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30일 금요일

2004년, 프랑스 인식론의 해

blogin.com · 2004-07-30

가스통 바슐라르는 1884년에 태어났다. 올해로 120년이다.
조르주 캉길렘은 1904년에 태어났다. 올해로 100년이다.
미셸 푸코는 1984년에 죽었다. 올해로 20년이다.



지도교수님이 "그래, 그 동안 뭘 배웠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프랑스 인식론이 어떤 점에서 영미 과학사/과학철학과 다른지에 대해 배웠노라고 답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래, 어떻게 다르다니?"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나는 숨돌릴 틈도 없이 잽싸게 말했다. "그게요, 수업 시간마다 다들 제각각으로 얘기해서 말이지요."

아마도 이제는 보다 제대로 된 답변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 답변에는 아마도 이런 말들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 역사주의, 이성(중심)주의 그리고/또는 합리주의, 과학주의,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의 변증법.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 도미니크 르쿠르가 자신의 석사 논문을 위해 창안한 이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역사적 인식론(l'épistémologie historique)"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전통"을 세운 이는 단연 가스통 바슐라르다. 나는 그에 관해 말함에 있어 과학사가냐 과학철학자냐 인식론자냐 하는 "직업"상의 구별은 온당치 못하거나 적어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과학에 관해, 그리고 좀더 넓게는 인간의 인식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느냐다. 바슐라르가 그의 동시대 과학이 갖는 인식론적 의미에 대한 성찰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인식론적 장애물"이라고 표현했던 그 이전 시대 과학의 발굴에 "역사가적 자세"로 몰두했던 것도 오로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는 사실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과학사는 과학을 둘러싼 담론들의 총체가 변화해 온 궤적을 일컫는다. 그 궤적은 결코 단선적이지도, 일방향적이지도 않다. 인류의 다른 정신적/물질적 활동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호흡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장이"라는 뉴턴의 말은 옳았다. 그 말은 천재의 겸손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사실인 것이다. 이 때의 "거인"이 뉴턴 이전의 다른 "천재"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게 이해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는 바슐라르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적 인식론자"들의 과학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비과학적인 것"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들의 논의는 일견 과학/비과학 구획에 대한 포퍼의 기획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포퍼가 프로이트나 맑스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명단"에서 제외해 버린 반면에, 바슐라르는 "일상적 인식"이 "과학적 인식"과 이루는 긴장에 주목하고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다가 결국에는 의도와는 달리 인간 정신의 가장 내밀하고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 "장애물들"을 복원하는/복권시키는 "일"을 내고 말았다. 그것들이야말로 과학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긴장 상태에 있게 하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수정을 가하게 하는, 그리하여 쉼없이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임이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그의 직속 제자인 조르주 캉길렘에게, 그리고 그 이후의 미셸 푸코에까지 이어진다. 이들에게 "병리적인 것"이나 "광기"는 "정상적인 것"이나 "정상성"에 준하는 가치를 지닌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먼지가 수북히 쌓인 사고를 뒤져가면서까지 공인된 과학사 속에 묻혀 있던 사료들을 발굴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을 이유도 없었으리라.



내가 그들로부터 배운, 아니 이미 다 배웠다기보다는 앞으로 한참은 더 배워야 할, 그런 태도는, 멈추지 않는 "탐구"의 정신이다. "'나'란 단지 '공부하다'라는 동사의 주어에 다름 아니다"라는 바슐라르의 말은 상아탑 속에 안주하는, 안락 의자에 파묻힌 모든 철학, 아니 모든 학을 경계하라는 말로 읽혀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인식론은 자신의 선조인 데카르트적 합리주의를 계승하는 동시에 넘어선다. 프랑스 인식론자들의 "과학"에 대한 경이/애착은 데카르트가 당대의 과학과 수학에 대해 보여줬던 그것과 무척 닮아 있다. "합리성", "이성"에 대한 태도도 엇비슷하다. 그렇지만 '공부하는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나'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에 만족하지도 않는다. '변화' 혹은 '생성'의 이유들을 찾아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 그것이 '공부하는 나'다.


