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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7일 화요일

Hommage, quand même

blogin.com · 2012-07-17



과학사, 철학사, 아니 한 사상가와 그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연구들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편의상 각각을 내재론과 외재론으로 부르자. 내재론은 한 사상가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유일한 것은 오직 그가 남긴 텍스트 뿐이며, 전기적 요소는 불필요하거나 기껏해야 부차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 강의의 초두를 "옛날에 아리스토텔레스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 인물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해두고, 이제 그가 남긴 텍스트에 집중하자"라는 말로 연 바 있다.

전혀 맥락은 다르지만, 지금의 이 구분법을 따른다면, 구조주의나 바슐라르의 비평이나 푸코의 고고학 기획도 이에 속한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슐라르는 로트레아몽 에서, 로트레아몽이 한때 수학에 취미를 가진 적이 있다는 사소한 전기적 사실을 작품 분석에 반영하려는 일부 주석가들을 거의 조롱조로 비판한 바 있다. 이는, "작품"이 됐든 "책"이 됐든 텍스트가 담은 모든 의미의 담지체이나 수렴점으로서 하나의 "저자"를 상정하고, 모든 의미 분석을 저자의 "의도"와 그가 말하고자 한 "의미"에 대한 그것으로 환원하는, 전기적 비평에서부터 정신분석 비평에 이르는 방법론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분석의 대상이자 수단으로 남는 것은 텍스트 뿐이요, 진정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각각, 구조주의와 바슐라르의 경우,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여 나타난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어떤 공통의 지반(구조 혹은 근원적 이미지)이, 푸코의 경우, 특정한 한 시대, 특정한 공간에 나타난 텍스트들이 구성하는 "담론의 장", 그리고 그로부터 하나의 지식의 구축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된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중에서 "누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

외재론은 바로 그 "누구"를 묻는다. 그 어느 텍스트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남긴 것인만큼 그 저자가 누구였는지는 중요하고, 또 어느 저자고 그의 개인사에서부터 역사적이고 시대적 맥락의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므로, 그러한 맥락을 고려할 때에서야 제대로 이해할 있다는 입장. 저자가 누구이고, 어느 시대에 나서 어떻게 살았고, 누구에게 배웠고, 누구를 가르쳤고,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묻자는 것. 아리스토텔레스를 좀더 철학사적으로, 혹은 사상사적으로 연구하려면, 그의 사상적 배경(이를테면 당시의 지적 환경, 보다 직접적으로는 스승 플라톤의 영향)이나 심지어 개인의 출신 배경과 사회경제적 입지, 나아가 아테네 사회의 물적 토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사를 철학사로서가 아니라, 이를테면 "존재망각의 역사"로 보는 등의 독창적인 해석,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을 정립하거나 그 수단으로 삼지 않는 한에서는 말이다.

...

여기까지 쓰고 보니 벌써부터 자신이 없다. 특히 구조주의나 바슐라르 문예이론, 거의 아는 바가 없는데 저렇게 써놔도 되나 싶고. 외재론과 내재론이 적절한 명명인지도 의심스럽고. 과학을 순수하고 무사심한 지적 활동으로 보는 내재론과, 과학 역시 인간의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활동으로 보는 외재론으로 나누는 과학사에서의 일반적 구분법을 염두에 두었던 것인데... 일단 나부터 헷갈린다.

그래도 일단은 용기를 내어 말해 보자. 그 동안 너무 말을 안 하고 살았다. 이제는 말할 때도 되었다. 아니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시인의 말을 빌어, 아니 시인을 인용한 철학자의 말을 빌어서라도 : "말하라, 그 순간 그대는 더 이상 무지하지 않을지니. 일단 가 닿아라. 다가가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러니." (앙리 미쇼. 바슐라르의 응용 합리론 에서 재인용)

원래 이 글은...


푸앵카레 기일에 쓴 글이다. 더 정확하게는,

쥘 앙리 푸앵카레 (Jules Henri Poincaré).
프랑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854년 4월 29일 낭시에서 태어나 1912년 7월 17일 파리에서 죽었다.
자, 이제 남은 것은 그의 텍스트에 집중하는 일 뿐...


이라는 말을 일종의 석문(아니, 차라리 비문?)으로 삼아, "내재론"의 입장을 취한 뒤 그 입장에 의거한 분석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담기 위해 썼던 글. 그런데 그 이후 1개월도 더 넘은 지금-8월 말-의 시점에서 보건대 아직까지도 외재론적 접근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글을 보다 보면 글쓴 사람이 누군지가 궁금해지는 것은 아무래도 인지상정이겠고, 그리고 외재론이라 해서 내재론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고, 오히려 적합한 맥락들이 제대로 참조되는 경우 텍스트에 대한 이해에 바람직한 역할을 할 수도 있겠으나... 날 자꾸 붙잡는 건 아주 사소하고 미미한 사실들. 잘만 하면 긴즈부르그식 미시사를 과학사에 응용한 꽤 참신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겠으나, 그러기에는, 오, 너무 부족하다.

그렇게 미소한 단서들의 늪에서 헤매고 헤매다가 지쳐 텍스트로 돌아갔을 때의 그 익숙함과 안도감. 그리하여 한동안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행복감에 젖어 있다가, 그러다가는 또 이내 지겨워지고, 다시 텍스트 바깥 세상이 궁금해지고, 그 세상에서 새로운 사실을 이래저래 조합해 가설을 세우는 탐정놀이가 그리워지고, 그래서 다시 한 눈 팔고. 그러기를 벌써... 몇 년째. 이제는 멈춰야 한다.

—박쥐

2009년 2월 14일 토요일

천문학의 해

blogin.com · 2009-02-14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 처음으로 달의 표면과 목성의 위성, 토성의 고리 등등을 관찰하고, 케플러가 Astronomia nova 를 펴낸 지 400년이 지난 것을 기념해서 UNESCO는 올해를 천문학의 해로 지정했다. 천문학사가들 중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서구중심적 사관의 발로라 비판하지만, 뭐, 꼭 갈릴레오랑 케플러만 경배하라는 것이 유네스코의 뜻은 아닐 터. 어차피 이런 기념 의례라는 것이 천문학적 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한갓 순간에 지나지 않는가. 다만, 천문학이 인류에 기여하는 바라고는 기껏해야 GPS 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인 이 현실에서, 그것의 역사를 돌이켜 보는 일은 꽤나 의미있는 일일 듯하다. 가능하다면 GPS 외의 기여도를 추적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나사와 거래하는 독일 Zeiss 사의 렌즈가 없었더라면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 에 등장하는 촛불 신--인공 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촛불의 빛으로만!--은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이라든지.

나선 운하 사진은 나사의 천문학의 해 사이트(http://astronomy2009.nasa.gov/)에서 가져왔다.

—박쥐

2009년 1월 25일 일요일

푸앵카레

blogin.com · 2009-01-25


푸앵카레가 1909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던 날, 신문에 실렸던 사진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가져왔다.

1854~1912. 프랑스 낭시 태생의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마지막 보편적 지식인. 프랑스 학술원(아카데미)과 과학 아카데미라는 양대 엘리트 기관에 선출된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 기하학의 공리와 역학의 원리들이 규약임을 주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규약주의'의 창시자. 스웨덴 오스카 2세의 환갑을 기념한 콩쿠르에 "3체 문제와 동역학 방정식"이라는 논문을 제출, 1등을 수상하고, 이를 통해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카오스 이론의 서두를 장식한 장본인 (여기에는 아주 극적인 비화가 숨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논하기로 한다)... 그를 수식하는 말은 이밖에도 무수히 많다. 하나 덧붙이자면... 그를 알던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 "심성이 곱고 까다롭지 않다"고 평했다 한다.  

이곳에서 그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늘 맘에 걸렸더랬다. 사실, 그와 만난 지 벌써 4년이 넘어가는데도, 그에 대해서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배움과 독서가 짧은 탓이다.

최근에 그의 철학과 관련해서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길고 긴 밤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번갯불" (푸앵카레 : "사유란 길고 긴 밤 순간적으로 번쩍 빛나는 번갯불과 같다. 그렇지만 그 번갯불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전부다") 같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한심스럽다. 단지 언어나 수학적으로 테크니컬한 부분에 대한 무지에서 온 문제는 아니고, 이해를 가로막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논문 안팎의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중 상당수도 그 "무언가"들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특별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일단 없애고 난 뒤에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질 것들.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그런 것들.

  

그러니까 그 깨달음이 무엇인고 하니...


