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6일 금요일

논문과 건축

부모님과의 카톡 대화.
9:32am, August 15, 2013, Mom : 세상에 완벽한건 없단다.
[인용자 주 : "단다"체로 봐서 입력자는 아빠인 것 같다. 아래 인용을 보면 알겠지만 엄마는 이렇게 자애로운 문체와는 거리가 있는 분이다]
9:33am, August 15, 2013, you : 그러게요. 그래도 좀더 완벽에 가까운 논문은 나중에 써도 되는데.

9:36am, August 15, 2013, Mom : 기본 설계도와 자재를 살 돈이 있으면 집을 지어야지 좀더 좀더하다가 언제 집을 짓니?

9:56am, August 15, 2013, you : 오! 지금까지 논문과 관련해서 들어본 중 최고의 명언이자 조언! 그러게요. 더군다나 건축주들의  인내심도 한계가 있으니. 언제까지나 그들의 관용을 바랄 수는 없는 일.

9:59am, August 15, 2013, Mom : 네가 건축주야.나머지는 이웃사람아니면 시공업자겠지.너아니면 딴데가서 일자리 구하겠지.
이제 마음 다 잡고 해라.구경꾼도 한계가 있다.

11:16am, August 15, 2013, you : 네에.

논문과 관련한 메타포야 부지기수지만, 그리고 대개는 다 거기서 거기지만, 그 효과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은 타이밍이 아닌가 한다. 논문 작성자의 진척 정도와 그밖의 상황을 고려해서 딱 그 사람과 상황에 맞는 내용과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이를 가장 적절한 순간에 던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뜻이다.

건축 메타포는 여러 맥락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고전적인 사례 중 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인(aitia)론이 대표적이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백지 상태에서 집이 하나 뚝딱하고 지어지는 데에는 재료, 건축가의 설계도, 이 두 가지를 합할 동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완성된 상태의 집이라는 "목적"이 없으면 집의 탄생 과정에 대한 설명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내 역할을 잘못 설정해 왔던 것인가? 설계도를 수없이 그린 것은 기본이고, 집을 지었다 무너뜨린 숫자도 헤아릴 길 없다. 내가 건축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건축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무모한 욕심은 진작에 버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시간적 한계 등등을 좀더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었을 것을... 아닌데? 내 스스로 건축주는 아니라는 자각이 죄책감을 불어일으켜 좀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었을 텐데...?

뭐 어쨌든 결론은 하나다. 어떻게든 집은 완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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