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in.com · 2005-02-09
아마 조지 버나드 쇼였을 것이다, 영어의 무규칙적 발음 체계에 관해 특유의 신랄한 어조와 번득이는 재치를 십분 발휘해 비웃었던 사람은. "ghoti"라는 단어가 뜻하는, 아니 소리내는 말은 무엇일까? 정답은 fish 다. tough나 laugh에서 gh가 [f] 발음이 나고, women에서 o가 [i] 발음이 나고, contemplation, concentration 등에서 ti가 [sh], 그러니까 적분 기호처럼 생긴 발음 기호로 나는 소리를 낸다는 데에 착안하면 이 답이 나온다.
불어는 그래도 이런 식의 발음상의 예외가 영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다. 발음을 제대로 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적어도 특정한 하나의 단위 음절에 대해서는 그에 대응하는 하나의 소리가 있다는 점에서는 영어에 비해 훨씬 규칙적이다...
... 라는 것이 내가 예전에 가졌던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리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네들이 외국의 고유 명사를 들여와서 자기네 식으로 바꿔 부르는 데에는 어떤 규칙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절실하게 깨달았다.
한 컨퍼런스에 갔을 때다. 이날은 누벨 바그 출신의, 이제는 노장 반열에 든 감독 앙드레 테시네(André Techiné)가 초청됐다 (사실 이 감독의 이름도 테키네인지 테시네인지 헷갈렸었다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됐다). 논의가 진행되던 중 계속해서 이름이 브레슈임직한 사람이 거명됐다. 테시네는 브레슈티앙이다, 그의 영화 속에서 브레슈적인 거리 두기/낯설게 하기는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등등. 중반 쯤에 가서야 깨달았다, 그게 브레슈가 아니라 브레히트였음을.
이런 식의 고유 명사 제멋대로 바꿔 부르기가 발음 상의 규칙 이탈/무규칙 현상과 결합되면 외국인들은 말 그대로 환장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나같이 아직까지 불어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닌 데다가 음성보다는 문자로서의 불어에 보다 친숙한 사람에게는. 문제는 뭐냐 하면, 같은 알파벳 문화권 내에 있어 표기 방식을 바꿀 필요 없이 원문자 그대로 들여오면 되는 명사들의 경우, 언어 사이의 장벽을 넘으면 너무도 낯선 이름이 되곤 한다는 것이다. 힐베르트가 영어에서 힐버트가 되고 불어에서는 일베르가 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영어에서는 아리스토틀이지만 불어에서는 아리스토트가 되듯이.
차라리 로빈슨 크루소의 프라이데이를 벙드르디라고 바꾸듯이 바꿨으면 속이 편하겠다. 로빈슨이 로뱅송으로 바뀐 것은 그래도 애교에 속한다. 마이켈슨은 미셸손, 미켈란젤로는 미켈 앙주(Michel-Ange, 내가 사는 거리 이름인데, 사실 이 이름을 발음하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미셸 앙주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많다), 뮌헨은 뮈니크, 베를린은 베를렝, 흄은 윰(처음에는 융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홉스는 옵스, 등등 도대체 내 눈에는 아노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얘길 눈크 언니에게 했더니, 그녀는 맞장구를 치며 '캉트'와 '아이데게'의 예를 추가해 주었다. 알다시피, 혹은 짐작하다시피, 전자는 칸트고 후자는 하이데거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주제의 대화/토론을 꽤 자주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주제는 보통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떤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이 질문은 두 가지 다른 종류로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 : 하나는 발음과 그 발음을 표기하는 체계에 관한 것, 다른 하나는 외래어를 수용하고 표기하는 방식에 관한 것. 전자에 대한 나의 답은 이러하다 : 한국어의 경우, 말그대로 "읽는대로 소리나는" 언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그런 만큼 오히려 발음을 정교하고 정확하게 할라치면 상당히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음은 후자에 대한 답 :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박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