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2일 월요일

프랜시스 크릭이 죽었다

blogin.com · 2004-08-02

이 말을 하려는데 왜 영화 <카미유 클로델>에서의 그 장면이 떠오르는지. 카미유가 동생 폴에게 랭보를 발견한 기쁨을 전하기 위해 직접 학교로 찾아가던. 그 날은 공교롭게도 빅토르 위고가 죽은 날이었지. 학생들이 "빅토르 위고가 죽었다"고 외치면서 거리로 우르르 몰려가고, 폴 클로델은 그렇게 쏠려 나가는 학생들 틈에서 "깊고 반짝이고 푸른 눈"을 가진 누나 카미유를 발견하고, 그녀를 본 폴의 친구는 그에게 "네 누나니? 네 말대로 정말 깊고 반짝이고 푸른 눈을 가졌구나" 하고 속삭이고, 그 얘기를 들은 폴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고, 랭보를 발견했다며 그렇잖아도 반짝이는 눈을 한층 빛내며 말하는 카미유에게 폴은 "빅토르 위고가 죽었어" 하고 냉정하게 말하고.

제임스 왓슨과 공동으로 DNA 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이 7월 29일에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한다( <가디언>의' target='_son'>http://www.guardian.co.uk/l ... tml><가디언>의 기사 ). 나야 "프랜시스 크릭이 죽었다"라는 소식을 접하고서도 별 느낌 없지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생물학과 연이 닿아있는 사람들에게 그 소식은 아마도 클로델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에게 위고의 죽음이 가져왔던 것만큼의 효과를 가져왔으리라. 1953년에' target='_son'>http://www.nature.com/genom ... tson-crick/>1953년에 <네이처>에 실린 이들의 2페이지짜리 논문이 이후 50년 간의 생물학, 그리고 그 인접 학문들을 뒤집어 놓았음은 분명하므로.

DNA 구조의 발견은 아마도 과학사에 기록된 유명한 발명/발견들 중 가장 최근의 것에 속할 터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견"이라는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과학적 발견에 대한 지극히 일반적인 서사--"한 명 혹은 소수의 천재에 의해", "우연히", "각종 이해 관계나 여타의 맥락들과는 무관하게, 오직 '진리'의 탐구에 대한 열정으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이 잘, 그리고 널리 팔리긴 한 모양이다. 그에 비해 크릭의 책이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퍽 유감스럽다. 왓슨이 다소 쇼비니스트인 데가 있어 주변 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 너무나 미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었던 데 반해(특히 발견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결정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에 대한 왓슨의 악의적인 서술은 악명이 높다), 크릭은 확실히 훨씬 관대하면서도 겸손하며 차분한 자세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이 그 역사적' target='_son'>http://www.nature.com/genom ... watson-crick/>역사적 논문"을 쓸 때만큼은, 내 추측이지만, 크릭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했던 것 같다. "아마도", "~라고 믿는다", "~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든지, 논문의 상당 부분이 선배 혹은 스승 혹은 동료들의 연구 성과를 언급하는 데에 할애되고 있다든지 하는 사실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컨대. 그들이 "세기적 커플"로 남을 수 있었던 데에 크릭의 인내심이 한몫했음에는 틀림없다. 오죽하면 크릭이 한 학회장에서 처음 만난 생물학자로부터 "아,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이었어요? 저는 크릭 씨의 이름이 왓슨인 줄 알았었는데" 하는 말까지 들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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