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발전에 기여하는 사소한 방법

blogin.com · 2012-01-12

혹은, 서가 숲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짤막한) 가이드...는 좀 진부하고,
혹은, 어느 도서관 유랑객의 일기...도 진부하네. 자타가 공인하던 타이틀링 센스도 이젠 다 옛날 얘기. 흑.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줄기차게 드나들던 지난 해 말, 그곳의 전자 카탈로그를 검색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Enrico Castelli Gattinara 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출신 저자의 Les inquiétudes de la raison 이란 책을 찾고 있었는데, ' target='_son'>http://catalogue.bnf.fr/ark ... /cb37033779w/PUBLIC> 카탈로그 상 에는 이 책이 가티나라가 아닌 Enrico Castelli (1900--1977)으로 표기돼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저자가 1990년대 파리 고등사회과학연구원에 제출한 박사논문을 출판한 거라고 알고 있었던 나는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국립도서관의 서지사항에 오류가 있거나 아니면 내가 박사 심사 년도를 잘못 기억했거나, 둘 중 하나일 터. 두 가설 중 유력한 것은 그간의 경험에 근거할 때 당연히 후자였다. 프랑스 최고이며 아마도 세계에서도 내로라 할 국립도서관의 데이터 베이스와, 지극히 제한적이고 선택적이며 최근에는 기형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는 내 기억력을 비교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다시 보니, 문제의 책의 저자명에 "가티나라" 라는 성이 아니라 "엔리코 카스텔리"라는 이름만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엔리코(이름) 카스텔리(성) 이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아니 1900년부터 1977년까지 존재했고, 이 인물은 가티나라보다 인지도가 높으며 또 여러 권을 남긴 저자라는 사실이었다. 마치 "이지선"이라는 저자명을 검색했는데 지선 스님과 동일인으로 처리되어, 무명에 가까운 전자가 하루아침에 벌써 몇 권의 책을 낸 후자로 둔갑해 버린 형국.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니지만 참으로 미묘하게 동명인 사례.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내 기억이 맞았고, 국립도서관측의 착오였던 것이다.

몇 번 확인을 거듭한 끝에 오류의 사실에서부터 오류의 원인에까지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책을 반납하면서 도서관 사서에게 잘못을 지적했다. "여기 오류가 있어요. (책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랑 (서지 사항 기록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랑 다른 사람이에요. 엔리코 카스텔리란 사람도 있긴 한데. 이름 때문에 혼동이 있었나 봐요." 그리고는 매우 흡족했다. 다음에 이 책을 볼 사람의 수고를 덜지 않았는가. 그 뿐인가. 만일 저자가 자신의 이름이 오기되어 있었단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을 터. 문헌학이나 고문서학 및 서지학(!) 등등에 밝고 또 그런만큼 이러한 종류의 오류에 민감한 이탈리아 학자인만큼 더더욱 (움베르토 에코도 그렇지만, 예전에 카를로 진즈부르그가 파리 강연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료들을 찾는데 완전히 재앙이었다"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저 정도가 엉망이면 이탈리아는 어떻길래, 하며 놀란 적이 있다). 그로 인한 사소한 개인적 마찰에서부터 나아가 국제적 분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었을 사태를 내가 사전에 방지한 것이다.

그런데 내 논증이 그다지 설득력 있지 않아서였을까? 몇 달 후에 다시 검색을 했는데도 여전히 그대로다. 아니면 사서간의 위계 혹은 분업체계, 좀더 일반적으로는 프랑스 공공기관 특유의 관료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몇 달은 더 걸릴 일일지도. 하긴, 하루에 들어오는 신간이며 처리해야 할 정보만 해도 엄청날 텐데. 

그래도, 여전히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이긴 하지만, 카탈로그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가티나라는 이탈리아 철학자요 로마 대학교 교수로, 출생연도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현재에도 활동중입니다. 처음에 오류를 보고 놀랐어요. 그 동안에는 이런 일이 잘 없었고 귀관의 정보를 신용하고 있었으니까요. 혹시 저자가 놀라는 일이 없도록 신속한 교정을 바랍니다."  

