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들과 남자들로 가득한 이곳

blogin.com · 2006-10-23

보부르에서. 그러나 언제 뎅겅 하고 잘려나갈지 모르는 관계로 길게는 못 쓰겠다. 

케르테츠를 알게 된 것은 SY 언니로부터 스물 아홉 번째 생일 선물로 사진집을 받으면서였다. 후에 나는 그가 '독서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이 사진집의 표지에 실린 사진을 올리고 싶었으나, 올리기에 마땅한 판본을 구하지 못한 관계로, 이걸로 대신한다.

—박쥐

이방인의 존재론을 위하여

blogin.com · 2006-10-23

잠정 보류/철회에 대한 변명

가끔 생각날 때마다 괴로웠다. 언젠가는 고쳐서 올리리라는 다짐을 수차례씩 했건만, 그건, 내가 하는 다짐이란 것들이 늘 그러했듯이, 의미는 고사하고 음가조차 없는 비존재 혹은 무로 화했을 따름이었다. 이는 한편으로, 이 "이방인의 존재론"을 운운한 이 경우에 있어서는, 아직 내 이방인됨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다른 한편으로, 보다 일반적으로는, 언젠가부터 날 잠식하기 시작, 이제는 고착되어 버린 각종 병증--실어증, 무기력증, 우울증, 기억상실증, 그 모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아니 내게 있어서는, 정신적 나태함을 그 병인으로 하는 것들--의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증거다.

요즘 들어 가장 낯선 존재가 내 안에 있는, 나조차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최근엔, 영어 배우던 시절에 정말 신기하고 재밌다고 생각했던 표현, "I found myself (in such a sitation)"을 어느새 "나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라는 식으로 어설프게 변형해서 쓰고 있는 걸 보며 놀란 경험이 있다. 나같은 유아론자에게 있어 이전까지 모르던 자신의 어떤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일은 없다. 그 모습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경우, 그 공포는 더더욱 커진다. 그런데 요즘에는 첫 번째의 경우, 즉 "사유하는 나"와 "존재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주는 혼란이 더욱 무섭고 끔찍하다. 

어쨌든.... I'll be back.... whoever I am.

modifié le 1 décembre 2006

심심하니
사진 하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데다가 깜찍하기까지 한 저 인형들 좀 보라지.

올 여름 엄마와 함께 다녀 온 샤르트르에서.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