※ 미뤄뒀던 숙제를 이렇게 부족하게나마
  완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France Culture 에서
 바슐라르 탄생 12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집' target='_son'>http://www.radiofrance.fr/c ... resentation.php>특집 방송 의 힘이 컸다.
8월 한 달 동안은
 그로 인하여 행복할 것 같다.
이 방송들을 컴으로 녹음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 혹시 ram이나 rm으로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 녹음하는 방법을 아시는 분 계세요?
가르쳐 주시면... 안 잡아먹을 뿐 아니라
선물까지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만.*^^*

—박쥐

2004년 7월 25일 일요일

Liseuse 4

blogin.com · 2004-07-25

Pablo Picasso, 1920
Oil on canvas, 1,02 m x 1,66 m
Centre Pompidou,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Paris

◈ "독서녀"들을 그린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볼 수 있는 ' target='_son'>http://www.boekgrrls.nl>http://www.boekgrrls.nl 내의 사이트를 보려면 이곳을' target='_son'>http://www.boekgrrls.nl/BgD ... tm>이곳을 클릭~!

—박쥐

Liseuse 2

blogin.com · 2004-07-25

Jean-Honoré' target='_son'>http://www.nga.gov/cgi-bin/ ... 850>Jean-Honoré Fragonard, 1776
oil on canvas, 81.1 x 64.8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박쥐

Liseuse 1

blogin.com · 2004-07-25

Johannes Vermeer, 1657
Oil on canvas, 83 x 64.5 cm
Dresden, Staatliche Kunstsammlungen,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박쥐

Liseuse 3

blogin.com · 2004-07-25

Camille Corot, 1845-1850
Oil on canvas. 42.5 x 32.5 cm
E. G. Buhrle Collection, Zurich

—박쥐

2004년 7월 24일 토요일

이 정도면 선정적인가?

blogin.com · 2004-07-24

과학자들은 내기를 좋아해

지난 7월 21일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픈 호킹 박사가 더블린에서 열린 학회에서 자신의 블랙홀 이론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동료 물리학자와의 야구 백과사전 내기에서 졌음을 고백, 화제가 되고 있다. 호킹 박사는 이 외에도 아원자 입자인 힉스 보존의 존재에 대해 100달러를 걸고 美 미시건 주립대의 고든 케인 박사와 내기를 걸었던 바 있다. 다음은 영국의 가디언지가 소개한 과학적 내기들.


◈ 아이다호 대학의 스티븐 오스탯과 시카고 대학의 제이 올션스키는 지난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둘 중에서 지적 능력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2150년까지 살아남은 사람의 자손에게 500달러를 물려주기로 했다.

◈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중역 크레이그 먼디는 구글사의 간부 에릭 슈미트에게 2030년까지 조종사 없이 승객을 태우는 비행기가 상용화된다는 데에 2000달러를 걸었다. 이긴 사람은 내기에서 딴 돈을 암 연구에 기부하기로 했다.

◈ 1870년 엘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지구가 평평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올드베드포드항에서 지구의 곡률을 측정했다. 존 햄든은 월리스가 틀렸을 것이라는 데에 500파운드를 걸었으나 월리스의 측정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월리스의 부인에게 이렇게 썼다. “당신 남편이란 작자를 보고도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까? 그의 머릿속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소.”


< 가디언 2004/7/22 >

—박쥐

2004년 7월 21일 수요일

몽실에게

blogin.com · 2004-07-21

그래, 걱정해 준 덕분에 잘 왔다. 비행기도 안 놓치고 말이야. 전날 짐을 싸느라 한숨도 못 잔 탓에 오는 내내 꿈과 현실 사이를 헤매긴 했지만. 꿈속에서 미소를 지었는데 실제로 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지고 또 그런 나를 바라보는 옆사람의 시선이 피부로 느껴지는 상태. 아마도 그 상태에서 헛소리까지 해대지 않았나 싶어. 옆사람들과 승무원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더군. 