일단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체계에 대한 선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수학에 관한 논의는 물리학이나 역학에 대한 그것과 다르고, 수학의 경우도 기하학, 수론(산술) 그리고 대수학에 대한 얘기가 각각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무체계성 혹은 비체계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철학자'로 분류함에 있어 주저하곤 한다. 실제로 그가 남긴 철학서들은 본격적인, 이를테면 칸트의 비판서들만큼의 논리정연한 체계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가깝달까. 공화국 안에 수학, 정치학, 윤리학, 과학, 인식 이론 일반 등 모든 이야기가 한꺼번에 펼쳐지듯이,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이나 과학의 가치 같은 저작들에는 이른바 엄밀과학(exact sciences) 각 분야에 대한 담론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근대철학 이후 확립된 어떤 정형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다원적' 면모는 낯설게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면모가 체계의 부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플라톤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더욱이, 19세기 이후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그러니까 더 세분화되고 정교화된 과학을 접한 사상가라면 '과학'을 대문자의, 일의적인 그것으로 취급하는 일에 몹시 부담을 느꼈을 것임에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각 과학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들을 통일하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원리--그것이 현상적인 차원에 머물든(콩트의 경우) 아니면 더 통일적이고 제일인 원리, 즉 칸트식으로 말하면 '자연과학의 형이상학 원리'가 되든 간에--를 반드시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종류의 '원리'가 반드시 한 사상가를 '어엿한' 혹은 '훌륭한' 철학자로 만드는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푸앵카레의 사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은, 기본적으로 내 이해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를 어떤 정형화된 틀에 무리하게 끼워맞추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흔히 일컬어지듯이 직관주의자라면 무한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한 중에서도 잠재적인 그것만을 받아들여야 할 듯한데, 왜 정신의 무한성, 특히 단 한 번에 무한히 진행되는 수열이나 추론의 계열을 직관하는 능력을 중시하는가? 이러한 직관주의가 규약주의와 양립가능한가? 언뜻 보면 푸앵카레는, 한편으로는 기하학의 공리나 역학의 원리들의 경우, 정신이 경험에 기대어 선택한 규약임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규약들의 임의성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 어떤 영원 진리로서의 '구조'가 실재함을 누누히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일관적이지 않다 보인다. 또 물리학의 경우, 그 법칙과 원리들을 규약주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잠정적으로나마 내린 결론은, 각 분야들의 독자성을 우선적으로 인정해야 그의 철학적 논의들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나를 일여 년간 괴롭혔던 '상대성 원리'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다. 상대성 원리는 한편으로는 경험적으로 획득되며 또 경험을 통해 반증가능한 다른 물리학의 법칙들과 유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이 그 선택에 있어 경험을 참조하긴 하나 일단 한 번 선택된 이후에는 결코 반증될 수 없는 규약들과 유사한, 양가성을 지닌다.* 문제는, 아인슈타인의 경우 상대성 원리의 이러한 속성을 단번에 알아차린 반면, 푸앵카레는 계속해서 그 양가성에 대해서 숙고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당대의 모든 물리학 신보들에 통달해 있었고, 그 당대의 물리학이란 것이 다루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상대성 원리의 실험적 검증이었던 때문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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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후자의 측면이다. 거기에 우주론적 사유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왜 규약들은 정신의 발명품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성을 띠는가? 반증을 위해서는 모든 가능한 경험치들을 실험을 통해 조사해야 하는데, 우주는 그 자체로 실험불가능하며 경험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논하기로 한다.

** 참고로 이 글은, 파업으로 수업이 취소되어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발을 디딘, 내가 다니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쓴 것이다. 프랑스 기관 소속의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한 것은 칸느 영화제 이후로 처음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지난 목요일 대대적인 파업 이후, 그 후폭풍이 잔잔하지만 무시하지 못할 만큼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강사-연구원들 사이에서.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그림 : 폴 모니에(Paul Monnier)가 그린 푸앵카레의 초상. 1946년 스위스에서 출판된 과학의 가치(La valeur de la science) (초판은 파리, 1905년)에 실렸다.

—박쥐

2005년 2월 22일 화요일

푸앵카레, 합리주의, 개입

blogin.com · 2005-02-22

푸앵카레가 드레퓌스 사건에 개입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다. 그는 동료 과학자들과 더불어 드레퓌스를 모함한 쪽에서 제출한 자료들이 증거로서 불충분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푸앵카레들에 따르면, 反드레퓌스파들의 주장은 주장의 근거로서 제시된 자료가 필적학적으로 볼 때 위조된 것임에 분명할 뿐 아니라 통계학을 부적절하게 이용했다는 점에서 논증상으로도 오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푸앵카레를 졸라처럼 반유대주의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당대 지식인 그룹에 포함시키기는 어렵다. 그가 이 사건에 개입했던 것은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문제 의식이나 과학자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자각에서가 아니라 과학의 몰이해 및 오용에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그는 다분히 과학주의적인, 그러니까 과학에 관한 한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 보느냐의 문제와 한 인간으로서의 과학자를 사회 내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늘 산뜻하게 연결되지는 않는 듯하다. 과학에 대해 상아탑 속에서 오로지 저 밖의 진리와만 교통하는, 즉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그 어떤 것과의 접촉도 허용하지 않는 상을 가진, 그러니까 아주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과학관을 지닌 과학자라고 해서 사회와는 무조건 담을 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과학에 대해 아주 급진적인 입장을 가진, 그러니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연구 활동은 다른 모든 활동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실천이다"라고 주장하는 구성론자/과학사회학자라고 해서 늘 정치적으로 진보 혹은 좌파에 속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과학에 관한 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프랑스 인식론자 그룹만 봐도 그렇다. 바슐라르의 경우, 과학의 사회적 측면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늘 잊지 않았지만 사회 현실을 향해서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킨 축에 속했었던 반면, 코를 씻고 맡아 봐도 도무지 사람 냄새라고는 나지 않는 가장 추상적인 학문인 수학과 논리학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던 장 카바이예스는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일하다가 연합군이 상륙하기 전에 나치에 의해 총살을 당했을 만큼 열렬한 참여론자였다.

내 경우, 과학에 관한 한 한때는 파이어아벤트를 추종할 만큼 급진적인 입장으로까지 갔다가 프랑스 인식론에 경도되기에 이르렀고, 지금은 이들의 과학에 대한 "합리적 신학"에 대체로 동감하는 편이다. 이성에 대한 믿음은 과학 활동의 원동력으로서나 사회의 변혁을 추진하는 힘으로서나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거기에서 "합리주의적 개입/참여(engagement rationaliste: 바슐라르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의 개념이 나온다.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理性에 合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내가 판단하기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것과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合理적이다. 이성의 한계 언저리에서 지적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깨닫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박쥐

2005년 2월 9일 수요일

말과 소리

blogin.com · 2005-02-09

아마 조지 버나드 쇼였을 것이다, 영어의 무규칙적 발음 체계에 관해 특유의 신랄한 어조와 번득이는 재치를 십분 발휘해 비웃었던 사람은. "ghoti"라는 단어가 뜻하는, 아니 소리내는 말은 무엇일까? 정답은 fish 다. tough나 laugh에서 gh가 [f] 발음이 나고, women에서 o가 [i] 발음이 나고, contemplation, concentration 등에서 ti가 [sh], 그러니까 적분 기호처럼 생긴 발음 기호로 나는 소리를 낸다는 데에 착안하면 이 답이 나온다.

불어는 그래도 이런 식의 발음상의 예외가 영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다. 발음을 제대로 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적어도 특정한 하나의 단위 음절에 대해서는 그에 대응하는 하나의 소리가 있다는 점에서는 영어에 비해 훨씬 규칙적이다...

... 라는 것이 내가 예전에 가졌던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리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네들이 외국의 고유 명사를 들여와서 자기네 식으로 바꿔 부르는 데에는 어떤 규칙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절실하게 깨달았다.

한 컨퍼런스에 갔을 때다. 이날은 누벨 바그 출신의, 이제는 노장 반열에 든 감독 앙드레 테시네(André Techiné)가 초청됐다 (사실 이 감독의 이름도 테키네인지 테시네인지 헷갈렸었다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됐다). 논의가 진행되던 중 계속해서 이름이 브레슈임직한 사람이 거명됐다. 테시네는 브레슈티앙이다, 그의 영화 속에서 브레슈적인 거리 두기/낯설게 하기는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등등. 중반 쯤에 가서야 깨달았다, 그게 브레슈가 아니라 브레히트였음을.

이런 식의 고유 명사 제멋대로 바꿔 부르기가 발음 상의 규칙 이탈/무규칙 현상과 결합되면 외국인들은 말 그대로 환장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나같이 아직까지 불어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닌 데다가 음성보다는 문자로서의 불어에 보다 친숙한 사람에게는. 문제는 뭐냐 하면, 같은 알파벳 문화권 내에 있어 표기 방식을 바꿀 필요 없이 원문자 그대로 들여오면 되는 명사들의 경우, 언어 사이의 장벽을 넘으면 너무도 낯선 이름이 되곤 한다는 것이다. 힐베르트가 영어에서 힐버트가 되고 불어에서는 일베르가 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영어에서는 아리스토틀이지만 불어에서는 아리스토트가 되듯이.

 
차라리 로빈슨 크루소의 프라이데이를 벙드르디라고 바꾸듯이 바꿨으면 속이 편하겠다. 로빈슨이 로뱅송으로 바뀐 것은 그래도 애교에 속한다. 마이켈슨은 미셸손, 미켈란젤로는 미켈 앙주(Michel-Ange, 내가 사는 거리 이름인데, 사실 이 이름을 발음하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미셸 앙주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많다), 뮌헨은 뮈니크, 베를린은 베를렝, 흄은 윰(처음에는 융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홉스는 옵스, 등등 도대체 내 눈에는 아노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얘길 눈크 언니에게 했더니, 그녀는 맞장구를 치며 '캉트'와 '아이데게'의 예를 추가해 주었다. 알다시피, 혹은 짐작하다시피, 전자는 칸트고 후자는 하이데거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주제의 대화/토론을 꽤 자주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주제는 보통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떤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이 질문은 두 가지 다른 종류로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 : 하나는 발음과 그 발음을 표기하는 체계에 관한 것, 다른 하나는 외래어를 수용하고 표기하는 방식에 관한 것. 전자에 대한 나의 답은 이러하다 : 한국어의 경우, 말그대로 "읽는대로 소리나는" 언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그런 만큼 오히려 발음을 정교하고 정확하게 할라치면 상당히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음은 후자에 대한 답 :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박쥐

2004년 11월 12일 금요일

카우프만과 니체

blogin.com · 2004-11-12

* Eternal Sunshine... 에서 커스틴 던스트가 맡은 메리는 바트렛 명언집의 구절들을 외우고 다니는데, 그녀가 인용한 것이 포프의 시와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다. 다음은 http://www.imdb.com/title/tt0338013/quotes>http://www.imdb.com/title/tt0338013/quotes 에 가보세요.

