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4일 일요일

거리에서 말걸기

"거리에서 날 따라오는 사람은 늙고 역겨운 이들 뿐이네"라 에디트 피아프는 노래했는데 이건 그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언젠가 아는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아가씨들에게 거리낌없이 수작을 걸 정도인 프랑스 할아버지들의 배포와 자신감이 놀랍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기사도 정신-궁정문화-낭만주의 등등으로 이어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특유의 갈랑트리의 유산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다 보기에는, 오, 그 수준이란 것이 너무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
문제는 연령이 아니라 방법에 있다. 나이와 외양이 말걸기에 적합한가는 다음 문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거느냐다. 기껏 말을 걸어놓고 묻는다는 게 "중국인이세요? 일본인? 아님 한국인?"이라면 호감은커녕 관심도 사기 힘들다. 질문 자체야 뭐 잘못된 게 아니고 이국적 외모의 소유자에 관한 한 국적이 일차적 관심사인 것도 이해하지만, 문제는, 오, 그게 클리셰가 되어버렸단 사실. 같은 궁금증도 수사와 표현을 조금만 달리 하면 그럴 듯한 변주가 가능하거늘. 이를테면, 국적을 묻는 질문인 "어디에서 왔나요?"를 살짝 변형한 형태인 "당신의 매력은 어디에서 왔죠?"라든지--실제로 누군가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대고 "그게 무슨 질문이죠?"라며 대놓고 면박을 준 것은 아직껏 후회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쨌든지 간에 거리에서의 말걸기에는 그 발상 자체에서부터 동의하기 힘들다. 우연적 만남이 경우에 따라선 운명적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더더욱 그 본질을 가장 잘 살리는 길은... 그냥 스쳐지나가게 놔두고 또 스스로도 스쳐지나가는 것. 그럴 때 비로소 그 만남의 순간에서 영원을 체험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보들레르, 지나가는 여인에게). 비록 브라상스는 또 "사랑의 신이 거리에서 당신을 스쳐 지나갔네/ 어느날 저녁, 어디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그러나 당신은 알지 못했네/사랑의 신은 그만큼 짖궂다네"라 노래하고 있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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