도착해서는 온 시내가 무섭도록 조용해서 좀 놀랐다. 다들 휴가를 간 모양이야. 택시 기사에게 철학을 공부한다고 했더니 그가 택시와 철학을 같이 언급하면서 무슨 농담--아마도 고급한, 철학적인 것이었을--을 했는데 못 알아들었다. "프랑스에서는 택시 기사도 플라톤을 논한다고 내나라 사람들은 말한다"고 응수할까 했지만 관뒀어. '도'라는 조사를 표현하기 위해 가져다 붙여야 할 부사 même(even에 해당하는)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예의에도 어긋나므로. 내릴 땐 그에게 15%에 달하는 팁을 주었어. 내 한끼 식사값에 해당하는. 그가 "남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한 알량한 복수심/자존심에서였던 듯.

집에 와보니 냉장고 속에 곰팡이가 피었더군. 그리고 디카와 노트북을 연결할 잭을 두고 온 것을 깨달았어. 그리고... 기대했던 한 과목마저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역사 하나만 턱걸이로 붙은 셈이야.

근데 무슨 일인 게냐? 혹시 이번에 만났을 적에 너도 명랑한 척 했던 게냐? 옛 애인에게 결혼할 새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는 일이 네게 일어났을 리는 없고. 그래. 사실 우리(함부로 "우리"란 말 썼다고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말길)같은 사람들에게 "왜 우울하냐?"는 물음만큼 우문이 어딨겠냐. 차라리 "오늘은 웬일로 우울해 보이지 않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지.

혹시 요즘 비트겐슈타인이랑 니체를 한꺼번에 공부 하냐?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

"하고 싶은 말은 혀끝을 맴돌뿐
튀어나오지 않는다.



하고 픈 말도
사실은 그림자다.



무형의 것을 가지겠노라...
뒤섞여 가는 문자들"



사실 맞는 말이다. 그치만 그 "하고 싶은 말"이, 비록 네말처럼 "혀끝을 맴돌뿐 튀어나오지 않"을지라도, 설령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맘에서 맘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밥 잘 먹고, 멍들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네 말, 그게 곧 내가 네게 하고픈 말이다.

—박쥐

2004년 7월 20일 화요일

시내 서점 유람기

blogin.com · 2004-07-20

이 짧은 여정의 마지막을 서점 나들이로 장식했던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비록 구하려던 책을 하나도 못 찾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계간지들이 여전히 계절이 변하는 속도와는 무관한 발간 행태(!)를 보이고 있다든지(7월 중순이 다 돼가는 마당에 여름호 찾기가 그렇게 힘들다니!!) 여러가지 반가운 번역서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는 등등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무엇보다도 날 기쁘게 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선우의 새 시집이었다.

그 밖에 책에 관한한 유난히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는 나를 열광시키는 것들이 몇몇 있었다. 우선 창비시선의 북커버 디자인이 바뀌었다. 몹시도 깔끔하다. 경쟁사(?)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이라는 이름으로 수십 년째 같은 디자인을 고수해 오고 있었던 데 반해, 창비의 <시선>은 그만하면 꽤나 자주 갈린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문지의 시집들에 그려진 시인들의 인물컷과 뒷표지에 실리는 시인의 말을 좋아하지만.

<살림지식총서>도 무척 반가웠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으려는 것이 이 총서의 기획 의도라는데, 거기에서의 "지식"이 얕거나 편협한 수준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UFO에서부터 마피아나 조폭 등 참신한 주제들도 많고. 저자들이 모두 국내 학자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비슷한 컨셉을 갖춘 책세상의 <우리시대문고>에 비하면 분량도 짧고 가격도 싸다.

사실 오늘의 나들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보와 영풍 두 "문고"들의 "변신"이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영풍의 약진과 교보의 몰락이었다. 교보의 분류 체계는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이번에 보니 "남성소설"이라는 코너가 생겼다. "인터넷소설" 코너 옆이다. 시집을 위한 진열장과 진열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영풍은 예전에 비해 형편이 아주 많이 나아진 듯했다. 한결 차분해진 느낌. 심지어 교보보다 넓어 보였다. 다갈색 목조 서가들도 눈에 들었다. 

추가 사항. 생각나는 대로.

1.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실린 박남철의 시는 정말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다. 젠장. 난 <세계의 문학>을 좋아했었다구.

