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몽타주의 폭력성에 기가 막혔다. 이를테면 인터뷰이가 수학의 현실세계와의 관계를 논하는데 거기에 수용소나 전쟁 이미지를 삽입하는 식이다. 영상과 음성의 분절-단절이 고다르 특유의 스타일임을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이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카메라는 거의 인터뷰이에 대한 불손에 가깝다. 톰이 칠판으로 설명하려 몸을 일으켜 이동하는데 그에 따르기는커녕 제멋대로 움직이고 심지어 딴청을 피운다.
애당초 톰의 사유를 제대로 배우고 이해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고 단순히 형식적 실험 차원이었던 것일까? 이 모든 걸 형식적 실험으로 치부하면서 가치 평가를 배제하기엔, 글쎄, 오히려 이를 차갑고 메마른 수학적 이성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 나아가 적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었음은 인정할 만하다. 과학에 대한 대중적 혹은 인문적, 나아가 예술적 이해의 차원에서.
나아가 수학에 대한 본질적이고 심오한 통찰력이 돋보인 순간이 있었다. 당신네들이 월급받고 한다는 일이 뭔지 직접 보여달라, 하고 고다르가 주문하자 톰이 칠판에 방정식과 그래프를 그려가며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 모습을 비추는 대신 고다르는 어린 아이가 흰 종이에다 무언가를 그리며 노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바로 플라톤의 메논에 나오는 그 유명한 노예 소년의 예에 대한 참조가 아닌가. 감각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학습을 거치지 않고도 "약간"의 상기와 순수 연역을 통해 도달가능한 체계가 수학이고, 그렇기 때문에 학습과 경험이 전무한 어린 아이들에게 접근가능하고 오히려 어린 아이들에게 접근이 더 용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다르가 실제로 의도적으로 장치한 것인지의 여부는 알 길 없으나, 어쨌든 그는 이 시퀀스에서만큼은 톰이 말하는 수학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듯이 보인다. 게다가 톰은 대표적인 수학적 플라톤주의자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인터뷰 전체가 플라톤의 대화편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무지를 가장한 소크라테스와 비범한 수학자, 이를테면 테아이테토스 사이의 대화. 어디선가 톰이 바로 이 경험을 술회하며 "당시엔 바보같은 인터뷰라 생각했는데 막상 완성된 영상을 보니 고다르가 내 생각을 정확히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는데, 이 말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톰이야말로 고다르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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