근데 이 영화, 생각해 보면 볼수록 재밌군요. 특히 철학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구석구석에서 재밌는 요소들을 한 바가지 찾아낼 것 같습니다 (뭐, 문학하는 분들도,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전설적 로맨스에 대한 영화적 해석이라고 좋아하실 수도). 우선 기억이나 정체성과 같은 고전적인 철학 주제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구요. "나는 너다", "그가 나의 아이덴티티를 훔치고 있다"와 같은 대사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철학 수업에서 영화 매트릭스의 대사만큼이나 자주 인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밖에도, 예를 들어 니체의 이 구절은 영화에서 두 번씩이나 언급되는데요, 전 그걸 보면서 영문판 니체전집의 편집자인 카우프만과 시나리오를 쓴 찰리 카우프만이 어떤 관계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더랬지요. 뭐 그건 사소한 부분이고, 굳이 니체가 언급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영화의 핵심어인 "망각"이 니체 전공자들의 흥미를 끌지 않았을까 해요. 한 영화 포럼을 봤더니, 실제로 니체로 논문을 쓰는 철학 강사가 수업 시간에 이 영화를 가지고 니체에게 있어서의 "망각"을 설명했다고 해요. 초인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의 능동적 망각,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의 범인/일상인(니체가 현대인을 가리켜 부르는 용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지요?)의 전유물인, 과거의 향수에 갇힌, 의지가 결여돼 있는 수동적 망각. 이 강사는 후자의 예로 아멜리를 들었다네요. 헉.

어쨌든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박쥐

2004년 11월 10일 수요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blogin.com · 2004-11-10

발표 잘 들었습니다. 대통령 선거 후에 벌어진 난리를 피해 이곳까지 오신 걸 환영해요. 질문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상화, 근사, 모델에 관한 논문을 쓰셨더군요. 사실 제가 그 문제를 석사 논문에서 다뤘습니다만, 하도 오래 전 일이라 다 잊었긴 합니다만, 논문 쓰던 당시에는 그 셋이 개념적으로 당최 구분이 안돼서 혼났어요. 이상화(idealization)와 모델도 결국은 근사(approximation)의 한 종류 아닌가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개념적 구분이란 게 저한텐 상당히 쥐약입니다만. 특히 요즘 들어선 더 그래요. 난 파르메니데스가 맞았음 좋겠어요.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고. 그 범주에서 조금이라도 가지가 뻗으면 도대체 구분이 되질 않는다구요. 얘기가 딴 데로 샜습니다만. 어쨌든. 그런가 하면, 질점도 근사고, 뉴턴적 세계관도 근사고, 한국 국민의 평균 키나 평균 몸무게도 근사인데, 뭐 그렇게 넓게 개념화하고 계시지 않는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근데 왜 그렇게 진리값을 부여하지 못해 안달입니까? 루이스의 가능세계론은 상당히 매력적인 도구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진리론에 꿰맞추기 위해 그렇게 도입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쿤도 그래서 자기 입장 설득하느라 고생했잖아요. 인식론적 아나키즘이 뭐 그리 나쁩니까? 사람들이 아나키즘 하면 상대주의에 대해 보이는 것과 비슷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데, 난 아나키즘에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반응을 보면 기분이 나빠요. 아나키즘은 "무엇이든 다 좋다"가 아니라구요.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세요? 그들이야말로 신념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먼저 목숨까지 내걸 사람들이라구요. 흑. 그래요. 내가 이래서 요즘 아무말도 못합니다. 도대체 생각이 정리가 되질 않아요. 도대체 말을 할 수가 없어요. 한 마디도. 이래봬도 옛날에는 논리학을 꽤 좋아했다구요. 뇌세포 하나 하나를 총가동해서 모든 사고의 과정을 스크리닝한 다음에 답을 얻었을 때 찾아오는, 두뇌가 새하얗게 세탁되는 느낌. 나한텐 그게 정말 지상 최고의 쾌락이었다구요. 한때는. 근데 요즘엔 세계가 정지해 버렸어요. 세상은 미친 속도로 휙휙 돌아가고. 그래서 정말 있을 데가 없어요. 못 찾겠어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더 드리지요. 당신에게도 이럴 때가 있었나요? 난 요즘 건망증이 너무 심해졌어요. 어쩌면 좋죠? 그렇잖아도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해요. 이게 정신분열의 초기 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 지하철에서 갑자기 어떤 인종차별주의자가 날 선로로 밀어넣을지도 모르니 그때를 대비한 행동 수칙을 생각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과 비슷한 빈도로. 정신분석학에 대해 아는 거 하나 없으면서 이렇게 얘기하니까 웃기죠? 이 블로그, 아무래도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의 전속이었던 이발사가 갔던 그 대나무숲이 돼가나 봐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박쥐 머리는 새대가리.

—박쥐

2004년 8월 14일 토요일

웹 안으로 들어온 백과전서

blogin.com · 2004-08-14

계몽 시대, 달랑베르와 디드로와 같은 백과전서파들은 지식의 대중화를 꿈꿨다. 그런데 이들의 지식/非지식 혹은 지식을 가진 자(지식인)/갖지 못한 자(대중)이라는 이분법은 이제 유효 기간을 상실한 듯하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대중들이 자신들의 지식에 "지식"이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지식"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으므로.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위키피디아가' target='_son'>http://news.empas.com/show. ... p;e=339>위키피디아가 접속 건수에서 온라인 브리태니커를 앞질렀다는 내용의 기사 가 실렸다. 전자가 무료로 서비스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후자의 오랜 명성과 탄탄한 기반 등을 고려하면 꽤 놀라운 소식이다. 개인적 감상을 덧붙인다면 아주 반가운 일이기도 하고.

위키피디아(Wikipedia) 는' target='_son'>http://en.wikipedia.org/wik ... kipedia) 는 다국어로 서비스되는 온라인 오픈 컨텐트 백과 사전이다. 2001년 카피레프트 운동의 선구자로 유명한 리처드 스톨만을 주축으로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32만 5천여 개의 아티클(영어판 기준)을 구축하는 등 단 3년 만에 웹에서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것치고는 꽤 쓸 만한 백과사전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게 됐다. 불행히도 한국어 버전은 아주아주 미약한 수준이지만 (사실 "버전"이라는 말은 적당치 못한 것이, 위키피디아는 각 언어권별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위키피디아 불어판이 영어판의 불역본인 것만은 아니다. 영어나 미국식 문화의 독점을 경계하고 각 언어권별로 그 문화의 독자성을 존중하려 한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국어판같이 아직까지 인프라가 채 확보되지 못했을 경우에는 문제가 좀 심각해지지만).

위키피디아가 이렇게 놀랍도록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운영 체제 덕이다. 기존 백과사전의 경우 각 항목에 해당하는 글을 그 분야에 관한 전문가에게 의탁하는 것이 보통인데, 위키피디아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다. 아티클에 대한 편집권 역시 모두에게 열려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니까 필자를 충원하는 방식에서는 요즘 각 포털 사이트에서 운영되고 있는 "지식 검색"과 비슷하되(누구나 저자/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티클이 작성되거나 참조되는 방식에서는 전통적인 "백과사전"에 좀더 가까운 형태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물론 그게 전부였다면 굳이 얘길 꺼내지도 않았을 거다. 하이퍼 텍스트 형식이 아주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기존 백과사전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각 항목과 관련된 인터넷 링크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사전에 실릴 만한 항목이 어느 소수의 편찬 위원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원하는 항목이 없을 경우 그 항목을 신설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정말 참신한 항목들이 많다. 사전 치고는 거의 "실시간 업데이트"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문학 카테고리의 경우, 시대별 구분에 21세기의 문학까지 소개돼 있다든가, 만화도 포함돼 있다든가. 정말 기대되고 흥분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전/백과사전에 실릴 항목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인 일인지를 생각하면, "정보 민주주의"란 게 말처럼 쉽지도 환상적이지도 않은 일임을 감안하면.

문제는 각 내용들이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갖췄느냐 하는 것일 텐데, 정 의심스러우면 운영진이 각 아티클들 중 질적으로 훌륭하다고 뽑아놓은 것만 참조하면 되긴 하는데, 내가 찾아본 것들의 경우 나쁘지 않았다. 뭐, 논문에다가 직접 인용하기에는 뭣하겠지만 논문 주제랑 관련된 항목을 쉬엄쉬엄 읽어 내려가다가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을 듯. 단,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링크들을 하나 하나 다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이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주의해야 할 것이다.

—박쥐

2004년 8월 2일 월요일

프랜시스 크릭이 죽었다

blogin.com · 2004-08-02

이 말을 하려는데 왜 영화 <카미유 클로델>에서의 그 장면이 떠오르는지. 카미유가 동생 폴에게 랭보를 발견한 기쁨을 전하기 위해 직접 학교로 찾아가던. 그 날은 공교롭게도 빅토르 위고가 죽은 날이었지. 학생들이 "빅토르 위고가 죽었다"고 외치면서 거리로 우르르 몰려가고, 폴 클로델은 그렇게 쏠려 나가는 학생들 틈에서 "깊고 반짝이고 푸른 눈"을 가진 누나 카미유를 발견하고, 그녀를 본 폴의 친구는 그에게 "네 누나니? 네 말대로 정말 깊고 반짝이고 푸른 눈을 가졌구나" 하고 속삭이고, 그 얘기를 들은 폴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고, 랭보를 발견했다며 그렇잖아도 반짝이는 눈을 한층 빛내며 말하는 카미유에게 폴은 "빅토르 위고가 죽었어" 하고 냉정하게 말하고.

제임스 왓슨과 공동으로 DNA 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이 7월 29일에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한다( <가디언>의' target='_son'>http://www.guardian.co.uk/l ... tml><가디언>의 기사 ). 나야 "프랜시스 크릭이 죽었다"라는 소식을 접하고서도 별 느낌 없지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생물학과 연이 닿아있는 사람들에게 그 소식은 아마도 클로델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에게 위고의 죽음이 가져왔던 것만큼의 효과를 가져왔으리라. 1953년에' target='_son'>http://www.nature.com/genom ... tson-crick/>1953년에 <네이처>에 실린 이들의 2페이지짜리 논문이 이후 50년 간의 생물학, 그리고 그 인접 학문들을 뒤집어 놓았음은 분명하므로.

