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blogin.com · 2008-07-28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한국에서 철학은 죽었다"라 말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긴 하다. 그러나 진부하게 들리지 않았다. 이제 막 학위를 마치고 학문적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을 신진 연구자가 한 말이니만큼 더 절실하게 들렸다.

철학이 죽었다든지 아니면 위기에 봉착했다든지 하는 '진단'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철학은 위기를 먹고 사는 학문이다. 그 어떤 학문 이상으로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고, 모든 시대는 각자 스스로의 위기를 포함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진보하기 때문이다. 물론 철학에서 진보를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구원을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위험 속에 그러나 구원이 자라나나니".

난 내가 지금 공부하는 바가 세계를 구원하기는 고사하고 변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 세계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을 내릴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특히 정신적 능력에 대한 어떤 강한 신념을 기초로 하고, 그러한 신념이 어디에 근거하며 또 무엇을 결과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예를 보여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예"는 근대성 담론--서구 근대의 백인 및 남성중심적 이성주의/합리주의, 인간주의(humanisme)--에 대한 나의 종전의 비판적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지만, 그런 종류의 담론과 다른 맥락에서, 총체화와는 거리가 먼 일개의 예로서 이해될 때에는 나름의 가치를 갖는다. 즉 인간의 정신이 인식 대상과 맺는 관계 및 그 관계의 메커니즘에 대한 하나의 범례.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그것은 꿈에 지나지 않지만, 열 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라는 훈데르트바서의 말이다. 인간의 정신은 무한하다.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능한 공리나 원리들은 무한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뛰어난 정신도 외따로 존재하는 경우에는 무가치하다. 가능한 공리나 원리들 중 과학자 집단에 의해 유용하다고 판단된 것들이 규약으로서 선택된다. 개개인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지만 그 가능태 중 몇몇의 것을 현실화하는 것은 인간 집단의 힘이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존재다.

물론 집단이 늘 옳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지식인이 뭔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중을 선도하는 것이 지식인의 당위가 될 필요는 없다. 아니, 당위가 되는 것은 도리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이성에 대한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면 그것으로 족할 뿐. 감정이나 그 밖의 모호한 이유들에 휘둘리지 않는, 냉철한 판단에 따른 그러한 행동은 고귀하다. 캉길렘과 카바이예스 등 프랑스 인식론자들의 레지스탕스 활동은 그렇게 설명될 수 있다. 굳이 그들의 과학철학에서 정치적 사상의 맹아를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 두 영역은 충분히 양립가능하다. 서로 필요충분조건이 되는지는 불확실하나...

결국 인텔리겐차의 변명인가? 생각해 보면 나의 관심은 오로지 지적 활동에 편중되어 있다. 세상을 제대로, 아니 적어도 말이 되게 읽는 것조차도 내겐 아직까지 벅찬 일이다. 물론 나도 어떤 사물이나 사태에 대해 나만의 특정하고 고유한 기준--결코 정련되지 않고 또 정치하지 않은, 어떤 태생적인 판단 기준들, 이를테면 정의/부정의에 관한 것들--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그 판단에 의거해서 행동하는 일은 지금껏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변명이 아니라 솔직한 자기고백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나는 다시 한 번 지식인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결론을 유보하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찾은 서울은

덥다. 후덥지근하다.

아파트가 너무 많다.

간판들이 너무 크다.

젊은이들은 활기차다. 그런데 연애하는 패턴은 10년 전과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백화점 주차장 입구에는 여전히 "어서 오십시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를 반복하는 아가씨들이 차량을 맞으며 서 있다. 아니, 왜? 그런 건 정말 기계가 대신해도 되는 일 아닌가. 백화점에 투서라도 할까 생각하다 관뒀다. 그녀들이 일자리를 뺏길 수도 있기 때문에. 기계를 설치한다면 그녀들은 기계파괴운동을 벌일지도 모른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