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7일 월요일

생일


퐁피두 센터가 우리랑 동갑이라고 동갑인 ㅎ에게 전했더니 ㅎ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했다. 이만큼이나 살았는데도 모르는 것 투성이.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다리다 막상 기다리던 날이 오면 그 기쁨도 잠시, 그 이후의 허무와 권태를 견디기 힘들었다. 공부에 있어서도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서라기보다는, 말하자면, 완성태 공포증이랄까.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미치더라도 지속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차라리 결과에 대한 기대와 희망적 사고가 보장되는 과정에 계속해서 안주해 왔던 것이다. 과정중심주의나 완벽주의는 명목상일 뿐, 실제로는 미루기즘(procrastination)을 실천하며 그에 대한 자책과 그에 따른 피학적 쾌를 즐겨왔던 것이다. 

모든 가능은 현실을 지향한다. 또는 현실화에의 경향성을 지닌다. 현실화된 바가 바로 최선의 가능인 것이다. 그 이상, 혹은 그 이하의, 잠재된 채 언젠가 발현되길 기다리는, 은폐된 채 탈은폐를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은 한갓 환상에 지나지 않을 뿐. 다만 이미 현실로 드러난 바로써 변화를 이루고 또 다른 현실을 일구어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여기에는 얼마든지 여지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유일한 여지다.

어젯밤에는 달이 유난히 밝았다. 꽉 들어찬 보름달이었다. 예전에는 초승달을 좋아했다. 보름이 되면 아쉬웠고 그믐이면 절망스러웠다. 이제는 이 도식도 바뀔 것 같다. 나이 들면 취향도 변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