DNA 구조의 발견은 아마도 과학사에 기록된 유명한 발명/발견들 중 가장 최근의 것에 속할 터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견"이라는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과학적 발견에 대한 지극히 일반적인 서사--"한 명 혹은 소수의 천재에 의해", "우연히", "각종 이해 관계나 여타의 맥락들과는 무관하게, 오직 '진리'의 탐구에 대한 열정으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이 잘, 그리고 널리 팔리긴 한 모양이다. 그에 비해 크릭의 책이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퍽 유감스럽다. 왓슨이 다소 쇼비니스트인 데가 있어 주변 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 너무나 미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었던 데 반해(특히 발견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결정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에 대한 왓슨의 악의적인 서술은 악명이 높다), 크릭은 확실히 훨씬 관대하면서도 겸손하며 차분한 자세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이 그 역사적' target='_son'>http://www.nature.com/genom ... watson-crick/>역사적 논문"을 쓸 때만큼은, 내 추측이지만, 크릭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했던 것 같다. "아마도", "~라고 믿는다", "~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든지, 논문의 상당 부분이 선배 혹은 스승 혹은 동료들의 연구 성과를 언급하는 데에 할애되고 있다든지 하는 사실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컨대. 그들이 "세기적 커플"로 남을 수 있었던 데에 크릭의 인내심이 한몫했음에는 틀림없다. 오죽하면 크릭이 한 학회장에서 처음 만난 생물학자로부터 "아,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이었어요? 저는 크릭 씨의 이름이 왓슨인 줄 알았었는데" 하는 말까지 들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쥐

2004년 7월 30일 금요일

2004년, 프랑스 인식론의 해

blogin.com · 2004-07-30

가스통 바슐라르는 1884년에 태어났다. 올해로 120년이다.
조르주 캉길렘은 1904년에 태어났다. 올해로 100년이다.
미셸 푸코는 1984년에 죽었다. 올해로 20년이다.



지도교수님이 "그래, 그 동안 뭘 배웠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프랑스 인식론이 어떤 점에서 영미 과학사/과학철학과 다른지에 대해 배웠노라고 답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래, 어떻게 다르다니?"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나는 숨돌릴 틈도 없이 잽싸게 말했다. "그게요, 수업 시간마다 다들 제각각으로 얘기해서 말이지요."

아마도 이제는 보다 제대로 된 답변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 답변에는 아마도 이런 말들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 역사주의, 이성(중심)주의 그리고/또는 합리주의, 과학주의,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의 변증법.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 도미니크 르쿠르가 자신의 석사 논문을 위해 창안한 이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역사적 인식론(l'épistémologie historique)"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전통"을 세운 이는 단연 가스통 바슐라르다. 나는 그에 관해 말함에 있어 과학사가냐 과학철학자냐 인식론자냐 하는 "직업"상의 구별은 온당치 못하거나 적어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과학에 관해, 그리고 좀더 넓게는 인간의 인식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느냐다. 바슐라르가 그의 동시대 과학이 갖는 인식론적 의미에 대한 성찰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인식론적 장애물"이라고 표현했던 그 이전 시대 과학의 발굴에 "역사가적 자세"로 몰두했던 것도 오로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는 사실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과학사는 과학을 둘러싼 담론들의 총체가 변화해 온 궤적을 일컫는다. 그 궤적은 결코 단선적이지도, 일방향적이지도 않다. 인류의 다른 정신적/물질적 활동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호흡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장이"라는 뉴턴의 말은 옳았다. 그 말은 천재의 겸손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사실인 것이다. 이 때의 "거인"이 뉴턴 이전의 다른 "천재"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게 이해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는 바슐라르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적 인식론자"들의 과학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비과학적인 것"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들의 논의는 일견 과학/비과학 구획에 대한 포퍼의 기획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포퍼가 프로이트나 맑스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명단"에서 제외해 버린 반면에, 바슐라르는 "일상적 인식"이 "과학적 인식"과 이루는 긴장에 주목하고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다가 결국에는 의도와는 달리 인간 정신의 가장 내밀하고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 "장애물들"을 복원하는/복권시키는 "일"을 내고 말았다. 그것들이야말로 과학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긴장 상태에 있게 하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수정을 가하게 하는, 그리하여 쉼없이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임이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그의 직속 제자인 조르주 캉길렘에게, 그리고 그 이후의 미셸 푸코에까지 이어진다. 이들에게 "병리적인 것"이나 "광기"는 "정상적인 것"이나 "정상성"에 준하는 가치를 지닌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먼지가 수북히 쌓인 사고를 뒤져가면서까지 공인된 과학사 속에 묻혀 있던 사료들을 발굴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을 이유도 없었으리라.



내가 그들로부터 배운, 아니 이미 다 배웠다기보다는 앞으로 한참은 더 배워야 할, 그런 태도는, 멈추지 않는 "탐구"의 정신이다. "'나'란 단지 '공부하다'라는 동사의 주어에 다름 아니다"라는 바슐라르의 말은 상아탑 속에 안주하는, 안락 의자에 파묻힌 모든 철학, 아니 모든 학을 경계하라는 말로 읽혀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인식론은 자신의 선조인 데카르트적 합리주의를 계승하는 동시에 넘어선다. 프랑스 인식론자들의 "과학"에 대한 경이/애착은 데카르트가 당대의 과학과 수학에 대해 보여줬던 그것과 무척 닮아 있다. "합리성", "이성"에 대한 태도도 엇비슷하다. 그렇지만 '공부하는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나'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에 만족하지도 않는다. '변화' 혹은 '생성'의 이유들을 찾아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 그것이 '공부하는 나'다.


※ 미뤄뒀던 숙제를 이렇게 부족하게나마
  완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France Culture 에서
 바슐라르 탄생 12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집' target='_son'>http://www.radiofrance.fr/c ... resentation.php>특집 방송 의 힘이 컸다.
8월 한 달 동안은
 그로 인하여 행복할 것 같다.
이 방송들을 컴으로 녹음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 혹시 ram이나 rm으로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 녹음하는 방법을 아시는 분 계세요?
가르쳐 주시면... 안 잡아먹을 뿐 아니라
선물까지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만.*^^*

—박쥐

2004년 7월 24일 토요일

이 정도면 선정적인가?

blogin.com · 2004-07-24

과학자들은 내기를 좋아해

지난 7월 21일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픈 호킹 박사가 더블린에서 열린 학회에서 자신의 블랙홀 이론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동료 물리학자와의 야구 백과사전 내기에서 졌음을 고백, 화제가 되고 있다. 호킹 박사는 이 외에도 아원자 입자인 힉스 보존의 존재에 대해 100달러를 걸고 美 미시건 주립대의 고든 케인 박사와 내기를 걸었던 바 있다. 다음은 영국의 가디언지가 소개한 과학적 내기들.


◈ 아이다호 대학의 스티븐 오스탯과 시카고 대학의 제이 올션스키는 지난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둘 중에서 지적 능력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2150년까지 살아남은 사람의 자손에게 500달러를 물려주기로 했다.

◈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중역 크레이그 먼디는 구글사의 간부 에릭 슈미트에게 2030년까지 조종사 없이 승객을 태우는 비행기가 상용화된다는 데에 2000달러를 걸었다. 이긴 사람은 내기에서 딴 돈을 암 연구에 기부하기로 했다.

◈ 1870년 엘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지구가 평평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올드베드포드항에서 지구의 곡률을 측정했다. 존 햄든은 월리스가 틀렸을 것이라는 데에 500파운드를 걸었으나 월리스의 측정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월리스의 부인에게 이렇게 썼다. “당신 남편이란 작자를 보고도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까? 그의 머릿속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소.”


< 가디언 2004/7/22 >

—박쥐

2004년 6월 12일 토요일

사람은 아름답지 않지만 세상은 아름답다

blogin.com · 2004-06-12

인간적 욕망(Désir)은 동물적 욕망과 다르다. 동물적 욕망은 생명 활동을 하고 생명에 대한 감성만을 지닌 자연적 존재를 이룬다. 반면에 인간적 욕망은 실제의, "구체적인(positif)", 주어진 대상이 아니라 다른 욕망을 향해 있다.
 
예를 들어 남녀 사이의 욕망은, 육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할 때, 욕망을 욕망으로서, 즉 욕망 자체로서 받아들이고 바로 그 욕망을 "소유"하거나 그 욕망에 "동화"되고자 할 때, 달리 말해 "욕망"되거나 "사랑"받고자 할 때, 또는 현실 속의 한 인간으로서 갖는 자신의 인간적 가치에 따라 "인정"받고자 할 때, 오직 그 때에만 인간적이다.
 
물론 인간적 욕망이 자연의 대상을 향할 수도 있다. 단 이 때의 욕망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가 욕망하는 것과 동일한 대상을 욕망할 때, 그리하여 바로 그/그녀의 욕망에 의해 "매개"될 때, 오직 그 때에만 인간적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욕망하고 있는 것을, 단지 그들이 욕망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욕망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이렇듯,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전적으로 무용한 대상도 욕망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른 욕망의 대상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은 오직 인간적 욕망일 수 있을 뿐이며, 동물의 세계(réalité)와는 다른 것으로서의 인간의 현실(réalité)이 탄생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이러한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작용에 의해서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욕망된 욕망들(Désirs désirés)의 역사인 것이다.


- 알렉상드르 코제브, <헤겔철학입문> 서문 중에서



프레시안 : 지난 목요일(5월20일)에 방송된 <TV, 책을 말하다>에서 고 선생은 "나는 한번도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적이 없었다"고 얘기했다. 덧붙여 고 선생은 "인간이 선천적 측면이 더 지배적이냐, 후천적 측면이 더 지배적이냐. 선천적인 게 더 큰 것 같은데 이렇게 얘기하면 위험하니까 후천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인상 깊게 들었다.

홍세화 : 사실 맞는 말이지.

프레시안 : 최근 한 강연에서 홍세화 선생도 그런 뉘앙스의 말을 했다. "인간이 끊임없이 이성을 통한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기와 다른 존재를 배제하고 억누르려는 '저급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고 선생도 방금 언급한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제 인간은 '희망의 원리'보다는 '책임의 원리'를 강조해야 할 때"라며 "인간은 언제든지 추악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어떻게 하면 덜 추악해질 수 있을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얘기는 사회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고종석 : 나는 사회생물학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몰아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우익 인종주의자들의 논리 체계의 유사성을 부각시켜 비난하지 않으면, 약육강식을 합리화하게 된다.
 