나로서는 꽤 수고를 요하는 일이었음에도 이 정도까지 한 것은, 책과 저자에 대한 경의 때문이기도 했다. 이성의 우려 (' target='_son'>http://www.vrin.fr/html/mai ... ook&isbn=2711613194> 출판사 브랭의 책 소개 와 ' target='_son'>http://books.google.fr/book ... v=onepage&q&f=false> 구글 북스 페이지 )는 부제가 시사하는대로 간전기, 즉 양차대전 사이의 시기인 1920-30년대 프랑스의 역사학과 인식론의 흐름과 그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을 되짚는 책이다. 그 흐름과 인물이라 함은, 당대 과학 지식에의 천착 및 반성을 바탕으로 20세기초 프랑스 인문학 특유의 합리론 전통을 만든 브룅슈빅, 베르그손, 메예르손에서부터, (어떤 의미에서 이들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는) 아날 학파와 프랑스 역사적 인식론, 그리고 이를 주도한 블로크, 르페브르, 바슐라르, 코이레를 일컫는다.

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합리적 이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고, 과학은 이 믿음의 증거인 동시에 징표였다. 그러나 이들은 과학을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비판적이고 (칸트적 의미에서) 초월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과학주의도, 반과학주의도 아닌, 친과학주의랄까? 1차대전의 상흔 속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반감, 나아가 적대감이 생겼을 법도 하지만 2차대전의 핵공포에 비할 바는 아니었겠고 (물론 당시로서는 사상 최고의 참상이었겠으나), 당대의 과학 또한 격변을 겪고 있었는데 (상대성이론에 이어 양자역학), 이들은 오히려 그 지점을, 즉 과학이 가져온 사유의 변화를 높이 사고 그 가능성을 믿었던 것 같다...는 것이 내 평소의 지론이고, 책을 훑으며 이를 재확인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날과 역사적 인식론의 계보를 엮다니, 흥미로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인인 저자가 외부자로서 신선한 시선을 제공한 사례. (오류 수정에 몰두하느라) 책을 대출해 놓고도 꼼꼼하게 읽진 않았지만, 분명한 건 나도 언젠가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결과가 어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꽤 즐거운 모험이었다. 이런 모험을 너무 즐기는 게 탈이긴 하지만.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도서관에서의 모험 중 최고는...


  위고 카브레에서의 저 소년 소녀들처럼, 책들을 이리저리 뒤지며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일.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면 중 하나인데, 아마도 내가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 중 하나인 주느비에브가 배경이 된 때문이리라. 영화 속 20세기초의 풍경과는 달리 지금은 개가식 도서 진열은 층 하나로 한정돼 있고, 열람석은 시험 공부하거나 숙제하는 어린 학생들로 북적대지만.

—박쥐

Hugo Cabret 와 시네필리의 기원

blogin.com · 2012-01-05

『카이에 뒤 시네마』 2011년 12월호에서 한 저자는 이 해 영화들의 한 경향으로 '빈티지'를 꼽았다 ("Cinéma vintage", par Emiliano Morreale). 복고나 향수와는 좀 다른. 비루한 지금/여기의 현실의 인식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상대적으로 긍정되고 미화된 과거도 아니고, 프루스트의 마들렌느가 환기 혹은 촉발하는 순수 과거--베르그손적 시간, 혹은 시간의 가장 순수한 상태--도 아닌. 돌아온 유행이나 복고풍 패션으로든 골동품 가게에 진열된 상품으로든 유튭의 클립으로든 복각 음반으로든, 그야말로 공간화되어 현재의 공간에 현재로서 공존하는.

