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3일 목요일

55 jours jusqu'au Jour J

blogin.com · 2004-05-13

한국 갈 날까지 55일 남았다. 왜 5월은 31일까지 있는 걸까. 그나마 6월은 30일까지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지, 다행인 것도 아니다. 28일까지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지금 이런 날짜를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점에서 웃긴다.
 
첫째, 이곳으로 떠나올 적에 나는 나를 아는 모두에게 앞으로 2~3년 간은 못 볼 거라고 겁을 단단히 줬었다. 그리고 돌아올 기약없는 뱃길을 떠나기라도 할 것처럼 굴며 거한 환송회를 몇 번씩이나 치루었다. 그런데 채 1년도 안돼서 그들 앞에 얼굴을 들이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달아오른다.

둘째, 정작 내가 달력 날짜를 일일이 짚어가면서 계산했어야 할 날짜는 따로 있었다. 당장 2주 후면 시험 하나가 있고,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시험까지는 1+1/2 개월이 남아 있다. 소논문을 가을까지 제출하는 걸로 미룬다 해도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려면 대강의 안을 잡아 놔야 한다. 논문도 지도 교수와 얘기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구상해 놔야 한다.

그렇게 떠나고만 떠나고만 싶었던 그 땅을 이렇게 미치도록 그리워하다니. 물론 난 윤이상 선생처럼 마당에 대한민국 땅덩어리를 형상화해 놓은 연못을 만들어 놓고 볼때마다 눈물지을 정도의 애국심도 돈도 없다. 흔히들 "나라를 떠나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그 "애국자"라서 귀국 날짜를 손으로 꼽고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국가"나 "민족" 같이 거창하고 추상적인 가상체가 아니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 여럿이서 침 섞어가면서 먹던 오뎅 국물, 도서관 옆 계단에서 뿜던 담배 연기, 학교 앞 가게의 샌드위치, 비온 뒤 여름의 교정 가득히 번지던 풀빛 안개, 신촌의 술집을 채우던 알코올향과 안주에서 나던 기름 냄새, 뭐 그런, 지극히 감각적인 것들. 아니면 내 방 침대, 집앞 조깅 코스, 아침이면 엄마와 두런두런 얘길 나누며 들던 오믈렛이랑 커피, 외할머니의 백김치, 뭐 그런, 아주 구체적이고 사소한 것들. 하긴, 윤이상의 통영도 그런 것으로 남아 있었던 거겠지. 타향살이 하는 이들이 고향이나 모국을 그리워하는 것도 다 그런 것들 때문일 거고.

기다려지는 것일수록 더디게 온다. 그러니 기다리지 말자. 그러면 7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닥칠 거다.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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