프레시안 :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진화심리학자들의 상당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그들도 홍 선생이나 고 선생의 주장처럼 '이성의 자기 성찰'을 중요하게 여긴다. 인간은 가만히 두면 '진화의 흔적'이 남아 있어 언제든 동물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이성의 자기 성찰'과 제도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종석 : 물론 그런 식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딱 그 논리에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언제든지 우익 인종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 그 점을 우려해야 한다.

- <프레시안>' target='_son'>http://www.pressian.com/scr ... �화><프레시안> 기획 연재 "대화" :
 고종석과 홍세화의 대담 (2003.6.5)에서

—박쥐

2004년 6월 10일 목요일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이성이다

blogin.com · 2004-06-10

1.

지난 6월 6일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지 60년이 되는 날이었다. 덕분에 독일군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는 해방을 맞았다.

시라크는 때맞춰 방문한 부시 앞에서 이라크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프랑스의 미국 독립 전쟁 참전과 미국의 연합군 가담이 등가라는 데에 별 무리 없이 합의했다. 각 언론들도 60년전 그날의 이미지를 살포하느라 바쁘다. 전쟁 이미지는 이렇게 해서 또 (재)생산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연합군이라는 거대한 군사 집합체가 해방을 안겨준 일등 공신으로 등극한다(레지스탕의 이미지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리하여 이러한 공식이 성립된다 : 이러한 전쟁은 전쟁으로 갚아야 한다; 전쟁은 전쟁으로 막아야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은 필요악이거나 심지어 善이기까지 하다.

2.

"이성이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큰 제목 하에 다섯 개의 연극이 연이어 공연된단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평화>,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하이네 뮐러의 <미션> 등. 전쟁, 평화, 권력이 그 주제다. 이 작품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무엇보다 전체 주제와 제목이 시선을 확 잡아끈다. 이성이 세상을 다스린단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이성이란다.

3.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이성이다", 참으로 헤겔적인 명제다. 경험적으로는 분명 거짓이다. 반례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터. 아우슈비츠를 보고도, 9.11을 경험하고도, 이라크전을 지켜 보고도 그런 소릴 할 수가 있나. 지금이 날카로운 지성을 지니고서도 나폴레옹의 진군을 바라보며 역사가 완성됐음을 선언할 수 있었던 19세기도 아니고.

그렇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반박하고 폐기해버릴 만한 것은 아니다. 쉴새없이 "감성"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전쟁의 잔혹성보다는 그 잔혹성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의 또 다른 전쟁의 정당성을 각인시키는 이미지들을 보면서, 나는 저 소박하기 짝이 없는 주장을 따르고 싶어졌다 : 세상을 다스릴 것은, 다스려야 할 것은 이성이다.

4.

바슐라르는 독일 점령기에 죽은 사상가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점령만 아니었다면 얼마나 많은 훌륭한 사상들이 싹트고 꽃필 수 있었겠냐면서.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 아니다. 수학철학자인 장 까바이예스, 그리고 아날 학파를 창시한 것으로 유명한 마르크 블로흐, 이들은 모두 레지스탕으로 일하다가 체포되었고, 해방이 되기 전에 감옥에서 죽었다. 흔히 프랑스 수학철학이 까바이예스를 잃음으로써 "몰락"의 길을 걷게됐다고들 한다. 블로흐의 경우, 감옥에서 쓴 저작들이 그들 사후에 출간돼서 이후 역사학계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올릴 때마다 "그가 그렇게 죽지만 않았더라면..." 으로 시작되는 조건문을 입에 올리곤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러한 트라우마가 프랑스의 합리주의를 또 다른 방식으로 뿌리내리게끔 했고, 그것이 오늘의 프랑스 사상을 태동케 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가 철학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방식 중에는 양립 불가능한 것도 포함된다. 아우슈비츠는 독일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로 하여금 아우슈비츠 이후 철학의 가능성에 대해 깊이 회의하게 하고 "이성"이 몰락하게 된 원인을 이성의 내부 혹은 이성 자신에서 찾게 했다. 한편으로 1차대전 직후 빈의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 "위기"를 이성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 이성을 세상에 더욱 공고하게 뿌리내리게 하려는 기획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이성은 쉽게 포기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1789년의 혁명으로부터 오늘의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쟁취한 자유와 평등과 인류애는 모두 그들에게 이성이라는 무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성을 구제하는 쪽을 택했고, 그러다가 68년 즈음에 일부는 다른 쪽으로 돌아섰다.

현재 프랑스 내 과학철학/인식론 진영은 대부분 그때 그렇게 돌아서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에게 "이성"은 곧 "과학"이고, 따라서 과학 역시 이성과 마찬가지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과학, 기술, 사회(STS)"를 강의하던 교수는 프랑스 내에서 GMO나 에너지 등에 대한 논의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정도로 "과학주의(scientisme)"가 공고히 자리를 잡고 있고, 이 과학주의의 뒤에는 계몽주의의 역사와 그 뒤로 쭉 이어져내려온 "이성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라투르도 비슷한 푸념을 늘어놓았던 걸로 기억되는데, 실제로 나는 라투르가 프랑스 내에서는 거의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의 이성에 대한 신념이 결코 프랑스 혁명 당시의 그것처럼 특정 계급이나 성별에 편향된 인간중심주의는 아니라는 점이다. 바슐라르는 "과학 정신"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게끔 방해하는 "장애물"들에, 깡길렘은 인간의 괴물성(monstruosité)에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몰두했다. 물론 각각이 이 "반이성적인" 것들에 부여한 의미나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둘다 그것들을 "이성"의 역사에 포함시키거나 아니면 전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이성의 또 다른 모습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즉 역사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다. 내가 그네들의 과학주의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들의 이성(Raison)에 대한 믿음에 그럴 만한 이유(raison)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5.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다스려야 할 것은 이성이다. 사실 여기에서의 이성은 참으로 추상적이기 그지 없는 개념이다. 누구나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아무도 이성을 제대로 정의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 점은 분명하다. 이성은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 속한 것도 아니고 소수의 사람에게 속한 것도 아닌, 모두에게, 각자의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속해 있는 어떤 것이다.

각각의 이성들을 촉발시키기 위해 굳이 새삼스레 참혹한 전쟁 이미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2차 대전 이후, 베트남전 이후, 9.11 이후, 이성은 이미 질릴대로 질려 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폭격에 놀라 도망가는 어린 베트남 여자 아이를 찍은 사진 한 장이 반전 운동의 불을 지핀 것은 사실이다. 미선이/효순이의 시신을 담은 사진들이 촛불 시위로 이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성이, 우리 모두의 이성이, 이미 그 전부터 베트남전이나 미군의 주둔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이미지가 단순히 아이디어나 다른 텍스트보다 못한 재현의 매개체를 넘어 그것들과 분리되기 힘든 엄연한 하나의 독립된 그 어떤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늘 이미지 속에 숨어 있는 논리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이성의 임무다.

6.

나는 슬프다. "HAPPY D-DAY"라는 큼지막한 제호를 단 6월 6일자 <리베라시옹> 특별판을 삼으로써 전쟁 이미지를 소비해 버렸기에. 거기에 내가 기대했던 것은 없었고, 도리어 내 이성이 상처를 입었다. 나는 또 슬프다. <이성이 세계를 다스린다>라는 공연에 가지 못할 것 같기에. 내가 기대하는, 내 이성이 흡족해 할만한 것이 거기에 있을진대.

—박쥐

2004년 6월 4일 금요일

푸코에게 바치는 유쾌한 헌사

blogin.com · 2004-06-04

시험 공부를 하던 중, 올해가 푸코가 죽은 지 20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 내가 공부하는 방식은 왜 이다지도 하이퍼텍스트적이란 말인가.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 깡길렘 → 깡길렘에 관한 푸코의 글 → 푸코 → 푸코에 관한 글들과 웹사이트들. 그러다가 급기야는 푸코에게서 영감을 받은 노래를 발견하는 데에 이르렀다. 미국의 대학 교수들이 모여 만든 아마추어 밴드 The Professors(이름도 참...) 가 부른 "Foucault' target='_son'>http://acjournal.org/holdin ... ult-low.mp3>Foucault Funk: The Michel Foucault Postmodern Blues (low-fi version) "가 그것이다.

사운드는 조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인간은 언젠가 바닷가의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지워질 것이다"와 같은 푸코의 명구를 그런 방식으로 듣고 있자니 기분이 다 유쾌해진다. 포스트모더니즘 ABC song 내지는 선전가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고 말하면 혼나거나 비웃음 당하겠지? 그들은 "예술"을 단지 사상을 선전하거나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걸 계몽적이고 (전)근대적이라며, 달리 말해 촌스럽다며 비웃을 테니까.

한편으로 사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심미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를 최소화해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노래 가사에 "discourse"나 "foundation"이나 "민중"이나 "해방"이 들어가는 노래가 사람 맘을 움직이는 방식과 그 효과는 완곡한 어법으로 표현한 노래의 그것과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존 레논의 "Imagine"과 "Power to the People"의 차이 혹은 "아침 이슬"과 "님을 위한 행진곡"의 차이. 전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 맥락을 고려했을 때 또 다른 미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경우. 후자는 "美"의 범주 하에서라기보다는 그 외의 맥락 안에서 감상하는 편이 보다 적절한 경우.

어쨌든(아, 하이퍼텍스추얼리티는 내 블로깅의 주된 특성이기도 하다. "어쨌든"이 유난히 많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이 노래는 맥락과 가사를 고려하고 들을 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종류에 속한다.