2. 오늘 드디어 수중에 넣은 김광석 <다시부르기2> 중 "불행아. 그리고' target='_son'>http://www.gaseum.co.kr/300 ... 宣�. 그리고 작곡자 김의철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불행아.' target='_son'>mms://wm-001.cafe24.com/ba ... _kec.wma>불행아. 말하자면 이 노래의 오리지널 버전인데, 1974년 "저 하늘의 구름따라"라는 제목으로 발표됐었단다. 그리고 결국 코스모스의 앨범은 구하지 못했다.

3. 오늘 대학로에서 청계천을 거쳐 을지로로 진입하려다가 그만... 시장이 바뀌거나 시장의 에코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바뀌기 전까지 다시는 서울 땅을 밟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4. 살림지식총서로 나온 이기상 선생의 <이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는 약간 실망이다. 선생 특유의 언어에 대한 세심한 감각을 제외하면. 물론 동양의 고전들에 뒤늦게 눈을 떠 새삼스레 "우리 철학"을 강조하는 서양철학 전공자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들의 그러한 고충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서양은 이러한데 동양은 저러하며, 현대의 모든 병리 현상은 서양의 이러함 때문이니 동양의 저러함에 호소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식의 이분화나 단순화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게다.

5. 서광사의 플라톤 전집 출간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못 본 새에 <크리톤...>도 나왔다. 근데 계속 하드 커버로만 낼 셈인가? 박종현 선생의 역주도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6. 계간 <문화과학>의 표지도 바뀌었다. 근데 제호의 글씨체가 좀 이상하다. 안 어울린다.

—박쥐

2004년 7월 17일 토요일

내 남동생의 결혼식

blogin.com · 2004-07-17

1. 비오는 날의 결혼식,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빗소리--겁나게 세찬--와 성가와 희뿌옇게 빛나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비에 젖은 연미복. 난 이런 식의 조화를 좋아한다. 

2. 앞으로 얄미운 시누이 대신 무서운 누나의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올케가 너무 예쁜지라.
3. 결혼과 관련한 이런 저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인상 찌푸리지 않고 "쿨"하게 응대하는 내 자신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아예 내쪽에서 먼저 저들의 방식대로 말한 적도 있다. "오늘의 컨셉이 '귀여움'이냐?"라는 질문에 "신랑의 누나가 아니라 신랑의 여동생처럼 보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젠장.

4. "따까리" 노릇을 계속 해서인지, 몹시 피곤하다. 동생 부부(아, 이 두 단어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쓰일 수 있는 말이었다니!)는 별로 그렇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좋을까?

—박쥐

2004년 7월 13일 화요일

돌아온 탕아

blogin.com · 2004-07-13

늙은 농부가 자신의 곁에서 부지런히 일했던 작은 아들보다 몇 년 동안 집을 비우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재산만 축냈던 큰 아들이 집에 돌아온 것을 반겼던 까닭은 무엇일까?

난 나의 9개월 간의 부재를 증명할 변화의 징후/증거를 찾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렇지만 아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변화의 속도는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그만큼 내 눈이 깊어지지도 넓어지지도 않았다는 얘기.

옛 애인을 만나보고 싶은 열망은 이 땅에 발을 다시금 내딛은 순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산에는 가고 싶었는데. 팔공산. 그런데 북한산, 아니 남산조차 오르기 힘들 것 같다. 즐겨 다니던 집앞 한강변에 나가볼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그곳에 가끔씩 들러 휴식을 취하던 백로 역시 보지 못할 것임에 분명하다. 사진으로 만족해야겠지.

—박쥐

2004년 7월 9일 금요일

변한 것과 변치 않은 것

blogin.com · 2004-07-09

변한 게 있다면 할머니가 많이 늙으셨다는 것과 우리집 현관문에 <스타워즈>에 나오는 것 같은 출입 통제 장치가 설치됐다는 것과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아니 이미 생겼다는  것.

변치 않은 게 있다면 내 방이 여전히 읽(었)어야 할, 그러나 읽지 않은 책들로 가득하다는 것.

