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일 일요일

강산이 다섯 번 변하는 동안 변치 않은 것

blogin.com · 2004-05-02

대통령 각하
각하께 편지 올립니다
부디 읽어 주십시오
혹 시간이 되신다면

어제 입영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수요일 저녁까지 입대하라는 내용이었지요

대통령 각하
 저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불쌍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도망가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중략]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봤습니다
형제들이 떠나가는 것도 봤습니다
제 아이들이 울고 있는 것도 봤구요
어머니는 또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셨던지요

 [중략]

군에 가는 대신
 제 길을 가겠습니다
방방곡곡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외치렵니다
"복종을 거부하십시오,
전쟁을 하지 마십시오,
전쟁에 나가지 마십시오,
전쟁터로 떠나지 마십시오"

보리스 비앙(Boris Vian), "탈영병의 노래(le Déserteur)"


1. 클릭만 하면 제깍 들을 수 있는 맛보기 파일http://chansonrebelle.free. ... ram/Le_deserteur.ramhttp://borisvian.free.fr/po ... ?piste=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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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간의 번거로움을 거친 후에야 들을 수 있는 완벽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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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은 악이다. 필요악이 아니다. 절대악이다. 무조건 악이다. 그 어떤 수단이나 명목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건 정언 명제다. 따라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정언 명령이다. 달리 말해 그 논리적 정당성을 애써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극히 당연한 명제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때론 악을 써가며, 때론 목놓아 울며, 때론 피를 토하며, 때론 목숨까지 바쳐 왔는가. 문제는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혹은 귀를 부러 틀어막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이미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끔찍한 사건들을 충분히 거쳤다. 인간이 어느 정도로 야만스러워질 수 있는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줬던 2차대전이 끝난 지 이제 겨우 50년이 조금 넘었다. 그 전쟁은, 그 이후에도 그칠 새 없이 이어진 몇몇 다른 전쟁들과 더불어, 그것을 직접 체험한 세대뿐 아니라, 역사책, 몸서리칠 만큼 생생한 보도 사진이나 인터넷 동영상, 반전+평화 노래 등으로부터 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에게도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각인돼 있다. 전쟁에 대한 공포는 이미 동서고금을 초월한 집단적 기억이 돼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반전 및 평화가 지극히 당연한 가치로 자리매김될 만도 한데.

20세기의 그 크고 작은 많은 전쟁들이 인류에 공헌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주옥같은 반전 노래들일 것이다. 사실 내가 아는 노래라고 해봤자 밥 딜런이 거의 전부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보리스 비앙의 노랠 듣게 됐었고,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같은 곡을 미국의 Peter, Paul and Mary 가 자신들의 콘서트용으로 약간 개사해서 부른 걸 찾아냈다. 후자의 개사는 베트남전과 미국의 청중 앞이라는 맥락에 맞춘 것인데, 원래 가사에서의 "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내 아내는 성폭력을 당했어요"라는 부분이 "나는 감옥에 있을 때 영혼을 빼앗겼어요"로 바뀌는 등 전자에 비해 한결 "순화"됐다 (비앙이 처음에 썼던 가사의 마지막은 "각하의 군사들을 보낼테면 보내십시오. 내가 총으로 그놈들 머리를 날려줄 테니"였는데, 이는 주위의 권유로 그 후두가 "난 무기가 없으니, 쏠테면 쏘십시오"로 바뀌었던 바 있다. 만약 그대로 갔더라면 이 노래가 갖는 평화주의적 색채가 조금 바랬을 뻔 했다) . 비앙이 이 시를 쓴 게 1954년이고 미국에서의 콘서트는 1964년이니, 올해로 각각 50, 40주년을 맞는 셈이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노래가 이토록 "시의성"을 보여준다니... 말을 잃을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 아프게 말하고, 목이 터지도록 노래를 불러야 한다. 군사주의와 폭력을 포함해서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는 지지돼야 한다고. 왜? 전쟁은 악이니까. 왜 악이냐고? 악이니까!



Afterwords

구글 엔진을 몇 차례 돌린 끝에, 보물 창고 하나를 찾아냈고, 거기에서 보물 하나를 건졌다. 고맙게도 PPM의 콘서트 실황 LP를 그대로 따다가 놓았다.
또 하나. 알고 보니 이 노래가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여러 나라 말로 번안/번역됐다. 한국어 버전도 나왔으면 좋으련만 (내가 한 번 시도해보려 했으나, 잘 안 됐다. 노랫말에 대한 감각이 영 부족한지라).

Peter, Paul, and Mary, "Le Déserteur", ,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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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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