I can't find no foundations
There aint no truth anymore
I can't find no foundations
There aint no truth anymore
I'm caught in multiple perspectives
I can't think straight anymore

Man will be erased
Like a face drawn in sand
Man will be erased
Like a face drawn in sand
Like a face drawn in sand
At the edge of the sea

Do not ask me who I am
Do not ask me to remain the same
Do not ask me who I am
Do not ask me to remain the same
I am not the only one
Who writes to have no face

Discourse is not life
Its time is not your time
Discourse is not life
Its time is not your time
In discourse you have no survival
You only establish your death

바탕을 찾을 수 없어
진리는 더 이상 그 어디에도 없어
바탕을 찾을 수 없어
진리는 더 이상 그 어디에도 없어
난 여러 개의 관점에 사로잡혀 있어
난 이제 똑바로 사고할 수 없어

인간은 지워질 거야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인간은 지워질 거야
모래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바닷가 모래 위의 그림처럼

내가 누구냐고 묻지마
내게 늘 그대로 있으라 하지도 마
내게 누구냐고 묻지마
내게 늘 그대로 있으라 하지도 마
얼굴을 지우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단지 나뿐은 아니니까

말은 삶이 아니야
말에 주어진 시간은 네 것이 아니야
말은 삶이 아니야
말에 주어진 시간은 네 것이 아니야
말 속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단지 죽음에 다가갈 수 있을 뿐이야


The Professors, "Foucault' target='_son'>http://acjournal.org/holdin ... ult-low.mp3>Foucault Funk: The Michel
 Foucault Postmodern Blues"(full version)
Lyrics by Gary Radford,  Marie Radford,
 and Michel Foucault
Music by Stephen Cooper and Gary Radford


◈ 출처와 가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보려면 클릭하면' target='_son'>http://acjournal.org/holdin ... lt.html>클릭하면 됨.
◈ 번역은 내가 했는데, "토대"나 "담론" 같은 학적 용어/번역어들을 그대로 가져다 붙이는 게 해당 용어에 관해 원문이 주는 묘미를 살리는 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그래도 부족하게나마 시적 완성도를 살려보고 싶은 마음에 약간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의역했음. 그러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원문의 내용이나 푸코의 사상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큼. 특히 <지식의 고고학>을 모티브로 한 네 번째 연의 경우가 그러함. "삶"이라고 할지 "생명"이라고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삶"이 더 시적인 것 같아서 그걸로 택했음.
◈ 사진 출처 :  http://www.nexo.org/revisiones06.htm target=_top>www.nexo.org/ revisiones06.htm.

—박쥐

2004년 5월 23일 일요일

프랑스 과학철학에 대한 일갈

blogin.com · 2004-05-23

정말 잘 읽었습니다. 한국 프랑스 철학 연구의 뿌리가 거기에 있었군요. 그런데 프랑스의 메타과학적 전통이 베르그송 이후로 "죽었다"는 말씀은 프랑스 인식론을 공부하고 있는 제겐 다소 생경하게 들립니다. 바슐라르-깡길렘-푸코로 이어지는 과학철학/인식론 연구는 여전히 유효하거든요. 베르그송이 실증과학을 바탕으로 한 형이상학의 전통에 마침표를 찍었다면 모를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마침표는 아니겠지요. 들뢰즈도 있고 세르도 있으니). 분자생물학의 등장 역시 메타과학으로서의 프랑스 철학에 타격을 입혔다기보다는 일종의 탄력 혹은 자극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크 모노-프랑수아 자콥에서 이어진 생물철학이 (대개 생물학자 출신인) 신진들에 의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거든요.

이런 역동적 흐름들이 멈춘 것처럼 보이게 된 건, 아무래도 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특히 영미 분석철학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부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프랑스 철학 전공자들이 대학 내에 자리를 잡지 못한 탓도 크겠습니다만. 어쨌든 이건 비단 한국의 현상만은 아닌 듯합니다. 이곳 사람들도 프랑스 철학이 예전만큼 대접받지 못한다며 불평을 늘어놓곤 하는 걸 보면 말이지요.
 
혹시 소칼 논쟁에 대한 부산대 이지훈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셨는지요? 98~99년쯤에 "소칼 논쟁 독후기"라는 제목으로 한 계간지에 실렸었는데,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하여간 제가 그 논쟁과 관련해서 읽어본 중 가장 균형잡힌 관점에서 쓰여진 글이었습니다.



박홍규 선생의 <형이상학 강의> 2권이 얼마 전에 출간됐다는 얘길 들었다. 이 글은 그 책에 대한 노정태님의' target='_son'>http://www.mediamob.co.kr/r ... ?no=21682>노정태님의 평--아주 훌륭한 평이었다--에다가 내가 달아놓은 답글인데, 다시 보니 뻔하디 뻔한 얘기지만, 그래도 프랑스 과학철학에 대해 대강이나마 정리를 해야겠다는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워밍업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리 옮긴다. 이렇게 공언이라도 해놔야 부끄러워서라도 뭔가 시작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박쥐

2004년 5월 17일 월요일

PCism : 종교의 경우

blogin.com · 2004-05-17


Passion: Regular or Decaf?






Those who virulently criticized Mel Gibson’s The Passion even before its release seem unassailable: Are they not justified to worry that the film, made by a fanatic Catholic known for occasional anti-Semitic outbursts, may ignite anti-Semitic sentiments?

More generally, is The Passion not a manifesto of our own (Western, Christian) fundamentalists? Is it then not the duty of every Western secularist to reject it, to make it clear that we are not covert racists attacking only the fundamentalism of other (Muslim) cultures?


The Pope’s ambiguous reaction to the film is well known: Upon seeing it, deeply moved, he muttered “It is as it was”—a statement quickly withdrawn by the official Vatican speakers. The Pope’s spontaneous reaction was thus replaced by an “official” neutrality, corrected so as not to hurt anyone. This shift, with its politically correct fear that anyone’s specific religious sensibility may be hurt, exemplifies what is wrong with liberal tolerance: Even if the Bible says that the Jewish mob demanded the death of Christ, one should not stage this scene directly but play it down and contextualize it to make it clear that Jews are collectively not to be blamed for the Crucifixion. The problem of such a stance is that it merely represses aggressive religious passion, which remains smoldering beneath the surface and, finding no release, gets stronger and stronger.


This prohibition against embracing a belief with full passion may explain why, today, religion is only permitted as a particular “culture,” or lifestyle phenomenon, not as a substantial way of life. We no longer “really believe,” we just follow (some of) the religious rituals and mores out of respect for the “lifestyle” of the community to which we belong. Indeed, what is a “cultural lifestyle” if not that every December in every house there is a Christmas tree—although none of us believes in Santa Claus? Perhaps, then, “culture” is the name for all those things we practice without really believing in them, without “taking them seriously.” Isn’t this why we dismiss fundamentalist believers as “barbarians,” as a threat to culture—they dare to take seriously their beliefs? Today, ultimately, we perceive as a threat to culture those who immediately live their culture, those who lack a distance toward it.


Jacques Lacan’s definition of love is “giving something one doesn’t have.” What one often forgets is to add the other half: “… to someone who doesn’t want it.” This is confirmed by our most elementary experience when somebody unexpectedly declares passionate love to us: Isn’t the reaction, preceding the possible affirmative reply, that something obscene and intrusive is being forced upon us? This is why, ultimately, passion is politically incorrect; although everything seems permitted in our culture, one kind of prohibition is merely displaced by another.


Consider the deadlock that is sexuality or art today. Is there anything more dull and sterile than the incessant invention of new artistic transgressions—the performance artist masturbating on stage, the sculptor displaying human excrement? Some radical circles in the United States recently proposed that we rethink the rights of necrophiliacs. In the same way that people sign permission for their organs to be used for medical purposes, shouldn’t they also be allowed to permit their bodies to be enjoyed by necrophiliacs? This proposal is the perfect example of how the PC stance realizes Kierkegaard’s insight that the only good neighbor is a dead neighbor. A corpse is the ideal sexual partner of a tolerant subject trying to avoid any passionate interaction.


On today’s market, we find a series of products deprived of their malignant property: coffee without caffeine, cream without fat, beer without alcohol. The list goes on: virtual sex as sex without sex, the Colin Powell doctrine of war with no casualties (on our side, of course) as war without war, the redefinition of politics as expert administration as politics without politics. Today’s tolerant liberal multiculturalism wishes to experience the Other deprived of its Otherness (the idealized Other who dances fascinating dances and has an ecologically holistic approach to reality, while features like wife beating remain out of sight). Along the same lines, what this tolerance gives us is a decaffeinated belief, a belief that does not hurt anyone and never requires us to commit ourselves.


Today’s hedonism combines pleasure with constraint. It is no longer “Drink coffee, but in moderation!” but rather “Drink all the coffee you want because it is already decaffeinated.” The ultimate example is chocolate laxative, with its paradoxical injunction “Do you have constipation? Eat more of this chocolate!”—the very thing that causes constipation.


The structure of the “chocolate laxative,” of a product containing the agent of its own containment, can be discerned throughout today’s ideological landscape. Consider how we relate to capitalist profiteering: It is fine IF it is counteracted with charitable activities—first you amass billions, then you return (part of) them to the needy. The same goes for war, for the emerging logic of humanitarian militarism: War is OK insofar as it brings about peace and democracy, or creates the conditions to distribute humanitarian aid. And does the same not hold true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It is OK to “rethink” human rights to include torture and a permanent emergency state, if democracy is cleansed of its populist “excesses.”


Does this mean that, against the false tolerance of liberal multiculturalism, we should return to religious fundamentalism? The very absurdity of Gibson’s vision makes clear the impossibility of such a solution. Gibson first wanted to shoot the film in Latin and Aramaic and show it without subtitles. Under pressure, he allowed subtitles, but this compromise was not just a concession to commercial demands. Sticking to the original plan would have displayed the self-refuting nature of Gibson’s project: That is to say, the film without subtitles shown in large suburban malls would turn its intended fidelity into the opposite, an incomprehensible exotic spectacle.