—박쥐

2004년 7월 6일 화요일

이 여자 감독을 아세요?

blogin.com · 2004-07-06

카트린 코르시니(Catherine Corsini). 그녀와 배우 카린 비아르(Karin Viard)를 <새로운 이브(La nouvelle Eve>(1998년)에서 만났던 날, 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행복감은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하고 나서 훨씬 더해졌어요. 세상에, 그녀가 <리허설(La répétition)>(2000년)의 감독이었다니. 그 영화를 본 뒤 전체의 10%밖에 이해하지 못한 주제에 "역시, 여자들이 만들면 뭔가 달라도 달라" 하고 마냥 들떴던 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일인데. 세상에.

혹자는 <새로운 이브>를 일컬어 "프랑스판 앨리 맥빌"이라고도 하더군요. 사실 그래요. 30대 여성의 사랑. 아니, 어쩌면 더 심해요. 카미유는 사랑만이 인생의 전부인 "할리퀸 로맨스"의 주인공에 엘리보다도 더 가깝지요. 심지어 카미유는 앨리만큼 멋진 전문 직업 여성도 아녜요.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수영장 코치로 일하죠. 그러면서도 유부남 알렉시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정치적 관심사와는 절대적으로 무관한 사회당 일을 시작하고, 알렉시가 지방으로 전당 대회를 가면 직장 다 팽개치고 따라 나서지요(거기에 호텔에 "마담 엥겔스"라는 이름으로 예약을 하는 센스까지!). 그래서 어떻게 되냐구요? 결국 카미유는 알렉시와 사랑을 이뤄요. 앨리는 빌리와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도, 본조비와도 연결되지 않았는데 말예요. 알다시피 "연결이 되는" 쪽이 "연결이 되지 않는" 쪽보다 훨씬 더 "할리퀸"스럽잖아요.

그런데요, 그런데 말이지요, 그게 전부가 아녜요, 결코. 내가 그 감독이랑 그 배우가 나란히 서 있는 걸 직접 봐서인지는 몰라도, 코르시니가 그 누구보다 여자 배우들을 "잘 다루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잘 다루는 거냐면요, 배우에게 감독 자신의 얘기를 하게 하면서도 그 배우를 영화 안에서 그 누구보다 빛나고 생기 있는 존재로 만들거든요. <리허설>에서도 그랬어요. 너무나 아름다운 "상생"의 모습이 아닐 수 없어요, 정말. 감독과 배우 사이에서 그렇게 "주고 받는" 관계, 참 찾기 힘들잖아요. 저 위에다가 붙여놓은 감독과 배우 엠마뉴엘 베아르의 사진을 보세요. 정말 다정해 보이지요?

그녀의 또 다른 미덕은 레즈비어니즘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룰 줄 안다는 데 있어요. 카미유의 가장 절친한 여자 친구 두 명은 레즈비언 커플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커플 중 가장 "이성적"이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요. 카미유는 알렉시와의 사랑이 뜻대로 잘 안 되자 그 친구들과 바에 가서 낯선 여자에게 눈길을 보내고 진한 키스를 나눠요. 그러다가 그 여자의 애인인 또 다른 낯선 여자에게 얻어맞고, 카미유의 친구들이 "복수"를 하고, 그러면서 바 안에서 소동이 일어나게 되지요. <리허설>에서도 그랬어요. 둘도 없는 친구들인 두 여자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지요. 물론 나중에는 거의 원수지간이 되지만. 그렇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의 두 사람의 감정 변화, 아, 그건 정말 아무나 묘사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어요. 나같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으면서도 세속적 입맛을 채 버리지 못한 촌스런 사람한테 코르시니의 접근법은 정말 끝내주는 것이 아닐 수 없어요.

이 영화를 보고 박찬옥이 여자들 얘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어요. 일상이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재능을 좀더 잘 살릴 수 있을 텐데. 홍상수도 결국은 자기 얘기니까 그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었던 거 아니었겠어요?

그리고 내가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100% 좋아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채 20대가 되지 않았거나 스무살을 갓 넘긴 "소녀들"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기 힘든 나이에 접어들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요. 뭐, 사실, 카미유가 나이 빼고는 나와 그 어떤 공통점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만큼은 마냥 우러러 보거나 아래로 내려다볼 일 없이 눈높이를 맞출 수 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좋아요.


