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6일 화요일

이 여자 감독을 아세요?

blogin.com · 2004-07-06

카트린 코르시니(Catherine Corsini). 그녀와 배우 카린 비아르(Karin Viard)를 <새로운 이브(La nouvelle Eve>(1998년)에서 만났던 날, 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행복감은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하고 나서 훨씬 더해졌어요. 세상에, 그녀가 <리허설(La répétition)>(2000년)의 감독이었다니. 그 영화를 본 뒤 전체의 10%밖에 이해하지 못한 주제에 "역시, 여자들이 만들면 뭔가 달라도 달라" 하고 마냥 들떴던 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일인데. 세상에.

혹자는 <새로운 이브>를 일컬어 "프랑스판 앨리 맥빌"이라고도 하더군요. 사실 그래요. 30대 여성의 사랑. 아니, 어쩌면 더 심해요. 카미유는 사랑만이 인생의 전부인 "할리퀸 로맨스"의 주인공에 엘리보다도 더 가깝지요. 심지어 카미유는 앨리만큼 멋진 전문 직업 여성도 아녜요.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수영장 코치로 일하죠. 그러면서도 유부남 알렉시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정치적 관심사와는 절대적으로 무관한 사회당 일을 시작하고, 알렉시가 지방으로 전당 대회를 가면 직장 다 팽개치고 따라 나서지요(거기에 호텔에 "마담 엥겔스"라는 이름으로 예약을 하는 센스까지!). 그래서 어떻게 되냐구요? 결국 카미유는 알렉시와 사랑을 이뤄요. 앨리는 빌리와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도, 본조비와도 연결되지 않았는데 말예요. 알다시피 "연결이 되는" 쪽이 "연결이 되지 않는" 쪽보다 훨씬 더 "할리퀸"스럽잖아요.

그런데요, 그런데 말이지요, 그게 전부가 아녜요, 결코. 내가 그 감독이랑 그 배우가 나란히 서 있는 걸 직접 봐서인지는 몰라도, 코르시니가 그 누구보다 여자 배우들을 "잘 다루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잘 다루는 거냐면요, 배우에게 감독 자신의 얘기를 하게 하면서도 그 배우를 영화 안에서 그 누구보다 빛나고 생기 있는 존재로 만들거든요. <리허설>에서도 그랬어요. 너무나 아름다운 "상생"의 모습이 아닐 수 없어요, 정말. 감독과 배우 사이에서 그렇게 "주고 받는" 관계, 참 찾기 힘들잖아요. 저 위에다가 붙여놓은 감독과 배우 엠마뉴엘 베아르의 사진을 보세요. 정말 다정해 보이지요?

그녀의 또 다른 미덕은 레즈비어니즘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룰 줄 안다는 데 있어요. 카미유의 가장 절친한 여자 친구 두 명은 레즈비언 커플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커플 중 가장 "이성적"이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요. 카미유는 알렉시와의 사랑이 뜻대로 잘 안 되자 그 친구들과 바에 가서 낯선 여자에게 눈길을 보내고 진한 키스를 나눠요. 그러다가 그 여자의 애인인 또 다른 낯선 여자에게 얻어맞고, 카미유의 친구들이 "복수"를 하고, 그러면서 바 안에서 소동이 일어나게 되지요. <리허설>에서도 그랬어요. 둘도 없는 친구들인 두 여자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지요. 물론 나중에는 거의 원수지간이 되지만. 그렇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의 두 사람의 감정 변화, 아, 그건 정말 아무나 묘사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어요. 나같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으면서도 세속적 입맛을 채 버리지 못한 촌스런 사람한테 코르시니의 접근법은 정말 끝내주는 것이 아닐 수 없어요.

이 영화를 보고 박찬옥이 여자들 얘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어요. 일상이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재능을 좀더 잘 살릴 수 있을 텐데. 홍상수도 결국은 자기 얘기니까 그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었던 거 아니었겠어요?

그리고 내가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100% 좋아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채 20대가 되지 않았거나 스무살을 갓 넘긴 "소녀들"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기 힘든 나이에 접어들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요. 뭐, 사실, 카미유가 나이 빼고는 나와 그 어떤 공통점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만큼은 마냥 우러러 보거나 아래로 내려다볼 일 없이 눈높이를 맞출 수 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좋아요.


사진 출처 : 카트린' target='_son'>http://ccorsini.online.fr/>카트린 코르시니가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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