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9일 일요일

이공계 위기론, 인식론적 고찰을 위한 구상

blogin.com · 2004-05-09

이라크전의 참혹한 실상이 공개되면서 온 국제 사회가 미국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고 있는 걸 보면, 미국의 패권적 주도 현상이 이제 좀 수그러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온세계에 퍼져있는 맥도널드, 리바이스, 말보로, 그리고 세계인이 함께 보는 미국 시트콤과 헐리웃 영화 등등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순미국산 상품뿐 아니라, 그에 전염된 "유사" 미제들이다. 말보로를 피우고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부시를 욕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욕하면서 배우게 되는" 미국식 영어나 문화가 다양한 언어나 관습을 획일화시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 독식하는 여러 가지 분야 중 하나였던 과학에 "이상 신호"가 생겼다는 소식( 뉴욕타임스,U.S.' target='_son'>http://www.nytimes.com/2004 ... ed=1>뉴욕타임스,U.S. Is Losing Its Dominance in the Sciences," 2004년 5월 3일자 기사 )은 내심 반갑다. Physical Review 에 게재된 논문 중 그 저자가 미국 출신인 비율은 1983년 61%였던 데 반해 작년인 2003년에는 29%로 줄었다. 서유럽 20개국과 그 외의 국가들이 이 비율을 앞섰다. 미국은 특허 출원 비율에 있어서도 80년대에 비해 10% 가까이 줄었다. 대신 대만, 일본, 한국 등 동북아 국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냉전 시대에 비해 국가의 연구비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국방 예산은 오히려 냉전 시대보다 늘어나 작년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과학자들의 경쟁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한단다. 특히 유럽의 경우, 미국을 경쟁 상대로 상정하고 입자물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의 산학연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동시에 유럽연합이라는 지리적/정치적 여건을 이용해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미국은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거다.

이러한 원인 분석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다. 인력 부족 혹은 유출이 그것이다. "외국 아이들 데려다가 기껏 길러놨더니, 우리가 가르쳐준 것 가지고 자기네들 나라로 돌아가는 바람에 결국 남의 나라 좋은 일만 하고 우리는 손해만 봤다"는 게 그들 얘기다 (외국인 박사 학위자가 자국으로 돌아가는 비율은 9.11 이후 美정부에서 비자 취득 요건을 강화하는 바람에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거기에 또 한마디가 따라 붙는다. 미국인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바람에 그 빈자리를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고, 그 유학생들은 배운 다음에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니, 결국 쓸 만한 인력들은 하나도 남지 않더라는 것.

그런데 이를 미국의 이공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좀 문제가 있다. 그 동안의 지나친 독점이 이제 겨우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더욱이, 이는 어쩌면, 미국의 영향력이 전방위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기사에서 한 인터뷰이는 이 아메리카나이제이션을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표현했다!). 그네들이 세워놓은 '과학'과 '과학성'과 '과학적 실천'의 기준이라는 그물망에 보다 많은 국가와 보다 넓은 문화권이 포섭됐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를 보면 특히 그러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네들이 논문 게재수가 증가했다는 것은 실제 논문 편찬수가 증가했기 때문일뿐 아니라 편찬된 논문을 유럽 내에서가 아니라 (미국식) 영어로 옮긴 후에 미국에 본거지를 둔 저널에다가 출판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다.

또 하나, 일련의 현상을 그 현상에 대한 몇몇 지표들을 통해 "위기"로 인식하는 근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논문의 국적을 따진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촌스럽게 느껴진다.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요즘 누가 조국의 발전을 위해 연구를 하나? 한국 대학의 교수가 미국에 있는 입자 가속기로 실험하고 논문을 내면, 그 논문의 소속을 어디라고 해야 하나? 이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에, 국가별로 과학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도 아니고. 또, SCI 지수나 노벨상 수상 인원수를 가지고 그 나라 과학의 발전 정도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조건인 인프라의 구축 정도를 가늠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좀더 그럴듯한 팩터들을 제시할 수 없나? 이를테면 과학의 대중화나 과학기술의 민주화 정도라든지.

이공계 위기론은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인 현상인 듯이 보인다. 한국에서 누누이 들어왔던 얘기를 프랑스에서도 똑같이 듣고 있고 미국으로부터도 간접적으로 듣고 있다. 위기에 대한 체감 지수가 분야에 따라 달라지긴 한다. 대체로 돈 안 되는 분야에서는 돈 되는 분야에서보다, 실험 전공에서보다 이론 전공에서, 더 큰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난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과학이 지금의 위치에 이른 건 아주 최근의 현상이다. 과학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훨씬 더 가까운 과거다. 같은 과학이라고 해도, 그 주도권의 임자는 아주 빠른 주기로 교체된다 (20세기만 해도, 물리학 -> 화학 -> 생물학의 순으로 "권력"이 교체됐다). "위기"일수록 보다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고 또 필요하다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과학이 자본의 논리에 휘둘린다는 건 분명 심각한 문젠데, 예산 부족이 가장 큰 위기의 원인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왜, 언제부터, 어떻게 돈이 모자르게 된 건지, 나아가 어째서 돈이 과학의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 됐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과학학 하는 사람들은 결코 과학하는 사람들의 적이 아니다.

—박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