But there is a third position, beyond religious fundamentalism and liberal tolerance. One should not put forth the distinction between Islamic fundamentalism and Islam, a la Bush and Blair, who never forget to praise Islam as a great religion of love and tolerance that has nothing to do with disgusting terrorist acts. Instead, one should gather the courage to recognize the obvious fact that there is a deep strain of violence and intolerance in Islam—that, to put it bluntly, something in Islam resists the liberal-capitalist world order. By transposing this tension into the core of Islam, one can conceive such resistance as an opportunity: It need not necessarily lead to “Islamo-Fascism,” but rather could be articulated into a Socialist project. The traditional European Fascism was a misdirected act of resistance against the deadlocks of capitalist modernization. What was wrong with Fascism was NOT (as liberals keep telling us) its dream of a people’s community that overcomes capitalist competition through a spirit of collective discipline and sacrifice, but how these motives were deformed by a specific political twist. Fascism, in a way, took the best and turned it into the worst.


Instead of trying to extract the pure ethical core of a religion from its political manipulations, one should ruthlessly criticize that very core—in ALL religions. Today, when religions themselves (from New Age spirituality to the cheap spiritualist hedonism of the Dalai Lama) are more than ready to serve postmodern pleasure-seeking, it is consequently, and paradoxically, only a thorough materialism that is able to sustain a truly ascetic, militant and ethical stance.


Slavoj Žižek, a philosopher and psychoanalyst, is a senior researcher at th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in the Humanities, in Essen, Germany. Among other books, he is the author of The Fragile Absolute and Did Somebody Say Totalitarianism?



지젝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해 쓰고 In These Times에 실은 글. (특정 종교의) 근본주의, 원리주의, 반유대주의, 나아가 문화 현상/라이프스타일로서의 종교에 대한 예리한 통찰. (아마도 개봉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영화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었을) 지난 2월에 쓰여진 거지만, 여러 가지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의 상황도 그렇거니와, 이곳에서도 얼마 전 재경부 장관인 사르코지(차기 대권 주자로 유력한 좌파 인물)가 국회에서 정부의 반유대주의 성향이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켜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뒤로 반유대주의/유대주의 논쟁이 한창이다(어제는 대규모 반유대주의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뭣보다 돋보이는 건 "정치적 올바름"을 하나의 새로운 주의/이즘(PCism)으로 볼 줄 아는 지젝의 앞서가는(?) 감각이다. 다양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똘레랑스의 정신, 분명히 아주 중요한 미덕이다. 문제는 그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것, 그리고 그 자체로 순결무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우선 이 관용의 정신 자체가 어쩔 수 없이 자기모순적이다. 이 정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관용의 정신을 유지할 것인가 말것인가? 게다가 이 정신이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관용을 베푸는 자와 그 시혜를 입는 자 혹은 베풀 것을 강요받는 자가 있다. 뿐만 아니라, 특히 "베푸는 자"의 것일 경우, 관용은 뿌리깊은 반성에서 나온 것이 아닌, 자신의 "쿨함"을 과시하기 위한 혹은 그저 허울뿐인 말에 불과하거나 때로는 가장 편향된 태도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고, 또 가진 자가 내세우는 논리의 수많은 버전 중 가장 세련된 형태일 수 있다("우린 우리와 다른 너희를 존중해. 그런데 너희는 왜 너희와 다른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니? 좀 맞고 정신 차리면 우릴 인정할 수 있게 될거야"). 

아, 사실 지젝의 현란한 논리 전개를 따라가는 일은 쉽지 않다. 좀더 곱씹어봐야겠다.

—박쥐

2004년 5월 11일 화요일

맑스씨의 기술사 수업을 듣는 시간

blogin.com · 2004-05-11

몇 주 전부터 기술史를 배우고 있다. 사실 기술의 역사는 별로 재미가 없다. 공학도나 엔지니어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기술 쪽은 한없이 "단무지"스럽게만 보인다. 워낙 내가 기어다닌 바닥이 극도로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어서 그런지, 기술이 갖는 즉물성은 그저 낯설다. 거참, 사실 부끄러운 얘기다. 속해 있는 학문에 대해서는 틈만 나면 그 관념성과 추상성을 도마 위에 올려놓곤 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측면들을 물질적으로/구체적으로 체화/체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흉보고 깔보다니. "박쥐"라는 내 아호가 전혀 아깝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것들이 전혀 만만하게 볼 게 아니라는 걸 (이제서야 비로소) 깨달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수업이 인상적인 건, 전혀 몰랐던 분야에 눈떠가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무엇보다 담당 교수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68세대이자 맑시스트라는 혐의(!)를 두고 있다. 기술사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시조를 맑스로 두더니, 그 이후에도 툭하면 맑시스트 퍼스펙티브를 들이댄다. 말하자면 현대 사회의 모든 기술 개발과 관련 정책이 거의 전적으로 시장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식이다. 어느 정도까지냐 하면, 핵발전소나 유전자 변형 식품이 허가되느냐 마느냐의 차이도, 결국은 돈이 많이 드느냐, 혹은 돈이 되느냐에 대한 정부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고, 찬반에 대한 공론화가 이루어질 때는 그러한 결정이 이미 내려진 이후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미국에 대한 시각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의외로 재밌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 오늘날처럼 과학 기술의 모든 분야를 선도하게 된 비결은 단 몇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 (1) 땅덩어리는 넓고 할 일은 많다 (2) 일할 사람이 없다 (3) 사람을 대신할 기계가 필요하다 (4) 기계를 개발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요컨대 인력의 부족이 기술 개발에 대한 절대절명의 요구를 낳았고, 그것이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거 내가 단순화시킨 거 아니다. 교수가 몇 번이고 강조한 얘기다. 이 단순한 얘길 그토록 진지하게 하는 그에게서 어쩐지 "늙은 유럽"의 자존심과 자조감이 느껴졌다.

—박쥐

2004년 5월 9일 일요일

이공계 위기론, 인식론적 고찰을 위한 구상

blogin.com · 2004-05-09

이라크전의 참혹한 실상이 공개되면서 온 국제 사회가 미국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고 있는 걸 보면, 미국의 패권적 주도 현상이 이제 좀 수그러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온세계에 퍼져있는 맥도널드, 리바이스, 말보로, 그리고 세계인이 함께 보는 미국 시트콤과 헐리웃 영화 등등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순미국산 상품뿐 아니라, 그에 전염된 "유사" 미제들이다. 말보로를 피우고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부시를 욕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욕하면서 배우게 되는" 미국식 영어나 문화가 다양한 언어나 관습을 획일화시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 독식하는 여러 가지 분야 중 하나였던 과학에 "이상 신호"가 생겼다는 소식( 뉴욕타임스,U.S.' target='_son'>http://www.nytimes.com/2004 ... ed=1>뉴욕타임스,U.S. Is Losing Its Dominance in the Sciences," 2004년 5월 3일자 기사 )은 내심 반갑다. Physical Review 에 게재된 논문 중 그 저자가 미국 출신인 비율은 1983년 61%였던 데 반해 작년인 2003년에는 29%로 줄었다. 서유럽 20개국과 그 외의 국가들이 이 비율을 앞섰다. 미국은 특허 출원 비율에 있어서도 80년대에 비해 10% 가까이 줄었다. 대신 대만, 일본, 한국 등 동북아 국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냉전 시대에 비해 국가의 연구비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국방 예산은 오히려 냉전 시대보다 늘어나 작년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과학자들의 경쟁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한단다. 특히 유럽의 경우, 미국을 경쟁 상대로 상정하고 입자물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의 산학연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동시에 유럽연합이라는 지리적/정치적 여건을 이용해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미국은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거다.

이러한 원인 분석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다. 인력 부족 혹은 유출이 그것이다. "외국 아이들 데려다가 기껏 길러놨더니, 우리가 가르쳐준 것 가지고 자기네들 나라로 돌아가는 바람에 결국 남의 나라 좋은 일만 하고 우리는 손해만 봤다"는 게 그들 얘기다 (외국인 박사 학위자가 자국으로 돌아가는 비율은 9.11 이후 美정부에서 비자 취득 요건을 강화하는 바람에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거기에 또 한마디가 따라 붙는다. 미국인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바람에 그 빈자리를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고, 그 유학생들은 배운 다음에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니, 결국 쓸 만한 인력들은 하나도 남지 않더라는 것.

그런데 이를 미국의 이공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좀 문제가 있다. 그 동안의 지나친 독점이 이제 겨우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더욱이, 이는 어쩌면, 미국의 영향력이 전방위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기사에서 한 인터뷰이는 이 아메리카나이제이션을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표현했다!). 그네들이 세워놓은 '과학'과 '과학성'과 '과학적 실천'의 기준이라는 그물망에 보다 많은 국가와 보다 넓은 문화권이 포섭됐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를 보면 특히 그러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네들이 논문 게재수가 증가했다는 것은 실제 논문 편찬수가 증가했기 때문일뿐 아니라 편찬된 논문을 유럽 내에서가 아니라 (미국식) 영어로 옮긴 후에 미국에 본거지를 둔 저널에다가 출판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다.

또 하나, 일련의 현상을 그 현상에 대한 몇몇 지표들을 통해 "위기"로 인식하는 근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논문의 국적을 따진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촌스럽게 느껴진다.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요즘 누가 조국의 발전을 위해 연구를 하나? 한국 대학의 교수가 미국에 있는 입자 가속기로 실험하고 논문을 내면, 그 논문의 소속을 어디라고 해야 하나? 이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에, 국가별로 과학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도 아니고. 또, SCI 지수나 노벨상 수상 인원수를 가지고 그 나라 과학의 발전 정도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조건인 인프라의 구축 정도를 가늠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좀더 그럴듯한 팩터들을 제시할 수 없나? 이를테면 과학의 대중화나 과학기술의 민주화 정도라든지.

