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파티아

blogin.com · 2010-01-18

'책읽는 여자'들을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사실 요즘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지냈다), 최근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 target='_son'>http://www.agorathemovie.com/> 아고라 (Agora) 를 보고 다시 생각이 났다.

영화는 세 가지 시점으로 전개된다. 먼저 히파티아의 몸종이자 기독교로 개종한 데이버스의 시점. 데이버스에게 있어 히파티아는 주인이자 우상이자 스승이자 연인이자 이교도로 그려진다. 전혀 "모호"하지 않은 "욕망의 대상"이랄까? 따라서 맘놓고 거리를 둘 수 있는 타자, 일종의 타자의 원형 같은.

알렉산드리아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갈등을 서술하는, 일종의 역사가적 관점. 일종의 "로마제국흥망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에게, 히파티아는, 초토화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더불어, 초기 기독교의 야만성과 폭력성에 희생된 그리스적 이성을 상징한다. 좀더 시사적으로는 종교적 극단주의 및 독단론이 얼마나 반이성적이며 위험한 이데올로기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교훈을 던져주는 인물이다. 이는, 히파티아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 공헌한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취한 입장과 일치한다.

마지막으로는, 위의 두 시점을 초월하는, 우주적이며 신적이며 전지적인 시점. 영화의 처음과 끝은 우주에서 지구, 다시 지구에서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히파티아의 학당 등으로 좁혀지는 샷--내가 혼자 멋대로 "조나단 리빙스턴 샷"이라 부르는. 구글맵을 연상하면 되겠다--이 등장한다. 이 샷을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실--"히파티아가 죽은지 1200년 후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궤도가 (히파티아가 직관했던 바대로) 타원임을 밝혀냈다"--이 설명된다. 이로써 히파티아가 얼마나 시대의 광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그만큼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는지가 강조된다.  

나는 이 셋 중 어디에도 공감하기 힘들었다. 첫번째는 진부하고, 두번째는 설득력이 부족하며, 세번째는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감독이 히파티아의 내면을 파고듦으로써 그녀를 이해시키겠다는, 그리고 스스로 이해하겠다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은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히파티아같은 신비는 곡해하고 왜곡하는 것보다는 그냥 신비인 채로 두는 편이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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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어떤 천문학사가가 장대한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외형에 인물에 대한 지나친 미화 혹은 역사적 사실의 왜곡 등등을 지적한 걸 본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 히파티아가 지구중심설이 아닌 지전설을 지지했으며, 심지어 이 '사실'과 상대성원리가 연결돼 있음을 코페르니쿠스에 앞서 간파하고 이에 대한 갈릴레오의 논증을 이미 확립했던 것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지전설은 천동설과 더불어 이미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천체의 운동에 대한 하나의 가설로 인정되어 왔다. 영화에도 "그리스의 코페르니쿠스"라고도 불리는 아리스타코스가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 아니 심지어 갈릴레오의 시대까지 그토록 패권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지전설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경험적 사실을 통해 뒷받침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우리가 지구의 움직임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갈릴레오는 이 사실을 상대성원리로 설명한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배 위에서 나비는 어떻게 움직일까? 어항 속 물고기는? 나비와 물고기가 배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그것들의 속도는 배의 속도를 더한 만큼 빨라질까? 뭍에서 보면 그렇겠지만, 선상의 관찰자에게 물고기와 나비는 배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갈릴레오는 지구인들이 지구의 운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배 위에 올라탄 선원이 배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설명했다. 정지해 있거나 등속으로 움직이는 관성계 내에서 운동은 같은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배 위의 돛대에서 공을 수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공이 낙하하는 시간동안 배는 그만큼 이동했을 것이므로 공의 낙하 지점이 돛대으로부터 배가 이동한 거리만큼 떨어진 위치일 거라 생각하기 쉽다. 비슷한 종류의 흔한 오류로 다음과 같은 추론이 있다 : 지구는 서에서 동으로 돌므로,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아가는 경우, 이 비행기는 반대 방향으로 같은 시간동안 날아간 다른 비행기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러나 배 위의 공과 선체가 모두 같은 속력으로 움직이면서 하나의 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지구와 비행기도 그러하다. 이때 공이나 비행기는 마치 배와 지구가 멈춰있는 것처럼 운동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오류추리"가 갖는 설득력은 굉장한 것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지전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으로 제시되곤 했다. 그러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지전설이 재조명되면서, 특히 갈릴레오에 대한 교황청의 재판 덕에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지구의 운동"을 "실험적"으로 증명할 방법들이 고안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16~17세기에 유행한 돛대 "실험"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히파티아가 이미 이 "실험"을 고안했고 또 실제로 시행한 것처럼 그리고 있다. 뿐만인가. 히파티아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거친 일련의 추론의 과정은 1200~1300년 후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등이 몇 세대에 걸쳐 전개한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공심원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예를 들면 수성 및 금성의 역행 같은 이상 현상들을 "구원"하기 위해 태양중심설을 채택했는데, 여기에 갈릴레오는 지구의 운동이 경험되지 않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상대성 원리를 덧붙였으며,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수정 및 보완, 행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임을 보였다. 여기에서 케플러는, 영화에서 히파티아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아폴로니우스의 원추곡선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즉 원은 타원의 특수한 한 예에 불과하다는 것.  

히파티아같은 천재라면 이 모든 추론을 혼자서 해낼 수 있지 않았겠냐고? 특히 돛대 위에서 물체를 낙하시키는 일이야 히파티아나 아니 그 이전의 누구라도 할 수 있었을 일 아니냐고? 중요한 것은 그 "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가능케끔 할 수 있는 과학사적 맥락이다. 4세기를 산, 그것도 신플라톤주의자이자 피타고라스주의자였던 그녀가, 코페르니쿠스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서 이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보였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과거의 인물이 살았던 역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관점을 완전히 배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시선은 당대의 학적 맥락과 과학사적 전개를 무시하고 사후에 "진리"로 판명된 바에 그녀의 사유를 무리하게 끼워맞춘, 휘그적(whiggish) 해석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어쩌면 내가 정통 사관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로마제국 말기, 기독교가 헤게모니를 획득하면서 중세의 이른바 "암흑"으로 접어들지 않았더라면 16~17세기 과학혁명이 일어나기까지 걸린 1000년이라는 시간이 어느 정도 단축되었을 수도 있었을 일. 당시 로마가 그리스 문명이나 비기독교 문화에 개방적이었으며 특히 히파티아가 산 알렉산드리아가 당대 최고의 문화적이고 학문적인 중심지였음을 고려한다면, 영화가 상정하고 있는 그녀의 놀라운 과학적 성취도 또한 그렇게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