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4일 금요일

물속으로 잠겨드는 너

blogin.com · 200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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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추억의 강으로 떠나가고,
나는 돌아오라 외치며 강기슭을 달려가네

너는 그저 느리게 멀어져 가고,
네가 아무리 애써 달려도
나는 조금씩 네게로 다가가네

물 속에서 가까스로 떠오를 때마다
너는 망설이네 그리고 나를 기다리네
치마자락을 걷어올려 얼굴을 감추며
얼굴이 상할까 하는 두려움에,
그리고 부끄러움과 후회로

너는 이제 그저 길잃은 배
물에 빠진 개일뿐이지
그래도 난 여전히 너의 노예
물속에 몸을 담그네

추억이 멈출 때 우리는
망각의 망망대해 속에서
가슴이 그리고 머리가 찢어진들
결코 맺어지지 못하리"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카를라 브뤼니의 첫 번째 앨범을 통해서였다. 다른 노래들도 나쁘지 않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세르주 갱스부르가 작곡한 바로 이 곳, "La noyée"다. 브뤼니의 작곡 솜씨도 나름 훌륭하지만, 그래도 명실공히 천재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갱스부르만 하랴. 물론, 브뤼니가 이 노래에 대한 나의 인상에 있어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함은 분명하다. 내게 이 노래의 존재를 알려준 것은 그녀니까. 또 하나 덧붙이자면, 편곡은 둘째치더라도, 적어도 그녀의 우수어린 목소리 만큼은 이 노래와 아주 잘 어울린다. 이를테면 안나 카리나(그녀도 자신이 만든 영화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보다는 훨씬 낫다는 말이다.

이렇게 시간을 거꾸로 거스르고 길을 굽이굽이 돌아 발견한 갱스부르의 이 '정격' 연주. 그런만큼 내겐 매우 값지게 느껴진다(고맙다, 유튜브!). 그 어느 노래가 예외가 되겠냐만, 갱스부르의 곡들은 특히 연주자/해석자/편곡자를 아주 많이 '타는' 것 같다. 같은 "Je t'aime moi non plus"도 제인 버킨과 부른 버전과 브리지트 바르도와 부른 버전이 상당히 다르다.

다음은 마구잡이 인상 비평 :

물속으로 잠겨드는 여인(오필리어), 아니, 물의 여인(운디네), 물에 감겨 올라간 치맛자락. 공무도하가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물론 공무도하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수면, 즉 '네'가 떠올랐다 잠겼다 하는 그 표면 또한 지배적인 인상 중 하나다.

이별 멀어지는, 잡힐 듯하지만 끝내 잡히지 않는(아킬레스와 거북이? 무릇 시간과 운동의 속성이란 그런 것이겠다), 떠나는 자의 뒷모습... 떠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아무리 끝까지,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감추면서"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자 한들, 마지막은 기억 속에서 변형되거나 무화될 뿐이다...  

이번에도 역시...

용두사미가 돼버렸다. 사실 시를 평하듯 가사 비평을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일부러 번역까지 했거늘...

손을 놓은지 오래여서일까, 문장력이나 필체에 슨 녹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핵심을 피해서 끝없이 우회하는 고질병이다. 어릴 적부터 난 늘, 정면돌파할 방법을 충분히 알면서도, 목표물을 빙 둘러 내 스스로 미로를 쌓아 일을 어렵게 만들곤 했다. 논술을 공부해야 했던 시절에는, 매뉴얼대로 글쓰는 일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이 버릇을 글쓰기에도 적용시키기 시작했고, 이렇게 해서 확장된 글버릇은 학부 시절 시험을 치를 때나 명색이 철학도가 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지하게 글을 써야할 때조차 위력을 발했고, 또 여전히 발하는 중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그저 "이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들을 일 없을" 이 갱스부르의 노래를 듣는 일에 만족하기로 하고... 그래도 여전히 가슴 속에 어떤 아쉬움 같은 감정이 남는다면, 별 수 있으랴, 달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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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2009년 2월 14일 토요일

천문학의 해

blogin.com · 2009-02-14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 처음으로 달의 표면과 목성의 위성, 토성의 고리 등등을 관찰하고, 케플러가 Astronomia nova 를 펴낸 지 400년이 지난 것을 기념해서 UNESCO는 올해를 천문학의 해로 지정했다. 천문학사가들 중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서구중심적 사관의 발로라 비판하지만, 뭐, 꼭 갈릴레오랑 케플러만 경배하라는 것이 유네스코의 뜻은 아닐 터. 어차피 이런 기념 의례라는 것이 천문학적 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한갓 순간에 지나지 않는가. 다만, 천문학이 인류에 기여하는 바라고는 기껏해야 GPS 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인 이 현실에서, 그것의 역사를 돌이켜 보는 일은 꽤나 의미있는 일일 듯하다. 가능하다면 GPS 외의 기여도를 추적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나사와 거래하는 독일 Zeiss 사의 렌즈가 없었더라면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 에 등장하는 촛불 신--인공 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촛불의 빛으로만!--은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이라든지.

나선 운하 사진은 나사의 천문학의 해 사이트(http://astronomy2009.nasa.gov/)에서 가져왔다.

—박쥐

2009년 1월 25일 일요일

푸앵카레

blogin.com · 2009-01-25


푸앵카레가 1909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던 날, 신문에 실렸던 사진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가져왔다.