사진 출처 : 카트린' target='_son'>http://ccorsini.online.fr/>카트린 코르시니가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

—박쥐

2004년 7월 5일 월요일

Tu me manques

blogin.com · 2004-07-05

... 방금 위에 쓴 글을 읽고는 깜짝 놀랐더랬어, 내가 세 달 전에 저랬나, 저게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어서. 다시 읽어보니 참 틀린 곳도 많구나. 웬만한 것들은 읽으면서 고쳐놓았는데, manquer에 관한 부분은 고치지 못했어. 이 동사의 정확한 쓰임새를 알게 된 건 글을 쓰고 난 이후의 일인데, 용법을 제대로 알고 나니까 오히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불어로 옮길 자신이 없어지더라구. 아마 불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도 그럴걸?
 
불어는 참 이상한 언어야. 의인화형 동사가 참 많이 쓰여. 하다못해 “나 피곤해”고 말하려고 해도, 피곤한 당사자가 아니라 피곤하게 만드는 어떤 것--사물이나 사람--이 주어가 되거든. 영어에서는 수동형이 쓰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피곤함을 느끼는 당사자의 주격으로서의 위치는 유지되는데 말이지. “그리워하다”도 그런 면에서 불어를 배우는 많은 외국인들이 아주 많이 낯설어 하는 표현 중 하난데, 내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 봤어(이곳 불어 선생들이 자기네들의 불규칙적인 문법에 규칙이나 이유를 갖다 붙여서 설명하려는 자세(!)가 참 인상적이었거든. 라깡의 l'explétif ne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돼). 내가 널 그리워 하는 건, 내게 있어야 할 네 부분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거지(알다시피 manquer의 또 다른 뜻은 '누락되다', '생략되다'니까). 내 안에서 네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빠져 있다는 것, 네가 날 빠져 나갔다는 것. 어쩌면 이네들의 방식이, "I miss you" 나 "난 네가 그리워"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리워하다”를 가장 절절하게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지도 모르겠어.


- 아마도 부치지 못할 편지(2003~2004) 중에서 발췌






내가 계속해서 빌빌대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몇 주 전에 내린 결론은 향수병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곳에서든지 "낯선 자"로 살아왔던 내게는 그저 낯설기만 한. 아니,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내게는 향수병이 현대 의학으로든 미래의 의학으로든 고칠 수 없을 뿐더러 평생동안 달고 살아야 할 무서운 병일수도. 그래. 그리움의 대상 같은 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한없이 "모호"한 채로 영원히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주체"의 그리워 하는 "상태"만이 있을 뿐.

아, 하룻밤만 자면 이곳과도 잠시나마 안녕이다.

—박쥐

2004년 7월 2일 금요일

알렝 레네의 판타지, 그 진정성

blogin.com · 2004-07-02

알렝 레네(Alain Resnais) 감독의 1968년작 를 2004년에 본다는 것은 제법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웬갖 최첨단 기술을 앞세운 특수 효과와 웬만한 일상적 경험과 보통의 상상력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는 스토리로 무장한 영화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제는 너무나 진부해져버린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아무런 장식이나 효과도 가미되지 않은 건조한 화면들--심지어 에 등장했던 조악한 시간 여행용 가속 장치같은 것조차 등장하지 않는다--을 통해 마주 대하기란, 이 21세기를 사는 대부분의 관객에게는 분명 고문일 것이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 클로드 리데(Claude Ridder)는 가슴에 총을 쏘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난다. 퇴원하려는 그 앞에 낯선 자들이 나타나고, 그들은 클로드를 크레스펠(Crespel)이라는,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비밀 연구소로 데려간다. 크레스펠에서는 "시간"에 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클로드의 동의를 구한 후 그의 전 생애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1분의 순간으로 "되돌려" 보낸다. 1분 후에는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피실험자를 안심시키면서. 그런데 실험은 순탄치 않게 전개된다. 클로드가 목표했던 때--클로드가 연인 카트린과 바닷가에서 함께 했던 순간--에 도달하자마자, 시간은 클로드를 그 이전과 이후의 여러 다른 순간들로 데려간다.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클로드와 카트린이 처음 만난 자리, 카트린이 죽은 글래스고의 한 호텔,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던 세느 강의 다리나 파리의 거리, 카트린을 잃고 방황하는 클로드가 "시간이 참 안 간다"며 푸념한채 앉아 있는 사무실... 실험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실험실 밖으로 나온 과학자들은 가슴에 총을 맞은 클로드를 발견한다.