저자 모레알레는 「드라이브」 (영화가 특별한 시대를 지칭하고 있진 않지만, 음악이나 패션 등등으로 배경이 80년대임을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다), 「사랑받는 사람들 Les bien-aimés」(이 영화는 5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에 걸친 한 모녀의 인생을 십년 단위로 나눠 그리고 있다), 「아티스트」 (무성에서 유성 영화가 도입되던 30년대가 그 배경) 등을 예를 들고 있다. 이 영화들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재구성하는 역사물들이 아니다. 때문에 시대착오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나 엄밀한 고증에 대한 강박도 없다. 이 영화들이 재현하는 것은 정확히 동시대에 현존하고 있는 어떤 것들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미디어의 역할이다. 이것은 미디어의 권력지향성이나 대중추수주의나 여론 조작 등등에 관한 일반적인 논의와는 차원을 달리 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대중 예술의 주된 창작 및 수용 계층을 구성하고 있는 20-40대들을 그 이전 세대와 구분하는 가장 튼 특징은, 이들이 7-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내면서 철저히 미디어에 의존하는 오직 그것에 의해 구성된 집단 기억을 보유하고 있고, 그들의 세대적 정체성이 바로 여기에 기반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내 생각에 이는 세대론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시네필리 현상의 단면으로서 봐야할 문제인 것 같다. 앞서 말한 미디어를 영화로 대체하면 이해하기 쉽다. 대표적인 예가 「수퍼 8」이다. 이 영화는 일차적으로 스타워즈 같은 헐리웃 영화, 좀더 구체적으로는 구니스나 이티 같은 스필버그 영화들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하게, 첫째,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메타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둘째, 감독 에이브럼스를 포함, 시네필을 거쳐 작가의 전당에 입성한 이들의 자전적 성격을 갖는 동시에 오늘의 그들을 만든 이전 작가들 (특히 스필버그와 로메로)에 경의를 표한다.

같은 목적과 형식을 가진 전례는 물론 많지만, 이 영화의 독특성은, 이 지점들이 (나같은) 아마추어 관객과 시네필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그럼으로써 양쪽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는 사실에 있다. 즉, 트뤼포가 말한 3단계, 즉 좋아하는 영화를 수없이 반복해서 보고, 그에 대해 평을 쓰고, 스스로 영화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착실히 거쳐서 명실공히 시네필의 경지에 올랐건, (나같이)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영화를 제한적으로 보거나 아주 가끔씩 방학이나 생일 기념으로 영화관에 간 것이 전부였건 간에, 동일한 집단기억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바로 이 기억을 촉발시킴으로써. 그리고, 바로 이 집단기억이 사실은 영화적 경험에 기반하고 있었음을 보임으로써.

이제는 시네필을 넘어 오늘의 시네필들이 경애해마지 않는 거장의 반열에 선 작가들의 경우는 조금 다른 듯도 하다. 올해로 103살을 맞을 포르투갈의 마누엘 데 올리비에라가 만든 「안젤리카의 이상한 사건」 (위 사진 : critikat.com 에서). 주인공은 젊은 남자 사진사다. 그는, 기계를 쓰지 않고 여전히 낫과 소로 밭을 가는 농부들처럼, 조금 있으면 사라질 옛 것들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데, 어느 늦은 밤, 죽은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남겨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망자는 안젤리카라는 이름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 숨을 거둔 상태이나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는 카메라 렌즈에 담기는 순간 미소를 짓고, 사진사는 사랑에 빠진다. 현상한 그녀의 사진을 농부들 사진 옆에 나란히 걸어놓고는 상사병을 앓던 그에게, 마침내 안젤리카가 "현현"하고,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하늘로 날아오른다.

여기에서 사진과 영화라는 미디어는 특정 시공간에 한정된 세대를 넘어 아예 시공간을 초월하는 메디엄-영매(medium : media 와 어원도 같고 심지어 동일한 말이다. medium의 복수형이 media)의 역할을 한다. 사진이 사라지거나 이미 사라진 것들을 붙든다면, 영화는 그것들을 되살린다. 매체로서의 사진, 그리고 이 사진들을 포섭하는 것으로서의 영화. 단순히 수단이나 매체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화된 과거를 생산하는 주체인 동시에, 그 자신 재현의 대상이자 재료/질료가 된. 자기충족적이며 자기지시적이며 자급자족하며 자기복제적인. 무리와 과장을 무릅쓰고 말해 본다면, 데미우르고스라는 창작자-장인이 이데아-지성계를 모방하여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았던 감성계가 원본의 세계와 창작자를 넘어서서 심지어 집어 삼키고 일체가 된 형국.

