나(워낙 둔하므로) 무심하지는 않다(둔한 주제에 소심하므로). 중요한 것은 오직 지금/여기hic et nunc 뿐이라고 주장하는, 일종의 세월아내월아주의자라고나 할까.
새해를 맞으러 남불의 리옹에 갔다가 1일 아침에 돌아왔다.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 파리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툴툴거렸는데, 참 이상도 하지, 그곳서 머물던,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심각하게 나쁘진 않은 호텔의 침대보다, 돌아와 누운 내 작은 다락방 매트리스가 더 편하고 아늑하다. 잠자리의 질이나 취침 시간의 양으로만 본다면 당연히 전자에서의 잠이 후자의 그것을 앞섰어야 했거늘.
둘째날엔 눈이 많이 왔다. 영하 6도의 날씨에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고도의 르네상스풍 돌길을 활보하는 일은 추위를 좀처럼 타지 않는 내게도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눈' 덕분에 눈이 배로 즐거워졌으므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라며 내민 누군가의 손에 마음은 그 어디에도 비할 바 없도록 포근해졌다.
몇 가지 다짐을 주고 또 스스로도 했다. 나쁜 습관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 그리고, 대부분의 나쁜 습관들이 그렇듯, 끊기 어려운 것들. 그런 종류의 습관을 끊겠다는, 실현하기가 불가능하진 않지만 결코 쉽진 않은 다짐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게 낫다. 시나브로 줄여가겠다는 것, 그것이 나의 다짐이다.
그 중 하나는 이 블로그에 관한 것으로, 포스팅의 불규칙성, 특정 카테고리에의 편중, 뭐 이런 것들을 줄이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더불어 '것'이라는 의존 명사의 사용도 줄여야겠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포스팅을 하겠다"라는 게 '다짐'의 범주에 집어넣기에는 너무 손쉬운 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일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독백의 형식이나 내용도 줄여야 할 듯하다. 어쨌든 이곳은 소통을 위한 공간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다소 뜬금없고 생뚱맞긴 하지만 이 멘트로 지금의 이 포스트를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 2006년 올해, 이 블로그를 찾는 이들에게도 좋은 한 해가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