1854~1912. 프랑스 낭시 태생의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마지막 보편적 지식인. 프랑스 학술원(아카데미)과 과학 아카데미라는 양대 엘리트 기관에 선출된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 기하학의 공리와 역학의 원리들이 규약임을 주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규약주의'의 창시자. 스웨덴 오스카 2세의 환갑을 기념한 콩쿠르에 "3체 문제와 동역학 방정식"이라는 논문을 제출, 1등을 수상하고, 이를 통해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카오스 이론의 서두를 장식한 장본인 (여기에는 아주 극적인 비화가 숨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논하기로 한다)... 그를 수식하는 말은 이밖에도 무수히 많다. 하나 덧붙이자면... 그를 알던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 "심성이 곱고 까다롭지 않다"고 평했다 한다.  

이곳에서 그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늘 맘에 걸렸더랬다. 사실, 그와 만난 지 벌써 4년이 넘어가는데도, 그에 대해서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배움과 독서가 짧은 탓이다.

최근에 그의 철학과 관련해서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길고 긴 밤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번갯불" (푸앵카레 : "사유란 길고 긴 밤 순간적으로 번쩍 빛나는 번갯불과 같다. 그렇지만 그 번갯불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전부다") 같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한심스럽다. 단지 언어나 수학적으로 테크니컬한 부분에 대한 무지에서 온 문제는 아니고, 이해를 가로막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논문 안팎의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중 상당수도 그 "무언가"들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특별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일단 없애고 난 뒤에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질 것들.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그런 것들.

  

그러니까 그 깨달음이 무엇인고 하니...


일단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체계에 대한 선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수학에 관한 논의는 물리학이나 역학에 대한 그것과 다르고, 수학의 경우도 기하학, 수론(산술) 그리고 대수학에 대한 얘기가 각각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무체계성 혹은 비체계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철학자'로 분류함에 있어 주저하곤 한다. 실제로 그가 남긴 철학서들은 본격적인, 이를테면 칸트의 비판서들만큼의 논리정연한 체계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가깝달까. 공화국 안에 수학, 정치학, 윤리학, 과학, 인식 이론 일반 등 모든 이야기가 한꺼번에 펼쳐지듯이,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이나 과학의 가치 같은 저작들에는 이른바 엄밀과학(exact sciences) 각 분야에 대한 담론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근대철학 이후 확립된 어떤 정형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다원적' 면모는 낯설게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면모가 체계의 부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플라톤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더욱이, 19세기 이후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그러니까 더 세분화되고 정교화된 과학을 접한 사상가라면 '과학'을 대문자의, 일의적인 그것으로 취급하는 일에 몹시 부담을 느꼈을 것임에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각 과학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들을 통일하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원리--그것이 현상적인 차원에 머물든(콩트의 경우) 아니면 더 통일적이고 제일인 원리, 즉 칸트식으로 말하면 '자연과학의 형이상학 원리'가 되든 간에--를 반드시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종류의 '원리'가 반드시 한 사상가를 '어엿한' 혹은 '훌륭한' 철학자로 만드는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푸앵카레의 사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은, 기본적으로 내 이해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를 어떤 정형화된 틀에 무리하게 끼워맞추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흔히 일컬어지듯이 직관주의자라면 무한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한 중에서도 잠재적인 그것만을 받아들여야 할 듯한데, 왜 정신의 무한성, 특히 단 한 번에 무한히 진행되는 수열이나 추론의 계열을 직관하는 능력을 중시하는가? 이러한 직관주의가 규약주의와 양립가능한가? 언뜻 보면 푸앵카레는, 한편으로는 기하학의 공리나 역학의 원리들의 경우, 정신이 경험에 기대어 선택한 규약임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규약들의 임의성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 어떤 영원 진리로서의 '구조'가 실재함을 누누히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일관적이지 않다 보인다. 또 물리학의 경우, 그 법칙과 원리들을 규약주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잠정적으로나마 내린 결론은, 각 분야들의 독자성을 우선적으로 인정해야 그의 철학적 논의들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나를 일여 년간 괴롭혔던 '상대성 원리'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다. 상대성 원리는 한편으로는 경험적으로 획득되며 또 경험을 통해 반증가능한 다른 물리학의 법칙들과 유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이 그 선택에 있어 경험을 참조하긴 하나 일단 한 번 선택된 이후에는 결코 반증될 수 없는 규약들과 유사한, 양가성을 지닌다.* 문제는, 아인슈타인의 경우 상대성 원리의 이러한 속성을 단번에 알아차린 반면, 푸앵카레는 계속해서 그 양가성에 대해서 숙고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당대의 모든 물리학 신보들에 통달해 있었고, 그 당대의 물리학이란 것이 다루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상대성 원리의 실험적 검증이었던 때문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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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후자의 측면이다. 거기에 우주론적 사유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왜 규약들은 정신의 발명품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성을 띠는가? 반증을 위해서는 모든 가능한 경험치들을 실험을 통해 조사해야 하는데, 우주는 그 자체로 실험불가능하며 경험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논하기로 한다.

** 참고로 이 글은, 파업으로 수업이 취소되어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발을 디딘, 내가 다니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쓴 것이다. 프랑스 기관 소속의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한 것은 칸느 영화제 이후로 처음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지난 목요일 대대적인 파업 이후, 그 후폭풍이 잔잔하지만 무시하지 못할 만큼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강사-연구원들 사이에서.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그림 : 폴 모니에(Paul Monnier)가 그린 푸앵카레의 초상. 1946년 스위스에서 출판된 과학의 가치(La valeur de la science) (초판은 파리, 1905년)에 실렸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