반면 우디 앨런은 「미드나잇 인 패리스」에서 영화 이전, 영화의 기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시대에 경의를 표한다. 2-30년대 파리를 풍미한 외국인 예술가들(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브뉘엘)과 그 이전, 벨 에포크를 장식한 인상파 화가들. 브뉘엘을 제외하면 특별히 영화 작가라 할 만한 인물은 없고, 그나마 브뉘엘도 그야말로 단역 수준으로 나올 뿐. 심지어 감독의 페르소나인 주인공은, 헐리웃의 돈 잘 버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삶에 싫증을 느끼고 소설가가 되고파 하는 인물. 앨런의 전작「카이로의 자줏빛 장미」가 영화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던 걸 생각하면, 「미드나잇 인 패리스」에서 영화가 문학 및 회화에 비해 부각되지 않고 있는 사실은 다소 놀랍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냐며는...

바로 마틴 스콜세지의 「위고 카브레」. 그가 이른바 "아동용" 영화로는 처음 만들었다는 「위고 카브레」는 앞서 논한 어떤 "경향성"들을 종합하는 동시에 그 이상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겐 2011년을 마무리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 근거를 다소 무질서하게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사, 특히 초기 무성영화 역사의 기술. 무엇보다도 멜리에스지만 뤼미에르부터 표현주의 및 초현실주의 영화들이 직접 혹은 간접 인용된다. 그러니까 멜리에스나 뤼미에르에서 딴 장면들이 삽입되거나, 이를테면 꿈 시퀀스에서 초현실주의의 형식이나 기법이 참조되거나, 시계 태엽이나 자동인형 (automate) 등 소재를 따르는 방식.

위 사진의 장면이 전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 주인공 소년은 소녀와 같이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는데, 이들이 보는 것이 해롤드 로이드의 1923년작 중 시계에 매달리는 장면이다. 나중에 소년은 경찰에게 쫓기다가 똑같은 장면을 말그대로 "연출"하게 된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스콜세지는 로이드의 시퀀스를 그대로 따르는 대신에 중간에 자신이 고안한 컷들을 집어 넣는다. 위의 컷이 그 중 하나다. 화면 왼쪽으로는 시계 위에 매달린 소년이, 오른쪽으로는 땅위 도시의 야경이 경사진 채로 펼쳐진다. 특별히 3D 효과가 쓰였던 것 같진 않은데, 저 구도만으로도 이미 아찔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칼리가리 박사의 침실」이나 「메트로폴리스」 같은 표현주의 영화들을 떠올렸던 것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시네필리의 기원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스콜세지 개인에 국한한다면, 영화도 영화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올리버 트위스트」나 「400번의 구타」 류의 소년 모험담 혹은 성장담을 보던 유년 시절이 그 시작일 거다. 좀더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한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 책을 쓰고, 사장된 작품들을 발굴하고, 마침내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가능케 한 한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시네필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시네필로서의 시네필리 실천. 그 자신 시네필로서의 근본을 잃지 않고 영화와 작가—무엇보다도 멜리에스지만 다른 영화사 초기 작가들도 포함—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다른 것도 아닌 바로 영화를 매개로 삼아서. 과연 시네필 출신 거장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그답다.

한편으로 「위고 카브레」는 매체로서의 영화와 또 영화가 표현 수단으로 삼는 매체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기도 하다. 시네필 출신이 만든 "아동용 영화"라고는 하나 「수퍼8」보다는 차라리 「안젤리카의 신비한 사건」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백컨대,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3차원 도입이 기술로서나 예술로서의 영화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뭐가 있느냐'며 불평 불만을 일삼던 무지몽매한 일반 관객 중 하나였다. 「위고 카브레」는 내가 지금까지 본 중 3차원 기술을 가장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활용한 영화였다. 다른 한편으로,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멜리에스의 일대기는 무성 영화 작가들이 영화 매체와 기술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그리고 스콜세지 자신 또한 이 고민을 이어가려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위고 카브레」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의 영화사 작업인 동시에 기술 및 예술로서의 영화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다. 이 두 가지는 물론 맞물려 있다. 스콜세지는 옛날 영화들의 복원 작업에 남다른 열의를 보이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이 영화를 통해 과거를 간직하고 보존하는 작업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는 그의 신조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그의 시네필로서의 열정과 역사가—적어도 역사를 쓸 수 있을 만한 경험과 안목과 결합되는 순간, "프로파간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메세지"로서의 설득력과 호소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이 이와 같은 경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다른 장르들을 도외시하면서 영화를 무조건적으로 혹은 편협하게 예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그는 문학-책에 영화못지 않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점이 내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기로 한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