이공계 위기론은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인 현상인 듯이 보인다. 한국에서 누누이 들어왔던 얘기를 프랑스에서도 똑같이 듣고 있고 미국으로부터도 간접적으로 듣고 있다. 위기에 대한 체감 지수가 분야에 따라 달라지긴 한다. 대체로 돈 안 되는 분야에서는 돈 되는 분야에서보다, 실험 전공에서보다 이론 전공에서, 더 큰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난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과학이 지금의 위치에 이른 건 아주 최근의 현상이다. 과학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훨씬 더 가까운 과거다. 같은 과학이라고 해도, 그 주도권의 임자는 아주 빠른 주기로 교체된다 (20세기만 해도, 물리학 -> 화학 -> 생물학의 순으로 "권력"이 교체됐다). "위기"일수록 보다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고 또 필요하다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과학이 자본의 논리에 휘둘린다는 건 분명 심각한 문젠데, 예산 부족이 가장 큰 위기의 원인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왜, 언제부터, 어떻게 돈이 모자르게 된 건지, 나아가 어째서 돈이 과학의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 됐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과학학 하는 사람들은 결코 과학하는 사람들의 적이 아니다.

—박쥐

2004년 5월 8일 토요일

인물 인지과학사 : 데니얼 데닛

blogin.com · 2004-05-08

밉살스러운,
그렇지만 미워할 수 없는 철학
데니얼 데닛의 인지과학에 대한 감상


철학이 미울 수도 있냐고? 그렇다, 적어도 내겐. 난 독단론이나 교조주의의 낌새가 보이는 철학이 밉다. 겉으로 보기에 무척이나 객관이나 관용을 추구하면서 사실상 자기 외의 다른 사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철학은 더 밉다. 내가 기계론과 과학주의와 물리주의를 비롯해서 그리고 그에 기반한 일부 영미권 분석철학이나 개신교의 원리주의나 신자유주의 등등을 경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인지과학을, 아주 단순하고도 무식하게, 인간을 하나의 "기계"로 보고 인간의 사고와 인식이라는 행위를 특정 세포의 기계적 메커니즘에 의한 "물리적 과정"로 환원하려는 기획으로 이해했을 때, 그에 대해 호오를 말하기란 쉽지 않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건 분명한데, 마냥 소원하게 지내기는 아쉽고 찜찜한 데다가 아주 가끔씩은 곁에 두고싶기까지 한 이성친구 같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경원지심이다.

정신분석학을 "사변적 심리학"이라고 경멸하는 데서 보듯이 다소 교조의 냄새가 풍기긴 해도, 그들은 겸손한 편이다. 물리주의를 옹호하는 대표적 심리철학자인 김재권도 "인지과학이 모든 걸 설명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의 말에는 "아직까지는 아니다"라는 단서가 붙어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한도 내로 제한한다.

이들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기존의 철학사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서 소스를 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뭇 현대 철학자들이 뉴턴 물리학이 무너졌다는 이유로 그에 기반해서 나온 당대 철학들을 낡아빠진 것으로 치부하는 반면에(모든 철학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 안에서 나온 것인만큼, 현재의 효용 가치를 묻기 전에 역사적 배경 위에 위치시켜 놓고 봐야 하는 것이거늘!), 일부 인지과학자들은, 멀게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가깝게는 괴델 등 과거 철학자들의 인식론적 테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삼아 그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긴, 인지과학의 물음 자체가, 심신 관계를 비롯해서 플라톤으로부터 이어진 서구 철학의 근본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던가.

사실 인지과학은 현대 과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혹은 형성해 가고 있는 다른 분야--생명공학/분자생물학, 나노과학, 인공지능/로봇공학 등--에 비해 사회적 비판의 성역 내에서 보다 안전한 위치에 있는 편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세 분야와 꽤 밀접하게 연관돼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역사도 짧고 또 "순수" 학문에 머물러 있어 시장에의 의존도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이 미미하기 때문인 듯하다. 거기에다 윤리적 문제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회의론 역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인 "사고"가 "겨우" 분자들의 유희로 설명될 수 있다는 데에 대한 실망감과 반발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될 정도이니.

데니얼 데닛은 인지과학과 인지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생각하는 기계, 즉 인공지능의 개발에 아주 낙관적인 견해를 취하고 있는 대표적 철학자다. 그 유명한 괴델, 에셔, 바흐의 저자자 더글러스 호프스테터와 더불어 편집한 인지과학 선집 The Mind's I 는 한국에서 "이런, 이게 바로 나야?"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수록된 글들도 맘에 들고 김동광 선생님의 번역도 괜찮았는데, 제목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언젠가 그분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여쭈어 볼까 하다가 관뒀다). 작년엔가 한국에 다녀갔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때 가서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참 아쉬웠다(데닛의 팬이라거나 그의 철학을 잘 알아서라기보다는, 그저 유명한 사람들 강연에 가서 목소리를 듣고 얼굴 보는 게 취미인지라).
 
그런 그를, 방금 전 영국의 시사지 가디언 기사( "The Semantic Engineer", Andrew Brown, The Guardian, Saturday April 17, 2004 )를 통해 접했다. 데닛 개인뿐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한 최근 인지과학 내의 흐름에 대해 개괄하기에 그만이다. 기자는 (뭇 과학자 위인 전기가 그렇듯이) 인터뷰의 한 1/2를 데닛이 얼마나 뛰어나고 철학뿐 아니라 요트, 악기 연주 등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인물인지를 강조하는 데에 할애하고 있는데, 대신에 나머지 1/2은 데닛의 인지과학에 대해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게 소개하는 데에 바쳤다. 이런 식의 인물 중심적 기술이라면 과학사를 서술하는 방법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

그의 철학적 화두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없지 않고 있는가?"라는 라이프니츠의 그것과 비슷한 물음에서 비롯된다 ("How can meaning, design and morality arise in a universe that began as meaningless, void and without form?"). 비록,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추구되고, 한쪽은 "유심론", 한쪽은 "유물론"이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데닛의 유물론은 "기계"적 유물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다고, 그리고 기계나 사람의 사고 과정을 과학에 의해 "기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과연, 그렇게 해서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인식된 내용에 대해 사고할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해서 의사를 결정하고 의미를 창조하기도 한다. 사고, 믿음, 욕망 등이 다 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심신 수반론의 가장 큰 걸림돌인 감각질(qualia) 및 창발(emergence)의 문제다. 한편으로 사고라고 해서 다 같은 것도 아니다. 사고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과정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사과나 참새에 대해 사고하는 것과 유리수나 무리수에 대해 사고하는 것은 다르고, 또 "나"에 대해 사고하는 것도 다르다. 

여기에서 데닛의 낙관론은 다위니즘으로 이어진다. 의미와 기능의 산출이 생명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왜 우리가 믿음을 갖는지 모른다. 뻐꾸기 새끼가 왜 형제자매를 둥지 밖으로 몰아내는지 모르는 것처럼. 바로 그런 의미에서 믿음에는 (우리가 파악할 수 있을 만한) 이유가 없다. 그저 본능처럼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다. 이 현상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외부의 자극에 대한 내적 표상에 있다. 바로 그것이 믿음을 포함해서 두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의 원인인 것이다 (참고로 원인과 이유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원인-결과는 인과론의 틀 안에 있는 개념이고, 인과론은 환원론의 기본 전제다. 반면, 이유는 분석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결과의 사후에 설명되고 해명되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자극을 인풋해주면, 아웃풋으로서 의미가 산출될 수 있다. 의식 현상 역시, 인풋에 대한 정보와 그 처리 과정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설명될 수 있고, 또 기계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구문론적 기계를 넘어서는 의미론적 공학(semantic engineering)에 대한 데닛의 기획이다.

흠.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그리고 남의 전공에 콩 내놓아라 팥 내놓아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원대한 포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포부가 큰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무에서 유가 나오는가?"에서부터,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누구인가?" 등에 대한 답이 하나일 순 없다. 그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을 단 한 마디로 대체하려는 생각은 너무 큰 포부일 뿐더러 착각이요 오만이다.

데닛을 비롯한 뭇 인지과학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러한 생각이 인간의 마음이나 두뇌를 신비화하려는 낭만주의적 태도--흔히 반과학주의와 짝을 짓는 것으로 이해되는--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과학을 "신비화"하려는 그들의 전략을 냉철하게 비판하고자 함이고, 그런 점에서 지극히 "과학적"인 태도다. 나는 인지과학이 모든 시점을 하나로 모으기보다는 시야의 범위를 넓혀 비가시적 영역까지도 볼 수 있게 해주리라 믿는다. 주는 것 없이 미운 그 녀석을 미워하지 못하는, 아니 미워하지 않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 Daniel Dennett

Born: March 28, 1942, Boston.

Education: Philips Exeter Academy; Wesleyan University; Harvard (BA 1963); Oxford University (DPhil 1965).

Married: 1962, Susan Bell (one son, one daughter).

Career: 1965-70 assistant professor of philosophy, University of California at Irvine; '70-71 assoc prof, Irvine; '71-75 associate prof, Tufts; '75- prof, Tufts, '76-82 chairman, department of philosophy, Tufts; '79 visiting lecturer, Oxford; '85-2000 distinguished prof of arts & sciences, '85- director, Center for Cognitive Studies, 2000- University Professor, Tufts.

Books: 1969 Content and Consciousness; '78 Brainstorms: Philosophical Essays on Mind and Psychology; '81 The Mind's I: Fantasies and Reflections on Self and Soul, co-edited with Douglas Hofstadter; '84 Elbow Room; '87 The Intentional Stance; '91 Consciousness Explained; '95 Darwin's Dangerous Idea; '96 Kinds of Minds; '98 Brainchildren: Essays on Designing Minds; 2003 Freedom Evolves.



사진, 약력, 참고 기사 출처' target='_son'>http://books.guardian.co.uk ... 084,1192975,00.html>http://books.guardian.co.uk ... nbsp;

—박쥐

2004년 5월 5일 수요일

graffiti aphorism

blogin.com · 2004-05-05

흐리고 비가 오다.
오뎅탕, 해물파전, 달걀말이,
 잎새주, 참이슬, 매화수,
그리고 사람들을 생각하다.

문득 신촌 굴다리옆 술집 "나룻터" 옆에
새겨져 있었던 낙서를 떠올리다.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