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일과

1.
아침에 일어나 몸을 씻으며 오늘도 오지 않을 너를 생각한다 네가 오지 않는 날이 쌓여갈수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나는 내 안의 너 오늘 하루 너는 또 얼마나 높아질까 오늘은 오늘 하루만은 제발 너 없이 보냈으면 흐르는 물줄기 따라 너도 흘러 갔으면 그런데 내 몸을 따라 흘러 내려간 너는 어느새 한움큼이나 내려앉아 내 머리카락과 어지러이 엉킨 채로 내려가지도 녹지도 않고 자꾸 쌓여만 가는 너라는 앙금
 
2.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너와 싸운다 내 안에서 너는 물어 뜯기고 찢겨 너덜너덜해진지 오래 그런데도 너는 죽지 않는다 이제 좀 잠잠한가 싶으면 어느새 되살아나 달겨든다 아무리 울며불며 저주하고 꼬집고 할퀴고 깨물고 온갖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다 동원해도 사라지지 않는 너와의 끝없는 싸움 이러다 내가 사라지고 말 차라리 그게 나을 너와의 승산없는 싸움

3.
늦은 오후 점심으로 허기를 채우고도 나는 여전히 고프다 네가 고프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우기 무섭게 비워내는 밑 빠진 내 마음 그 자리에 네가 있다 아니 그곳은 네 자리이나 너는 거기에 없다 너를 아무리 비워내고 비워내도 네 자리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 나는 밑이 빠진 줄 알고도 물을 붓고 또 붓고 그러고도 여전히 네가 고파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너라는 허기

4.  
어느덧 날이 지고 세상은 어둑해지는데 너 없는 밤은 또 얼마나 깜깜할까 이제 며칠만 지나면 보름달이 뜨고 또 며칠 뒤에는 동지섣달인데 너없이 그 긴 밤을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님 없는 밤 허리를 잘라내어 둘둘 말아두었다가 님 오는 밤 훌훌 풀어낸다던 여류시인의 풍류를 나는 갖지 못해서 그저 오지 않는 네가 야속하기만 한 길고 긴 겨울밤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Promises Like Pie-Crust - Christina Rossetti

Promises Like Pie-Crust - Christina Rossetti (d'après Carla Bruni)
 
Promise me no promises,
So will I not promise you;
Keep we both our liberties,
Never false and never true;
Let us hold the die uncast,
Free to come as free to go:
For I cannot know your past,
And of mine what can you know?

You, so warm, may once have been
Warmer towards another one; 
I, so cold, may once have seen
Sunlight, once have felt the Sun; 
Who shall show if it was
Thus indeed in time of old?
Fades the image from the glass
And the fortune is not told.

If you promised, you might grieve
For lost liberty again;
If I promised, I believe
I should fret to break the chain.
Let us be the friends we were,
Nothing more but nothing less;
Many thrive on frugal fare 
Who would perish of excess.

파이껍질 같은 약속 - 크리스티나 로제티

내게 아무런 약속도 하지 말아요
나도 아무 약속도 하지 않을게요
우리 서로의 자유를 지켜나가요
거짓도 아닌 진실도 아닌 자유를 
주사위를 던지지 않은 채로 두고
가고프면 가고 오고프면 오게요
나는 당신의 과거를 모르니까요
당신이 내 과거에 대해 모르듯이 

그처럼 따뜻한 당신, 예전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따뜻했겠죠
이처럼 차가운 나도 언젠가 한땐
햇빛을 보고 해를 느꼈을 거고요 
예전에 정말로 그랬는지 아닌지
그 누가 우리에게 알려주겠어요?
거울 속의 이미지는 희미해지고
그 누구도 운명을 말해주진 않죠

만약에라도 당신이 약속을 한다면
곧 잃어버린 자유를 그리워하겠죠
나도 만약에 약속을 한다면 아마도
구속에서 벗어나려 안달할 거고요
우리 예전의 친구 사이로 돌아가요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작은 대가를 치르고 이룬 것들은
지나친 결과로 끝을 맺곤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