나 역시 이 시대를 겨우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관객 중 한 명에 불과한지라 이 영화를 보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지루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문법을 이해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내 독해력 및 불어 실력이 부족했음을 십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이 영화가 수십 년전에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영화의 문법이 낯설다는 사실을 부인킨 힘들 것 같다. 헐리웃식의 "일관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관객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듯한 반복이 무자비하게 자행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클로드와 카트린의 바닷가에서의 즐거웠던 한 때를 담은 컷은 열댓번 정도 반복된다. 

그런데 바로 그런 난해한 문법이 "판타지"를 위한 가장 탁월한 장치가 되고, 이 영화를 진정한 판타지로 만든다. 사실 판타지의 진정성을 말한다는 건 가당찮은 일이다. "진정한 판타지"는 형용 모순일 것이다. "진정성(authenticity)"을, 어떤 종류든 기존의 "정격"이나 "규범"으로부터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판가름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판타지"를, 아주 미흡하게나마,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기존의 모든 것을 넘어서거나 뒤섞어나 갈아엎는 장르라고 이해한다면 말이다.

이 영화는 그 두 가지 조건을 아주 잘 만족하는 동시에 그 조건들을 뛰어넘는다. "판타지"를 단순히 "장르적"으로가 아니라 좀더 넓고도 깊은 의미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제아무리 "판타스틱"한 아이디어도 다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가만히 생각해 보면 "탄력적 시간"이라는 개념이 가장 잘 적용되는 경우는 과거를 (내 의지대로) 떠올리거나 과거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무의식적으로) 떠오를 때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잔뜩 뭉뚱그려지고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는 곳에서 판타지가 생성된다. 이렇게 볼 때(라기보다는 아주 심하게 비약하자면), "시간 여행"의 모티브는 가장 태고적이고 원시적인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학에서 시간 여행에 대한 반론으로서 가장 흔하게 제시되는 것이 "모친 살해 패러독스"라는 것, 그리고 이 영화에서 시간 여행 장치로 쓰인 기구가 자궁(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이 갖는 형태와 질감을 연상하면 된다)을 닮아 있다는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 같다.

흠. 이렇게 얘기해 놓고 나니 이나 팬들에게 면박을 당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으나. 나는 그보다는 살짝 어설픈, 즉 CG를 쓰더라도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그렇지만, 아니 그래서 더더욱  "판타스틱"한 나 가 좋단 말이지. 뭐 거기에 내 반미 정서가 개입돼 있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으나. 그래도 는 무척 보고 싶단 말이지.

—박쥐

2004년 7월 1일 목요일

오노 요코 특집

blogin.com · 2004-07-01


이교도이자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그러나 마녀로 찍혔던,
 그리하여 돌에 두들겨 맞거나 물에 빠지거나
 묶인 채 불에 타서 죽은
 500만 명 이상의 여성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공포입니다.
 지혜로움의 반대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혼란스러움입니다.
여성들의 힘, 지혜와 사랑의 힘을 되살려야 합니다.
 우리의 지구와 우주를 끔찍한 파괴로부터 살려내기 위해.

- 오노 요코, 2003년 11월 11일.


오노 요코, From My Window, 2003, 부분
Galerie Point d'ironie 소장

*중세 마녀 재판 그림과 작가의 어린 시절 및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합성한 작품.
뉴욕의 자기 집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모습과 "마녀"들의 그림이 중첩되는 경험을 하고는
이 작품을 구상했단다.


♬보너스 음악
 
http://www.gaseum.co.kr/300 ... 5&Form.y=3> face=바탕>yoko ono & yo la tango, "hedwigs lament + exquisite corpse" 
*영화 Hedwig and the Angry Inch에 실린 두 곡을 오노 요코가 다시 부른 곡. 아네스 바르다의 "할머니 랩"에 이은 멋진 "할머니 rock"이라고나 할까.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