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8일 일요일

Frances Ha & Step (by Vampire Weekend)


< 프랜시스 하>를 보고 나서 뱀파이어 위크엔드의 <스텝> 뮤직 비디오를 떠올린 것은 자유 연상이라기보다는 논리적 추론의 결과였다. <프랜시스 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흑백 화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맨해튼>을 연상시키는데, <맨해튼>과의 연관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스텝>의 클립은 내가 최근에 본 중 가장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사례였기 때문이다. <스텝>의 60년대 뉴욕의 고층빌딩, 거리, 공사현장 등등의 흑백 몽타주를 보며 정확히 똑같은 구성의 <맨해튼>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스텝>를 다시 보다 오히려 <맨해튼>보다는 <프랜시스 하>와 더 강한 선택적 친화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클립 <스텝>의 또 다른 특징은 카라오케 형식의 노랫말 자막이다. 카라오케처럼 노래와 같은 속도와 리듬으로 등장하지만 정확하게 자막은 아니다. 노래가 시작되면 화면을 꽉 채우고 이것이 영상을, 나아가 배경인 뉴욕을 압도한다. 타이포그래피 기법이랄까, 여성주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가 즐겨 썼고 고다르가 <영화의 역사>에서 쓴 기법.

그렇게 전달되는 <스텝>의 가사에서 화자는 한 "소년"이다. 사실 소년이라 하긴 힘들다. 성년을 넘긴 지는 한참 됐다. 그러나 아직 성인으로서의 조건,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 정착할 집이나 가족 등등을 갖추지는 않았다. 삽십세 정도의, 그 누구도 늙었다고 하지는 않으나 또 그 누구도 아직 젊다고 해주지도 않을, 그런 나이. 그리고 한 소녀가 등장한다. "소녀여, 세상에서 널 만날 때마다 넌 한걸음 내딛곤 했지"라는 후렴구의 그 소녀. 후렴구가 등장할 때마다 타이포그라피도 바뀐다. 딱딱하고 현대적인 퓨투라(Furura)체-이 폰트는 뱀파이어 위켄드가 데뷔 앨범부터 줄곧 고집해 왔던 것으로 거의 밴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라 봐도 될 듯-에서 골동품 냄새가 날 것 같은 고문서풍의 잽피노(Zapfino)체로. 노래 전체가 소년이 이 소녀에게 건네는 말이라 봐도 좋을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들린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젊은 시절 여자들이 더 예쁘고 더 감수성도 풍부했다고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그렇지 뭐.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들 하는데, 지혜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녀를 다시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크나큰 착각이었어. 사실 그녀는 내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거야. 우리 모두 언젠가는 늙고 죽겠지.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 하루 하루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셈이야. 그러나, 소녀여, 너는 늙지 않았어. 아직까지는."

< 프랜시스 하>의 프랜시스도 비슷한 나이다. 동갑인 친구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얘길 듣지 않나, 심지어 더 어린 남자애들로부터는 늙다리 취급까지 받는다 ("Frances, the undatable!")... 이제 겨우 스물일곱인데! 열심히 살지만 어딘가 어설프다. 직업적으로나 인간관계 면에서나. 안무가를 꿈꾸나 한 무용단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며 동시에 각종 알바 전전하는가 하면, 남자친구가 있었으나 헤어지고 그러는 동안 단짝 룸메이트는 애인을 좇아 떠나고 그리하여 혼자 남고 등등. 뭔가를 계속 찾고, 헤매고 뛰어다니고 좌충우돌하며, 투자한 열과 성과 시간에 비해 결과는 흡족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누구의 보호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결코 세상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향해 다가선다. 그리고는 결국 한걸음 내딛고야 만다. 그리고 계속해서 내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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